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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사육사가 되어 아마존으로 떠난 혈우병 환우

기사승인 2020.10.12  16: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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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환우 이야기] 원하는 일을 멋지게 실현한 환우 와타나베씨

혈우병 8인자(A형 중증)인 와타나베씨는 어린 시절 물고기 사육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고등학교에서 수산학과를 졸업하고 수족관의 사육사가 되었다. 사육사는 보기보다 상당히 체력을 요하는 일인데 혈우병 환자라고 해서 포기하는 것 아니라, 생물조사를 위해 아마존에 직접 방문하기도 하고 파워풀하게 활동하고 있다. 가능한 오랫동안 현장에서 사육에 종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와타나베씨에게 원하는 일을 멋지게 실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와 가족에 대한 생각 등을 들어봤다.

   
△ 원하는 일을 멋지게 실현한 일본 혈우병환우 와타나베 씨. 그는 물고기 사육사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

◇ 노는 것이나 형제끼리 싸우는 것에 대해 제한받지 않던 어린시절.

저는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갈비뼈 부위에 멍이 들었고, 이상하게 여긴 부모님께서 병원에 데려가 진찰을 받았는데 혈우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후 8개월 무렵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간호학교에서 배운 경험이 있어서였을까요? 크게 동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혈우병을 갖지 않은 두 살 위 형과 같이 놀고, 심하게 싸우기도 하며 자랐습니다. 혈우병이라는 이유로 부모님께 어떤 제제를 하셨던 기억은 거의 없고, 항상 저를 응원하고 지켜봐 주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어머니께서 주사를 놔주셨습니다. 어머니의 권유로 자가주사를 시작하게 된 때가 초등학교 5학년 때입니다. 그 당시에는 의료기관에서 중학생 때부터 자가주사를 권장했으므로,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빨랐었던 것이죠. 

원래 활동적인 것보다 조용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한 수영만큼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당시 수영으로 단련된 폐활량은 지금도 업무에서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 열대어에 매료되어 수산학과에 진학

실내에서 지내기를 좋아하던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열대어를 만났습니다. 친척 집에 있던 커다란 수조와 열대어에 제 시선을 빼앗겨버렸죠. 개나 고양이 등 생물은 길러봤지만, 열대어를 집에서 키운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차남으로, 형과 부모님과의 관계를 보면서 여러가지로 많은 것을 배웠기에 평소에는 부모님을 곤란하게 하는 버릇없는 언행을 일체 삼갔습니다. 그런데 이때 처음으로 제 생일에 수조와 물고기를 사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습니다.

선물을 받고 나서부터 물고기 사육에 열중했고, 물고기 관련 서적을 탐독했습니다. 그렇게 소년시절부터 물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고등학교도 수산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습니다만, 민물고기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학교였기에 하숙하며 통학하기로 하였습니다. 식사는 포함되어 있었지만, 세탁 등 잡다한 일들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반대하시지 않고 보내주셨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많으셨겠죠. 저도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보니 당시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약을 많이 갖다주시기도 하고, 하숙집에도 저의 질병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병에 대해 하숙집 가족들의 이해도 얻을 수 있었고, 민물고기 공부에도 몰두할 수 있었던 고교생활이었습니다.

   
 

◇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고등학교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 부모님께서는 대학진학을 권유하셨지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는 수족관 사육사를 목표로 정했습니다.

