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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217번째 환자입니다.”

기사승인 2018.09.06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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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브레인 온 파이어( Brain on fire)’ 속 희귀질환

   
▲주연을 맡은 클로이 모레츠(Chloe Moretz) 수잔나 카할란 역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리고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겨내고 있는 질병들은 자신이 그 질병에 걸린 몇 번째 환자인가라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정말 희귀한 질병이라고 말하는 질병 중에서도 대부분이 ‘전 세계 인구의 몇 퍼센트’ 같은 수치로 그 병에 걸린 환자를 통계 낼 뿐, 지금까지 몇 명의 환자가 발생했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세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보면 희귀병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정말 희귀한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을 만큼 어쩌면 흔하게 발생하는 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 할 영화<브레인 온 파이어(감독 제라드 배렛 Gerard Barrett)> 속 주인공 수잔나 카할란의 병은 자신이 전 세계에서 몇 번째 확진을 받은 환자인지 알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인물은 ‘항-NMDA 수용기 뇌염(anti-NMDA receptor encephalitis)라는 병을 확진 받은 217번째 환자이다. ’217’, 이 숫자를 들었을 때... 이 숫자를 많다고 말해야 할지, 적다고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217이라는 숫자는 치료하기 어려운 희귀병에 걸린 환자들의 입장과 슬픔을 생각하면 많은 숫자 같기도 하고, 다른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을 떠올리면 너무 적은 숫자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숫자 하나가 나에게 환자의 고통을 얼마나 공감하고 이해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자문하게 만드는 것인지, 이 영화를 보면서 수잔나의 고통스럽고 힘든 여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뉴욕 포스트의 저널리스트 ‘수잔나’(클로이 모레츠).  21살 그녀는 갑자기 심한 건망증과 환각증세 등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게다가 조울증의 증세처럼 갑자기 웃고 울고 하는 그녀.  하지만 병원에서는 그녀 병에 대해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하는데…

‘항-NMDA 수용기 뇌염’ 이 병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뇌염의 한 종류이다. 혹은 자가면역질환이라는 항목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뇌 속에 염증이 생겨 뇌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조절되는 병으로 영화 속 의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뇌에 불이 붙었다.’ 라는 영화의 제목과 같은 비유를 할 수도 있는 증상의 병이다.

이 영화는 뉴욕 포스트라는 세계적인 저널 회사에 취직이 결정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평범하게 살던 수잔나라는 여자주인공이 어느 날부터 급격스러운 감정 변화와 건망증, 불면증을 겪게 되면서 시작된다. 어디에서나 흔하게 있을 것 같았던 건망증이나 불면증 같은 증세, 우울증이나 조울증 환자에게서 볼 수 있는 감정의 극단적 변화와 행동, 수잔나가 보인 증상은 그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랬기에 대부분의 의사들이 수잔나의 병을 두고 정신질환의 일종이라거나 정신분열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수잔나, 수잔나의 남자친구,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정신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계속 새로운 병원, 의사를 찾아가며 수잔나의 병의 진짜 이름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여러 번의 오진 끝에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의사 닥터 나자르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예쁜 아가씨, 거기 있는 거 알아요. 최선을 다해서 찾을게요.”

유일하게 오진하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증상들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 계속 수잔나를 관찰하며,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이 찾는 진짜 병명을 찾아주려 했던 나자르, 그의 모습은 내가 본 적 없는 진단의의 모습이었다. 환자의 고통과 삶을 이해하려 하고, 정확한 치료를 위한 정확한 진단을 주고자 했던 닥터 나자르, 이 영화는 수잔나가 병을 알고, 이겨내는 모습만이 있지 않다. 이 이야기 안에는 그녀와 같은 병을 가졌으나 단순한 정신병으로 오진을 받고 정신병원이나 요양원에서 홀로 진짜 병과 싸웠을 216명의 항-NMDA 수용기 뇌염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하고 있다. 이 병은 그렇기에 희귀병에 걸린 한 여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의사로서 병에 대해 진단하는 것이 얼마나 막중한 책임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고, 우리가 쉽게 지나쳤을 216명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수잔나의 이야기”

수잔나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제 수잔나는 우수한 기자였고, 그녀의 가족들은 평범하고 화목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모르고, 의사도 대답해주지 않는 병으로 인해 그녀와 가족들의 삶은 한 순간 슬픔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자꾸 다른 증상을 보이고, 급격한 감정 변화로 인해 발작이 일어나 갑자기 병원에 실려 가고, 또 증상이 갑자기 없어지기도 한다. 아무 일 없이 잘 근무하고 있던 회사에서는 상원 의원의 기사를 망치고, 회의를 깜빡해서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불안 증세와 공격성, 우울증, 사람들은 그런 수잔나를 이해하기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증상들만 보고 정신병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초반에는 병과 싸우는 것 같아 보였으나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병이 아닌 사람들의 시선과 싸우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 우리가 아는 얄팍한 지식이나 편견으로 쉽게 판단을 내려 버리는 것일까? 그런 우리의 사소한 실수, 깊이 생각하지 않는 가벼운 행동이 어쩌면 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많은 수잔나 같은 환자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영화 ‘브레인 온 파이어( Brain on fire)’ 포스터

물론, 이 영화 속에서 수잔나를 오진했던 많은 의사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조차도 기침이 나거나, 열이 나고, 배가 아프다고 해서 무조건 어떤 병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처럼 병을 진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물며 영화 속 수잔나처럼 검사를 그렇게 반복하는데도 진단을 내릴 수 없거나, 하나같이 오진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이 병은 흔하지 않고, 또 다른 질병으로 쉽게 오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잔나보다 더 먼저 이 병에 걸렸던 216명의 환자들의 숫자를 계속 떠올리게 되면서, 나는 조금 더 세심하게, 닥터 나자르처럼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지켜봐주었던 사람이 있었다면, ‘모두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병을 이겨내고자 했던 강한 수잔나의 의지, 그리고 수잔나가 단순한 정신병이 아닌 어떤 남모를 아픔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주었던 수잔나의 남자친구와 가족들의 믿음 덕분인지 수잔나는 자신의 병의 원인을 찾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병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면, 어떤 고통스럽고 어려운 병보다, 그것을 이겨내게 하는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어떤 병이든 그것에 걸리는 것은 환자의 선택이 아니지만, 이 이야기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힘든 일이 닥쳤다는 사실이 아닌, ‘그 힘듦을 어떻게 이겨내는 가’라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사건과 슬픔, 고통, 아픔, 저 자신은 어떻게 그것을 마주하고, 이겨내야 하는지에 대해, 나는 그 마음가짐을 배웠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 수잔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그 모든 걸 이겨내고 다시 웃게 된 그녀의 앞으로의 삶을 응원했다.

또한, 우리가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난 것’과 ‘혈우병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겠는가?’라는 생각에 갇혀 지내지 말고, 한 인간으로써의 삶을 어떻게 설계해 나아갈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서 보다 큰 그림으로 삶을 만들어 나가면 어느새 ‘혈우병 환우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다’라는 소극적 평가가 아닌 ‘알고 보니 그는 혈우병을 가지고 있었다’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이 완성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박천욱 대표 china69@naver.com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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