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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인터뷰 - 네번째 주자 : 조진기씨

기사승인 2016.06.01  12: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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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의 8할은 가족, 아니 그 이상"

한국의 등록된 혈우병 환우는 2100여 명이다. 그 환우의 가족들과 의료진, 환우협회와 보건당국, 복지단체와 제약산업 관계자까지 포괄하여 '혈우 사회'라 부르는 건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고, 내밀한 부분까지 터놓고 이야기 할 공간도 많은 것은 아니다. 본 '릴레이인터뷰'를 통해 한 번 서로의 맨얼굴을 바라보고 이야깃거리를 털어보자. '너와 나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황정식씨의 추천을 받아 이번엔 조진기씨를 만났다. 처음 가보는 고양시의 삼송테크노밸리에는 업종도 다양한 수백개의 회사들이 빼곡히 들어차있었고 건물 내부에까지 화물차가 다니는 그야말로 '산업단지스러운' 풍경 속에서 오늘의 주인공 조진기씨의 삶의 현장에 닿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족의 행복과 가족이 함께하는 삶을 우선으로 하는 우리의 젊은 오빠, 조진기씨를 만나보자.

(시즌3 현재 릴레이 순서) 김은기 위원장 – 조수호, 조진원 형제 – 황정식씨 - 조진기씨


   
▲ 조진기씨. 누가 47세라고 믿을까?

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국동에 사는 47세 조진기라고 합니다. (기자 : ! 최강동안이십니다...) 요새 살도 좀 붙고 건강해져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어요. 8인자 중증입니다~ㅎㅎ

2. 하시는 일에 대해 알려주세요.

인쇄소에 납품하는 판재작업을 하는 일이에요. (기자 : 판재요?) 인쇄 공정을 좀 알아야되는데.. 인쇄를 하려면 제일먼저 디자이너가 컴퓨터로 편집을 해야되잖아요? 그 디자인된 걸 제본에 맞게 큰 알루미늄 판에 앉히는 걸 판재작업이라고 하는 거에요. 예전엔 필름에 앉혔다가 알루미늄 판으로 옮겼는데 요새는 공정이 간소화돼서 직접 판재작업을 하죠. 이 판을 인쇄기에 걸면 기계의 블랭킷에 복사가 됐다가 최종 종이에 인쇄돼 나오는 건데, 말하자면 그 중간단계의 작업을 주로 하는 거죠.

3. 이 일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20대 초반때부터 지금까지 이 일 했으니까 한 25년 한 거죠. 지금 이 회사로 온 건 작년이고요. 이 분야가 원래 이직률이 높은데 또 그만큼 자리도 많아요.


   
 
   
알루미늄 판재 제조공정
   
 
 
 

4. 일이 힘들진 않으세요? 

몸이 힘든 일은 피해서 하죠. 왜 같은 업종에서도 힘든 일 하면 돈을 더 받잖아요. 근데 살다보니까 돈 더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더라구. 몸관리 하면서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더 중요해요. 한 두 해 왕창 벌고 말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요샌 기계가 좋아져서 컴퓨터만 다룰 줄 알면 몸을 많이 쓰지 않아도 돼요. 가끔은 재택근무도 하고.
 

5. 황정식씨 소개로 왔는데,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 좌로부터 조진기씨, 황정식씨, 조진기씨 부인

정식씨 코 찔찔 흘릴 때부터 알았고, 사실 정식씨보다도 그 어머님, 송재완 어머님에 대한 기억이 많죠. 재단 초대 사무국장 하셨던 거잖아요? 깐깐하시면서도 정이 많았고, 환자들도 많이 챙겨주시던... 생각해보면 사람에 대한 평가는 나중에 끝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모두가 환자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존경을 받는 것 같아도, 갈등이 생기고 틀어진 이후에는 시간이 지나서야 진짜 존경을 받아야 했던 사람이 기억에 남더라고. 정식씨랑은 4년 전쯤 수술하고 같이 입원실을 쓰기도 했고요. 참 유쾌한 친구라고 생각해요.

6. 수술은 어디어디 하셨어요?

