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모필 Movie Feel>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

전국을 여행하던 5년 전 이맘. 늦은 밤의 추위를 피하고자 들어갔던 강릉의 한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만났다. 누구에게나 의미 깊은 영화는 하나쯤 있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의미를 제쳐 두더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다.

라이프(Life)지의 네거티브 필름 관리자인 월터 미티는 남들에게 이야기할 만한 특별한 경험도, 어딘가로 떠나 본 적도 없다. 짝사랑하는 이에게 직접 다가가기보단 인터넷을 이용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에 직접 나서 이야기하기보단 그저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대리만족하고 마는 소심한 직장인이다.

생일날, 회사로 출근하는 그에게 생일 케이크를 전해주는 동생이 오디션을 보러 가야 한다 하자, 그런데 가지 말고 집에 올 택배나 잘 받아두라 하는, 새로운 도전과 실행에 거부감을 느끼는 그에게 동생은 불만을 토로하지만, 그는 그런 불만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회사가 팔렸고 그로 인한 구조조정이 예고되었기 때문이다.

금월 호를 마지막으로 잡지를 폐간하고 인터넷 잡지사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상부의 일방적 통보 속에서 월터는 자신의 본업이자, 어쩌면 마지막 업무가 될지 모르는.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인화하고자 한다.

저명한 사진가인 숀 오코넬은 잡지가 폐간된다는 것에 유감을 표하며 보내온 우편에 감사의 선물과 함께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자 ‘삶의 정수(quintessence of life)’를 담았다는 25번 사진을 보내온다. 16년간 라이프사의 사진을 충실히 인화해 온 월터는 25번 사진을 인화하고자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가 보낸 필름 통에 25번 사진만이 쏙 빠져 있다.

당장 ‘삶의 정수’를 인화해 오라는 상부의 압박 속에 사진이 없다는 것을 숨기고 25번 사진을 찾던 월터는 어쩌면 숀이 사진을 보내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동료의 의문을 듣자 월터는 마치 사진 속 숀이 이리로 오라는 듯한 손짓을 상상하게 되고 사무실을 뛰쳐나가 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린란드로 향하게 된다.

그가 그린란드로 떠나며 펼쳐지는 장면은 시작부터 깔아 놓았던 라이프사의 모토(motto)에 대한 복선을 월터가 직접 실행함과 동시에 그것을 영상 속에 아름답게 담아 놓은 영화의 영상미의 백미이자 명장면이다.

헬기에서 바다로 뛰어들고, 자전거와 롱 보드를 이용해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을 경험하고, 노샤크의 최고봉을 등반하기까지. 한때 상상만으로 자신의 행동을 꿈꾸던 월터는 이로써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어 상상보다 더 상상 같은 삶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많은 고난 속에서 숀을 만나는데 성공하고, 미국으로 돌아온 월터는 마침내 ‘삶의 정수’를 만난다.

삶의 정수가 무엇이었는지, 월터가 겪은 일들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이곳에 구구절절 나열하진 않겠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직접 보며 음미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영상미와 그에 어울리는 음악 그리고 충실한 각본의 삼박자를 두루 갖춘 영화는 흔치 않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흔치 않은 작품임이 틀림없다.

금월 말에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재개봉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작품성에 비해 저조한 흥행실적을 기록하였었는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연말이다 보니 많은 영화가 개봉하고 각 영화들을 모두 보지 않은 입장에서 해당 영화들을 평가할 순 없겠지만, 단언 하건대 어떠한 영화가 개봉되더라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개중 빛나는 작품이 될 것이다.

[정강훈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