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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인터뷰 - 열여덟번째 주자 : 이강안님

기사승인 2018.04.06  13: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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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우병 친형의 죽음'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게 했다

한국의 등록된 혈우병 환우는 2300여 명이다. 그 환우의 가족들과 의료진, 환우협회와 보건당국, 복지단체와 제약산업 관계자까지 포괄하여 '혈우 사회'라 부르는 건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고, 내밀한 부분까지 터놓고 이야기 할 공간도 많은 것은 아니다. 본 '릴레이인터뷰'를 통해 한 번 서로의 맨얼굴을 바라보고 이야깃거리를 털어보자. '너와 나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시즌3 현재 릴레이 순서) 김은기 위원장 – 조수호, 조진원 형제 – 황정식님 - 조진기님 - 이명림님 - 이귀병님 - 전수지 간호사 - 이승민님 - 이남일 간사 - 지현승님 - 조달호님 - 김종필님 - 김수섭 아버님 - 김선경 복지사님 - 김진규님 - 김연수님 - 장영진님 - 이강안님

오늘의 인터뷰 주인공을 처음 만난 건 혈우병 환자단체인 한국코헴회와 청심회가 한참 의견대립으로 각자의 길을 가는 과정에서였다. 그만큼 혈우사회 내 구성원 간의 관계도 조심스럽고 때론 냉기가 흐르기도 했던 때였으나 그 대립의 한 축에 서 있었던 이 주인공을 만나면 이상스럽게도 따뜻하고 편안했던 기억이 난다. 마치 ‘가장 크게 하나되기 위한 가장 치열한 갈라섬’이라는 낡은 명제가 틀리지 않았음을 혈우사회가 증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코헴회와 청심회는 혈우사회 공동의 사안에 대해서는 함께 같은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제는 통합이라는 출구로 나와 하나가 된 코헴회 장영진 전남지회장님의 추천을 받아 전북지회 이강안 원장님을 인터뷰했다. 서울 내곡동에는 봄을 알리는 단비가 내리고 있었다.

   
▲ 인터뷰가 낯설다며 쑥스럽게 웃는 이강안 원장님

Q : 우선 원장님 소개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강안입니다. 전북 지회 대의원으로 이번에 선출이 되었고요. 2006년부터 작년1월까지 11년 동안 청심회 회장을 지냈습니다. 1961년에 태어났으니 나이는 58이고요 혈우병 A 중증 환우입니다.
 

Q : 의사 일을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는지요?

제가 대학병원에서 인턴으로 처음 환자 본 것이 88년 2월 12일이니까 의사 된지는 31년째가 됩니다.

   
 

Q : 의사의 일이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힘들지 않습니다. 우리환우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직업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환우들 중에는 정형외과의사도 있고 성형외과의사도 있습니다. 다만 저는 약이 없던 1988년에 수련의과정을 시작했기 때문에 1년 동안 인턴생활을 마쳤을 때는 왼쪽 무릎이 출혈로 완전히 망가져 목발을 짚어야 걸을 수 있어 전문의 과정은 못하고 고향으로 가서 개원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인턴 생활 했을 때, 계속 서 있어야 하고 계속 걸어야 하며 계단도 계속 오르내리던 것이었어요. 인턴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되고 대학병원 건물이 11층이었는데 계단으로 오르내렸어요.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다가 교수님과 전공의선생님들이 오셔서 타시면 그분들이 가시는 층으로 뛰어 내려가서 병실 문을 열고 대기해야 하는, 회진 돌 때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인턴의 일이기 때문에 매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Q : 오늘은 어떤 일로 서울에 오시게 되었나요?

세계 희귀질환의 날을 맞이해서 열린 포럼에 참가하여 혈우환우들을 위해 발언하기 위해 왔고요. 6시부터는 한국혈우재단에서 2017년도 결산 이사회가 있어서 올라왔습니다.

   
▲ 이날 희귀질환 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는 이강안 원장님

Q : 아까 포럼에서 발언하시고 청중들의 호응이 매우 좋았거든요, 오늘 발표 자리는 어떠셨는지요?