양쪽 무릎 다 인공관절 했고 나름 성공적이죠. 출혈은 아예 없고, 이거 안했으면 사회생활 못했을 것 같아요.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게 실감이 나. 솔직히 내가 사장이면 매일 아파서 결근하는 사람 쓰고 싶겠어요? 제때 수술받고 조금 더디더라도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해 나가도록 노력해야죠. 직장생활 그거 뭐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두세배 더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남들에게는 일상이지만 우리는 그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선천적인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거잖아요.

   
▲ 조진기씨가 일하는 테크노밸리 전경

7. 수술 후 제일 달라진 점은 뭔가요?

직장생활을 더 오래 영위할 수 있게 된 거죠. 솔직히 그래요. 돈을 벌 수 없는데 어떻게 인생이 행복할 수 있겠어요. 경제적 여건도 뒷받침이 되어야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거에요. 아프지 않은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돈 벌어서 가족도 부양하고 먹고싶은 것도 먹고 그래야되는데 그게 안되면 힘들죠.

8. 자제분들이 다 컸죠?

큰애는 이번에 제대해서 집 앞에 직장 들어갔어요. 스물두살. 둘째는 스무살 딸. 막내는 고2 . 엄청나죠.(웃음) 결혼을 일찍 했어요. 스물 다섯이었나.. 기억도 잘 안나네. 애들 어떻게 키우나.. 싶었는데 열심히 살다보니까 애들도 건강하게 잘 커주대요. 딸들은 당연히 보인자인데, 따로 말 안해줬는데도 지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검색해보고 해서 다 잘 알더라고. ‘니들이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100% 혈우병 아이만 나오는 건 아니니까, 또 그때 되면 다른 좋은 검사법이나 치료법이 나올 수 있으니까 미리부터 걱정하고 판단하지 말자라고 얘기해요.

   
▲ 조진기씨 가족

9. 따님들을 위해서라도 혈우병 사회가 해야 할 일이 많네요. 가족과 함께 여행가보고 싶은 곳은 어디?

제주도. 지금도 함께 한 번 가려고 꿈만 꾸고 있는데, 언제가 될진 모르겠어요. 애들하고 가보질 못해서... 제주도 가서 해수욕도 하고 올레길도 걷고 좋을 것 같아. 와이프한테도 너무 고마운 게 많아서 한번은 꼭 가족 다같이 가고 싶어요. 솔직히 우리들은 집사람들한테 잘해줘야 돼~ 착한 거야. 혈우랑 결혼하고 함께 산다는 게... 우린 그런거 진짜 생각해야 돼.


   
▲ 조진기씨의 행복한 미소

10. 그런 얘기 형수님께도 자주 해드리세요? 고맙다고

아니, 낯뜨거워서 못하지. 대신에 평소에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거지. 사실 여자들이 쇼핑 나갔다가도 자기 옷은 못사고 남편 옷, 애들 옷만 잔뜩 사오잖아요. 가족 중심적인 게 여자에요. 사다 안겨주지 않으면 평생 자기 빽 하나 못 살거에요. 가족들이 챙겨줘야죠.
 

11. 아들, 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치열하게 살지 말고 즐겁고 행복하게, 가치있게 살자.
 

12. 살아오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어렸을 때 대전 대학병원에 입원했었는데, 죽을까봐 어머니와 사진 한 장 찍으러 갔는데 어머니가 울면서 사진관 아저씨에게 사정 얘기를 하니까 아저씨가 나에게 수혈을 해줬고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어요. 일면식도 없는 분이었는데 어린 기억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평생 빚진 기분이 들어서 좋은 일 많이 하고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게 한 분이죠.

   
▲ 고양시 삼송지구 가는 길

13. 힘들 때 그것을 극복하는 나만의 주문

이정도쯤은 죽을만큼 힘든 정도는 아니야!”

14. 다음 릴레이주자는 누구?

이명림 형님을 추천하고 싶어요.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보기 좋고 언제든 의지가 되는 형님이에요. 아는 분들도 많으시겠죠?

   
▲ 조진기씨와 함께

인터뷰에 응해주신 조진기씨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가장의 땀이 가슴 깊이 전해지길 바라봅니다.

[김태일 기자]

김태일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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