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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진씨 “혈우병 뇌출혈 극복, 90퍼센트 완쾌 됐어요”

기사승인 2017.12.08  23: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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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때문에 언성 높이다가 ‘엇!’ ... 화내지 말고 즐겁게 사세요

“저는 2년 전까지 택시운전도 하고 지체장애인 협회에서 어려운 살림을 맡아서 일을 했었는데 2015년 11월 말에 뇌출혈이 생겨서 그 뒤로 일을 못하고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늘 밝은 웃음으로 환우들과 잘 어울리던 윤동진씨(68세 A형 중증). 뇌출혈이 있었다는 건 그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뇌출혈은 혈우병 환우들에게 매우 치명적이기 때문에 치료가 잘되어 큰 고비를 넘겼더라도 행동과 말 등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그것이 ‘혈우병 뇌출혈’인데, 그의 겉모습으론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서울에 첫눈이 내리던 날, 하기자와 유기자가 그를 만나 나눈 ‘번.불.콩.’ 이야기를 풀어본다. 

   
▲ 여주 도자기축제에서

하기자 : 뇌출혈을 어떻게 겪게 되셨나요?
동진씨 : 제가 예전에 고철사업을 했어요. 한 번은 아파트 현장 소장님이랑 얘기 중에 일이 잘 안되어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실랑이를 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는 언짢게 생각하면서 사무실로 왔는데 몸이 조금 이상하더라고요. 사무실에 도착해서 화장실을 가는데 자꾸 왼쪽으로 몸이 쓰러지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잠시 소파에서 쉬고는 다시 일어 서 보니까 아까보다 증상이 더 심해지는 거에요. 그때 ‘아 이거 뇌출혈이구나!’ 이렇게 생각돼서 바로 병원으로 갔죠.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니 ‘뇌에서 출혈이 생겼다’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15일 정도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퇴원했죠. 지금은 100프로는 아니지만 90프로 회복 됐다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많이 놀랐죠. 뇌출혈이란 걸 처음 겪어 봤으니까요. 여태 몸 여기저기 많이 아파봤지만 뇌출혈은 처음 경험했고, 지금도 말이 조금 어눌하고 느려요. 사람들이 이 정도 회복된 게 놀랍다고 해요.

유기자 : 그럼 앞으로도 건강관리를 잘하셔야 할 텐데 평소에 어떻게 하시나요?
동진씨 : 음. 건강관리라고는 볼 수 없고요. 집 앞 공원 하루에 한 바퀴 돌아요. 너무 많이 걸어 다니면 발목이 아파서 다음날에 피로가 더 쌓이고 해서 가볍게 혼자 산책을 하거나 강아지를 대리고 산책도 시키고 하죠.

유기자 : 아내분께서도 많이 놀라셨겠어요. 
동진씨 : 네. 많이 놀랐을 거예요.  보름이나 간병하느라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유기자 : 가족소개 좀 해주세요. 
동진씨 : 네, 저는 어머니 모시고 집사람과 셋이 김포에 살고 있어요. (하기자 : 혹시 자제분은?) 없어요. 우리 집사람이 나랑 산지 29년 됐는데, 결혼해서 3년째인가 자궁에 물혹이 생겨서 자궁 외에 임신이 된 적이 있어요. 그 후로도 임신이 되면 한양대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봤는데 자꾸 자궁 외 임신이 되더라고요. 그러더니 의사가 ‘이대로 두면 산모가 위험해지니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수술을 받았어요. 그래서 영원히 아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제 나이 39살 때 아내는 28살. 그러니까 11년 차이나죠. 늦게 만나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수술 받으면서 아기를 못 갖게 됐어요.

   
▲ 2017년 나주중흥골드스파 리조트에서 열린 코헴 장년워크샵에서  

유기자 : 환우 중에선 그래도 연세가 있는 편이신데~ 예전엔 몸 관리를 어떻게 하셨나요?
동진씨 : 제가 28세 까지 경기도에 안 가본 산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죠. 그러다가 30세 넘으니까, 출혈로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한 달 동안 방안에서 꼼짝도 못하고 집에만 있었죠. 옛날에 저는 출혈되면 얼음찜질을 해야 하는 것도 모르고 뜨거운 찜질만 하고 살았어요. 뜨거운 게 시원했거든요. (하기자 : 찜질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나요?) 관절 출혈이 있을 때는 그냥 집에만 있었고요. 혈뇨나 다른 출혈이 있을 때는 어머니 피를 수혈 받았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살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유기자 : 수술 받으신 적도 있으시죠?
동진씨 : 네. 오른쪽 고관절은 20년 전에 인공관절수술 했고요. 왼쪽무릎 인공관절 수술은 5년 됐네요... 이렇게 두 군데 했어요. (유기자 : 수술하신지 20년 되셨는데 괜찮으세요?) 유명철 박사님께서 (저의 고관절 수술이) 일반 사람보다 출혈도 적고 잘됐다고 칭찬을 많이 하셨어요. 그리고 ‘많이 사용하지 말라’고 말씀하셔서 적당히 걷고 유지요법도 잘 하고 있어요. (유기자 : 유지요법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예전에는 출혈 될 때만 약을 맞았는데, 1년 전부터는 5~6일에 한 번씩 유지요법하고 부터는 출혈이 잘 없어요. 

