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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사회, ‘호로비츠를 위하여’

기사승인 2018.06.09  23: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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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우 마음 이해해 주고 공감해주는 의사

교사를 꿈꾸는 예비교사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교직을 꿈꾸고, 누군가에게 ‘선생님’ 이라는 칭호로 불리는 것을 꿈꿨던 사람들 중에는 마음속에 책상 위에 올라가 ‘oh Captain, My Captain! ’을 외치는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던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처럼 “너희들에게 사회가, 부모님이 원하는 그 어떤 미래가 있다 하더라도 너의 미래는 온전히 너의 것이니, 너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 하면서, “학교 수업 따위보다 너 스스로 생각하고 꿈꾸고 상상한 길을 가라”라는 말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기도 했을 것이다.

   
▲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키팅 선생은 그렇게 묻고 있다. 미래의 시인들을 죽이고 있는 단순한 주입식 교육. 그 삭막한 현실속에서 따뜻한 인간애와 자유로운 정신을 심어주는 메시지... 영화의 한 장면, 그러나 이번 이야기는 이 영화 속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니다. 교사 자체가 되는 것도 너무 힘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흘러가버린 찬란한 20대 속에 어릴 적 꿈꿨던 키팅 선생님은 자취를 감춰버리고, 이것은 그저 ‘교사’라는 것이 직업이 되어버린다. 매일 똑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생각대로 따라와 주지 않는 학생들에게 지쳐가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그렇게 거듭하다보면 아이들은 더 이상 책상 위에 올라가 캡틴을 외치며 빛나는 10대가 아니고, 더이상 나의 미래보다 아이들의 꿈을 찾아주겠다는 열망에 빛나던 키팅 선생님이 아니다.

모두가 처음에는 순수한 꿈을 꾼다. 내가 이번에 이야기 해볼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감독 권형진)’의 주인공 지수(엄정화 주연) 역시 그러했다. 한때는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자라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어 연주여행을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서른이 훌쩍 넘은 모습은 그저 동네 피아노학원 선생님이었다. 현실은 평범했다. 그녀는 평범한 피아노와 그의 인생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공자만 받습니다.’ 라는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말하기에는 거만한 문구를 당당히 붙여 놓고, 나름 피아니스트였다는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 나오는 지수는 선생님은 아니었다. 그저 프로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평범한 피아노를 치고 가르칠 줄 아는 여자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선생님이 되어 가르칠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는 그런 물음을 한번 생각해보았다.

   
▲ 호로비츠 같이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부족한 재능 탓에 변두리 피아노 학원 선생을 하고 있는 김지수.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경민이가 절대음감을 가진 천재소년이라는 것을 알고 눈이 번쩍 뜨인 지수! 경민이를 유명한 콩쿠르에 입상시켜 유능한 선생님으로 명성을 떨치고자 열심히 훈련에 매진한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나 자신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그렇게 생계를 위해 피아노 선생님이 된 지수에게 어느 날, 진짜 피아노에 천재적 재능을 가진 경민이라는 아이가 나타난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고 믿었고, 하지만 가지고 있지 못했고,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갈 무렵에는 인정할 수 없었던, 그런 재능을 가진 아이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재능 앞에, 지수는 이미 자신이 어릴 적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을 들으며 순수하게 피아노를 좋아했던 자신이 없어졌음을 느낀다. 자신 앞에 나타난 경민이의 재능을 이용해, 경민이가 유명한 콩쿨에서 우승해서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욕심을 부리게 되고, 그렇게 지수는 ‘경민이를 돕겠다’는 말로 속여 가르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민이는, 잘 따라오다가도 콩쿨에만 나가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 채 주저앉아버린다. 경쟁관계에 있던 대학 동기가 심사위원으로 있던 자리에서 지수는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경민이를 다그친다. 그리고 경민이는 점점 더 피아노를 칠 때 즐거워 하지 않게 되고, 둘의 관계는 이제 극으로 치닫는다.

