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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디언 드림 이뤄가고 있어요" 혈우환우 현규씨

기사승인 2021.12.14  17: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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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권 취득 후 WFH 협회활동을 꿈꾸다

'아메리칸 드림'이라 하여, 멀고 먼 자유의 땅에서 맨손으로 자신의 꿈을 일구는 성공스토리는 어쩐지 옛스럽다. 다만 '태어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어디든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지구상에서 자신의 행복에 가까워지는 노력은 엣부터 지금까지 자연스레 박수와 부러움의 대상임에 분명하다. 특히 일상적인 치료와 관리가 병행되어야 하는 혈우병 환자의 경우 나라 밖으로 용기 있게 날개를 펴는 것에 대해 더욱 존중을 보내 마땅하다. 지난해 캐나다로 나가 영주권을 취득하고 제반 준비를 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와있는 노현규씨를 만나 한국과 캐나다를 넘나드는 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주말이라 한적한 카페에서 노현규 회원과 인터뷰 중입니다.

김기자 : 본인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현규씨 : 안녕하세요? 33살 노현규(8인자 중증)라고 합니다. 저는 부모님이랑 같이 평택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김기자 : 혈우병은 언제 처음 알게 된 거예요? 

현규씨 : 90년대에 진단을 받아서. 91년도에 재단 생겼잖아요. 신설동에 있을 때부터 자주 약 타러 다녔습니다. 혼자 병을 케어하게 된 건 성인 되고 나서고 자가 주사도 조금 늦게 성인 되고 나서부터 했습니다.

김기자 : 혈우병 가지고 있으면 제일 불편한 건 뭘까요? 

현규씨 :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못 느꼈는데 외국 왔다 갔다 할 때, 다른 짐도 많은데 약까지 한보따리 갖고다녀야 하는 게 조금 불편하더라고요. 이번에 갈 때도 약을 모아서 갔는데 생각보다 양이 꽤 많이 차지하더라고요.

김기자 : 외국 생활 얘기 나왔으니까 말인데 캐나다는 어떤 계기로 나가게 된 거예요? 

현규씨 : 견문을 넓히기 위해 나갔죠. 직장 문제도 있고 해서요. 있는 동안 편의점에서 일해 영주권 취득도 했습니다. 그곳 편의점들은 한국이랑 달리 거의 주유소도 같이 운영해요.

김기자 : 혼자서 집을 얻어서 생활하는 거예요? 

현규씨 : 네. 같이 일하는 형이 한 명 있었어요. 같이 영주권 취득하려고 그 형이랑 같이 지내면서 외롭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서로 비슷한 처지고 하니까 서로 의지하며 같이 살았어요. 

김기자 : 지냈던 지역 얘기 좀 해주세요.

현규씨 : 서스캐처원 지역에서도 더 안으로 들어가서 주변에 작은 동네인데요. 인구 2~3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고 거기에 있는 주유소 편의점에서 일을 했죠. 주변에 식료품점 하나, 식당 하나 있고 미용실 하나 있는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로 보면 읍·리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역 주민 중에도 단골로 많이 오죠. 또 동양인이 한 명 더 왔다고... 서스캐처원이나 매니토바나 이쪽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어요. 

   
 

김기자 : 서스캐처원은 굉장히 추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지냈나요?

현규씨 : 보통 날씨가 건조해서 영하 20도, 25도까지는 괜찮아요. 바람이 쌩쌩 불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기온, 공기 자체가 차가운 거라고 해야 하나. 체감온도는 한 영하 20도면 한국에서는 영하 10도 정도의 느낌. 진짜 추울 때는 한 두 번 정도는 영하 3, 40도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블리자드라고 해서 눈 폭풍도 한 번씩 와요. 그럴 때는 도시가 다 마비되고 집에만 있고 그랬어요.

김기자 : 눈 때문에 에피소드는 없었어요? 차가 말썽을 부린다던지. 

현규씨 : 차가 있었는데 제 차가 좀 안 좋아서 그런지 배터리가 자꾸 방전이 돼서. 그래서 이제 하우스 안에 주차장에다 넣어놓으면 괜찮은데 밖에다가 차를 세워놓으면 배터리 방전되지 말라고 전기코드 꽂아놔야 돼요, 항상. 그래도 배터리가 방전이 되더라고요. 하하

김기자 : 일 외에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어요? 

