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우병사회 갈등의 '봉합'에 불안함을 느끼다
▲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티켓 구매하기. 재밌는 시도다. |
영화관에서 보는 공포영화는 좀 다른 느낌이다. 모든 장르의 영화들이 큰 화면과 생생한 음향으로 재미를 더하지만, 공포영화는 그것 자체가 관람객과의 사이에서 갖는 긴장감, 심리적인 밀당에 있어서 스크린을 통해 너무나도 우월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관객은 상대적으로 작은 의자에 앉아 두시간동안 일종의 '짓눌림'을 경험하는 것이고 그걸 즐기기 위해 공포영화가 걸린 극장을 찾는 것일 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어스'(US)는 꽤 흥미로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압도적인 설정과 과격한 출혈장면, 혼재된 메타포들에 짓눌려 그 앞에 오와 열을 맞춰 앉아 있는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야"라는 침입자의 대사가 너무 직설화법으로 들려 아쉬움이 남지만 결국 영화는 '우리'라는 울타리가 갖는 배타성과 그로 인한 폭력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거다.
▲ 우리, 가족이라는 단위로 서로를 끌어안지만 영화 결말로 가면 그 우리라는 가면의 이중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인간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그리고 한정된 자원 내에서 생존의 문제에 부닥치게 되면 오래지 않아 그 다른 존재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게다가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이질적인 누군가가 아닌 우리와 똑같은 '우리'일 때 더 극적인 배타성이 발휘됨을 보여준다.
내가 아니면 답이 될 수 없고 우리와 비슷한 누군가가 우리 자리를 누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한다. "욕 하면 안된다"고 도덕적 생활을 강조하던 주인공 가족이 "내가 더 많이 죽였다"며 우스꽝스럽게 자리다툼을 하는 장면이나 죽은 침입자를 몇 번이고 내리쳐 확인사살하는 엄마 애들레이드의 모습에서 인간의 처절한 배타심을 본다. 한국영화 '악마를 보았다'에 그려진 최민식의 광기보다도 이병헌의 마지막 모습에 더 가까운 그런 폭력성 말이다.
▲ 같은 모습, 다른 입장.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정의는 다른 모습으로 표현된다. |
혈우병 환자단체 한국코헴회의 최근 사태를 보면서 '우리' 안의 배타과 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너무도 공통점이 짙은, 그래서 한국에 2000여 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 한 줌 환자사회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울타리 밖의 상대에게 가위를 겨누는 현실이 이 영화와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봉합'이 되었다고는 하나, 과연 무엇이 개선되었으며 이 사달에 책임있게 반성하는 이는 또 누가 있단 말인가. '가위' 하나씩 다들 숨기고 있는 꼴 아닌가.
▲ 더 파괴적인 무기들 많지만, 등장하는 가위는 두개의 날이 서로를 의지해(이용해) 무언가를 절단내는 도구로서 의미가 남다르다. |
이 영화에서 강렬하게 인상을 남기는 소재 하나는 '인간 띠 잇기'일 것이다. 원래는 80년대 미국에서 기아문제 해결을 위해 벌어진 퍼포먼스였으나 침입자들의 손을 통해서는 '우리를 알려야 한다'는 절박한 외침으로 표현된다. 허나 누군가의 피로 물든, 특히 우리를 부정하는 우리만의 손으로 이어진 '알려야 한다'는 띠 잇기가 침입자들의 무표정과 흡사 짐승의 울음 비슷한 음성을 통해 나오는 공허한 외침 혹은 또다른 거대한 장벽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잔상이 아닐 것 같다.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
김태일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