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이어도 좋아" 하남 사랑꾼의 아빠준비
한국의 등록된 혈우병 환우는 2100여 명이다. 그 환우의 가족들과 의료진, 환우협회와 보건당국, 복지단체와 제약산업 관계자까지 포괄하여 '혈우 사회'라 부르는 건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고, 내밀한 부분까지 터놓고 이야기 할 공간도 많은 것은 아니다. 본 '릴레이인터뷰'를 통해 한 번 서로의 맨얼굴을 바라보고 이야깃거리를 털어보자. '너와 나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시즌3 현재 릴레이 순서) 김은기 위원장 – 조수호, 조진원 형제 – 황정식님 - 조진기님 - 이명림님 - 이귀병님 - 전수지 간호사 - 이승민님 - 이남일 간사 - 지현승님 - 조달호님 |
▲ 인터뷰는 낮부터 고기를 구우며 진행됐다. 좌측부터 김태일 기자, 조달호님, 하석찬 기자 |
Q.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
하남시 살고 있는 서른아홉살 조달호입니다. 성수동에 있는 회사에서 회사생활 하고 있구요. 회사는... 은행에 가면 돈 세는 기계 있잖아요? 그 기계 만드는 회산데요, 돈만 세는 게 아니라 돈이 찢어졌는지, 위폐인지, 테이프가 붙어있는지 구별하는 기계인데 거기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Q. 중소기업인가요?
그쵸. 200명 좀 안되는데, 연구소인원이 70, 나머지는 생산직이에요.
Q. 중소기업, 다니기에 어떤가요? 대기업만 바라보는 젊은층 많은데...
그냥 취직이 돼서 다니기 시작한 건데,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중소기업은 자기가 해보고 싶은대로 해 볼 수 있고, 기회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자유롭게 보장되는 것 같아요. 대기업은 아무래도 그런 건 좀 어렵겠더라구요. 저는 만약 대기업 갔다면 지금처럼 재밌게 일하진 못했을 것 같아요.
Q. 계속 다니실 거죠?
네네. 별 일 없으면요.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더 나은 회사 차려서 "너는 몸만 오면 돼"하는 게 아니면 계속 다닐 것 같아요. 직접 알아보고 그런 걸 잘 못해서ㅎㅎ
▲ 조달호회원이 서울경기지회장 시절 환우 아이들에게 공격당하고 있다. |
Q. 휴일은 충분히 쉬나요?
쉬려면 다 쉬어요. 주말에도 나와서 할 일이 없는 건 아닌데, 쉰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 없어요. 잘 쉬고 있고, 놀러도 잘 다니고 있고요.
Q. 아, 축하가 늦었네요. 아이 임신하셨다고요.
ㅎㅎ 고맙습니다. 이제 한 12주 정도 됐고요, 좋기도 하고 부담도 되고 걱정도 되고 그래요. (기자 : 아들? 딸? 뭐 원해요?) 딸이 좋아요. 아들 키워봤자 의미 없는 것 같아요. (큰 웃음)
▲ 아이들과의 물총싸움 끝에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그래도 지금보다 슬림해서 보기 좋은 듯 |
Q. 딸이면 보인자인데, 괜찮아요?
그때는 뭐, 한 2~30년 지난 때니까 뭐 잘되지 않겠어요? 그리고 요새 환우 아이들 보면 딱히 불편한 거 없으니까... 주사 맞는 게 귀찮아서 그렇죠.
Q. 부인과 여행도 많이 다니시는 것 같아요.
네. 최근에는 코타키나발루(말레이시아) 갔다왔고요, 제일 좋았던 데는 신혼여행으로 갔던 하와이? 와이프랑 가면 다 좋았던 것 같아요. 무리해서 파리랑 스위스도 다녀왔는데 그때 아니면 평생 못갔겠다 싶더라구요. 하와이는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어요.
