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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사회 젊은 조각가 중기씨를 만나다

기사승인 2017.12.16  04: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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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간 4곳을 수술하며 재활을 통해 자존감을 높일 꺼에요.”

지난 9일부터 10일까지 한독연수원에서 진행된 코헴 청년워크샵에서 다소곳한(?) 한 청년을 만났다. 행사 덕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조소를 전공한 조각가 예술인이었다. “아하! 언제 날 잡아서 인터뷰를 해봐야겠군”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쯤, 마침 워크샵을 끝내고 며칠 뒤 서울에 올라올 일이 있다기에 “잘됐다!” 싶어서 바로 일정 잡고 ‘번.불.콩. 인터뷰’를 쏜살처럼 진행했다.

그를 만나기로 한날, 그 날은 유난히 바람이 찼다. 인터뷰하기엔 아주 적당하지 않았던 날씨였다. 그래도~ 따뜻한 유자차 한잔으로 잠시나마 얼었던 몸을 녹이고, 오늘의 주인공 중기씨와의 인터뷰를 이제부터 시작해 본다.

   
 

“안녕하세요. 저는 84년생으로 올해 34살이고요. 대구에서 살고 있는 김중기(34세 8인자 중증)라고 합니다. 대구에 살기 전에는 어머니랑 같이 강원도에서 살다가 따로 독립한지는 4년 정도 됩니다. 4년 사이동안 잠깐씩 일하면서 서울이나 인천에서 1~2년 정도 따로 혼자 살다가, 어머니 집에서 살다가, 이번에 완전히 대구로 오면서 혼자살고 있습니다.”

 

유기자 : 반가와요. 지금 하고 계신 일을 소개해 주세요.

중기씨 : 제가 조소를 전공했어요. 대학을 마치고 아는 선배님들을 통해서 작품을 만드는 작업실에서 일을 해요. 강릉 미술협회에서 내려오는 오더 작품이 있으면 (그때그때) 작품을 만들다가, 또 작품 활동이 없을 때는 그냥 쉬고요. 이런 생활을 반복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요. 부가 수입은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하기자 : 혈우병을 처음에 어떻게 진단받으셨나요? 약은 어디서 타고 계세요?

중기씨 : 제가 원래는 4형제였는데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첫째 형이 먼저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제 바로 위에 1살 터울의 형이 있었는데 저희 부모님이 그런 경험을 겪고 나신 뒤에 제가 7살이 되던 해에 강릉에서 저랑 제 바로 위 한살 많은 형을 업고 병원을 돌아다니면서(도대체 애들이 왜 아픈지) 알아봤는데 의사들이 그 당시 때까지만 해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더래요. 그러다 어떤 의사 한 분이 “신문을 보니 혈우재단이 세워졌다는데 혹시 애들이 그 병일지도 모르니 서울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라”라고 해서 서울 혈우재단에 와서 혈우병 판정을 받았어요.

   
▲ 눈꽃축제 은상 수상작, 대학생 때 눈 조각 공동참여 작품입니다.
   
▲ 눈꽃축제 대상 수상작

유기자 : 형제 분 중에 두 분이나 돌아가셨네요?

중기씨 : 어머님께 들은 이야기로는 큰 형은 10살이 되던 해에 맹장수술을 하러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수술 후, 배가 이~ 만큼 부풀어 올랐데요. 그런 상태에서 과다출혈인지... 정확한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그 일로 10살 때 돌아가셨고, 제 바로 위 한살 많던 형은 저랑 같이 병앓이를 해왔기 때문에 무릎이 퉁퉁 부은 거까지는 제가 봤어요. 근데 부은(무릎) 정도가 저 보다 심했어요. 그 형은 9살 되던 해에 병원에 갔는데, 그 이후로 제가 못 봤어요. 저도 그냥 “형이 왜 병원에서 안와”라고 어머니께 물어봤는데 정확한 원인은 말씀 안 해주셔서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7살 많은 형이 있는데 다행히 혈우인은 아니에요. 형제 가운데 3명만 혈우환우 였던 거죠.

