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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10배나 빠른 세월을 산다…희귀질환 조로증

기사승인 2018.09.26  23: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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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속 희귀 유전질환

“여러 가지 색깔이 뒤섞인 저녁 구름,
그걸 보면 살고 싶어져,
처음 보는 예쁜 단어,
그걸 봐도 살고 싶어지지....


내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게 나를 두근대게 해”

아주 사소한 소리들, 주변의 차 소리, TV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 소리, 볼을 스쳐가는 바람 하나까지도, 그것이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겨우 이제 열일곱 해 정도를 산 아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렇게 하나하나 소중하고 두근거릴 수가 없다.

처음엔 책으로 읽고, 그 뒤엔 영화로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무나 일상적인 것들, 가끔은 그래서 지겹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언제나 똑같아 보이는 광경은 내게 그다지 소중하다거나, 특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야기 할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이재용 감독/ 2014년작/ 출연 강동원, 송혜교, 조성목)’에서는 ‘열일곱’이라는 숫자는 매우 특별한 숫자이다. 주인공인 아름이가 17살이 되었으며, 아름이의 부모님이 17살에 아름이를 낳고, 부모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부모님의 17살과, 아름이의 17살은 전혀 다른 두근거림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의 17살은 부모가 된다는 두근거림, 그리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는 두근거림, 자식이라는 엄청난 책임감을 짊어진 두근거림이다.

그러나 아름이의 17살은, 절대 이 나이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되어버린, 나의 부모님이 나를 낳던 나이가 되었다는 것에서 오는 것, 그리고 언제 이 삶이, 모든 것이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두근거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이야기의 모든 이들은 자신의 인생에 다가 온 두근거림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아름이에게는 그 모든 것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 열일곱 살의 아이가 앓고 있는 희귀질환 ‘선천성 조로증’은 남보다 10배는 빠른 속도로 노화가 진행되는 병 때문인지도, 아니면 병과는 무관하게 아름이가 그런 성정을 타고 태어났기 때문에 남들의 10배가 넘는 빠른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름이의 철없지만, 너무나 소중한 부모님, 겨우 미성년자의 나이에 아름이를 낳고 길러 이제 겨우 30대 중반인데도 누구보다 어렵고, 힘든 삶의 무게를 견뎌왔던 그분들의 삶을 보고 자랐기에 아름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아름이와, 아름이의 엄마아빠 이야기를 보고 읽으며, ‘나는 건강한 삶을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오만함보다는, ‘왜 이렇게 내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지 못 했나’에 대해 다시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름이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허황된 기대를 하면서 바라보려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름이의 병이 절대 고쳐지거나,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결말을 알면서도 지켜보는 것이 다였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아름이의 인생을 지켜보면서, 다른 이들에 비하면 짧은 생애를 살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아이만의 열일곱 해를 소중하게 기억해보았다. 마치 어딘가에서 이렇게 비슷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다른 선천성 조로증 환자들을 다독이는 마음으로 나도 따뜻한 마음을 가져보았다.

몇 해 전, 이웃의 한 여자가 우리 집에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다면서요?”

이 영화는 그렇다고 해서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보다는 우리 주변에 불치병이나 희귀한 질환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환자와 가족들이 겪을 수 있는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아무 생각 없이, 어쩌면 본인은 선의라고 믿으면서 아름이네 집을 방문해 저 말을 던지고 가버린 옆집 여자 역시 아름이의 병이 악화되기를 원해서라거나, 어떤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론 악의 돋은 말 한마디보다, 그저 무심하게 던지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더 당사자에게는 비수처럼 꽂힐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자식이 희귀병으로 인해 치료가 늘 필요하고,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부모인 대수(강동원)와 미라(송혜교)에게, 아름이에게는 여전히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는 법이다. 아름이가 본 산더미처럼 쌓인 영수증도, 17살부터 34세가 될 때까지, 어쩌면 한창 자신의 인생을 위해 노력하고, 즐겨야 할 나이에 아름이를 살려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대수와 미라의 일상적인 모습까지, 이 작품은 병을 감당해내야 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애환에 대해 현실적인 묘사를 빼놓지 않는다.

대수는 택시 기사를 하고, 미라는 공장에서 일을 하며, 필사적으로 자신이 한 선택에 따른, 아름이를 키워내는 책임을 다한다.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일 텐데도 언제나 아름이를 보며, 자신들이 한 선택이 소중했노라고, 생각하고, 또 아파하는 아름이를 보며, 정말 잘 한 선택일까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은, 아마 아픈 가족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느껴보았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일했음에도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린 아름이의 치료비, 병원비를 벌기 위해, 대수와 미라는 아름이의 병을 소재로 하고 싶어 하는 방송국의 출연 요청을 받아들인다.

   
 

아름이가 동물원 원숭이처럼 취급되는 것은 너무 싫은 일이지만, 아름이도, 대수도, 미라도 결국에는 이 길 밖에는 돈을 벌 수 있는 게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 방송국 프로그램 촬영의 선택이, 결국 아름이의 마음에 가장 큰 상처가 되었을 이서하라는 가짜 선천성 조로증 환자 친구 사건까지 불러오면서, 이 이야기를 보는 나와 사람들은, 희귀병조차 하나의 흥미로운 소재꺼리, 높은 시청률과 돈을 벌 수 있는 소재로 생각하는 추악한 세상의 일면에 질려버렸다. 아름이와 대수와 미라에게는 너무나 간절하고 소중한 하루하루의 시간을, 왜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극악한 일까지 벌일 수 있단 말인가, 아름이의 순수한 마음과는 너무나 극명되게, 이세상은 때론 너무나 끔찍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냐’라는 대수의 물음에, 아름이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린 나이에 갑자가 아이를 낳겠다는 대수를 말릴 수 없자 절연을 해버리고 모른 척 했으나, 결국 아름이와 대수가 부모 자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런 대수를 걱정하고 돕고 싶은, 아버지라는 자신의 자리를 영원히 뿌리치지는 못했던 대수의 아버지. 그리고 남들이 아무리 불가능하고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니 왜 낳았냐고 말하는 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자식임을 부정하지 않은  채 늘 아버지로서의 책임과 사랑을 주려했던 대수의 모습을 보며, 아름이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말하였다.

   
▲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그리고 나는 그런 아름이의 장래희망을 보며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뿌리칠 수 없는 사랑, 관계, 가족이라는 강한 인연의 실, 어떤 병도 시간적 한계도 현실적 어려움도 견디게 만든, 그 가족과 아버지라는 단어 안에 담긴 의미는 어떤 아픔이 있었음에도 살아 있었기에 좋았다고, 그리고 더 많이 살고 싶다고 말하는 아름이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를 보며, 병을 이겨낸 따뜻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너무 슬프지만 예뻤던 한 가족을 응원했다. 그리고 내 주변에 이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심하게 상처를 준 적은 없었는지, 내가 진정 주변을 잘 돌아보며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박천욱 대표 china69@naver.com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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