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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혈우병 치료를 위해 복제인간을?

기사승인 2018.11.29  23: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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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귀질환 언니를 위해 맞춤형 인간으로 태어난 한 소녀의 이야기

최근 유전자 조작 또는 편집 등으로 혈우병과 같은 희귀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무척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보니 한 때는 줄기세포 또는 복제인간 등의 이야기가 장안의 주목을 받았던 시기가 있었다. 태어나면서 분만 후 아기의 탯줄에서 나온 혈액인 탯줄혈액(제대혈)을 보관하면 아이가 성장하면서 암이나 유전질환 등의 가족력이 있는 질환에 걸릴 경우에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알려지기도 했고 말이다. 지금도 제대혈은 원하는 기간 동안 냉동 보관 해두고 필요할 때 해동해서 치료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긴급할 때 아주 유용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 소설 ‘마이 시스터즈 키퍼 (조디피코 저자/ 곽영미 역자/ 이레 출판/ 2008. 11. 16.)’

이번 이야기는 이보다 조금 더 나아가, 자신의 언니 케이트를 치료하기 위해 ‘맞춤형 인간’으로 태어난 동생 안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주인공 안나는 백혈병에 걸린 케이트를 치료할 목적으로 태어났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언니의 치료에 사용된다. 그러면서 도전을 받고 인간의 삶을 다시한번 돌아보는 여운이 있는 소설이다. 소설 ‘마이 시스터즈 키퍼(조디피코 저자/ 곽영미 역자/ 이레 출판/ 2008.11.16.)’는 출간 이듬해 영화로도 개봉됐던 화제작이었다. 특히 영화 주연으로는 카메론 디아즈, 알렉 볼드윈, 아비게일 브레스린 등이 출연했다.

이 소설에서 중점이 되는 안나의 탄생과 제대혈, 유전자조작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전자와 생명공학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 나 역시 혈우사회의 경험을 통해 유전자 치료와 조작 그리고 편집에 대해 접해 보았기에 소설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특히 산모들 사이에서 탯줄과 태반 등을 후일 아이가 불치병 등에 걸릴 것을 대비해 치료제로서 보관하는 것이 유행을 하고 있다는 기사들도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약 미래의 혈우병 치료가, 유전자 치료가 아닌 클론(인간복제)을 활용한 방식이었다면 얼마나 큰 논란이 됐을까? 라는 상상도 해보게 됐다. 서두를 뒤로하고 소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           #           #

어린 아기가 수술대 위에 뉘어진다. 아기는 낯설고 차가운 수술실에 아빠 품에서 떨어지기 싫어 두려움에 울고, 아빠는 눈물을 머금고 그런 아이의 울음을 모른 척 한다. 아기의 몸에는 어른도 놀랄만한 두꺼운 바늘이 꽂히고 피를 뽑는다. 이 아이는 언니의 백혈병을 완치시키기 위해 태어난, 언니와 유전자배열이 똑같게 만들어져 태어난 아기 안나이다.

안나는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으며, 왜 태어났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철이 들기 이전부터 안나의 일상은 언니 케이트를 보살피고 병수발을 드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안나네 집에는 오빠를 포함해 세 남매가 있지만 모든 가족들은 케이트만이 가족이라는 듯이 케이트의 간병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케이트는 처음 급성백혈병이 발견되었을 때,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다들 말했지만 16살이 지나 사춘기 예쁜 여자아이가 되었다. 비록 항암치료로 인해 병원에서만 생활해야 하고, 빠지는 머리카락을 숨기기 위해 가발을 써야하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병마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안나가 있어야 케이트가 계속 살아가고, 병을 완치할 수 있다는 것은 가족에게 뿐만 아니라, 안나 자신에게 너무나 가혹한 현실일 뿐이었다. 하지만 안나가 갑자기 언니를 위해 신장이식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네 언니를 살리는 일이니 언니를 사랑한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부모님을 변호사까지 고용하며 고소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지키겠다고 한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안나와 엄마의 싸움.

이 소설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마치 내가 안나의 사건을 맡은 판사인 것 마냥 큰 가치판단의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그것은 이 소설의 시점이 주는 또 다른 효과이기도 한데, 소설은 모든 등장인물의 시점을 돌아가면서 보여준다. 아이를 키우며 변호사라는 자신의 커리어보다 가족 곁에 있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고 여기는 엄마, 소방관으로 언제나 바쁜 현장에 나가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언제 케이트가 쓰러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살고 있는 아빠, 그리고 언니를 살리고 싶고 사랑하지만 동시에 죽여야 하는 입장에 처한 안나, 그리고 그 모두의 심정을 관찰하면서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이 자신이 죽겠다고도 말할 수 없는 안나의 언니, 모두가 읽어 내려가 보면 그 나름의 고통 갈등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 (My Sister's Keeper, 2009) 드라마 2009.09.10. 개봉 109분 미국 12세 관람가
감독 닉 카사베츠