그리고, 약은 대구카톨릭대학 병원에서 타고 있어요. 그 전에는 약이 부족해서 활동이 적으면 일주일에는 한번 내지 두 번으로 아껴서 맞는 상황이었어요. 그때가 강원도에 있었을 때였어요. 강원도에서 약을 한번 타려면 거의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고요. 그 전까지만 해도 서울로 약을 타러 왔다갔다했어야했기 때문에 약을 아껴서 써야 하는 게 몸에 배어 있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활동도 좀 줄이고 그랬는데 지금은 대구에 와서 많은 정보도 듣고 운동을 해야 되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에 이틀에 한 번씩 꼬박꼬박 맞고 추가분까지 받아서 맞으면서 운동도 겸하면서 몸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유기자 : 따로 하는 운동이 있다면?) 제가 내년에 수술을 목표로 삼고 있어서, 허벅지 근육을 많이 키워야 되기 때문에 재활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헬스장을 다니고 있어요. 잦은 출혈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틀에 한 번씩 주사를 맞으면서 운동을 했고 지금은 운동 덕에 근육량이 처음보다 좀 붙어서 출혈도 줄어들었고 3일에 한번정도 예방을 철저히 하고 있어요.

   
▲ 이모네집 강아지 엘사와 함께 산책 중입니다~

유기자 : 처음 자가 주사할 때 어떠셨어요?

중기씨 : 저는 자가 주사를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했었는데, 혼자 주사를 처음 맞게 된 계기가... 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죠. 저희 아버지가 공무원이셨는데 지방으로 발령이 나셨는데 저를 혼자 데리고 지방으로 전근을 가신 거에요. 그것도 엄청 시골마을로요. 저의 형은 고등학생이어서 입시를 준비해야 해서 어머니가 형 옆에 계셔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간 거였죠. 거기서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제가 찌르는 공포보다 아버지가 “내가 놔줄까?”라는 말씀이 더 무서운 거에요(하하하). 아버지는 주사를 놔주신 경험이 없으셔서 “제가 그냥 맞을 게요”라며 거절을 하고, 제가 시도를 했는데 성공한 거에요. 그래서 그 이후 실패 없이 지금까지 잘 맞고 있어요.

하기자 : 이번에 충북 음성으로 청년워크샵 다녀오셨는데, 좋았던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사실 전 개인적으로 요가 프로그램이 좋았어요. 왜냐하면 지금 헬스장에서도 빼먹지 않고 하는 것이 스트레칭이에요. 먼저 수술을 하셨던 형님들이랑 재활치료를 겪으셨던 분들 얘기를 종합해보면 평소 스트레칭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지금 다리가 어느 정도 구부러져 있다거나 펴지지 않는 분들도 계시는데, 열심히 스트레칭해서 효과 봤다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청년워크샵에 20대와 30대분들이 골고루 계셨는데, 그날 강의 중 면접에 대한 강의는 20대 분들에게 상당히 중요했다고 봐요. 제가 만약 20대에 그 강의를 들었다면 면접을 좀 더 잘 볼 수 있었을 꺼에요. 저 같은 30대들에겐 몸이 많이 상해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운동 강의가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 청년워크샵 요가시간입니다. 강사님께서 저의 자세를 잡아주는 모습이에요.

유기자 : 조소를 전공하셨잖아요?

중기씨 : 평소에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구상이라는 걸 하잖아요. 저는 대학교 다닐 때부터 작품을 만들면 구상작품을 많이 만들었어요. 비구상이라고 하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만드는 거지만, 구상은 자기의 철학을 담거나 자기의 숨겨진 내면을 표현한다거나, 그렇게 해서 작품을 만드는데 제가 남들이 느끼지 못했던 아픔, 어렸을 때부터 통증 때문에 무릎이 부어있었던 모습들, 만약 인체를 만든다고 하면 정상인의 몸을 만들지 않고 내가 겪은 아픔을 표현해 가지고 부어있는 모습들, 그런 모습을 만들어 놓으면 일반 사람들은 그 작품을 봤을 때 한참 생각을 하게 되겠죠. 그런 작품을 보면 정상 같지는 않으니까 뭔가 달라서 그런 아픔들을 표현해 낼 수 있는 구상을 머릿속에 많이 해놨어요.

   
▲ 강릉에 있는 개인 작업실에서 찰흙 작업하는 모습이에요.

하기자 : 실행에 옮겨야 할 텐데... 계획은 잡고 있어요?

