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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톡톡] '마음이 가는 일' 하기, 설레는 일상의 시작

기사승인 2018.03.28  11: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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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고3이 된 미르네 가족의 이야기

'미국'이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자유로움'과 '강함'이 함께 떠오르면서 그 옛날 '아메리칸 드림'과는 또다른 의미의 설렘을 주어 누구에게나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물론 2년 반 전쯤부턴 지구인의 한사람으로서 걱정도 함께 밀려온다는..) 

한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있는 환우의 가족이 있어 서면인터뷰를 가졌다. 바로 많은 혈우가족들과 친분이 있는 유미르 군의 가족이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붙임성 좋고 재주가 많은 미르군이어서 코헴사무국 삼촌들과 가족들에게 사랑받았었는데 미국에 가서도 멋지게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가끔 SNS로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오늘은 가족을 대표해 미르군의 엄마인 서은아씨가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미국의 혈우병치료와 현지에서의 생활, 엄마로서의 꿈에 대해 들어보았다. 함께 해보자.

   
▲ 워싱턴의 링컨기념관에서 미르와 미르엄마랍니다.

1. Introduce your self~ㅎㅎ

안녕하세요. 미국에 살고있는 만 열일곱 살 유미르의 엄마 서은아입니다. 미르는 현재 실질적인 고3인 11학년이고 캘리포니아에 살고있습니다.

   
▲ 세콰이어 국립공원의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 '제네럴셔먼'

2. 미국으로 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몇가지 이유가 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미르에게 좀 더 나은 환경과 기회를 주고싶었습니다. 나중에 미르가 또 선택을 해야겠지만요.

   
▲ 콘서트장에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제 오닐과 함께

3. 미국의 혈우병 치료환경은 어떤가요?

사실 많이는 모릅니다. 제가 여기서는 다른 환우 가족들과 교류가 없어서 저희 상황과 경험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병원이 정해지면 일년에 한번씩 정기검진을 하고, 약은 병원 약국에서 한달치씩 주사용품들과 함께 집으로 보내줍니다. 미르는 100% 용량의 Advate를 일주일에 세번씩 맞다가 6개월 전부터 반감기가 길어진 약으로 일주일에 두번씩 예방합니다. 주사 횟수나 약의 선택은 전적으로 환자와 가족의 의견에 맞춰집니다.
 

   
▲ 미르 많이 컸지요? 나파밸리에서

4. 응급상황시에는 어떻게 대처 가능한가요?

출혈로 인해서 병원을 방문한 적은 거의 없어서 잘 모르는데 5년 전에 처음 와서 보험문제가 해결이 안되어 약이 없을때 소아과 예방접종으로 팔에 출혈이 생겼을때 응급실을 간 적이 있습니다. 보험이 해결 안 된 상황이었지만 입원까지 시켜서 바로 치료해주고 지켜봐주고 보험에 관련해도 병원측이 직접 움직여주어서 더디게 진행되던 보험관계 일을 빨리 진행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경험한 것은 이렇지만 미국은 주마다 사정이 너무 다르고 보험도 여러가지라 케이스마다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5. 혈우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떤가요?

한국과 별반 다르지않은것 같습니다. 9학년 생물시간에 처음 혈우병을 배우는것도 비슷한것 구요. 미르는 생물선생님의 부탁으로 9학년들 수업에 찬조 연자(guest speaker)로 참석해 혈우병에 대해 설명해주고 질문에 답도 해주곤 합니다.

   
▲ 자신의 병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얘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6. 여행가기 좋은 곳, 많지요?

땅이 넓은만큼 여행이나 나들이 할 곳은 정말 많습니다. 거대하고 웅장한 자연은 물론이고 문화적 볼거리도 풍부합니다. 

제가 사는 곳 주변에서 꼽아보라면 채널 아일랜드(channel islands) 를 추천하고싶습니다. 캘리포니아는 50개 주 중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면적이 한국의 세 배이기 때문에 유럽의 시골을 느끼게 해주는, 포도주가 유명한 나파벨리부터 멕시코와 접한 샌디에고까지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 아들과 서로에게 의지하며 미국생활 건강하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채널 아일랜드는 LA에서 한시간 반 정도 떨어진 벤츄라에서 배를 타고 들어갑니다. 배를 타고 가는 길에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돌고래가 같이 유영하죠. 그것도 신기해하며 좋아라 하고있는데 어느 순간 내가 타고 있는 여객선만큼 크게 느껴지는 고래와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씨월드에서 조련사와 함께 있는 고래가 아닌 그 고래들보다 훨씬 큰 고래와 바다에서 마주하는 순간은 정말 경이롭습니다. 어디서 본듯한 꼬리가 T 자로 들어가고 있는 장면, 분수처럼 뿜는 물보라... 그리고 영화 해적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고래 울음소리. 고래가 물속에 있으면 고래는 보이지 않지만 수면에 특이한 파동을 만드는데 그것조차도 신기합니다. 큰 고래가 한 마리가 아닌 서너 마리가 배를 둘러싸기도 합니다.