▲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부인님과 함께 |
Q. 하와이는 어떤 게 좋나요?
신혼여행으로 갔던 거라 설레서 더 좋았고(웃음) 바다가 다른데보다 좋더라구요. 물도 맑고, 거북이를 본 건 하와이가 유일해서 인상이 많이 남는 것 같네요. 쇼핑하기도 좋고요.
Q. 결혼은 언제하셨죠?
2015년 2월 8일에 했으니까 2년 4개월 좀 넘었네요. 연애 1년 2개월 하고 결혼한 거였어요.
Q. 사귀실때 혈우병에 대해서는 어떻게 얘기하셨어요?
처음으로 놀러를 가야됐는데, 얘기를 해야 가서 주사도 맞고 편하게 놀 수 있겠다 싶어서 '혈우병 있는데, 아니면 말아라' 겸사겸사 얘기를 했죠. 색시가 겁이 좀 많아서 처음엔 좀 충격을 받았다가, 그때가 한 5개월쯤 사귀고 있을 때였는데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괜찮았고 몇달동안 몰랐지 않았냐, 앞으로도 그럴거다' 안심을 시켰죠. (기자 : 좋은 방법이네요.)
▲ 10년전 연말, 코헴의밤을 준비했던 멤버들과 함께 |
Q. 현재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건가요?
반감기 연장된 8인자 약품이구요, 진행한지는 3년 넘은 것 같아요. 시험에 필요한 기간은 다 채웠고 국내 시판 전까지 무상공급 차원에서 약품이 계속 공급되고 있어요.
Q. 임상시험 약품은 몇일에 몇단위 맞고 있고, 출혈빈도와 건강상태는?
월,목요일 아침에 100%인 5000 단위를 맞고 있습니다. 출혈 기억은 요 근래에는 특별히 없었고, 사랑니 발치로 인한 것만 있었던것 같아요. 건강상태는 살이 쪄서 약간 발목이 불편한 느낌이 있는 정도이고 혈우병으로 인해 직접적인 불편함은 없는 상태입니다.
Q. 결혼하시면서 친한 코헴회 동생들과 만남이 좀 뜸해지셨다고 하는데 아쉽진 않으시고요?
친하고 자주 보고 그랬는데 지금은 못그러는게 아쉽긴 하죠. 원체 놀기 좋아하는데 결혼하니까 여기 친구들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많이 못만나게 되니까 그게 좀 아쉽고, 가끔 답답하기도... 아니 이건 아니다.(입을 때리며 큰 웃음) 그냥 좀 아쉬운 정도? 그래도 조금 지나면 시간도 더 나고 자주 볼 수 있겠죠.
▲ 그 아쉬움 달래기 위해 인터뷰 후 주말에 코헴 또래 청년들 생사확인 자리를 가졌다. |
Q. 부인께서는 혈우병 관리에 도움을 어떻게 주시나요?
▲ 조달호님 카톡 프로필 |
예방요법 꼬박꼬박 하라고 엄청 잔소리를 해요. 월요일 목요일 두 번 아침에 맞아야 하는데 귀찮아서 저녁으로 미루려고 하면 꼭 시간 맞춰서 맞게 도와줘요. 와이프가 걱정이 많아서 건강에 대한 잔소리를 많이 해요. 살도 빼라고 하고. 일주일 단위로 체중을 재서, 살이 더 찌면 제가 용돈 5만원을 뱉어내고, 500g에서 700g 정도 빠지면 용돈을 3만원 올려받기로 했어요. 최근 5만원 뺏겼어요.ㅎㅎ
Q. 경제권을 부인께서 갖고 계시군요?
그쵸. 통장이랑 이런거 다 주고 저는 용돈만 받아서 쓰고 있죠. 색시도 관리를 전문적으로 따로 한다기보다 한사람이 하는 게 더 편하니까 몰아주고 있어요.
