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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노애락 16년’…락헌씨 “고마워, 사랑한다. 좋아한다”

기사승인 2018.03.24  04: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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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순간 최선을 다하자”

   
▲락헌씨 부부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 캐나다 여행을 꼽았다. 장기간 여행이었고 거의 매일 주사를 맞다시피했다고 하는데~

봄이 오는가 싶더니 때 아닌 꽃샘추위에 지방에는 폭설까지 내렸다. 가벼운 봄 코트를 꺼내 입고 외출했다가 꽃샘바람에 덜~덜~ 떨었고... 두툼한 겨울 잠바를 옷장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어 입는 이 느낌... ‘그럼 그렇지’ 음력으로는 아직은 겨울인거다.

오늘 만나볼 주인공은 어마무시한 기사 조횟수를 기록한 ‘혈남아(혈우병 환우를 남편으로 둔 아내)’ 인터뷰의 주인공 한진숙씨의 남편 성락헌 환우이다. 락헌씨와의 인터뷰는 그가 왼쪽 무릎 수술을 받기위해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날 병원에서 진행됐다. 오후에 시작한 인터뷰로 저녁 식사시간까지 늦어졌던 락헌씨~ 아내의 바통을 이어받아 들려준 그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환우 여러분 안녕하세요~ 성락헌(8인자 중증 50세)이라고 합니다. 현재 충남 천안에서 아내와 같이 살고 있구요. 직업은 병원에서 사무장 직책으로 10년 넘게 일하고 있습니다.”

   
▲부부는 닮는다고~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느낌~ ^^

유기자 : 아내 첫 인상, 그리고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좀 들려주세요.

락헌씨 : 아~ 첫 질문부터 너무 난해하네요(하하하). 제가 가지고 있는 이상형과는 좀 달라서 그런가!? 첫 인상은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그래서 (아내에게) 끌렸던 거 같아요. 질문에 대해서 원하시는 대답이 나와야 할 텐데~ 아름답게 포장까지 하면서 적극적으로 답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네요. 하하하

유기자 : 연애담도 들려주세요.

락헌씨 : 글쎄요~ 저희 부부가 4년 연애한 거까지 포함해서 벌써 16년이 되어가는 거 같은데요... 너무 오래된 기억을 꺼내려고 하니까 막상 떠오르는 생각이 안 나네요.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 딱히 기억에 남는 추억거리는 없는 거 같고, 오히려 결혼하고 나서 여행을 같이 다닐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 그런가 여행에 대한 기억이 좋았던 거 같아요.

유기자 : 아내와 결혼할 때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락헌씨 : 아내를 포함한 모든 분들께 제가 가진 병(혈우병)에 대해서 오픈을 다 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 않았던 거 같아요. (어르신들께서 반대는 하지 않으셨어요?) 장인, 장모님께 말씀을 드렸을 때 처음부터 허락 해주시지는 않으셨어요. 반대를 좀 많이 하신편이셨어요.

유기자 : 맞벌이 부부시니 가사분담도 하실텐데~ 가사일 중 어떤 부분이 힘드시던가요?

락헌씨 : 음... 저는 개인적으로 많이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요리하는 게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 입맛을 맞춘다는 게 쉬운 게 아니더라구요. 예전엔 여자는 음식을 기본적으로 다 잘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남자보다 못하는 사람도 많더라구요. 요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입맛에 맞춰서 음식을 한다는 거~ 그 자체가 재능이라고 봐야할 거 같아요. 청소는 청소기가 하면 다 똑같아 보이는데 요리는 제 각각 다 다르잖아요. 저도 요리를 해봤지만 여자가 하는 가사일 중 요리는 어렵겠구나 싶어요. (유기자 : 아내께서 본인이 한 음식보다 남편이한 음식이 더 맛있다며 만점을 주시던데요?) 하하하 제가요? 요리를 정식으로 더 많이 배웠으면 좋았겠지만, 제가 먹고 싶어서 하는 것 중에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는 그냥 기본에 속하는 거잖아요. 솔직히 “나 요리 잘 해”라고 말은 하지 못하지만 기회가 생기면 할 수는 있을 거 같아요. (황기자 : 아내 요리 솜씨에 점수를 준다면?) 음... 70점? 하하하 솔직히 못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잘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하하하

유기자 : 결혼하신지 오래되셨는데, 자녀 계획은 없으셨어요?

