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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터나 되는 눈물을 흘렸다는 한 소녀의 이야기

기사승인 2018.08.23  02: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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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귀질환 ‘척수 소뇌 변성증’을 앓았던 환우의 수필

최근 들어, 나는 희귀질환에 대한 책이나 영화를 많이 찾아보곤 한다.

그 이유를 잠깐 이야기 해보겠다. 내가 혈우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혈우병’이라는 걸 전혀 모르던 상태였다. 김 주필과 김 편집장에게 이야기를 듣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럽다기보다는 조금은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고통은 어느 누구나 무척 괴로운 일이기에.... 그러나 혈우사회에서 함께 호흡하고 부딪고 섞여가면서 혈우병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게 됐고, 지금은 심지어 ‘혈우병’에 얽힌 농담까지 나눠도 거리낌이 없다. 이것은 내가 혈우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알고 나면 두려울 것이 없다. 세상사 모든 것이 그런 것 같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기에) 두려운 것이지 알고 나면(대처법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모를 때와 알 때가 이렇게 다르다. 따라서 혈우사회가 한층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른 질환을 이해 할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혈우사회인들이 다양한 희귀질환에 대해 관심의 폭을 넓혀보면 흔히들 말하는 집단이기주의(集團利己主義)에 빠지지 않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한 혈우사회인들이 될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내가, 짧은 글로 다른 질환을 언급만해서야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타 질환의 관심 시작’으로 정리해 두자. 어느 위치에서라도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면 오히려 내 자신이 높아지게 되는 진리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는가. 위정자들을 만나 도움을 청해야 할 때에도 타 질환에 대해 이해도가 높으면 혈우사회인들의 부당한 처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저런 복잡한 것을 내려놓고서라도 어려운 환경에 있는 다른 희귀질환자들을 생각해 보면서 스스로의 삶에 감사함을 느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오늘 이야기 할 책은 꽤 유명한 일본의 수필 <1리터의 눈물>이다. 희귀난치병과 싸워가며 삶을 살았던 한 소녀 ‘아야’의 이야기이다. 저자 <키토 아야(木藤亜也, 1962년 7월 19일~1988년 5월 23일)>는 중학교 3학년 때 갑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 병원에서 진찰을 받는데, 다계통위축(척수소뇌변성증)이라는 병으로 진단받았다.

그럼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 생전의 스티븐 호킹 박사/ 1942년 1월 8일, 영국 ~ 2018년 3월 14일/ 케임브리지대학교 대학원 물리학 박사 (연합)

“사람에게는 각자 말 못 할 고민이 있다. 과거가 생각나면 눈물이 난다. 현실이 너무나 잔혹하고 험난해서 꿈조차도 꿀 수 없다. 앞일을 생각하면 또 다른 눈물이 흐른다.”

유명한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어느 날, 학교에 가던 길에 넘어지는 증세와 간혹 두통이 있어 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이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희귀질환 ‘루게릭’에 자신이 걸렸음을 알게 된다. 누군가는 당장 죽는 병이 아니며 관리를 잘 해주고 꾸준하게 운동을 통해 근육을 단련한다면 생을 꽤 오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앞날이 창창한 나이에 갑작스럽게 자신의 손, 발을 서서히 움직일 수 없게 굳어져 가고, 병이 진행되면 말하고 먹는 것조차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어 누군가의 힘을 빌려야만 생을 이어갈 수 있다는 병은,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는 일보다 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아니었을까. 마음먹은 대로 손발을 움직이는 일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나로서는 다 상상하고 그 고통을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오늘 소개하는 이 책에서 “마치 몸 안에 마음이 갇혀버린 것 같다”는 말 한 마디 앞에, ‘나는 오랫동안 몸이 굳어졌다’, ‘내 몸을 움직일 수 없어졌다’라는 이런 느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루게릭병은 운동 신경 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사멸하는 원인 불명의 질환으로서 대뇌 겉질의 위 운동 신경세포와 뇌줄기(뇌간)와 척수의 아래 운동 신경세포를 모두 점진적으로 파괴하는 병이라면, 그와 비슷한, 하지만 전혀 다른 ‘척수 소뇌 변성증’이라는 병을 가진 소녀가 쓴 자서전 같은 이야기 <1리터의 눈물>을 소개한다.

   
▲ 『1 리터의 눈물』 키토 아야 저자/ 겐토샤 출판. 논픽션.1986.2.25

‘척수 소뇌 변성증’은 소뇌, 뇌간, 축수가 점차 위축되는 질환 중 하나로서 루게릭처럼 아직 원인조차 알려지지 않은 희귀질환 중 하나이다. 이 병의 증상은 처음에는 길을 걸어가다가 넘어지거나, 젓가락질을 잘 못하게 되는 날이 생기는 등 일상적인 증상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넘겨버리고는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이 뇌와 척수에 문제가 생기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하지만 이 병은 소뇌, 다리가 위축되는 등의 증상이 심해지는 와중에도 대뇌의 기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환자 본인의 의식은 정상인과 동일하다. 즉, 자신의 몸이 점점 불편해지고 굳어가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병이 진행되는 잔혹한 병인 것이다.

