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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인터뷰 - 열여섯번째 주자 : 김연수님

기사승인 2018.01.24  23: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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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남는 사람과 마음에 남는 사람"

한국의 등록된 혈우병 환우는 2300여 명이다. 그 환우의 가족들과 의료진, 환우협회와 보건당국, 복지단체와 제약산업 관계자까지 포괄하여 '혈우 사회'라 부르는 건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고, 내밀한 부분까지 터놓고 이야기 할 공간도 많은 것은 아니다. 본 '릴레이인터뷰'를 통해 한 번 서로의 맨얼굴을 바라보고 이야깃거리를 털어보자. '너와 나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시즌3 현재 릴레이 순서) 김은기 위원장 – 조수호, 조진원 형제 – 황정식님 - 조진기님 - 이명림님 - 이귀병님 - 전수지 간호사 - 이승민님 - 이남일 간사 - 지현승님 - 조달호님 - 김종필님 - 김수섭 아버님 - 김선경 복지사님 - 김진규님 - 김연수님

올겨울은 '삼한사온'이 아니라 '삼한사미'(3일은 춥고 4일은 미세먼지)가 이어지고 있다고 하니 좋은 환경을 찾아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역시나 한파가 몰아치던 1월 중순의 금요일, 오늘의 릴레이 주인공을 찾아나섰다. 김진규님의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바로 '한국코헴회 격랑의 시기'에 코헴 회장직을 역임한 바 있는 김연수님이었다. 동탄 신도시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연수 전 회장을 칼바람 부는 학원가 골목 어귀에서 다시 만났을 때, 이제는 모두가 생활인으로서 모습도 변하고 흰머리도 늘었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서부터 따뜻한 옛 기억이 아질아질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함께 취재간 본지 김승근 주필은 더욱 그랬으리라, 인터뷰를 나누며 기억이 깊어질수록 더욱 말이다.

   
▲ 김연수님과 식사 후 따뜻한 차를 나누며 이야기했다


1.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연수라고 하고요. 예전에 한 2년간 했었나요. 코헴회장이요. 그때 여기 오신 김승근 사무국장님과 함께 했었죠. 그 때 기억은 ‘참 치열하게 일했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열심히 했어요. 결과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열심히 했던 것 같고요, 그때 기억이 지금도 많이 나요. 제 스스로 ‘내면이 많이 단단해 졌다’ 생각도 들고, 여러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고 남을 이해하거나 배려하려고 하는 게 그때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렇게 지냈습니다. 하하.
 

2. 어떤 일을 하시나요?

학원에서 강의 하고 있고요. 벌써 학원일 한 건 17년 정도 됐네요. 수학을 가르치고요. 수학에 관련된 건 다해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도 가르칠 수 있고요. 유학생도 가르치고, 특목고 학생들도. 정확히 말씀 드리면 ‘전문적이지 않다’라는거죠. 하하 (유학생이라면 외국인들도 수강하는 건가요?) 그렇기도 하고요. 해외로 유학을 가려는 학생들도 인증시험을 봐야하니까 시험 준비도 해주고, 유학 가있는 고등학생들은 방학 때 들어와서 그쪽 내신공부를 하고 들어가거든요. 그런 것들 봐주고요. 최근에 있었던 건 수학학원 선생님을 가르친 적도 있어요.

   
▲ 김연수님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코헴 회장 역임) 맨 우측

3. 취미는 무엇인가요?

음... 김승근 전 국장님이랑 같이 낚시 다녔었잖아요. 낚시가 취미였는데 나이들곤 힘들어서 낚시도 잘 못하고요. 노안이 와서 책읽는 것도 어렵고 게임 할 나이도 지났고 주로 요새 취미는 멍 때리는 거? 하하. 주로 민물낚시를 다녔었죠. 최근에 학원 세팅하면서 아무것도 못했던 것 같아요. 늦게 들어가 잠만 자고 일찍 나오고 그러니까요. 일은 보통 8시면 끝나는데 뒷작업하고 다음날 수업준비하고 정리하고 들어가면 11시에서 12시 돼요. (요새도 학원 시간 규제가 있나요?) 10시까지에요. 교육청마다 다른데 대부분 통일된 것 같아요. 전국적으로 10시, 시작은 새벽 5시 시작이에요.
 

4. 혈우병 관리, 자신만의 노하우는?