흔히 자식에게 강압적으로 공부나 진로에 대한 것 등을 강요하는 부모는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인생의 실패나 콤플렉스, 아쉬움을 자식에게 투영시켜 대신 이뤄주는 것으로 내 인생을 완성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심리라고 한다. 마치 그런 조급한 부모의 모습처럼 경민이를 다그치는 지수의 모습이 너무나 이해 가면서도, 진정 저런 모습이 경민이를 위한 지수선생님의 모습인가, 진정 바른 길을 인도하는 교사의 모습인가 라는 물음표를 던져보게 되었다. 보통 아이를 가르치는 것도 쉽지는 않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더 나이가 많고, 어떤 특정 계통에 전문적 지식이 많다고 해서 꼭 가르칠만한 자격을 갖추는 것은 아니다.

   
▲ 절대음감 천재소년 경민이, 경민이가 정작 필요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면 책이나 여러 가지 교수매체를 개발해 아이들에게 주는 것이 더 빠르고 효율적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르침은 선대에서 후대로, 인간 대 인간으로, 스승에게서 제자로 이어진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선생님과 제자라는 사이, 부모와 자식이라는 사이가, 지식을 넘어선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유대감을 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온전히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 사람을 키워내는 것은 사람들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면서 감정적인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며, 또한 감정적인 유대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상태에서만이 진정 필요한 지식과, 삶을 위한 지혜들을 배우며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영화 속에서 처음에는 서로 ‘수단적 존재’로 바라보던 지수와 등장인물들이 점차 시간이 지나 정서적인 유대감을 가지면서 자신이 아닌, 상대방을 위해, 지수가 자신의 꿈이 아닌 진짜 경민이의 꿈을 위해 생각해 가는 것을 보며 그런 것들을 더욱 느껴갈 수 있었다.

   
▲ “내가 찾아낸 방법이란게 너의웃음을 담아주는일이야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을 모두 이겨내는 웃음을 담도록 최선을 다할께 맑은너의 소중한 눈망울을 지켜줘” 영화 대사中

어느 교육학에 관련된 책에서 천재에 대한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천재들이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은 일반 사람들은 무언가 지식을 기억하게하기 위해 ‘교육적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천재는 그저 습득해야 하는 지식을 제시만 해주어도 혼자 구성하고 학습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존재라는 말을. 하지만 그렇다고 지구상의 모든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확률적으로 따진다면 불행한 삶을 살아가거나 자신의 재능의 존재조차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아마 우리의 어린 호로비츠 경민이 또한 지수를 만나고, 함께 피아노를 치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자신의 무대 공포증을 이겨내지 못해 피아노 자체를 포기했거나, 불행하고 부족한 현실 밑에서 그대로 다른 직업을 생계를 위해 가친 채로 살아갔을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보다보니 나는 영화 속의 지수와 경민이의 모습이 점점 스승과 제자를 넘어서 어머니와 아들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통 아이들 보다 피아노에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경민이 역시 엄마의 따듯함과 자신의 마음을 진정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다른 존재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행히도 경민이 앞에는 어쩌면 같은 길을 걸어왔고, 누구보다 경민이가 앞으로 걸어갈 인생에 대해 잘 알고 공감하는 지수라는 존재가 있었던 것은 큰 다행인 듯하다. 교사의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

“아주 특별한 사람을 위해서 한곡을 더 치겠습니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입니다.
그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中-

   
▲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조금 더 일찍 태어나고, 그랬기에 더 많은 삶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하며, 그렇기에 아이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좋은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는 존재. 선생님의 선생 은 먼저 선(先)자에 날 생(生) 자를 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존경을 받는 선생님이 되는 것은 어쩌면 더 많은 지식을 외우게 해주고, 더 좋은 대학에 보내주는 것만은 아니다. 아직 모르는 길이 더 많기에 쉬이 길을 찾아가지 못하고 넘어지는 아이들에게 길이 있다고 말해주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 그것이 어린 호로비츠 경민이가 진정 원하던 지수 선생님의 모습일 것이고, 지수가 원하는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이었다.

혈우사회의 호로비츠는 어떤 모습일까? 예컨대 혈우병 전문의와 환자와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치료에 대한 전문지식을 배워가며 환자로써 자신의 건강을 관리해 나가는 것. 때로는 방법론과 경험에 의한 갈등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혈우병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단순히 치료하는 자와 치료받는 자의 관계가 아니다. 평생의 동반자 관계이고 환자는 의사에게서 더욱 전문적인 치료 지식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혈우병 환자는 그 의사에게 따듯함을 느끼고 싶고, 자신의 마음을 진정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그런 존재가 되어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박천욱 기자 china69@naver.com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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