락헌씨 : 더 젊었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계획이 없죠. 지금 와서 자녀 계획을 “잘 했다. 못했다”를 후회하거나 그런 거는 없어요. 후회한들 다시 돌아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대신 조카들을 많이 봐준다거나, 교회에서 유년부 봉사활동을 해서 내가 직접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지켜보면서 간접적인 체험을 하고 있어요. 하하하.

유기자 : 밴쿠버에 한 달간 여행을 다녀 오신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출혈로 고생하지는 않으셨어요?

락헌씨 : 아이고~ 출혈 때문에 무지 고생했죠. 주사도 하루에 한번씩... 장난 아니었어요. 여행이 길다보니까 심리적 부담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몰라서 (약을) 얼마나 많이 챙겨갔던지 하하하. 그래도 좀 남겨왔어요. 그리고 여행지에서 아프지 않았다는 게 너무 고마웠어요.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출혈 외에, 안 보이는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유기자 : 아내와 취미생활로 같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락헌씨 : 일단은 같이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몸이 따라주지를 않다보니까 그게 제일 안타깝죠. 아내가 여행을 좋아하는데 몸만 좋으면 자주 나갔다 오고 싶은데 제일 걸리는 부분이 몸이다 보니까 걱정이 먼저 앞서는 거 같아요. 하다못해 저녁 먹은 후나, 아니면 휴일에 가까운 곳으로 산책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어요. (유기자 : 이번에 수술하고 회복하시면 제일 먼저 해보시면 되겠네요?) 하하하 수술하고 나면 발목이 또 안 좋다보니까... 제 생각에는 발목수술까지 다 하고 나면 한 2년 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하하

   
▲락헌씨는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처음 혈우병 진단을 받았고,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용하는 병원이라고 했다. 

유기자 : 건강이야기를 나눠볼게요~ 혈우병 진단은 어떻게 받았나요?

락헌씨 : 처음 진단은 제가 백일 때쯤, 예쁘다고 손을 잡아줬는데 멍이 든 게 낫지를 않으니까 부모님이 저를 여기(세브란스병원)로 데리고 와서 혈우병 진단을 받았다고 했어요. 처음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인지 너덜너덜해진 진료차트 기록이 다 남아있어요. 그리고 그때는 약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었고 출혈되어도 그게 혈우병 때문에 출혈이 난건지도 몰랐기 때문에 별 다른 대처 방법도 전혀 없었어요. 정확한 연도는 잘 생각이 안나는데 녹십자에서 혈우병 관련 약을 만든다고 해서 아프면 찾아가서 주사를 맞는 게 다였어요. 그리고 치아 출혈 때문에 피가 나면 약이 없으니까 그냥 계속 삼키면서 살았어요. 출혈도 계속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부었다가 가라앉듯이 피도 어느 정도 나오다 그만 멈출 때가 되면 ‘아 멈췄구나’하는 거였죠.

유기자 : 출혈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면?

락헌씨 : 제가 중학교 때 얼음길을 걸어내려가다가 미끄러지면서 왼쪽 무릎이 ‘탁’ 구부러져 버린 적이 있었어요. 그때 출혈이 너무 심하게 나서 학업까지 중단하고 석달동안 집에서만 지낸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때는 약 공급도 없던 때라서, 약 맞을 생각을 못했어요. 한약 중에 지혈해주는 약제가 있다고 해서 몇 첩 지어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걸로 지혈이 되지는 않았겠죠. 출혈이 멈출 때 까지 피가 나오다가 자연적으로 멈춘 거겠죠. (처음 맞아 본 약 생각나세요?) 그때는 ‘클라이오’도 있었고, 혈액제제도 있었어요. 예전엔 종로에 있는 약국에 가서 보험도 안 되는 비싼 약을, 진짜 숨 넘어 가기 직전에 맞고 나면 약 효과로 다시 살아나는 식으로 연명하면서 지냈었죠. 그러다가 87년인가 88년쯤에 세브란스병원에서 어머님들의 모임이 만들어지면서 그분들의 노력에 약이 조금씩 공급이 되기 시작했어요.