특별히 그런 건 없고요. 평소엔 체중관리 하고 있어요. 최근 2년 전부터 유지요법을 하고 있는데 유지요법을 안했을 때보다 훨씬 좋아요. 5년 전에 두 달 내내 출혈이 멎지 않고 부위별로 돌아가면서 출혈이 되고, 한번은 코피가 나는데 이틀 동안 안 멈추고 약을 많이 맞아도... 결국 응급실 가서 지혈이 되긴 했는데 그 뒤로 발목 출혈 때문에 학원에 보름을 못 나갔었고 그 뒤론 팔꿈치, 어깨 2개월 동안 너무너무 고생을 했었는데요. 그 뒤에 유지요법을 소극적으로 하던 걸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하기 시작한 건 2년 조금 넘은 것 같아요. 일주일에 세 번, 수업이 많을 때에는 1500iu, 수업이 적을 때에는 1000iu에서 1250iu 맞아요. 예방이 확실히 좋다라는 걸 체감할 정도에요.

   
▲ 오랫만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과 김연수님)

5. 어릴 적, 혈우병을 받아들이기 힘든 적은 없으셨나요?

어렸을 때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어쨌든 신체적으로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약자이고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많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괴롭다거나 주눅 든다거나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요. 오히려 나이들면서 신체적으로 힘들 때 누구를 원망한 건 아니지만 그냥 허공에다 대고 원망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오히려 나이들면서 힘들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예방을 하고나서는 그런 마음도 없어요. 편안하구요. 커오면서 비관적인 생각 이런 것들은 별로 없었고, 청소년 시기 한 번 잠깐 비관적인 생각을 한 적은 있었던 것 같아요. 수면제까지 먹었는데 용량을 잘못 맞춰서... 하하.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나고 제가 스스로 생각해보면 그냥 평범했던 것 같아요. (성인 이후에 힘들었을 때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지금도 화나거나 스트레스 받고 그럴 때 푸는 방법은... 없고요. 그냥 꾹꾹 참아요. 따로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건 없구요. 그냥 가만히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성격자체가 스트레스나 화가 쌓이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특별히 화낼 일이 별로 없고 스트레스도 안 쌓이고, 생각이 없나봐요. 하하
 

6. 릴레이를 넘긴 김진규님과의 연결고리는?

진규를 처음 만난 건, 첫 번째 수술했을 때 그러니까 1998년 말 코헴의집에서 같이 있었죠. 마음도 둘이 잘 맞았고 진규가 워낙 붙임성이 좋은 친구라,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내성적이에요. 진규가 편하게 잘해줬고 그때 친해지고 캠프때마다 오고... 그렇게 진규가 저 사는 수원 쪽에 많이 놀러도 왔었어요. 그러면서 많이 친해졌죠. 재밌는 기억이, 코헴의집에 지금 진규 아내인 친구가 놀러와서 총 네 명이서 김밥을 스무줄 쯤 말아서 먹었는데 배불러서 끝난 게 아니라 김이 떨어져서 끝났던 것 같아요. 하하

   
▲ 릴레이를 이어준 김진규님과 밤새 웃고 떠든 날이 많다고 (2002년 여름캠프 티셔츠는 무려 '히딩크'였다)

7. 회장 임기시절을 돌이켜보면 어떠셨나요?

그때 최대 목표는 우리 회원들을 위한 여러 가지 약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했잖아요. 그 와중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내부적인 갈등,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갈등을 수습하려고 했던 거죠. 약의 선택권을 넓히고 이런 것들은 사무국이 주도해서 움직여야 했던 거고, 제가 회장으로 있으면서 하려고 노력했던 부분은 화합. 한가지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 겉으로는 두 부류로 분류되는 것 같았었지만 안에서 보면, 계파로 치자면 3개, 4개 정도 목소리가 있었어요. 전남지회와의 갈등, 사무국 내부의 갈등, 크게는 코헴과 재단의 갈등이 정점을 찍었을 때니까 정작 해야 할 일에 에너지를 쏟지 못하고... 어쩌면 외부세력에 의해 조종당한 걸 수도 있어요. 어째든 그것을 수습하고 봉합하려고 하는 데 시간을 제일 많이 들였던 것 같아요. 새벽에 전라도도 뛰어 갔다 오고.
 

8. 갈등 속에 얻은 것과 잃은 게 있다면요?

