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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자

기사승인 2019.03.02  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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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폐증 환우, 열다섯 살 나이에 커피점을 열게 된 과정

   
▲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혈우병은 피가 잘 멈추지 않는 질병이다. 쉽게 생각하면 단순히 피가 조금 늦게 지혈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단순하지 않다는 게 문제이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혈우병 치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거엔 산전 진단만으로 중절을 고민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심각한 질환이었겠는가. 지금은 치료환경이 크게 달라졌고 충분한 관리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병의 관리와 환자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심리치료가 오히려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치료가 아니라 현실에서의 삶이다. 취업, 결혼, 취미생활 등 말이다. 환우인 당신, 어쩌면 태어나지도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발견해 삶의 질을 높여야겠다.

오늘 이야기할 한권의 책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한번 조명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    #

‘자폐 증세를 가진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인터넷에서 참 어려운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아주 오랜 시간 시험관 아기까지 시도하면서 아이를 얻기를 바랐던 난임 부부가 자연임신으로 하늘의 축복처럼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생아들이 의례적으로 하는 기형아 검사에서 아이는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증후군이 의심된다는 판정을 받았고, 좀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 했던 양수검사에서 결국 염색체 이상이 확실시된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바라던 아이, 잔인한 말이겠지만 그 아이를 가진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차라리 팔다리가 성치 않다고 말했다면 오히려 쉽게 판단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을 텐데, 자신들이 부모로서 영원히 아이가 죽을 때까지 책임을 질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포기조차 하지 못하게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행동이나 말하고 살아가는 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정상인처럼 태어나고, 약간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 않을 뿐이지 자신이 이런 이상 염색체로 인한 증후군을 가진지도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다.

‘낳아봐야 안다.’

   
▲ 열다섯 살 커피 로스터 | 할 수 없는 일이 많더라도 학교에 다니지 못하더라도 나답게 살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있다. 『열다섯 살 커피 로스터』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한 소년이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열다섯 살의 나이에 직접 로스팅한 원두커피 판매점을 열게 된 과정을 담고있다. | 이와노 히비키 저자/ 나린글 출판

‘낳아봐야 안다.’라니, 아이의 장애를 이제 막 들은 부모에게 그런 잔인한 진단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과 상생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병의 유무와 상관없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바랐을 그 부부의 너무나 솔직한 고민 앞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도 행복할 것이니 용기를 내세요.‘ 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의 고민과 걱정은 자식이 살아갈 평생의 시간을 향한 너무나 현실적인 고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히비키를 만나고, 나는 그런 나의 생각이 어쩌면 실례였을 수 있다는 또 다른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은연중에 그 글을 읽는 나 역시 장애나 증세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부모나 보호자의 지원과 보호가 없다면 스스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일말이나마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간 신체적, 정신적 아픔을 가지고 있음에도 너무나 당당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들어왔으면서, 그런 나조차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것이, 나는 새삼 너무 부끄러웠다. 열 다섯, 어린 히비키는 나에게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아이였다.

책이 따뜻하다는 느낌, 이 책은 그 어떤 장애를 가진 부모님과 아이의 이야기보다 더 솔직하고, 가깝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가깝다니 뭐가 가까운가 하면 히비키와 히비키의 어머니, 아버지의 바로 옆에서 히비키를 지켜봐 온 것 같은 가까움이 느껴졌다고 말하면 될까?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1인칭 시점에서 쓰여진 이 교환일기 같은 이야기는 히비키가 태어날 때부터 자라 열 다섯 살이 되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내내 그의 가족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는지를 일기처럼 그저 적어내고 있다.

“히비키가 일종의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충격보다는 뭔가 한시름 놓은 기분이었습니다.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저의 육아 방법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아이와의 대화 방법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등등 모든 원인이 저에게 있는 것처럼 느껴져 자책감에 시달려 왔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히비키의 증후군을 어떻게 이겨내오며 지금의 커피 로스터가 될 수 있었는지를 쓰고 있지 않다. 처음에는 히비키가 어렸던 시절, 히비키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릴 적, 그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저 다른 집 아기에 비해 잠이 없어서 많이 놀아주고 손이 많이 가는 아기였다고 그의 어머니는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소변도 쉽게 가렸고, 젖을 떼는 데에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말을 배우면서 또래에 비해 조금 느리고, 더듬거린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원래 아이들이 무언가 배우는 속도는 제각각이지 않은가? 내가 히비키의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우리 아이가 어떤 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의 품을 떠나 처음 학교에 들어가게 된 이후, 유난히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학업을 이어나가기를 힘들어했던 히비키를 보며 조금씩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다음, 히비키와 가족들은 비로소 히비키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알고,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물론, 그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장애가 있는 아이, 부모로서 우리가 먼저 죽고 나면 히비키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에 대한 고민은 다른 여느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님들처럼 비슷했다. 하지만 호들갑스럽게, 너무나 슬프게, 이 일을 불행 혹은 특별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가족으로서, 히비키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가족들이 히비키를 돕고, 받아들이는 그 긴 과정은 하나의 여정처럼 잔잔하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슬프다거나 왜 이런 불행이 이 가족에 온 것인가? 라는 고민 같은 것은 들지 않는다. 그저 히비키와 그의 가족들이 가진 따뜻함과 현명함에 미소를 지으며 책을 읽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열 다섯 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다.”

히비키가 가지고 있는 아스퍼거 증후군은 신체나 정신 발달에 이상은 없다고 알려져 있다. 단지 뇌 문제로 인해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거나,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는 특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히비키는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거나, 수업 시간에 집중해 학업으 이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모두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뿐이었는데, 무언가 문제아라거나 고쳐야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사람들이 애초에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유난히 잘 하는 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없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염색체에 이상이 없다고 하여 어엿한 한 사람의 몫을 하고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단지 히비키와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편견일 뿐인 것이다.

히비키처럼 자신이 가진 후각과 미각의 재능을 깨닫고 개발해서 어엿하게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히비키는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장애를 가진 아이에 대한 일말의 편견과 동정심을 사라지게 만들만큼 너무나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그걸 못 하니까 하비키 형이잖아. 형밖에 못 하는 게 있으니까 그걸로 됐어” 히비키의 동생이 한 말 안에 나도 몰랐던 그 진리가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히비키는 그런 좋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능력으로 커피를 로스팅해 지금도 판매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20살이 지나고, 어른이 되어, 히비키는 앞으로도 커피 로스터로서 살아가게 될까? 아니면 또 다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해서 그것에 매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병이라는 것에 갇혀서 생각했던 것은 히비키를 바라보는 다른 어른들이었을 뿐, 히비키 자신은 늘 어떤 것에도 갇히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 그런 히비키를 보며, 나는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고, 고쳐야 할 편견이 많다는 것을 깨달으며, 나는 이 따뜻한 히비키의 가족에게 응원을 보낸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박천욱 기자 china69@naver.com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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