현규씨 : 저는 그냥 취미생활 하면서 레고 만드는 거 좋아서 그거 조금 만들면서 지내고 같이 지내는 형이랑 그냥 술도 한 잔 하고. 형이랑 저랑 쉬는 날 겹치면 큰 도시 가서 장 봐다가 음식도 만들어 먹고 하죠.

   
▲ 캐나다에서 약받으러 가기 전에 검사받은 병원 내부

김기자 : 캐나다에서 약은 어떻게 처방 받아서 사용했나요?

현규씨 : 큰처 도시 사스카툰에 있는 병원은 차로 3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어요. 전화나 메일로 병원 방문 잡아서 방문을 했죠. 처음 갔을 때 피검사 하고 진단 받았죠. 이후에는 매번 사스카툰으로 가기 힘드니까 전화를 하면 가까운 병원으로 보내줄 테니까 네가 가지고 가라고 그렇게 해주더라고요.

김기자 : 가까운 병원으로 가서는 별다른 검사나 이런 거 없이 그냥 약을 받아올 수 있는 거예요? 

현규씨 : 네. 신분 확인하고 약 때문에 왔다고 하면 특정 랩실 뭐 그런데 가서 약을 주더라고요. 그리고 약도 저는 석 달에 한 번씩 받았거든요. 근데 6개월에 한 번씩 받아도 되고 그거는 자기 마음이고 부족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그런 적은 좀 많아요.

김기자 : 유지요법 할 만큼의 약 3개월치를 주는 거예요? 

현규씨 : 제 몸무게 기준으로 1500IU씩 4주 12회분, 3개월치를 받는 거예요. 근데 이게 부족할 수 있으니까 더 필요하다고 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해요. 합당한 기준선에서 충분히 약 받을 수 있어요. 한국에 있을 때부터 애드베이트 맞았는데. 캐나다 애드베이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진타로 바꿨어요.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주마다 처방 해주는 약이 다른 것 같아요. 

   
▲ 캐나다 몬트리올 어학원 건물에 있는 WFH 사무국

김기자 : 서스캐처원 지역에는 환우협회 같은 게 있든가요? 

현규씨 : 네. 코헴회 같은 게 있는데 캐나다 헤모필리아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면 주마다 다 있어요. 그래서 몇월 며칠날 정기회의 있으니까 오라는 등 행사 있으니까 참석들 하라는 공지가 나와요. 근데 코로나로 모임이 다 취소돼서 환우들은 한 번도 못 봤어요. 네. 그게 좀 아쉽더라고요.

김기자 : 의료보험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현규씨 : 보험은 일단 관광으로 가는 게 아닌 이상 학생비자가 됐든 취업비자가 됐든 받으면 헬스 카드를 무조건 발급받아야 돼요. 헬스 카드를 받으면 약을 처방 받을 수 있는 병원에 내가 혈우병환자라고 얘기하면 병원 측에서 날짜를 잡아서 검사를 하자 그래서 검사를 받고 환우인 게 입증이 되면 약을 처방 받을 수 있어요.

김기자 : 우리나라는 의료보험료를 내잖아요, 그 헬스카드를 유지하는 데는 비용이 드나요? 

현규씨 : 없어요. 그냥 제가 일하면서 내는 세금으로 다 됩니다. 어차피 젊은 사람들은 내는 세금이 많기 때문에 정부에서 받는 지원금이라든지 그런 게 세금으로 다 커버가 됩니다. 아, 캐나다 가면 가장 먼저 해야 할 다섯가지가 있거든요. 헬스 카드, 씬(Social Insurance Number)넘버라는 게 있어요. 한국으로 치면 주민등록번호 같은 거거든요. 그리고 핸드폰 개통, 은행 계좌 아, 운전면허. 왜냐하면 한국처럼 주민등록증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운전면허로 ID카드를 대신해야 돼요. 

   
▲ 나이아가라 폭포

김기자 : 세금은 얼마나 내요? 