잃은 건 없고요. 얻은 건 아주 약간의, 지금 현재의 상황이 될 수 있게 한 아주 미미하지만 작은 밑거름이 됐다는 정도? 그리고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사람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됐어요. ‘내 생각 같지 않구나’ 갈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걸테지만, ‘자기 생각이 제일 일반화된 의견 아닌가’ 이런 생각 이었는데 착각이었고 크나큰 오류였어요. 다르게 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옳을 수 있구나. 사실 정답은 없는 건데 많이 배웠죠. (당시 코헴과 재단의 갈등은 무었이었나요?) 구체적인 사안은 코헴회장이 당연직 재단 이사냐 아니냐로 시작해서 약 문제까지 전 회장님 계셨을 때부터 코헴회가 재단에서 나가니 마니 그렇게까지 갈등이 비화됐었으니까요.

   
▲ 2003년 코헴회 여름캠프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당시 김연수 회장

9. 임기 이후 회원모임이나 코헴 행사에서 뵙기 어렵다고 하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두 가지라고 보는데, 저는 일단 제일 큰 이유는 에너지가 다 소진 됐어요. 조금 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지쳤었어요. 마음이 지쳐서 함께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어요. 두 번째는 미묘한 감정인데 미안함과 원망이 섞여있어요. 저 같은 경우도 임기를 다 마친 건 아니에요. 중간에 자진사퇴를 한 셈인데, 끝까지 하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그 당시 제가 추진했던 일의 방향에 대해서 왜 몰라주는지에 대한 원망이라고 해야겠죠. 그때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에 미안함과 원망, 고갈된 에너지가 쉽게 채워지지 않아요. 감정이 그 상태에서 누그러지거나 풀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사랑하는 사람도 헤어지면 당장은 죽을 것 같지만 몇 년 지나면 아무렇지 않잖아요. 코헴회 일은 그렇지 않아요. 똑같아요. 그만뒀을 때 그 심정이 지금도 그대로에요. 미안함과 원망, 미묘한 감정과 채워지지 않는 에너지 그래서 참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10. 기억에 남는 혈우사회인이 있다면?

첫 번째가 김승근 전 국장님. 동고동락 했었죠. 희로애락을 같이 했었고. 그 다음은 정은석. 일하면서 막말도 많이 했었어요. 자연스럽게 얼마 전에 만났어요. 은석이 한테 미안한 감정이 아직도 많이 커요. 친군데... 그랬던 것 같고 그 다음에 김진규. 진규는 그런 사람 있잖아요. 만나면 편한 사람, 서로 막하는 사이... 편한 친구구요. 저 같은 경우 사람을 막 좋아하고 넓게 사귀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사람들을 가리고 쉽게 친해지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석이한테는 미안한 감정이고 김승근 전 국장님하고 진규하고는 끈끈한 뭔가 있어요. 두 사람이 우리 집에 제일 많이 자고 간 사람이에요. (웃음) 또 기억에 남는 사람은 한재경씨, 기억에 안남을 수가 없죠. 그 다음에 현준이. 잠깐 같이 일을 했었죠. 현준이는 다른 회원들하고는 좀 달라요. 그친구를 보면 애틋해요. 그런 감정이 있어요. 잘됐으면 좋겠다라고 늘 생각해요. 요새도 가끔 며칠에 한 번씩 현준이 생각해요. 뭐하고 있을까!

   
▲ 코헴 여름캠프에서 회원들과 즐거운 레크레이션 시간

11. 의료진 중에는요?

김은주 원장님에 대한 미안한 감정은, 제가 너무너무 커요. 언제 찾아뵙거나 전화를 드려서라도 감사했고 그때는 미안했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도 그럴 용기가 안나요. 만약에 길에서 마주친다면 펑펑 울 것 같아요. 제가 그때 코헴회를 대표하는 직책에 있지 않았다면 김은주 원장님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옹호하고 방패막이가 돼드렸을 텐데 그렇지 못했으니까... 만약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코헴 회장직을 던지고 그분을 지켜드렸을 거에요. 우리 회원들이 그런 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나중에 알게 된 게 너무 많죠. 그 당시에 알아드렸어야 하는데 몰랐었고 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부분 본인을 희생했는지, 지금도 알려지지 않은 게 많죠. 김은주 원장님은 재단에 속해 계셨지만 99%는 환자편이셨다고 생각을 해요. 그분 성격상 표현을 잘 못했고 표현이 거칠었을 뿐이지 진짜 많이 도와주셨죠. 원장님 그만두시고, 저도 코헴회장 물러난 뒤에 통화도 자주 했어요. 전화 자주 주셨어요. 그분께는 정말 미안한 마음 뿐이에요.

