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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찾아 온 행복, 모든 것이 축복이에요”

기사승인 2017.04.15  2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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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불.콩. 인터뷰] 통일공원휴게소 지킴이 이종호 회원

   
▲ 엄숙해야 하는 곳인데 죄송해요 ㅠ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 앞에서

코헴회 회원 소개로 ‘번.불.콩’ 인터뷰를 하기 위해 자유로를 따라 문산까지 내딛었다. 달리는 차창 틈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확 트인 시야 속엔 만개한 벚꽃과 저 멀리 임진강 넘어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파주 문산역에 도착해 파주 통일공원에 들어설 무렵. 벌써 마음부터 숙연해졌다. 이곳은 6.25전쟁 당시 산화한 국군장병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1973년 6월 파주읍 봉서리에 조성된 공원이다.

더욱이 이곳은 휴전회담 당시 ‘UN종군기자’ 센터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6.25의 참극을 전 세계에 보도하기 위해 한국전선에 종군했다가 순직한 기자들의 추념비가 있는 곳이다. 미국에서 10명, 프랑스에서 2명, 영국 4명, 필리핀 1명 등 국내외 총 18명의 종군기자를 위로하는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가 있다.

이곳에서 휴게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종호 회원을 ‘번.불.콩’ 인터뷰 주인공으로 만나봤다.

유기자 : 안녕하세요. 회원님. 본인 소개 좀 부탁해요.
종호씨: 안녕하세요. 이종호입니다. 저는 혈우병 8인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70년(개띠)년 생으로 올해 40살입니다(웃음). 현재 하는 일은 공원 내에 있는 매점을 8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점에서 파는 것은... 없는거 빼곤 거의 다 있다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웃음).

   
▲ 올 겨울, 여수로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단란하고 행복한 이종호 회원 가족

유기자 : 가족은 어떻게 되시나요?
종호씨: 아내와, 1남1녀를 두고 있습니다. 아들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까운 대학교에 입학했구요. 딸은 고2인데 공부보다는 먹는 것을 더 좋아하고 활발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요(하하).

유기자: 종호씨은 어떤 것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종호씨 : 저는 경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가족이 있다 보니 먹고 살아야 한다는 부분이 제일 큰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하하). 저는 취미생활이 따로 없어요. 대학을 미대를 나와서 결혼하기 전 5년 동안은 잡지사에서 미술부를 담당하는 일을 했어요. 그 후엔 경제출판과 경향신문사에서 근무했어요. 그러서 인지 미술 쪽 부분에만 관심이 많아요. 그러다보니 스포츠에도 큰 관심이 없더라구요. 2002년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을 때도 축구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을 정도였어요. 뉴스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보는 편이에요. 그래서 저는 인터넷을 사랑합니다(하하).

   
 ▲종호씨는 농담도 잘하고 웃음도 많으셨답니다. 
   
▲ 이종호 회원님이 운영하고 계시는 파주 통일공원휴게소 전경

유기자 : 삶에서 즐거웠던 일과 행복했던 일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종호씨 : 결혼 전보다 결혼 후, 모든 일이 다 행복했던 거 같아요. 어렸을 때엔 우리 대부분 환우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왜 그럴까?’ ‘왜 남들과 다를까?’ ‘되는 게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아내를 만났는데, 만나면서부터 제 상황들(혈우병에 대해)을 매번 설명을 해줬어요. 지금은 이렇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 수도 있다구요. 그런데 의외로 ‘그런 거(혈우병)에는 별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때 저의 가치관이 많이 바뀌게 되었어요. 아내를 만날 당시에, 적은 나이가 아니어서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었던 때라 전 그게(혈우병) 전부라고 생각을 해서 ‘결혼도 못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용기를 줘서, 이렇게 가정도 꾸리고 아이들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죠. 모든 게 축복이라고 생각했어요.

유기자 : 평소 좌우명 같은 게 있으신지요?
종호씨 : 제 어렸을 때 좌우명은 '보통사람처럼 살자'였어요. 근데 살아보니 그 말이 제일 어려운 말이더라구요. 생각해보니 그 말속에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는 건데 그렇게 산다는 게 쉽지가 않더라구요. 아내와 결혼 후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걸 보면 정말 축복이었던 거 같아요.

유기자 : 어려운 고비가 많이 있으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종호씨 : 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왔는데 그때마다 아내가 저를 구해줬어요. 1번은 심정지 상태까지 간적이 있었는데, 아내가 그 때 저의 상황을 직감적으로 알더라구요. 제가 ‘망막 방리(망막이 떨어지는 현상)’증세가 있어서 병원 검사실에서 수술 전 검사를 받을 게 있었는데 그때 병실 주변이 깜깜한 암실이어서 제가 엄청 어지러워하자 선생님이 컨디션 회복하는 차원에서 잠깐 쉬자고 하면서 문을 조금 열고 나갔어요. 그 순간 제가 의자에서 바닥으로 떨어질 거 같은 예감이 아내 눈에 보이면서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느껴졌데요. 저를 딱 보는 순간 상태가 너무 안 좋더라고 그 순간에 심 정지 상태가 온 거였죠.