현규씨 : 월급에서 30% 정도 떼더라고요. 대신에 나중에 노후연금이나 이런 걸로 나오고 결혼하면 무조건 애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팍팍 드는 게 소득에 따라서 차등이긴 한데 태어나서부터 고등학교, 대학 졸업할 때까지 지원금이 계속 나와요.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 이상 한 명 낳으면 50만 원 나오고 2명 낳으면 100만 원 이런 식으로 계속 나와요. 의료랑 교육은 무상이기 때문에. 

김기자 : 혹시 미국처럼 총기 소지도 자유로운가요?

현규씨 : 총기는 허가제예요. 보통 사냥하러 가는 분들은 교육받고 허가 받으면 구매할 수 있는데 미국처럼 사고 싶은 때 살 수 있는 건 아니어서. 제가 있던 곳은 사냥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냥하는 것도 곰을 잡고 싶다, 여우를 잡고 싶다고 하면 마릿수가 제한돼요. 그리고 허가증이 있어야지만 사냥을 할 수 있어요. 사냥을 했는데 만약에 경찰이 불시 검문을 했을 때 태그가 붙어있지 않으면 벌금이 나와요. 대신 원주민은 제한이 없더라고요. 

김기자 : 영어를 잘하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현규씨 : 보통 미드 보면서 하는 거 괜찮은 것 같아요, 좋은 것 같아요. 듣고 말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분이라면 좋아요. 근데 저는 가기 전에 스피킹 학원 다녔던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거기서도 효과를 많이 봤던 것 같아요.

김기자 : 혈우환우분중에 캐나다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조언이나 도움을 줄 수 있나요? 

현규씨 : 만약에 진짜 이민을 고민하시면 그쪽에 대해서도 제가 아는 만큼은 얘기해드릴 수 있고 저 같은 경우는 코로나 때문에 어떻게 보면 좀 더 특수적인 케이스가 됐죠. 왜냐면 3월에 코로나가 터지고 한 6개월 동안 영주권 심사 진행을 안 했어요, 아예. 이 상태로 가면 진짜 한 1, 2년 동안 진행을 못 할 수도 있겠다고 해서 같이 일하던 형은 한국에 돌아갈 생각도 했었거든요. 근데 또 백신이 나와서 올 초부터 속도가 붙어서 원래는 올해 말쯤에야 영주권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어떻게 보면 피해는 피해대로 입고 혜택은 혜택대로 받은 것 같아요. 

김기자 : 세계혈우연맹과는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그쪽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현규씨 : 예전에 몬트리올 어학연수 갔을 때 거기 어학원 건물 위층에 WFH가 있더라고요. 혹시나 해서 가봤더니 헤모필리아라고 적혀있더라고요. 처음엔 몰랐는데 그곳이 혈우연맹 본부더라구요. 코헴회 통해 워싱턴데이에도 참석해보고 캐나다에서 자리잡을 계획이나 WFH에서 일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영주권도 받고 해서 그분들하고는 계속 연락도 해보고 한번 또 자세하게 메일도 보내보려고요. 정규직이 아니더라도 가서 인턴이라든지 계약직으로 일하면 어떻게든 바뀔 수 있는 거니까요. 

   
▲ 토론토 시청

김기자 : 토론토로 옮겼다고 하던데 어떤 일 하고 있어요? 

현규씨 : 원래 몬트리올에서 알던 친구나 형들이 다 토론토로 이사를 갔어요. 한국 사람들이 살기에는 토론토가 훨씬 편하거든요. 친구네 집에 얹혀살다가 차 있어서 용돈 벌이 배달하면서 배달 보수가 생각보다 세더라고요. 한 건 하는데 그래도 한 10불 남짓 저한테 남아요. 세금 빼면 한 6시간 정도 일하고 100불 남짓 벌더라고요. 그래도 기름값 빼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김기자 :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현규씨 : 지금은 WFH에서 일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는데 여기만 바라볼 수 없어서 다른 플랜들도 생각을 해봐야죠. 다시 캐나다 가면 그곳 환우 친구들이랑 한국 환우 친구들이랑 교류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도 해보고 싶어요.

[헤모라이프 김태일, 하석찬 기자]

김태일 하석찬 기자 newlove8@hanmail.net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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