Q. 맞벌이 하시죠?
네. (기자 : 누가 더 많이 버시나요?) 거의 비슷하고요, 제가 아르바이트 같은 거 안하면 기본급은 색시가 좀 더 많아요.
Q. 한 달 지출중에서 제일 많이 차지하는 항목은?
여행이 제일 많죠. 놀고 먹는 거ㅎㅎ. (기자 : 왜 그렇게 여행에 많이 쓰세요?) 둘 다 여행 진짜 좋아하는데 쉬는 날이 자유롭지 못하다보니까 어쩌다가 일정이 맞을 때 급하게 여행스케줄을 잡고 그러면 비행기도 비싼거 타게 되고 방도 좀 비싼거 잡게 되고 그런 거죠. 몇 달 전에 예약하면 좀 싼데. 그리고 여행가면 좀 편하게 쉬고 오자는 주의가 있어서 숙소나 코스를 좋은 걸로 잡는 편이에요.
▲ 강릉 앞바다 (멀리 갈 거 없더라구요) |
Q. 재테크 전략은?
빚을 좀 크게 내서 갚아나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웃음) 아파트 때문에 몇 억 단위로 빚이 있으니까 적당히 압박도 되고 사람이 성실해지더라고요. 이자로 나가는 게 좀 손해긴 하지만 워낙 낮고, 집값도 안오르는 건 아니니까 그게 빠른 방법 같아요.
Q. 몇차례의 WFH총회 참석을 통해 느낀점이 있었다면?
벌써 제가 참석한게 10년 가까이 되어서 지금이랑은 많이 다를 수 있지만 요즘 느끼는 감정은 자기계발서를 읽고 온 것 같다고 할까요? 몰라서 안 한다기보다는 알고 있지만 자기의 의지를 포함해서 여러가지 사회적 상황들이 실천을 못하게 한다는 느낌입니다. 여러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창구는 많이 있어서 정보가 뒤쳐진다는 느낌이 많이 들지는 않지만 실천에 대한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Q. 한국 혈우사회에 바라는 점은?
모든 일이 순리대로 진행됐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다 다르겠지만 개인의 방향과 우리 혈우사회가 진행되어야 할 방향과의 차이, 다름을 인정하고 바르게 발전했으면 합니다.
Q. 꿈이 있으세요?
색시하고 알콩달콩 사는 게 꿈이죠. 늙어서 몸 힘들지 않고, 자식들한테 손 안벌리고 폐지 주으러 안다니면 될 것 같아요. 80까지 일하면 좋고요. 나이 들어서도 어디 가고 싶은 데 갈 수 있는 돈과 체력이 있으면 해요.
Q. 다음 릴레이 주자를 추천해주세요.
음...혈우재단 원장님 추천하고 싶은데 안될 수 있으니까, 그럼 종필이형 해볼 수 있을까요? 김종필 회원님요. 사무국 간사도 하셨고 저처럼 서울경기지회장도 하셨는데 요새 좀 활동 뜸하신 것 같아요. 겸사겸사 잘 지내고 계시는지... 우리가 평생 안보고 살기도 뭐한 사람들인데, 안좋은 거 있었으면 풀고 좋은 거 있었으면 더 잘 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추천하는 거죠.
▲ 조달호님의 회사 근처에서. 다음 릴레이에서 만나요, 제발~ |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찾다보니 조달호님 주변엔 혈우병 선배보다 후배가, '엄마 세대'분들보다 아이들이 더 많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혈우사회 내 새로운 세대들의 롤모델 혹은 친근한 동네 형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싶은 거다. 지금까지처럼 건강하고 패기있는 본보기를 보여주길 바란다. 바쁜 시간 인터뷰에 응해준 것에 감사를 전하며, 복스러운 임신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린다. 꼭닮은 딸 낳으시길! 화이팅~
[헤모라이프 김태일 하석찬 기자 / 사진:조달호님 제공]
김태일 하석찬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