중기씨 : 미술을 전공했던 사람들은 그 지역구 미술협회에서 오더가 떨어지거든요. 제가 대구에 오고 난 후로는 여기서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고, 스승님이 이쪽에 계신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말하자면 인맥... 즉, 줄이 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죠) 대구에 약 타는 조건도 좋고 개인적으로 저는 “대 도시에 살아야 하는 사람이 맞는구나”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대구에 정착을 하려고 해요. 수술한 2년 후에 내가 몸이 좀 나아지면 대구 미술협회에서 어떤 줄을 잡을 수 있을지 생각을 해봤어요. 일단 전국 조각전에 출품을 할 거에요. 그렇게 하려면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비가 들어갈 수 있으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좀 벌어서 전국 조각전에 입상을 해서, 대구 미술협회에 명함을 좀 밀어볼까...라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렇게 되면 그 후에는 “뭐라도 일거리가 생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 2m 30짜리 직접 ‘장자마리’ 케릭터 작업한 후 인증 사진 한 컷~

유기자 : 내년 계획 중에 수술 일정이 잡혀있는 걸로 아는데...

중기씨 : 네. 계획은 내년 2월 말쯤이에요. 그때로 계획을 잡은 이유는 명절 설 때문 인 것도 있었죠. 올해 초부터 계획을 세운 건데요. 왼쪽 무릎부터 시작해서 오른쪽 무릎, 왼쪽 발목에서 오른쪽 발목까지 총 네 곳을 수술할 계획이에요. 근데 한꺼번에 두 곳을 하게 되면 재활치료에 문제가 생기고 더 악화될 수도 있다고 해서... 한 곳씩... 아물고 나면 다른 한 곳을 하는 식으로 네 곳을 다 하려고요. 길게 잡으면 2년 정도를 걸릴 거라 예상하고 시간을 비워두기로 했어요. 수술에 들어가는 비용도 마련해야 해서 내년 초에 시작하게 되었어요,

유기자 : 2년이라면 꽤 긴 기간인데... 부담되겠어요.

중기씨 : 처음에 수술을 결정하기 전에는 정말 많은 생각들을 했었어요. 사실 제가 서른이 넘고 보니, 제가 처해있는 지금 상태가 몸이 악화되는 게 보이고 그렇게 되면서 자존감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내가 몸이 더 튼튼해 지지 않는 이상 남아있는 자존감까지도 상실해 버리면... 결국 나중에는 더 못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봤거든요. 그래서 그 2년 동안 내 몸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후에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 지금보다는 자존감이 더 높을 것 같아서 (수술을) 결심하게 됐어요. 2년 후에 내가 무엇을 할지 어떤 걸 해서 더 잘 될지 까지는 생각을 안했어요. 왜냐하면 몸 상태는 지금보다 좋을 것이니까 그 때 되면 오히려 더 자존감이 생길 거라고 믿고 나한테 투자하는 거죠. 그래서 (수술하고 재활하는 기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유기자 : 수술 후에는 코헴의 집으로 가실 계획인가요?) 네. 그렇게 될 거 같아요. 어느 병원에서 수술할지 알아본 후에 코헴의 집에서 환우들을 위해 마련된 아파트가 있으니까 그곳에서 같이 수술한 환우들과 지내는 게 좋을 거 같네요.

   
▲ 장소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음악 박물관에 있는 피아노 계단 앞에서 한 컷~ ^^;;

하기자 : 지금 사귀시는 여자 친구는?

중기씨 : 애석하게도 여자 친구는 없어요. (유기자 : 결혼을 한다면 언제쯤 하고 싶으세요) 사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20때까지만 해도 (여자 친구가) 생기면 하겠지 뭐~~ 이거였는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어요. 뭐... “이게 없으면 저거라도 있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돈이라도 좀 많이 벌어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요.

유기자 : 살면서 본인의 멘토 역할을 해 주셨던 분이 있나요?

중기씨 : 사실 멘토라기 보다는 저한테 힘이 되어줬던 친구가 있어요. ‘배꼽’친구라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절친한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는 인기도 많고 생긴 것도 잘생기고 성격도 너무 활발하고 좋은 거 에요. 그래서 제가 아픈 것과 주사 맞는 것을 지켜보면서 같이 컸고요. 바로 옆집에 살았어요. 저는 학창시절에 많이 아팠지만 그 친구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어요. 항상 밝은 모습으로 “이건 어때? 저건 어때?” 이러면서 저한테 힘을 북돋아 주었던 친구이죠. 많이 힘이 되어 주었던 친구고 지금도 계속 연락하고 있어요. 저에게는 가족같은 친구에요.

유기자 : 강원도가 고향인데, 강원도 여행 중 추천해 주고 싶은 곳이 있다면?