제 앞에 앉아 있던 두 어머님들과 환우들을 빼고는 희귀 질환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것 같기에 원래 준비했던 원고와 다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희 환우들이 있었다면 돌연변이가 어떻게 일어나며, 중증과 경증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그리고 그 활성화 수치에 따라 몸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려고 했는데 이번에 모인 청중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필요 없기에 다른 내용으로 발언을 했습니다.
 

Q : 그래도 상당히 희망적으로 좋은 메시지가 전달된 것 같습니다. 저도 같은 환자로서 많은 용기를 줄 수 있는 내용이어서 좋았습니다.

앞으로의 혈우병치료는 매우 희망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2014년 호주 멜버른에서 개최된 세계혈우연맹 총회에서 앨런총재의 말씀대로 결국은 의학의 발전과 제약회사들의 약품개발로 인해서 어떻게든 우리가 사용하는 약의 효과는 훨씬 좋아지고 가격은 떨어지는, 그런 것들이 계속 진행되어 지금 현재 우리 정부의 예산을 가지고도 충분히 좋은 약들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획기적인 효과를 가진 약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가 바라는 치료환경을 만들기가 더 쉬워지겠지요.

   
 

Q :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기 전까지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선생님.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4교시 끝나고 집에 오면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방에도 안 들어가고 마루에서 숙제 먼저 했어요. 어머니에게 혼나면서까지.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28살이던 우리 형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아침 8시에 교통사고를 당해 무주에 있는 병원에 아무런 외상없이 입원했는데, 그때 같이 병원에 있었거든요. 저녁에는 배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하였지만 진통제만 주고 관심을 안 갖다가 다음날 아침에 혈압이 떨어지니까 대전에 있는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지만 그땐 구급차도 없었어요. 택시를 타고 옮기던 중에 옥천이라는 곳에서 형님이 돌아가셨어요. 그 일을 겪으면서 형님이 돌아가신 것은 의사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린 마음에. 내가 꼭 의사가 되어서 고향에서 병원을 해서 사람들이 우리 형님같이 억울하게 죽지 않도록 해야겠다, 생각했죠. 하지만 나중에 의사가 되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그 때 상황에 그 의사가 우리 형님이 혈우병 환자인 것도 알 수도 없었고, 배가 아팠다는 것이 간이나 비장 같은 곳이 파열되어 복강 내 출혈이나, 장간막파열이나 장파열로 인해 출혈이 생겼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빨리 대전에 있는 큰 병원으로 이송을 해서 수혈을 하고 수술을 하던가 했어야 하는데, 그때가 73년도였거든요. 그때는 대전에서도 지금처럼 수술해서 간이 파열됐다면 봉합하고, 비장이 파열됐다면 절제해서 지혈을 도모할 수 있는 그런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라도 저희 형님을 살릴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돼요. 하지만 그때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어린 생각으로는 의사의 잘못이라고 생각했고 의사가 잘 했더라면 우리 형님이 살았을 것인데 라는 원망을 했죠. 그래서 그때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 인터뷰 도중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따님이 아빠를 만나러 왔다.

Q : 의사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요?

후회되는 것이 가장 기억이 남죠. 제가 오진을 해서. 제가 처음 인턴 할 때 응급실에서 발작을 일으켜서 온 40대 남성이 있었는데 당시 신경외과 의사를 호출하기도 했지만 저는 그 때 단지 그 환자가 간질이 있어서 발작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신경과 의사가 와서 CT를 찍어 보니 전두엽에 있는 뇌동맥류가 파열되어 발작이 일어났던 것이더라고요. 결국 그 환자는 수술을 할 수 없는 부위여서 12시간 정도 응급실에 있다 돌아가셨는데, 응급실 밖에서 그분 부인이 저를 쳐다보는 얼굴이, 상당히 원망스러운 그 얼굴이 30년간 잊혀지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로 항상 더 공부하고, 더 신중하며 그때의 일을 생각하며 노력하고 있지요. 지금도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느낌으로 환자를 보고 있어요. 쉬운 환자는 없는 것 같아요. 마치 환자가 저를 속이려고 하는 것처럼 환자의 병명은 이건데 그렇게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죠.
 