유기자 : 이번에 수술 받는 부위와 수술이후 치료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락헌씨 : 이번 수술 부위는 왼쪽 무릎인데요. (지난번에) 오른쪽 무릎을 수술하고 나니까 키 차이가 나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몸이 자연적으로 왼쪽으로 기울어지게 되면서 무릎과 고관절 상태가 안 좋아지는 거에요. 그래서 선생님과 상담해보고 왼쪽 무릎 수술을 결정하게 되었는데, 한 해에(2017년) 연달아 수술하기에는 무리가 가는 거 같아 이번에(2018년 2월) 하기로 결정된 거에요. 그리고 양쪽 발목이 너무 아파서 왼쪽 무릎 수술 받고 회복이 되면 차후 상담을 받아보고 결정해 보려고 해요. 수술 이후 계획은 퇴원하면 작년처럼 코헴의 집으로 안가고 집으로 갈 계획이에요. 병원에서 오래 입원하고 있으면 움직이는게 불편함이 없을 텐데, 일찍 퇴원을 하게 되면 옆에서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움직이는게 한계가 있더라구요. 움직일 수 있는 여력이 안 된 상태에서 코헴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 저도 불편할거 같더라구요. (물리치료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처음 오른쪽 무릎 수술했을 때 천안에서 재단까지 일주일에 두 번 내원했어요.

황기자 : 오른쪽 무릎을 수술했는데, 왼쪽발로 운전을 어떻게 했어요?

락헌씨 : 아~ 제가 처음에 운전 배울 때 양발 사용을 다하면서 배웠어요. 그래서 오른쪽이 힘들면 왼쪽발로 운전하고, 왼쪽발이 힘들면 오른쪽발로 운전하고 하하하... 이번에 왼쪽 무릎수술 받고 난 후 운전이 힘들다 싶으면 CPM기계(물리치료)를 빌려서 집에서 할지, 아니면 혈우재단으로 갈지는 확실히 모르겠어요. 기계를 빌려서 집에서 하면 편한 건 있겠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직접 운동을 해주시면 심적으로 좀 더 안정감이 들더라구요. 지속적으로 선생님께 관리를 받으면 좋긴 하겠지만, 일 하다보면 맘처럼 쉽지가 않더라구요. (유기자 : 집에서 기계로 치료하는 거 외엔 다른 방법은 없었어요?) 제가 선생님께 받던 도수치료를 옆에서 보고 배웠다면서 아내가 많이 도와줬어요. 그리고 수술하고 나면 운동을 열심히 해야 빨리 회복도 된다고 하니까 주변에서도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아프지마세요~ 얼릉~ 회복하시길~

유기자 : 과거에도 수술 받은 적이 많이 있으시죠?

락헌씨 : 관절 수술 말고도 받은 수술이 몇 가지 있어요. 먼저 담낭 수술은 2016년 2월에 갑자기 속이 너무 아파서 응급실을 찾았다가 급하게 수술을 받았어요. 관절은 눈으로 보이니까 상담하고 수술을 받으면 되지만 속에서 발생하는 건 눈으로 확인이 안 되잖아요. 사는 곳이 천안이어서 찾아갔던 병원에서 정확하게 병명을 잡지 못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여기(서울 세브란스 병원)로 찾아와서 병명을 알아봐야겠다고 응급실을 방문했는데 “담낭 때문에 아픈거라”며 “바로 제거해야 한다”고 하셔서 새벽 6시 40분에 도착해서 수술을 1시에서 2시 사이에 받은 거 같아요. 완전 초스피드로 받았던 거 같아요. 그리고 오른쪽 무릎은 다리에 변형도 생기고 걷는데도 너무 무리가 가는 거 같아서 작년에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어요. (무릎에)무리가 간 상태였는데 주변에서 수술을 하라고 권했는데도 안하고 계속 버티다가 하게 됐어요.

유기자 : 나만의 좌우명이 있다면?