중기씨 : 너무 많아요. 여름에는 다들 해수욕장을 가잖아요. 하지만 강릉에 사시는 분들은 해수욕장을 잘 안가요. 오히려 계곡을 찾아가요. 강릉에는 태백산맥이 있기 때문에 소금강에서 내려오는 물이 정말 맑아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소금강에 가보면 수영장처럼 수영할 수 있도록 물이 고여 있는 곳이 많아요. 그런 곳은 그 지방에 사는 분들만 아는 명당자리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런 곳을 추천해주고 싶어요. 돈이 있는 사람들은 그 곳에 팬션까지 지어놔서 훨씬 깔끔하고 시원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놨어요. 위치는 강릉에서 속초 가는 방면으로 올라가다 보면 소금강 쪽으로 빠지는 길이 나와요. 소금강 쪽으로 한 20분 정도 올라가다보면 중턱에 제가 말하는 계곡들이 많이 있어요. 작년에도 다녀왔어요. 

또, 가령 일출을 보러 간다고 할 경우에는 누구나 다 정동진을 가시는데 정동진은 차도 많이 막히고 볼거리도 없어요. 오히려 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제일 좋아요. 동해 가기 전에 망상해수욕장이 있어요. 망상 해수욕장은 앞에 캠핑 할 수도 있고 콘도처럼 빌릴 수도 있고 캠핑카도 많이 있어요. 굉장히 넓어서 즐기기에 너무 좋아요. 해 뜨는 곳은 정동진보다는 망상 해수욕장을 추천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낚시를 간다고 하면 경포대에서 위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사천에 있는 소돌 바위라고 있어요. 그 쪽이 낚시하기도 좋고 가족들끼리 조용하게 1박2일을 즐기러 가기도 좋아요.

   
 

하기자 : 여유시간에는 주로 뭘 하시나요?

중기씨 : 음... 크게 다를 건 없어요. 주로 티비를 보거나 그냥 가만히 있거나... 아니면 게임을 하는 식으로 보내요. 20대에는 스포츠를 많이 즐겼어요. 강원도에 살다보니까 저희한테는 위험한 운동이기도 하지만 스키장을 많이 갔어요.

유기자 : 끝으로 청년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중기씨 : 강원도에서 살다가 대구에 정착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혈우 환우들을 만난 지 1년정도 됩니다. 환우들을 만나기 전에는 ‘제 몸이 괜찮다’라는 자만심에 빠져서 참여를 많이 안했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죠. 그러다 안 좋아지는 제 모습을 보고, 느껴지는 게 많더라고요. 우리 환우들을 만나면서 많은 정보도 얻게 되었어요. 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나빠지는게 보이고 제 나이를 넘어선 형님들께서는 “(몸이) 이렇게 나빠지더라 관리를 해야된다”라는 충고의 말을 들으면서 좀 더 제 몸을 조심해야 된다는 걸 느꼈어요. 앞으로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도 잡게 되었어요. 

30대 초반에 혈우 환우들을 만나고 나서 제가 느낀 점은 “우리 혈우 환우들의 몸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끔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 청년들이 좀 이끌어 나가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도 몸이 멀쩡하다는 자만심 때문에 참여를 거의 안하게 되었는데 (모임참여를 잘해야겠더라고요) 그리고 교육을 통해서 이끌어 주는 방법들에 대해 우리 청년들이 앞장서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우리 20대 30대 청년들게 드리고 싶은 말은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다들 모여서 힘을 합해야 되는 때”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앞으로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우리 환우들을 위해서 많은 힘을 쏟도록 합시다.

   
▲ 인터뷰를 끝내고 중기씨~ 하기자 유기자 ^^

동화책 '임금님 귀는 당나귀'에 나오는 이발사처럼, '나는 혈우병을 가지고 있다'며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누군가와 무겁지 않은 그저 편안하게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지만, 나와 같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대화의 끈을 이어가지 못하는 환우 친구들을 보면 항상 안타깝다고 생각했다는 중기씨... 항상 옆에 있는 가족들 조차 대화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는데, 우리 환우들을 만나면서부터 무언가 ‘같은 공감대’가 형성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소가 생겼다고.

2년에 걸쳐 관절 네 곳을 수술하고 재활을 꿈꾸며 더욱 드높아질 자존감을 향해 목표를 세운 중기씨. 마음속에 간직한 자신의 구상작품을 만드는 그날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하길 바라며 젊은 혈우사회 조각가 중기씨와의 대화를 매듭진다.

[헤모라이프 유성연 하석찬 기자]

 

■ 인터뷰가 끝났냐고요? 쿠키영상있어요~ 중기씨가 청년 환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유성연 하석찬 기자 tjddus@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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