그 안에서 나 스스로도 어떤 것이 선한 행위이며, 어떤 것이 몰인정하고 나쁜 행위인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나 역시 가족을 가진 사람으로서, 내 형제자매가 위중한 병에 걸렸다고 한다면 당연히 내 신체 일부를 이식해줘서 살릴 수 있다면 하겠지만, 마땅히 안나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말하며 안나에게 ‘소송을 취하하고 신장을 이식해주라’는 안나의 엄마가 너무나 잔인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났든, 케이트를 살리기 위해 예정에 없이 낳은 아이이든, 안나도 자신의 아이가 아닌가 말이다. 엄마가 케이트를 위해 헌신한 인생은 너무 숭고한 모성이었으나 그 모성이 다른 아이들에게 갈 것마저 다 뺏어 케이트에게 쏟아 붓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군데군데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내 몸의 권리를 지키겠다고, 치어리더가 되고 싶고, 마음껏 뛰어놀고 싶고, 나의 신체로 내 인생을 살고 싶다는 안나의 말에 ‘너의 언니를 사랑하지 않는 거니?’라고 물으며 입을 다물게 만들고,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엄마의 발언은, 내가 만약 안나였다면 ‘저 순간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라는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언니이며, 가족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그것은 안나가 케이트의 동생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안나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케이트와 자매의 교감을 나눈 안나가 스스로 깨달은 케이트에 대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누군가가 강요하고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의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과연 옳은 의무인 것일까?

칸트는 인간이 존엄한 존재인 이유를 자연의 다른 만물과 같이 자연법칙에 지배받으면서도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가꿔나갈 수 있는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자신에게 의무를 명령하고 그 의무를 다하기 때문에 인간은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권리와 침해될 수 없는 기본권을 지니고 있다는 칸트의 의무론은 안나가 케이트의 동생이기 때문에 사랑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자신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수하면서까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안나와 케이트의 엄마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안나의 출생과 관련된 공공연한 비밀, 안나 부모님의 케이트를 살리고자 하는 헌신적인 사랑, 케이트로 인해 소외받고 등한시되어진 안나와 안나 오빠의 인생, 이 소송에는 수많은 도덕적 판단의 가치들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시피 유전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종’이다. 그 유전자가 신체의 모든 장기와 조직을 형성할 때, 마치 식물의 씨앗에서 새싹이 나고 줄기가 생겨 그 위에 열매가 맺히듯 씨앗과 줄기 역할을 하는 조직이 있다. 그것을 보관한다면 인간복제처럼 인간의 장기를 복제시켜 건강한 새로운 장기를 만들어 내거나 치료용으로 탁월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직후였을 것이다. 그 연구에 기반해 수많은 유전자공학 영화와 책이 만들어졌고, 마치 나무에 열매가 맺히듯 장기가 생성되어 병든 장기를 갈아 끼우듯 언제든 보관했다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은 SF영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졌으나 그것이 가능한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 유전자 조작과 생명공학의 과학적 논리에 대해 비극적이고 암울하게 그린 영화나 책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어려운 주제를 아주 아름답고도 슬픈 자매와 가족의 이야기로 그려내고 있다. 내가 ‘이것이 진실이지. 인간은 특별하지 않아’라고 생각해버렸던 것조차 미안해질 정도로, 어린 안나에게 현실은 힘들었고, 케이트와 안나의 가족에게 슬픔이었다.

왜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버린 것일까.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났든, 자연적인 수정으로 태어났든, 안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존재 ‘안나’였을 뿐인데도 말이다. 과학과 증명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경험은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 고개 숙이게 했다. 그리고 소설이 숨겨둔 이 세 남매의 진실은 안나와 케이트의 엄마가 그렇게 주장하던 자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당연한 모정, 언니를 살리기 위한 동생들의 당연한 희생도 아닌 진정 중요한 진실을 숨기고 있었다.

   
▲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의 연속이다. 사랑으로 태어났으나 모든 삶이 사랑인 것도 아니다. 때로는 고통도, 슬픔도 나의 삶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끝맺음이 올 때까지 온전히 나의 의지로 살게 하는 것 또한 나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나의 가족들이다.

생명,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 이 소설은 참 따뜻한 깨달음을 줬다. ‘마이 시스터즈 키퍼’ 어쩌면 이렇게 결말과 어울리는 제목이란 말인가? 나는 책을 덮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잔인하다고 안나 부모님의 선택을 비난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안나가 안타까웠고, 그 모든 슬픔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케이트와 모든 가족들의 나머지 삶을 응원했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안나를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박천욱 대표 china69@naver.com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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