이 병은 세계적으로도 발병한 사례가 그다지 많지 않을 만큼 매우 희귀한 병이다. 그런 병에 일본의 시골에서 살고 있던 겨우 중학교 3학년이던 여학생이 걸리게 된 것이었다. 물론, 오랜 기간 생존했던 루게릭 병을 앓은 스티븐 호킹처럼 저자인 카토 아야 역시 중학생 때 발병하여 이 책을 남기고, 25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하지만 얼마나 긴 세월을 생존했든, 환우 본인이 자신이 점점 몸이 굳어가고, 점점 더 많은 것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나는 겨우 중학생 정도의 나이에 이 병을 알게 되고 받아들이고, 치료를 견뎌내면서 이겨내야 했던 아야의 마음에 대해 책을 읽는 내내 깊이 감사와 존경을 가지면서 신중하게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것은 나보다 어린 나이라는 것도, 어떤 특수한 환경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핸디캡 때문도 아니었다.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에 대한 수수한 존경의 마음이었다.

“모두들과 살아갈 곳이 다르겠지만 지금부터는 스스로 선택한 길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빛을 찾고 싶으니까.. 이렇게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에겐 적어도 1리터의 눈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더이상 저는 이 학교를 떠나도 무언가가 끝난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모두 지금까지 친절하게 대해 줘서 정말 고마워.”

잔인한 일인지, 아니면 다행인 일인지 모르겠으나, 이 병은 매우 천천히 진행되었다. 아야가 학교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가족들과 함께 병을 이겨내고,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을 때까지, 어린 아이가 1리터나 되는 눈물을 흘렸다고 말할 만큼의 시간이 흐른 이후에도 꽤 오래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는 아야의 실제사진, 아야가 14살 처음 발병할 때부터 20살, 글을 제 손으로 쓸 수 없게 되기 직전까지 썼던 일기장, 그림, 눈 근육밖에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때 소통을 위해 사용했던 여러가지 재활용품의 사진과 자료들이 함께 있었고, 그 모든 것들이 글로 읽었던 아야의 10년 간의 투병 과정과 모든 삶의 흔적들을 느껴볼 수 있도록 하였다.

   
▲ 9.16 아침, 복도에서 원장선생님이 "안녕"이라고 말했다. (...) 고마워요 엄마/ 10.22 움직일 수 없다. 분하다. (아야의 일기장 中) 투병기간 동안 재활차원에서 꾸준히 일기를 썼는데, 병의 진행과정도 자세하게 나온다. 그러나 병이 진행되면서 글 쓰는 것조차 어려워졌기 때문에 20세 이후로는 글을 쓰지 못한다. 10여년간 투병생활로 몸이 쇠약해진 아야는 결국 신부전증으로 인해 2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1986년 나고야의 한 출판사에서 아야가 쓴 일기를 정리해 출판했다. 이후 2005년 겐토샤에서 문고책으로 출판해 합계 200만부를 넘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무위키)

그래서 나는 어찌 보면 이 책의 내용 자체보다는 그런 아야의 흔적, 그리고 아야를 기억하는 사람들, 친구들, 아야를 치료했던 의사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이 이야기를 더 슬프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공감을 읽는 이로 하여금 이끌어낼 만큼, 아야가 아주 느리게 아프고, 증상이 진행되는 동안, 아야는 아주 친절하게 자신의 병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걷기가 어려워지고 자주 넘어지면서 목발을 하나 집고 다녔다는 것, 이후에는 휠체어, 하지만 친구들이 번갈아가면서 몸이 불편한 아야를 도와준 것, 그리고 점점 수업을 듣는 것이 힘들어지고, 생리적인 현상을 혼자서 해결하기도 힘들어졌을 때, 더 이상은 다른 친구들에게 폐가 되지 않고, 내 병을 치료하는 것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 모든 것을 어떻게 아야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나는 아주 상세한 부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희귀한 병처럼, 이생이란 때로는 예기치 않은 일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따뜻한 세상이라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아야를 도와주었던 의사 선생님,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주변 모든 사람들처럼 우리 모두가 어떤 슬프고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는 밥을 우리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의사 선생님께, 그런 아야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병과 처지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던 어린 소녀가 질문하였다. 저도 결혼할 수 있을까요?‘ 덜컥, 결혼할 수 없다고 말해버린 주치의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의 뒤늦은 후회, 아마도 아야의 병을 치료해줄 수 없다는 것에 가장 큰 후회와 자기반성을 하셨을 지도 모르는 선생님께서 아야를 위하는 마음으로 단언해버린 그 한 마디의 거절이, 아야에게는 어떤 상처가 되었을까. 그런 안타까움이 들어, 아야가 모든 것을 강하게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런 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한 번은 해보았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노후를 함께 보낸다는 평범한 미래가 막혀버린 인생, 그 인생은 너무나 슬프지만, 그렇기에 지금 살아가는 현재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더 값진 것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야가 앓았던 병은 아직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치료법 또한 명확하게 없다. 아마 어딘가에서 지금도 이 척수 소뇌 변성증으로 인해 다른 아야가 힘든 숨을 계속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시간을 보낸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다가온 일을 잘 이겨내고 있는 다른 아야들에게, 나는 진심어린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 이 수필은 일본 후지티비에서 <1리터의 눈물 (1リットルの涙)>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제작편성되기도 했다. 방영은 2005. 10. 11. ~ 2005. 12. 20.까지 총 11부작으로 제작됐다. 제작진은 연출 키노시타 타카오, 무라카미 쇼스케/ 각본 에가시라 미치루

 

박천욱 대표 china69@naver.com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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