   
▲ 샌디에고 바닷가에서 만난 바다사자

섬에 들어가면 캠핑, 하이킹, 카약을 할 수 있습니다. 하이킹하며 산위로 오르다보면 갈대숲도 나오고 가는 내내 보는 바다는 봐도봐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섬 정상 절벽위에서 보는 바다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카약은 섬 전체를 둘러보는 코스이기 때문에 시간도 꽤 걸리고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는 동굴같은 곳을 지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카약이나 하이킹만 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더 머무르고 싶은 사람들은 캠핑을 합니다. 전기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전화도 잘 터지지 않습니다. 8시만 되면 깜깜해서 바로 옆에 있어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 채널아일랜드의 때묻지 않은 자연

그런데 이 섬에는 여우가 정말 많습니다. 잠깐만 경계를 늦추면 우리가 가져온 음식물을 훔쳐가기 때문에 텐트장에 하나씩 있는 철로된 통에 음식을 넣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저녁으로 준비한 LA갈비 굽는 냄새로 많은 여우들을 괴롭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날 보니 우리 짐속에 있던 진라면과 하나씩 낱개 포장된 쌀과자가 없어졌는데 과연 그것들을 여우가 어떻게 뜯어먹었을까 하며 재밌어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지켜보니 사람과 여우가 서로 무서워하며 만나면 둘 다 도망을 가서 위험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여우가 작고 치와와 같이 예뻐서 나중에 나타나면 반갑고 서로 구경하고 그랬습니다.
풍광도 아름답고 전기도 인터넷도 없어서 쏟아지는 별을 보며 바쁜 일상을 벗어나 힐링을 하기에 최고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살짝 무료할 수 있는데 이렇게 동물들을 만나는 경험도 아이들과 여행을 하는 가족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7.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여기는 아이가 18살이 되어 대학을 가면 독립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년 뒤 미르가 대학에 가면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빈둥지 증후군이라는 말도 있으니 그 질문엔 걱정도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질문들을 받을 때면 남들이 해주는 기계적인 걱정이라 여기며 무심히 넘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저녁을 먹으며 “엄마 나 대학가면 뭐할거야?” 라고 미르가 묻는 순간 후욱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예전부터 농담처럼 해오던 말이었습니다.
 “그러게 .. 엄마 학대받거나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랑 동물들을 위해 살수있을까?” 
그랬더니 미르가 “아~ 오드리 햅번처럼?” 하는것입니다.
 “하하하 오드리 햅번? 그래 좋다. 오드리 햅번!”
그래서 오십을 코앞에 둔 미르엄마의 꿈은 오드리 햅번처럼 사는 것이 되었습니다.

   
▲ 1년후 미르가 독립하면...

미르가 태어나고 커리어를 갖지 않은채 미르를 키운 건 그 일이 제 마음이 가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미르가 대학에 가고 오롯이 나에게 주어질 그 시간들에 또 제 마음이 가는 일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살짝 설레기도 합니다.

미르와 미국에 오기 전에 1년쯤 해외에 나가서 NGO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막연히... 물론 이루지 못했죠. 꿈이라는 건 이루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또 이 꿈 얘기를 창피함을 무릅쓰고 여기에 쓰는 건 '혹시나 말한대로 이루어질까' 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또 막연한 제 꿈에 혹시나 방법이나 팁을 알려주실 분이 계실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제가 현실에 부딪혀 이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저는 그래도 그 현실속에서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살다보면 늘 대단한걸 계획하거나 추진하며 살 수 없을 때도 있고 늘 전성기일 수도 없죠. 그럴때는 그냥 그 자리에서, 할수있는 일들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제 꿈과 앞으로의 계획입니다.

   
▲ 캘리포니아의 바닷가

인터뷰에 응해준 유미르 군의 가족에게 멀리서 감사의 인사를 띄운다. 인터뷰를 하면서, 기자도 현재의 좁은 울타리 안에서만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버리지 않았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미르군 가족의 안부를 궁금해하던 환우 어머니들이 많았는데 기사를 계기로 다시 연락이 닿고 언제고 피어날 어머니들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 많이 나누길 바라본다.

   
▲ 기자의 선물, 11년 전 미르군의 앳된 사진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

 

김태일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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