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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인터뷰 - 첫번째 주자 : 김은기 비상대책위원장

기사승인 2015.11.18  18: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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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우사회 내 릴레이 인터뷰 시작

한국의 등록된 혈우병 환우는 2100여 명이다. 그 환우의 가족들과 의료진, 환우협회와 보건당국, 복지단체와 제약산업 관계자까지 포괄하여 '혈우 사회'라 부르는 건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고, 내밀한 부분까지 터놓고 이야기 할 공간도 많은 것은 아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릴레이인터뷰'를 통해 한 번 서로의 맨얼굴을 바라봐 보고 이야깃거리를 털어보자. '너와 나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가을이 깊어진 11월의 불금날, 첫번째 릴레이 주자로 한국코헴회 김은기 비상대책위원장을 코헴회 사무국에서 만났다. 초코파이 한곽과 맥콜 한 병 사들고 갔다. 어울리나?
 

   
 

1. 소개말씀 부탁드려요

그냥 평범한 가장입니다. 한 여자의 남편이고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그리고 2000여명 환우들의 친구이고 싶은 비상대책위원장 김은기입니다. 물론 환우이구요. 8인자 중증(웃음)


2. 요새 가장 즐거운 일은?

즐거운 건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집사람 건강하고 두 아이가 대학생활 잘 하고 있고 그런 게 즐겁습니다. 그리고 우리 환우들이 사용할 수 있는 약품의 종류가 많아지고 질이 좋아졌다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죠.


3. 아이들 자랑을 해주신다면요?

글쎄요... 크게 아파서 병원 간 적이 없었고, 학교에 부모 불려간 적 없고, 맞고 오거나 때리고 온 적 없으니 학교생활 잘 했다고 할 수 있겠죠? 아들은 어려서부터 조립완구를 그렇게 좋아하더니 공대 들어갔고, 딸래미는 애기들을 무척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 교회 유치부 선생님을 하고 지금은 유아교육학과 가서 공부하고 있으니 자기들 진로 스스로 결정해서 가고 있다는 게 대견하고 그렇습니다. 요새는 마트나 빵집에서 알바해서 아빠 선물도 사오고 그러더라구요.


4. 어릴적 혈우병 이겨낸 스토리

여섯 일곱 살 때 기억부터 있는 것 같아요. 한쪽 무릎이 안좋아서 걸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도 친구들을 너무 좋아해서 친구들 노는 데는 꼭 끼어서 같이 어울렸고, 그러면서도 크게 안 다쳤던 건, 주변에 항상 내 상태를 잘 이해시키려고 설명을 많이 했어요.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사람들이 잘 배려해줬기 때문에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사내아이들이랑 동네에서 목검놀이를 하다가 친구가 목검으로 내리치는 걸 왼쪽 팔로 막았다가 지금도 장애로 좀 남아있고, 20대 초반에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오른쪽 다리를 다쳤던 정도? 사실 89년도 이전에는 ‘약’이라는 것도 모르고 살았으니까 다치면 붕대 감고 드러누워있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혈우병 진단은 어렸을 적에 전주예수병원에서 받았기 때문에 ‘내가 왜 아픈지’는 대략 알았지만 치료제를 접한 건 89년도 신촌세브란스 병원을 알게 되면서부터였어요.


5. 코헴회 일을 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어떤 협회든 회사든 스스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한데, 현재 자립도가 낮다보니 모든 사업을 계획함에 있어서 먼저 협조를 구하고 어딘가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이 좀 어려운 부분입니다. 짜여진 작은 틀 안에서만 진행을 해야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코헴회의 자립도를 높여가면서 복지와 자활분야에 더 신경써야 할 것 같고, 환자단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회원관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년에는 인력과 재정을 좀 더 확보해 회원들을 찾아가는 복지사업을 추진코자 합니다.


6. 이번 정관개정안에 많은 공을 들이신 걸로 아는데 논의를 앞둔 소회는?

먼저 자비로 교통비까지 써가며 참여해 주신 정관개정자문단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11월21일 열리는 67차 대의원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관개정의 필요성을 느낀 건, 현 정관에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몫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회원들의 몫이 없는 단체는 발전할 수 없고 또 그렇게 발전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개정안을 통해서 회원들이 협회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몫을 돌려주고 싶었고, 이런 변화가 자리잡힐 때까지 어려움이 좀 있더라도 꼭 정관개정이 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7. 10년 후 나의 모습은?
   
10년 후면 제가 예순다섯이에요. 그때면 저는 시골 어느 허름한 복덕방에서 동네 노인들과 장기, 바둑을 두고 있지 않을까...(웃음) 집사람은 호박잎, 가지 이런 것 따다가 식사준비를 할 것이고... 애들 자립하고 나면 둘이서 전원생활하자고 얘기했어요. 용인 백암 쪽에 쪼그마한 농가 한 채 사 둔 게 있는데 아마 거기 가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때면 유전자치료가 발전해서 저희 딸아이도 건강한 손주들을 낳고 같이 뛰어놀 수도 있겠지요.


8. 따님께는 보인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아이가 성인이 되고 대학에 입학을 하고 대학 기숙사에 처음 들어가던 날, 짐 싣고 기숙사까지 데려다주면서 얘기를 했어요. 제가 살아온 모습을 딸아이가 보면서 혈우병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날 처음으로 ‘네가 결혼을 하면 아빠같은 병을 가진 아이를 낳을 확률이 50%다’라는 얘기를 해 줬어요. 그러면서 딱 두 가지를 당부했는데, 하나는 ‘아빠도 힘겹지만 열심히 잘 살아왔듯이 혈우병 아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족끼리 아끼며 살아나가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늦더라도 신중하게 짝을 찾고 조금 늦게 아이를 가져라’ 하는 거였어요. 한 10년만 시간이 흘러도 지금 아빠처럼 약에만 의존해야 하는 시대는 아닐 것이니까, 10년 재밌게 젊음을 즐기고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는다고요. 딸아이가 알겠다고 하대요. 그런데 자기는 애들 너무 좋아하니까 늦더라도 결혼 꼭 할거고 애들도 많이 낳을거라고요. (웃음)

                       
9. 회원들께 한말씀

코헴회가 변화하겠습니다. 코헴회는 항상 그대로인데 회원들만 변화해달라, 관심가져 달라고 하는 건 할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코헴회가 먼저 달라지고 다가갈테니 한걸음만 곁을 내어달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강한 코헴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처럼 어떤 사업도 하기 전에 어딘가에 요구하고 요청해야만 하는 구조를 지속하는 건 발전이 아닌 것 같기에 코헴회가 먼저 달라지고 진정성을 찾을 때 주변에서도 우리 협회를 파트너로 인식하고 힘을 보태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우들이 약품을 수급받는 데에 있어 불합리한 구조가 있다면 그런 부분 또한 이제는 돌파해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10. 다음 릴레이인터뷰주자를 추천해주세요.

조수호, 조진원 형제회원을 추천합니다. 중증의 쌍둥이 환우가 서로 의지하면서 힘든 퀵서비스 일을 해나간다는 것이 대견스럽고 좋아보입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웃음을 잃지 않는 두 형제의 기운이 우리 회원들에게도 전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 기자와 김은기 비상대책위원장

김태일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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