락헌씨 : 좌우명이 조금씩 많이 바뀌어버렸는데... 지금은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로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좌우명이 없었어요. 내가 잘났기 때문에 모든 게 내 세상이라고 봤어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좀 유연해 지는 거 같아요. 젊었을 때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많다는 생각으로 ‘그 때 되면 너에게 잘해줄게’라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나이 들면서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고 생각하니까~ 지금 이 시간이 지나버리면 없어져 버리잖아요. 그래서 이 순간에 누굴 만나더라도 최선을 다해야지 나중에 후회하거나 미안한 감정이 안 생길 거 같아요. 물론 100%로 완벽하게 잘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최대한 잘해주고 싶고, 그리고 “고마워,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들도 예전에는 못했었는데 어느 순간 이런 말들을 하게 되더라구요. (유기자 : 아내에게도 이런 말을 자주 해주세요?) 그럼요. 물론 말로도 하지만 심적으로는 더 표현을 하죠. 언젠가 재단 물리치료실의 권 선생님께 “너무 고마워요. 선생님”이라고 했더니 “왜 그러세요? 나이드셨나?”라고 하시는 거에요. 하하하. 지나간 후에 ‘못했다’는 아쉬움을 느끼지 전에, 이 세상에 있었을 때 최선을 다하고 표현을 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유기자 : 계획한 목표 중에 이루었거나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면?

락헌씨 : 음... 저는 계속 공부하는 쪽으로 가고 싶은데, 이런 저런 일 때문에 계획이 자꾸 늦춰지는 게 좀 아쉬워요. 공부는 손을 놓기보다는 쭈~욱~ 가지고 간다는 개념이다 보니까... 재단에서 하고 있는 사이버대학도 신청해서 하고 있고, 개인적으로 외국어도 더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 그런지 그게 취미가 되어버리면서 아직도 이루지 못한 목표가 된거 같네요.

유기자 : 끝으로 우리 환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락헌씨 : 우리 환우들도 다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거라 생각하는데요. 가령 치과 치료를 받고 싶은데 개인적으로 병원을 검색해서 찾아간다거나 아니면 세브란스병원을 찾거나 하는데 그거에 대한 정식 루트가 정해져 있다면 환우들이 찾아가기에도 편할 거 같아요. ‘정형외과’쪽은 체계가 잡혀있어서 괜찮지만, 예전과 달리 우리 환우들도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혈우병만이 가지고 있는 질환 외에 일반질환도 같이 종합적으로 케어를 할 수 있게끔 추진해서 시스템을 구축한다거나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도 좀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하하하 그리고 혈우병 관련 쪽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은 환자들이 먼저 요구하기 전에 항상 환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면서... 그것이 안 되더라도 환자들에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환자들의 생각들을 많이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도 최선을 다해 주신~ 락헌씨~ 감사해요.

“유기자님 고마워요~” “정식아 고마워~” 대화를 나누던 중 락헌씨가 자주 표현한 말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 소중하지만, 그것을 진심으로 느끼며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뒤돌아보면, 화려할 것만 같았던 20~30대의 시간은 그저 먹고 살기에 바빴던 것 외엔 특별하게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는 곳도 없었다. 그냥 내 몸 하나 건사하기에 바빴던 시간들이었다.

락헌씨는 지금의 젊은 환우들을 보면서 ‘관리’라는 ‘혜택’을 누리고 있는 ‘부러운 세대들’이라했다. 지금의 환우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의료환경이고,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제도들이 많다고 생각되겠지만 락헌씨 세대와 비교하면, 지금의 혈우사회는 많은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렇게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은 정체되지 않는 강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고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락헌씨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게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100% 만족스러운 표현은 못한다 해도 후회없는 삶을 위해 ‘서로에게 아낌없는 감사의 표현’을 남겨보자.

자~ 락헌씨~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헤모라이프 유성연 기자 황정식 기자/ 사진=황정식 기자]

P.S. 락헌씨는 수술 후 경과도 좋고 회복상태도 빠르다고 알려주셨습니다. 행복하시길 바라요~

 

유성연 기자 tjddus@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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