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우사회인이 쓰는 '응고되지 않은' 영화평, 스물네 번째
뮤지컬 <영웅>을 광화문광장에 위치해 있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보고 돌아온다.
<영웅>은 일제 치하 독립운동가 안중근을 중심으로 나라의 해방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친 이들의 고민과 투쟁을 그린 작품이다. 이미 수많은 책과 영화에서 다루어진 독립운동가들의 삶이지만, 이 작품 또한 여러 기사와 예능프로를 통해 소개된 바 있지만 완성된 이야기 속에서 만나는 그의 철학과 애민의식은 극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우리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극중 안중근 의사가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 장면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인데, 이를 보면서 우리 혈우인의 어머니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선천적인 이 혈우병 때문에 내가 흔들리고 좌절할 때마다 나를 잡아준 건 다름아닌 어머니였다고 단언한다. 세상에서 가장 인자하고 자상한 존재이지만 못난 아들의 갈등과 자기연민 앞에서 누구보다도 단호하고 강하셨던 어머니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나 뿐만 아니라면, 우리 어머니들이 가진 X염색체 위의 그 '결손 또는 역위'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대쪽같은 '특이점' 중의 하나라는 증거일 것이다.
▲ 수의를 입은 안중근 의사에게 나타난 어머니의 환영 |
뮤지컬 <영웅>은 연령, 직업을 불문하고 대한독립이라는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수많은 민초들이 각자 위치에서 역할을 하며 서로를 돕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우리 혈우사회도 올해 통합이라는 첫 단추를 끼워나갔다. 이제는 지역사회라는 떨어진 공간에서도 우리 혈우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한목소리로 혈우병을 극복하고 발전해 나아가는 건강한 미래가 밝아오길 희망해본다.
한가지 또 든 생각. 극에서 등장하는 태극기는 대한독립을 바라며 손에 꼭 쥔 희망과도 같은 상징이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자긍과도 같은 태극기가 현 시국에서는 특정 정치적 입장을 주장하는 집회의 도구로 전략해버리려 하고 있어 안타깝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 조 마리아 여사가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편지 전문 |
[헤모라이프 채규탁 객원기자]
채규탁 객원기자 hemo@hemophil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