또 한 번은 제가 혈종이 있어서 배 수술을 할 때, 염증이 생겨 몸에 있는 장기들이 다 안 좋았고 천공까지 생겼을 때에도 아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갔었어요. 그때 담당 의사 선생님도 아내를 보자마자 '어디 있냐'며 빨리 데리고 오라고 하셨나봐요. 연대에서 제가 수술을 3번 미뤘어요. 담당 수술 의사 선생님이 지정될 때마다 '안된다 안된다'를 3번이나 미루다가 최종적으로 수술을 했어요. 그 수술도 아내가 모든 걸 결정해서 진행했기 때문에 그게 저한테 온 행운이며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두분이 참 다정해보이더군요. 종호씨가 아내분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시더라고요. 부럽~

유기자 : 지금 건강상태는 어떠세요?
종호씨 : 지금도 엉망이나 마찬가지죠(하하하). 
유기자 : 건강관리는 잘 안하세요?
종호씨 : 지금도 계속 일주일에 한 번씩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그리고 아내가 하루3번 아침, 점심, 저녁으로 등 뒤에 진물하고 피가 나오는 부분을 드레싱(소독) 해주고 있어요. 앞부분도 수술한 부위가 두 군데 있는데, 차마 못 보여드리겠네요. 수술이라는 수술은 거의 안 해 본 게 없는 거 같아요. 눈이 안 좋아서 ‘망막박리’ 수술도 하고 신장도 한쪽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었고, 대장, 소장도 다 제거한 상태이지만 아내가 곁에서 모든 걸 케어해주고 있어서 크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스스로 불만이 있다면 제 성격이 뭔가를 시작하면 끝을 보는 스타일이라 많이 자중하려고 노력중이에요

유기자 : 혈우병 신약을 임상하고 계시다고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종호씨 : 계속적인 수술로 인해서 혈관이 거의 없어지다 보니 자가 주사를 맞는 게 힘들더라구요. 저는 지금도 혈관을 못 찾아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요. 그 상황이 불편하다 보니 임상에 참여하게 된 거 같아요(임상중인 치료제는 정맥주사가 아닌 피하주사). 그리고 저의 담당교수가 임상도 담당하신다고 하셔서 지원을 하게 되었어요.

유기자 : 지금 임상하고 계시는 약은 사용법이 많이 다른가요?
종호씨 : 완전히 다르죠.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임상 실험센터에 가서 주사를 맞고 있어요. 점액은 묽은 형태라 맞을 때 아프지는 않아요. (약 자체가 믹스가 되어 있어서) 빼 가지고 넣기만 하면 되요.

유기자 : 한번 맞는 용량은 어떻게 되나요?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종호씨 : 몸무게에 따라 틀리는데요. 엄청 소량이라 저도 깜짝 놀랐어요. 임상한지는 이제 3주 정도 됐어요. 효과는 (기존치료제보다) 오래 가는 거 같아요. 앞으로 임상 기간은 1년 6개월에서 최장 2년 정도 생각하면 된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은 매주 가고 있지만, 한 달 후에는 2주에 한번, 그 후에는 4주에 한번, 석 달에 한번 식으로 약을 주면 제가 직접 맞는 형식이에요.

유기자 : 몸이 좋아지시면 앞으로의 계획은? 
종호씨 : 열심히 일하는 거 외에는 없는 거 같아요(하하). 앞에 말한 거처럼 스포츠나 여행에 흥미가 없다보니 이제는 가족을 위해서 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맛있는 아메리카노를 직접 만들어주셨어요 ^^ 아하! 이제 보니 실력있는 바리스타였군요. ~

유기자 : 혈우사회에 바라고 싶은 것은?
종호씨 ; 지금처럼 정기적으로 개인적인 SNS(헤모위클리)를 많이 활용해서 환우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게 참 좋은 거 같아요, 저 같이 칩거하고 있는 환우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 분들에게 억지로 참석하라고 해도 나올 수 있는 분들은 몇 명 안 되실 거 같아요. 저도 일에 매여 있는 상태이고 낯도 설어서 사람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나서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혈우병 단체에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 분들도 저처럼 항상 관심은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저도 코헴지가 나오면 코헴에 관련된 기사와 혈우병에 관련된 정보를 다 읽고 있거든요.

유기자 : 국가에서 환우들을 위해 ‘이런 제도는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되는 건?
종호씨 : 혈우병을 갖고 있다는 건 잠재적인 장애와 같은 거라고 봐요. 저희는 관절위주로 많이 아프잖아요. 정형외과 쪽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만 장애등급이 나오는데 혈우병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장애등급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기자 : 종호씨를 소개한 분이 코헴회원 전신욱씨인데요. 두 분은 어떻게 알게 된 인연인가요?
종호씨 : 같은 동네 친구였어요. 신욱씨를 스무살 때 처음 알게 되었어요. 코헴회 모임에서 만나서 서로 사는 곳을 물다보니 저와 가까운 곳이더라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진 거에요. 제일 자주 만나는 사람 중에 한명이에요.

유기자 : 4월 17일이 '세계혈우의날'인데, 환우들께 건강을 기원하는 한 말씀 부탁드려요.
종호씨 :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자’ 이 말이 제일 적절할거 같네요. 이 순간에도 힘들어 하는 환우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해요. 많은 의학들이 발전했기 때문에 심리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꼭 올 거라고 믿으니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자’ 이 말이 지금 저의 솔직한 심정과도 같아요 우리 다 같이 힘내고 파이팅 해요!


이종호씨는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중간마다 자신의 아픈 부분을 보여주기도하고 설명해 주기도 하면서 그 동안 힘들었던 일들도 지금은 ‘행복이자 축복’이라고 했다. 작은 취미생활조차 흥미가 없다고 했지만, 아마도 그건 가족과 함께 사랑으로 견뎌온 투병 시간이 자연스레 취미 생활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내를 만나 사랑하면서 가족이라는 작은 울타리 속에 큰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이같은 그의 행복은 과거 그가 갖고 있었던 ‘남들과 다르다’는 부정적인 생각은 180도로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 그가 바라던 그의 좌우명처럼, 그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시간을 내 주신 이종호씨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헤모라이프 유성연 기자 △현장사진=하석찬 기자] 

   
 ▲부산 해운대에서 가족끼리 좋은 시간을 보내셨다네요 ^^

 

유성연 기자 tjddus@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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