   
▲ 혈우재단 김은주 전 원장님 (2002년 여름캠프 축사 모습)

그리고 우리 명예회원 격이기도 한 이항 선생님. 맨날 불러서 술먹여가지고...(웃음) 그때 한창 논문 쓰고 너무너무 바쁠 때, 회장일 해야 하고 학원일 해야 하고 대학 강의 준비해야 하고, 이럴 때 밤이면 밤마다 전화 오셔서 술을 같이 많이 마셨죠. 그런데 그분도 허망하게 가시고... 이항 선생님을 처음 뵌 건, 혈우병인지도 몰랐던 4학년 때 한양대병원에서 맹장수술을 했는데 피가 안 멈췄죠. 겉으론 출혈이 없는데 속으로 출혈이 되는 거에요. 심각한 상황이어서 재수술 얘기가 오가고 있었을 때 이항 선생님이 미국에 계시다가 들어오셨어요. 그때부터 선생님이 저를 봐주셨거든요. 혈우병이 확실한 것 같다. 배 불러오는 건 멎었으니까 지혈은 됐을거다. 외과에서는 이 출혈된 걸 열어서 빼낼건가 구멍 뚫어서 할 건가 그러고 있었는데 이항 선생님이 처방을 내주셔서 다행히 주사 맞고 먹는 약으로 흡수되도록 했죠. 그게 첫 만남이었어요. 그러다 성인이 된 후에 한참 연락을 못드리다가 코헴 여름캠프에 갔었는데 거기 와계신 거에요! 악연이 다시 시작된 거죠. 불려가서 술 먹는 악연이. 하하. 이항 선생님은 제 기억으론 정말 좋으신 분이에요. 정도 많으시고 정의감도 있으시고 좋으신 분이시죠. 욕도 잘하셨고~ 하하.

   
▲ 故 이항 선생님, 그립습니다.

12. 2월 회장선거가 예정돼있는데, 전임자로서 조언하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제가 누구에게 조언하고 그럴 주제는 안되고요, 부탁드릴 말씀은... 우리 회원들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주시고 열심히 해주십사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 일이 잘되고 안 되고는 하늘에 맡겨야겠죠. 어느 분이되시든 잘 해내시리라 믿고요. 열심히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13. 꿈이 무엇인가요?

지금도 계속 진행중인 꿈이 있어요. 죽기 전에 사회에 한 50억 기부를 하고 싶어요. 하하. (와, 한 80% 달성하셨나요?) 어디요~ 5%도 못했어요. 두가지 꿈인데, 하나는 그렇게 기부하는 거고, 남는 돈은 흥청망청 한번 써보자. 하하.
 

14. 혈우병을 수학에 비유한다면? “혈우병은 **이다”

혈우병은... ‘라플라스의 열전도방정식’이다. 왜냐, 이 사람이 방정식은 세웠는데 답을 못 찾았어요. 정답은 모르지만 근사치를 구하는 방법은 굉장히 많아요. 우리 혈우병도 완치는 안 되지만 비슷하게는 할 수 있잖아요.

   
▲ 2005년도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대의원회의에서 장영진 지회장님과 함께

15. 다음 릴레이주자를 추천해주세요.

전남지회 장영진 지회장님. 추천의 이유는... 정말 뵙고 싶어서요. (작년 11년만에 대의원회의에 복귀하셔서 뵈었는데, 저한테 처음 물으시는 게, ‘연수 회장님 잘 계시냐’였어요) 장 지회장님은 저를 보면 좀 짠~하신가봐요.(웃음) 그분께도 너무 많은 도움을 받고 해서 말로 다 할수 없을 정도죠.
 

앞선 릴레이주자였고 김연수님의 친한 후배이기도 한 김진규님의 김연수님 추천이유는, '코헴회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나가면 왜 더 안보이는지 듣고싶다'라는 다소 머뭇거림이 있을 수 있는 질문이자 추천이유였다. 헌데 담담히 마음 속 얘기를 꺼내 주고, 독자들에게 옛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기회까지 준 김연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기자는 김연수님을 떠올릴 때면, 회장 시절 선명한 파란색 SUV에 후배들을 태워(차창을 내린채) 집앞까지 데려다주던 조용하고 쿨한 형의 모습이 떠오른다. '에너지가 소진돼서, 미안함과 원망이 뒤섞여서'라는 답에 마음이 아프지만, 혈우사회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했던, 그런데도 어쩌면 안타깝게 잊혀져가고 있는지 모를 그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자 작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 좌측부터 김승근 주필, 김연수님, 김태일 기자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

 

김태일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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