수족관 사육사는 구인은 너무 적고, 경쟁률이 100대 1을 넘을 정도로 좁은 문이었지만,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전국 수족관에 닥치는 대로 전화를 해서 직원모집에 대해 문의도 하고, 최선을 다해 시험 공부도 해서 결국 수족관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사육사가 하는 일은 먹이주기, 수조 청소뿐만 아니라 수질점검, 포스터 및 해설 패널작성, 전시물 교체 같은 관내업무는 물론,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고기 포획, 관외 이벤트 기획 및 운영, 학교 출장 수업 등, 그야말로 다양합니다. 물고기의 컨디션 관리 또한 사육사의 일입니다. 애지중지 키운 물고기를 보며 손님들이 감동하시는 걸 보면 보람을 느끼곤합니다. 취직했을 당시는 주위에 공연히 신경쓰게 하고 싶지도 않고, 물고기 만질 기회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서 회사에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했고, 그곳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굳은 각오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차 사육사로서의 실력을 쌓고, 현재는 일부 상사나 동료에게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막노동 같은 일은 후배에게 부탁을 하거나 때로는 쉬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병에 대해 사전에 양해를 구하거나 평소 일하는 방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 각오 끝에 꿈에 그리던 아마존으로.....

수족관 생물 조사를 위해 아마존에 가는 귀중한 경험도 했습니다. 아마존은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땅으로 종종 아마존 강에서 물고기 잡는 꿈을 꿀정도로 좋아했습니다. 아마존에서의 조사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저는 가장 먼저 입후보를 하였습니다. 물론 병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니까요.

하지만 숙소는 배로 강을 3시간 정도 거슬러 올라간 곳에 위치한 정글의 오두막집이었고, 기온이 40℃가 넘는데다 혈우병 치료제의 보냉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동안 제 뜻을 존중해 주셨던 부모님께서도 만류하셨고,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까지 염두에 두었습니다.

저는 꿈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통상적으로 주 2회 약제를 투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3주간의 체류기간 동안은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매일 투여할 수 있도록 약 30개의 약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무사히 통관은 되었지만 숙소 바닥에는 타란튤라 거미가 있는 듯했고, 위생 상태가 엉망인 오두막에서 주사를 맞는다는 건 정말 긴장되는 일이었습니다. 엄지발톱이 벗겨져 출혈이 심하고 고름도 많이 났지만, 의료기관에서 진찰을 받지 못해 자주 소독하며 항생제 물질이 들어간 연고로 버텼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꿈꿔왔던 동경의 땅 아마존에서 큰 탈없이 마음먹은 대로 조사를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 가족과 보내는 소중한 나날들

아마존에서 귀국하자마자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처음부터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신청하였고, 병에 대한 이야기도 사전에 다 했습니다. 상대에게 털어놓을 용기가 없어 고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만약 받아주지 않으면 저랑은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현기증 증상 때문에 한때 물고기와 관련된 부서에서 제외된 적이 있습니다. 수조에 잠수할 수도 없었고 2년간은 사육현장과 멀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고, 뜻밖의 병에 걸려 부서 이동이 결정된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약으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릴 때도 있었지만, 아내가 버팀목이 되어 준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아내의 존재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서는 서로 진중하게 대화를 갖고난 후 아내의 생각을 존중해주기로 했습니다.

첫 아이는 사내아이였습니다. 둘째를 갖는 것은 선택사항이었는데, 이후 딸이 태어나서 여자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남매가 노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둘이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딸아이는 보인자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라서 자녀를 갖게 되면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용돈의 일부를 매달 저금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에서 와타나베 씨

◇ 원하는 일을 실현하기 위해 !!!

꿈이나 희망이 있다면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인생이 즐겁겠지요.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손자의 말을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상대와 자신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잘 이해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혈우병이 있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실현하는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합니다. 혈우병환자가 사육사처럼 육체노동을 요하는 직업을 갖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부모님께서 활동하는데 특별히 제한을 두지 않으셨기 때문에 좋아하는 길을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혈우병이 있기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예리한 관찰력도 기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일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병과 마주하면서 언제까지나 이 일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일본환우 와타나베씨의 이야기는....

혈우병 환자와 가족을 위한 정보지 '에코'에 게재된 기고문이다. '에코'는 일본 바이엘약품(주)에서 운영하고 있는 혈우사회 공헌프로그램 중 한 가지이다. 

[헤모라이프 조은주 기자]

조은주 기자 cap3882@hanmail.net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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