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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을 보며, 떠오르는 ‘공동 의존자 더 이상은 없다’

기사승인 2018.07.19  23: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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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발 떨어져보면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

   
 

“한 발 떨어져보면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

최근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던 수많은 범죄자들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착하다고 믿을만한 사람이 없다.’라는 생각마저 하게 할 정도로 천연덕스럽고 자기합리화에 치밀한 범인들의 이야기가 많다.

오늘 19일, ‘어금니 아빠’로 불리던 이영학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있었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아내를 시켜 성매매를 강요하고 이에 불응할 경우 몰래 촬영한 성매매 동영상을 공개하겠다는 협박을 하거나 하나뿐인 딸을 인질처럼 이용한 사례를 보면 그 아내는 왜 진작 다른 사람에게 이런 상황에 대해 도움을 청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더러 그런 일이 있다. 한 발 멀찍이 타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이, 어떤 한 사람의 그릇된 행위에 암묵적,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사실은 착한 사람이지만 상황이 불행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사랑에 늘 목마른 사람이어서 그렇다.’라는 식으로 변호를 해주며 옆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 이영학 아내 사건의 경우 지극히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나는 그 아내가 결국 자살이라는 것 밖에는 다른 것을 할 수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 크게 상처와 피폐함을 안고 있었기에 이영학을 버리고 지탄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그 탓을 돌리는 것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조금 경우가 다르고, 정도가 다를 뿐, 이처럼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존재로 자신을 증명받고,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하며 정작 자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를 간혹 발견한다.

   
▲ Melody Beattie 저/ 김혜선 역 / 학지사 출판 2013.07.15 출간

오늘 말하고자 하는 ‘공동 의존자’는, 처음 그 단어를 들었을 때 이게 무슨 뜻인가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공동의존 분야에서 저명한 학자 중 한 명인 ‘로버트 서비’는 ‘억압적인 규칙과 습관들에 오랫동안 노출된 결과 개인적 혹은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서, 심리, 행동상태’라고 명명하는가 하면 공동의존 분야의 선구자인 '어니 라슨' 또한 '사랑을 주고받는 인간관계의 능력이 손상되어 빚어진 자기 파괴적이고 학습화된 행동들 또는 성격 결함'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공동 의존자들은 중독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들의 잘못된 중독 혹은 행동으로 인해 오랫동안 일상생활에서 고통을 느껴왔다. 하지만 이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잘못된 가치관 혹은 해결 방법으로 인해 오히려 당사자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악화시켜 가는 암묵적 동조자가 되어가거나 그대로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된다.

그 관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공동 의존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나 결국 벗어나기 어려워하는 사람. 이 책에서,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는 공동 의존자들은 그렇게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저당 잡힌 사람처럼 살아간다.

나는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내 나름대로 내 주변에 공동의존자란 누가 있는가에 대해 한참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동의존자라는 사실에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왜 자기 스스로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를 꺼리며, 누군가의 평가나 존재에서 간접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고만 있는 것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기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인간이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을지라도 그 개인이 유일적 존재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고, 정체성을 깨달아간다는 뜻일 것이다. 개인은 사회 안에서 존재할 뿐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왜 아들이 저를 힘들게 할까요? 제 삶을 흔들면서 망치고 있어요.” -p.59

그 누구도 그 어머니에게 아들이 어떤 일을 하든지 동조하고 감싸 안으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단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아들을 사랑했으나, 자신의 의지와 달리 아들은 자신의 뜻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였으며, 이 행동이 아머니에게는 고통과 힘듦으로 느껴지면서 그 둘의 관계, 어머니의 세계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이 경우를 살펴보면서, 나는 내 주변에 ‘사람’으로 인해 힘든 사람들을 하나 둘 씩 떠올렸다. 공동 의존자에는 책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다양한 경우가 있다. 그 안에는 가족이나 배우자의 잘못된 행동을 오히려 도와주는 사람도 있으며, 중독이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이해 없이 애원, 호소 등의 감정적인 방법으로 당사자 자체를 바꾸려 하다가 실패를 거듭하며 오히려 분노와 좌절, 스트레스에 빠지기도 한다. 그들은 쉽게 자신이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반대로 누군가의 인정과 사랑이 없다면 자신은 존재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더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에게 저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공동 의존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의 중독, 혹은 문제증세는 나아지지 않고 계속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며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는 한 사람의 인간이다. 나는 평소 내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간접적, 직접적 도움으로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고마움을 늘 기억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더러, 나의 친절을 과하게 요구하는 경우, 내 가치관 하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을 자신의 고집대로 요구하는 경우에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 단호함을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올바로 서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지 누군가가 말해주는 것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돌아보아야 한다. 나의 눈에 보이는 사람, 환경이 아닌 때때로 3인칭 시점의 소설처럼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어떤 영향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돌아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환경과 사람들 속에 있는 부분으로서 내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간의 관계, 감정으로 이어진 관계는 결심한다고 해서 이뤄질 수 있는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끊임없이 자아성찰을 거듭하듯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주변을 성찰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늘 기억해야 한다. 환경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은 더더욱 바뀌지 않는다. 나로 인해서 누군가가 바뀔 것이라는 생각이 오만임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밖에 없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박천욱 기자 china69@naver.com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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