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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공부 나선 형만씨, “저 이제 대학생 됐어요”

기사승인 2021.08.14  04: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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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불.콩 인터뷰] 성공 앞둔 8년간의 혈우병 항체치료

아직 햇볕은 뜨겁다. 그나마 기승부리던 열대야는 한풀 꺾여 잠자리가 조금은 편해졌다. 여름이 지나가는 걸까? 이른 감이 있지만 입추가 지났다는 소식에 선선한 날씨를 기다려본다. 이번에 진행된 번.불.콩(번갯불에 콩볶듯) 인터뷰는 김형만 씨이다. 과거, 코헴회 간사로 근무했던 그를 사무국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지만, 그가 퇴직한 후에는 오랫동안 소식을 접할 수 없었다. 그는 간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부터 오랫동안 혈우병 항체를 치료해 왔다. 최근에는 출혈도 없어지고 항체도 거의 없어졌다는데... 반가운 얼굴, 지금 바로 그를 만나본다.

   
▲ 형만 : 나의 반려견 두부랑 둘이서... 못난이 두 명?(좌측) / 밖에서 마스크 꼭 하셔요~ 손 씻기도~

“안녕하세요. 서울 월계동에 살고 있는 김형만(혈우병 8인자 항체 치료 중, 38세)이라고 합니다.”

유기자 :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형만씨 : 네... 반갑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유기자 : 형만씨에게 좋은 소식이 많이 들리고 있는데요. 하나하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혈우병 진단은 어떻게 받게 되신 건지 알고 싶어요.

형만씨 : 네. 제가 세 살인가 네 살 때인데요. 할머니 손 잡고 길을 가다가 넘어졌어요. 아스팔트에 윗잇몸을 다쳤어요. 작은 병원 갔다가 지혈이 안 돼서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적십자 병원이에요. 그곳에서 처음 진단받았어요. 거기서 재단을 소개해줬고 등록하라고 해서 등록까지 하게 됐어요.

유기자 : 혈우병 항체 치료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형만씨 : 네. 요즘엔 항체가 거의 없어졌어요. 격일로 이뮤네이트 500단위를 다섯 개씩 맞고 있어요. 이 전에 항체 약 맞았을 때와는 달리 삶의 질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제가 항체가 있다 보니까 일반 혈우병 치료제도 안 들었고요. 항체 치료제도 잘 안 듣고 그랬어요. 그 때에 비하면 요즘엔 출혈도 거의 없고 좋아요. 항체였을 땐 생각 못 했던 예방요법도 되는 거 같고요. 하하.

유기자 : 항체 치료가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형만씨 : 아직은 좀 힘든 점이 있죠. 일단은 멀리 여행을 간다거나 서울에서 멀리 벗어날 때, 특히 여름에 약 보관이 매우 까다롭죠. 올해 초쯤에 제주도에서 열흘 살아보기를 하러 갔었는데요. 힘들었어요. 일반 혈우병 치료제는 2~3천 단위가 있지만 제가 치료하고 있는 약품은 단위가 500단위다 보니까 부피가 정말 크죠. 그래도 예전에는 매일 스무 개씩 두 번 맞았는데... 그때보다는 훨씬 낫죠.

   
▲ 형만 : 마음의 고향 우도에서

유기자 : 제주도에는 어떻게 가게 된 거에요?

형만씨 : 올해 1월에 갑자기 안 좋은 일들이 연속으로 터졌어요. 물질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마침 우연히 알게 된 게 ‘제주도 한 달 살아보기’였어요. 여건상 한 달까지는 힘드니까 열흘 정도로 잡아서 떠났어요. 가서 힐링도 하고 많은 생각도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건지에 대한 것들요.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거든요. 많이 늦었지만요. 하하. 코로나로 전국이 예민한 상황이었지만 철저히 방역지침 준수했고, 사람이 많이 없는 한겨울 비수기로 선택해서 갔어요.

유기자 : 부피가 컷을 텐데... 치료제 보관은 힘들지 않았나요?

형만씨 : 다행히 겨울이라서 보관엔 큰 문제가 없었어요. 예비 약까지 50병 들고 갔어요. 10회분이죠. 거기에 주사용품하고 주사용수까지 넣어야 하니까 가방 하나가 꽉 찼죠. 숙소는 4인실 도미토리에서 묵었습니다. 다른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가방에서 치료제만 빼서 냉장고에 보관했어요. 주사는 차 안에서 맞았습니다. 퇴실이 아침 10시까지인데 늦잠자느라 숙소에서 맞을 시간이 안 됐어요. 하하

유기자 : 항체 치료는 언제쯤 끝날 거 같아요?

형만씨 : 단정할 순 없는데, 지금 치료한 지가... 음, 그러니까 2014년부터 했거든요. 햇수로 8년 째네요. 그나마 제가 성인이다보니 어린 아이들보다는 주사 고통에서 견디기 수월하지 않았나 생각돼요. 물론 아이들보다는 비교적 오래 치료해야 하긴 하지만요. 음... 올해 아니면 내년에는 좀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항체 없이 1년 정도 유지되고 있거든요.