   
▲ 장년워크샵에서 유덕현 서울경기 대의원과 함께

유기자 : 출혈도 많이 없고 하셔서 그런지 항상 밝은 표정이시던데….
동진씨 : 음... 60년도 초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서 4남매 키우셨는데 우리 형제들이 혈우병 때문에 다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신 형제가 20대 때 다 돌아가시고 지금은 나와 여동생만 남았죠. 우리 형이 돌아가시기 전에 만화가게를 했었어요. 그때부터 장사를 하게 됐는데, 그때 항상 밝은 표정으로 손님을 대하다 보니 습관이 된 거 같아요. 그리고 사업을 여섯 가지 했었는데, 양복점, 안경점, 마트, 택시 이런 사업을 하다 보니 몸에 배서 그런가 봐요. 하하 (유기자 : 양복점은 직접 운영하신건가요?) 네. 처음부터 양복점을 한건 아니고 명동성당 옆에 공장을 인수받아서 74년도에 기술자 18명 데리고 양복 만드는 공장을 운영 했어요. 2년을 운영하다가 재단사가 거래처를 가지고 나가는 바람에 공장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하고 그 때 재단 기술을 배워서 양복점을 청량리에 차렸죠. 그 후 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하던 그 해쯤에 주변에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서 사람들이 옷을 잘 안 맞춰 입었어요. 그래서 80년도에 양복점을 그만 뒀죠.

유기자 : 택시 일도 하셨다는데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동진씨 : 네. 즐거운 기억은 홍대에서 인천으로 가는 손님 세 명이 탔는데 흥이 난 손님이 노래를 시작해서 같이 노래 부르면서 도착해보니 한 시간 걸리는 거리를 한 5분 만에 온 거 같은 기억이 남네요. 나쁜 기억으로는 한 번은 뒷좌석에 앉은 손님이 볼펜에다 칼 같은 걸 달아서 내 보이더라고요. 그런 섬뜩한 기억도 있고요. 또 한 번은 젊은 남녀가 석촌호수에서 목동까지 왔는데 ‘아저씨 잠깐만 아파트 앞에서 기다려주세요’ 그러더라고요. 택시비 가지러 가는 줄 알고 기다렸는데 결국 안 오는 거에요. 하하. 지금생각해 보니 그런 기억들이 나네요. 하하.

유기자 : 평소에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세요?
동진씨 : 여가 시간은 제가 좋아하는 TV보는 거랑 바둑을 두곤 합니다. (유기자 : 당구도 잘 치시던데~) 아. 젊을 때에는 동네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죠. 하하 (하기자 : 당구 잘 치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당구를 잘 치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지. 하하

유기자 : 항상 밝으셔서 참 좋아 보여요. 행복을 위해 제일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동진씨 : 음... 가족이죠. 첫째 어머니, 둘째 아내 가족들이 화목하면 그것이 제겐 행복이고요. 물질적인 것 보다 가족들이 건강하게 사는 게 그게 바로 행복이죠.

   
▲ 서울경기 지회 당구대회 복식 우승

유기자 : 코헴 서울경기지회 소속이신데, 얼마 전에 새롭게 임원이 선출됐잖아요? 새로운 임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동진씨 : 지금까지 해왔던 임원들도 다 잘해왔어요. 요즘 젊은 청년환우들은 뭐든 우리 세대보다 나은 조건이니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가끔씩 조언 정도 하면 될 것 같아요. 특별하게 바라는 건 없어요. 아참. 굳이 바란다면 50대가 넘으면 치과치료를 편리하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졌으면 합니다.

유기자 : 나이 드신 환우 분들이 혼자 계시는 분이 많잖아요? 그런 환우 분들께 한 말씀해주신다면...
동진씨 : 우리 ‘집사람’ 만나기 전에 제가 몸이 많이 아팠는데, 다른 사람에겐 아픈 내 모습을 감추더라고 집사람한테는 감추지 않아도 되잖아요? 우리 혼자 사는 후배환우들도 좋은 사람 만나서 사는 게 제 바람이에요. 아무리 형제지간이라도 결혼하면 자기네 식구를 먼저 찾게 되니까 형제들도 서로 등한시 할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첫 번째는 좋은 짝을 만나서 사는 거구요. 두 번째는 ‘난 몸이 아픈 사람이다’라고 해서 움츠려들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연륜이 느껴지는 외모이지만, 늘 밝은 웃음으로 청장년 환우들과 한데 섞여 있는 모습을 자주 봐서 그런지. 동진씨~ 라는 표현을 쓰는 게 그리 어색하지 않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활짝 웃는 웃음 뒤에는 누구보다 많은 아픔이 있었고 실패와 슬픔도 있었다는 걸 느꼈다. 어떻게 그 험난한 과정을 다 이겨내셨을까? 신기하다 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혈우사회에 살아있는 무형의 역사는 바로 그를 두고 하는 말 같다. 항상 건상하시고 그 밝은 웃음을 잃지마세요. 하기자와 유기자가~ 많은 환우들과 함께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파이팅!

[헤모라이프 유성연 하석찬 기자] 

   
▲ 서울경기지회 바둑소모임의 첫 대회 때

유성연 하석찬 기자 tjddus@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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