Q : 청심회 회장을 오랫동안 지내오셨는데, 청심회라 하면 전남이라고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현재는 전북에서 활동하고 계신데 어떤 인연으로 하게 되신 것인지요?

2002년도에 4월인가 아침에 무주에 있는 개인의원 원장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혈우병 환자가 있는데 제가 좀 봐줬으면 좋겠다, 라고 연락이 왔죠. 그래서 그 환자를 진찰했는데 그분이 바로 김선생님이었어요. 김선생님은 무주 중학교 교감으로 부임해 오셔서 관사에서 주무시다가 갑자기 무릎에 출혈이 생겨서 배드민턴 치러 나온 체육 선생님에게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말씀하셨대요. 그때 그분이 자가주사를 못하셨어요. 그래서 그분이 그 이후로 계속 저희 병원에 오셔서 주사를 맞으시고, C형간염치료를 위해 6개월간 인터페론주사도 저희 병원에서 맞으셨죠. 그렇게 인연을 이어가다가 그분이 교장이 되어서 완주로 가셔서 정년을 맞으셨는데, 그때 마침 장영진 지회장님이 말씀하신 안두식 지회장님이 비브리오 패혈증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안두식 지회장님 후임으로 김선생님이 지회장이 되었고 지회원 명단을 받았는데 거기에 이강안이라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바로 전화를 하셔서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명단에 적혀 있는데 당신도 혈우병 환자냐, 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아 들켰다, 하면서 죄송하다고 그랬죠. 왜 죄송하다고 했냐하면 이전에 그분이 혈우병에 대해서 엄청난 질문을 던졌을 때 막힘없이 대답해주고, 환자가 밀려 있을 때도 그분을 우선적으로 주사를 놔주고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혈우병 환자라고 밝히지 않았거든요. 

그 이후로 2004년도 10월 방콕 세계 혈우연맹총회에 참가하여 윤정구 전무님과 허영섭 회장님 등을 처음 만나뵙고 사실상 커밍아웃 한 셈이죠. 그 전까지는 서울 재단의원 가서 약만 타왔지 무주에 있는 의사분들 외엔 다른 분들은 제가 혈우병인지 몰랐죠. 김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문병을 간 제 손을 꼭 잡고 장선생님을 도와줘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러겠다고 말했지만 사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이나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때는 그 말씀이 무슨 말인지 몰랐었죠. 김선생님이 돌아가시고 그 뒤를 이어 전북 지회장이 되었습니다. 전북 지회의 원래 다른 이름이 청심회였어요. 예수병원 사회사업과에서 지어준 이름이었죠. 제가 광주 전남 지회와 전북 지회의 환우 260여 명을 하나의 독립된 환우 단체로 만드는 것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장선생님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총대를 메게 된 것이죠(웃음). 11년간의 제 역할은 장선생님을 도와드리는 거였습니다.. 저는 청심회를 제가 이끌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장선생님을 도와서 환우들의 치료환경을 조금이라도 좋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 조용히, 천천히 청심회와 코헴회의 화합을 이끌고 온 이강안 원장님

Q : 11년만에 환자 단체 통합을 추진하면서 어떤 점을 느끼셨는지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늘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지만 막상 통합하자고 했을 때는 코헴회와 청심회 양쪽을 모두 설득해야만 했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설득했습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전체 혈우환우들을 위한 길이란 걸 안 이상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세계혈우총회 유치가 무산되는 것을 보면서, 빨리 코헴에 들어가서 코헴회를 이끌고 가지는 못 할망정 코헴회의 브레이크 역할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말레이시아와 경쟁해서 우리나라는 2020년도에 충분히 총회를 유치할 수 있었는데 안타까워요. 세계혈우연맹총회는 학회의 성격이기 때문에 이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진도 많아야 하거든요. 2004년도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총회의 경험이나 2020년 말레이시아 총회도 예상해보지만 그 나라들은 의료진이 아주 열악하다고 생각되거든요. 당시 코헴회 집행부에서 잘못된 판단으로 재단과 마찰을 빚어 유치를 못했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이걸 미리 알았더라면 적극적으로 중재해서 진행했을 텐데 말이죠. 총회를 유치했더라면 혈우병 치료 환경이 많이 나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을 텐데요.
 