   
▲ 형만 : 의료 사각지대가 있고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있는 걸 보니까 마음이 좀 아프더라고요

하기자 : 혈우병 치료 환경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형만씨 : 환우들 보니까 아직도 오래된 옛날 치료제를 맞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개선된 약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옛날 치료제를 맞고 있어서... 그런 점은 좀 개선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리고 제가 느낀 게 하나 있는데요. 혈우병 8, 9인자와 증상이 똑같은데 희귀인자 결핍이어서 치료제가 없는 응고질환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분들은 정말 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 같았어요. 10인자 결핍 같은 분들 말이에요. 그런 게 많이 안타깝더라고요.

제가 알기로는 몇 안 되는 응고인자 중에 10인자 결핍은 딱히 치료제가 없는 걸로 알아요. 8인자, 9인자는 물론이고 7인자와 항체도 약이 있잖아요. 그런데 아직 의료 사각지대가 있고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있는 걸 보니까 마음이 좀 아프더라고요. 그분들도 빨리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유기자 : 아참. 요즘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 있다고 들려오는데 얘기 좀 해주세요.

형만씨 : 아 네. 하하 태일이 형(김태일 편집장) 후배가 될 것 같습니다. 경희대 갑니다. 대학교에 입학했어요. (유기자 : 아 혈우재단에서 하는?) 네 맞습니다. 경희사이버대학교

유기자 : 공부하고 나서 나중에 무엇을 할지 계획이 있으세요?

형만씨 : 네. 일단 저는 사회복지학을 지원했는데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제 생각은 청소년 지도사가 되고 싶어요. 그 이유는 정작 제가 제일 필요할 때, 그러니까 청소년 시기쯤에 도움을 많이 못 받았어요. 그때 제가 항체가 있었는데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았어요. 그리고 제가 혈우병인 것을 부인하면서 살다가 한순간에 몸이 안 좋아졌어요. 그때 학교를 자퇴하게 됐고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기게 됐죠. 그때 누군가가 좀 도와줬으면.... 이런 얘기를 해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혈우병 뿐 아니라 모든 청소년들에게 진심이 담긴 상담도 해주고, 현실적인 조언이나 제도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청소년 지도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걸 목표로 삼고 있어요.

   
▲ 형만 : 결혼이요? 자리 좀 잡고 생각해 볼게요~

유기자 : 올해 나이가 서른...

형만씨 : 여덟이요.

유기자 : 늦은 나이가 될 수 있는데 결혼 생각은 없으세요?

형만씨 : 지금은 없고요. 자리를 좀 잡으면 하고 싶어요.

유기자 : 코로나가 끝나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으세요?

형만씨 : 자유로운 여행이 제일 첫 번째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마스크부터 벗어 던지고 그동안 못 뵌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소소한 것들부터 하고 싶어요. 코로나 때문에 예전에는 당연하게 누려왔던 걸 요즘은 못 누리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 소소한 것들에서부터 행복을 찾아가고 싶어요. 그런 게 소확행인거죠!

유기자 : 주변 사람들과 교류를 많이 하시는 편이세요?

형만씨 : 하하. 음... 저를 아시는 분은 알 텐데... 일단 저는 전화를 잘 안 받았어요. 그래서 딱히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분은 많이 없죠. 근데 더이상 이러다가는 세상에 혼자만 남겨질 것 같다는 생각에 무서워져서 마음가짐을 고쳐먹었어요. 예전에 많은 형님들이 조언해주셨는데 한 번씩 찾아뵙고 ‘이렇게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모습도 보여주고 대화도 나누고 싶습니다. 물론 동생들도 마찬가지고요.

유기자 : 그럼 지금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형만씨 : 있죠. 근데 그분에게 피해가 될지 몰라서 여기서 밝히긴 좀 그렇고요. 하하. 그 형님이랑 코헴의 집에서 함께 지냈는데 정말 제 정신적 지주였어요. 이 자리를 빌려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코로나 끝나면 캠핑 한 번 같이 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이렇게 말하면 그분은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아, 그리고 지금 제 앞에 계신 석찬이 형(하기자)도 그렇고요. 석찬이 형은 제가 20대 초반에, 걷기 힘들 때부터 알고 지내왔으니까 아마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실거에요. 하하.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 형만 :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여행 가는 날이 오기를~ 빠른 코로나 종식을 소망합니다!

하기자 : 혈우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형만씨 : 그만둔 지 좀 됐지만 저는 코헴회에 몸 담았잖아요. 그래서 환우분들에게 조심스럽지만 당부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우리 환우회에 많은 관심을 좀 가져주셨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많이들 무관심하신 것 같아요. 환우회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요즘 무슨 일은 없는지, 그런 사소한 작은 관심이라도요.

하기자 : 혈우병 환자로서 즐겁게 행복하게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걸까요?

형만씨 : 나 자신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스스로 아픈 것을 부정하지 않고 사는 거죠. 저는 어렸을 때 숨기기 바빴거든요. 그게 지금 보면 많이 후회로 남더라고요. 제 모습을 가감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오픈하면서.... 그리고 요즘은 약도 좋아졌으니까 예방요법 철저히 하면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거죠. 그게 행복 아닐까요? 저는 못했었으니까. 자꾸 ‘라떼’가 되네.. 하하.

늦깎이 공부에 나선 형만씨, 이제 새내기 대학생이 되어 그동안 못다했던 공부를 이어가게 됐다. 더구나 오랫동안 이어왔던 혈우병 항체 치료도 이제 성공을 앞두고 있다. 소극적이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당당하게 허리를 펴는 그의 모습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형만~ 파이팅!

[헤모라이프 유성연 하석찬 기자]

유성연 하석찬 기자 tjddus@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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