Q : 하루 중에 가장 즐거운 시간은 언제인가요?

딸내미의 전화를 받는 시간입니다(웃음). 지금은 판교에 살고, 강남에 있는 학원에 다니고 있죠. 오늘 여기서 만나게 되어 좋네요. 예전에 지리산에서 광주전남지회 세미나행사 할 때 장영진 지회장님 딸, 황종선 대의원님 딸, 방동윤씨 딸, 제 딸 이렇게 넷을 모아놓고 황태주 이사장님께서 보인자를 갖고 있는 여성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을 한 시간 반 동안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인지 몰라도 우리 딸내미는 꼭 결혼해서 애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해요. 사귀는 남친도 있구요.
 

Q : 가장 감명깊게 보신 영화는 무엇이고 이유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본 영화 ‘아이스 캐슬’이 가장 감명 깊었습니다. 8번이나 극장에 가서 볼 정도로요. 미국의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어려운 환경에서 전미 선수권에서 우승을 한 것도 대단한데 그 후 실명하게 되어 실의에 빠져있다 남자친구의 도움으로 실명하지 않았을 때처럼 스케이팅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스토리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김연아 선수처럼 정말 스케이팅을 잘 하는 것을 보고 장애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코헴회 신임 임원진과 함께

Q : 만약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은 종목은?

사격 종목의 복사 50m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1982년 대학교 1학년 때 전주 35사단에서 M16 소총으로 10발을 쏴봤습니다. 그때만 해도 군사정권이라 대학교 1, 2학년은 병영집체훈련이라는 미명하에 일주일씩 군부대에 입소하여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Q : 원장님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제가 개인적으로 꿈꾸는 미래는 5년 후 은퇴하면 손자와 함께 도서관 다니면서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읽는 것입니다. 혈우환우들에 대한 최종목표는 코헴회에 힘을 보태어 선진국 수준의 치료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를 치료해 주시는 의사선생님들께서 삭감의 우려 없이 의학적 판단으로 우리환우 개개인에 맞는 치료를 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어야죠. 또 하나의 목표는 환우들 스스로 자기관리를 할 수 있는 연령대별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 확실히 따님은 사모님을 많이 닮았다.

Q : 다음 릴레이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주시죠.

다음 릴레이 주자로는 김대봉 전회장님을 추천합니다. 김대봉 전회장님이 코헴회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주시고 퇴임하셨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 못해서 안타깝고, 비록 코헴 회장을 그만두었더라도 적극적으로 나오셔서 일해주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지난번 WFH 근골격학회때 사진 찍힌 모습을 보고 참 반가웠습니다. 환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기에 꼭 같이 일하고 싶습니다.
 

Q : 혈우병 아이를 키우시는 부모님들께 힘나는 한 말씀 부탁드려요.

강하게 키우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려면 어머님들이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 선행되어야 합니다. 응고인자라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연의 결과입니다.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은 그 아이의 운명이지 누구의 잘못이 아닙니다. 운명은 극복하면 그만이라고 늘 믿어왔습니다. 혈우병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낮은 자세의 리더쉽이 돋보인다” 동행했던 기자가 평소 이강안 원장님을 보며 들었던 생각을 이날도 다시 하게 되었다며 한 말이다. 이제는 한 지역이 아닌 전체 혈우사회에 그 특유의 웃음과 따뜻함을 전해주실 것을 기대하며 녹음기를 껐다. 멀리 서울까지 올라와 바쁜 일정 사이의 틈을 벌려 때로는 가슴아프고 때로는 유쾌한 이야기를 들려준 이강안 원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 인터뷰를 마치며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우), 김태일 편집장(좌)과 함께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 / 사진 영상 황정식 기자]

 

김태일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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