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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여자 혈우병 환우와 만나보고 싶어요"

기사승인 2019.01.19  23: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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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레이인터뷰] 여성환우 김민지 양

한국의 등록된 혈우병 환우는 2400여 명이다. 그 환우의 가족들과 의료진, 환우협회와 보건당국, 복지단체와 제약산업 관계자까지 포괄하여 '혈우 사회'라 부르는 건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고, 내밀한 부분까지 터놓고 이야기 할 공간도 많은 것은 아니다. 본 '릴레이인터뷰'를 통해 한 번 서로의 맨얼굴을 바라보고 이야깃거리를 털어보자. '너와 나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시즌3 현재 릴레이 순서) 김은기 위원장 – 조수호, 조진원 형제 – 황정식님 - 조진기님 - 이명림님 - 이귀병님 - 전수지 간호사 - 이승민님 - 이남일 간사 - 지현승님 - 조달호님 - 김종필님 - 김수섭 아버님 - 김선경 복지사 - 김진규님 - 김연수님 - 장영진님 - 이강안님 - 김대봉님 - 이상훈님 - 정재민님 - 김근우님 - 박정서 회장 - 알렌 웨일 총재 - 김민지 님

혈우병이 ‘남자에게만 일어나는 병’이라는 잘못된 상식은 조금씩 깨져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혈우사회 내에서도 ‘그럼 주변에 여성 환자 누가 있나’를 물었을 때 쉽게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등록률도 적고 활동도 많지 않아서 일 것이다. 폰빌레브란트 인자 결핍환우와 보인자를 중심으로 활발한 참여와 연구성과, 독자영역을 이루고 있는 외국의 사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여성환우의 현실은 한참 수면 아래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알렌 웨일 세계혈우연맹 총재의 릴레이 추천을 받아, 전라도 지역에 살고 있는 한 여성환우를 찾아가 만났다.

   
▲ 인터뷰를 진행한 전라도 한 소도시의 레스토랑

Q.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스물여섯 살 김민지(가명)라고 합니다. 8인자 혈우병 가지고 있어요.

Q. 혈우병은 보통 남성에게 일어난다고 알려져있는데...

저도 여자 환자는 극히 드문 경우라고 들었어요. 유전자 돌연변이 형태는 보인자와 같은데 변이가 일어난 X염색체가 정상 X보다 더 높게 발현돼서 혈우병 증상이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고 해요. 가족 중에는 환자가 없고 저만 돌연변이로 가지게 됐어요.

Q. 인터뷰에 응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영화 ‘통증’ 인터뷰 때에도 다른 여자환우분들이 안하신다고 하셔서 제작진이 저한테까지 찾아오게 되셨던 건데, 이번 인터뷰도 다른 분들이 좀 어려워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이걸 내가 해야 될까’ 많이 망설였는데 실명이 안 나가는 조건으로라도 하면 다른 여자환우들한테도 도움 될 것 같아서 응하게 됐어요.

사실 ‘통증’ 이전에도 아홉 살 때인가 특이한 혈우병 케이스라고 방송에 나간 적이 있었어요. 그 이후에 지역에서 저를 위한 자선콘서트 같은 게 열리고 신문에도 나고 했었어요. 주변에 너무 알려지다 보니까 저라는 사람보다 ‘아픈 애’로만 인식돼서 이후에 부모님이 "너 생각하면 안 하는 게 나았을 뻔 했다"고 하시더라구요. 한동안 인터넷에도 제 이름 치면 혈우병 관련돼 뜨는 게 많아서 요청해서 다 내리고 했어요. 그래서 치료받을 때 외에는 안 드러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아, ‘통증’ 영화에 소재를 제공해주셨다고 들었어요.

ㅎㅎ 제 이야기는 아니고, 여성 혈우병 환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보니까 실제 경험을 듣기 위해서 찾아온 거였어요. 고등학생 때였는데 재단을 통해서 전화연락을 받았고 처음에 제작진이 저희 동네로 찾아와서 쌍화차 나오는 다방에서(웃음) 만나 이야기를 했어요. 이후에 서울에 초대받아서 정려원 배우님도 만나 밥 먹으면서 얘기나누고 같이 영화보고 놀러다니고 그랬어요. 연예인이랑 같이 다닌다는 게 너무 떨리고 사람들도 알아보고... 싸인도 받았어요. 그리고 촬영장에도 한 번 초대받아 갔었는데 마침 베드씬 찍는 날이어서 직접 보지는 못했어요. 하하~ 시사회 티켓도 주셔서 가서 봤는데 인터뷰했던 말들이 대사로 나오니까 신기했어요. 아, 추억이니까 엑스트라로 한 번 나와보지 않겠냐고도 하셨었는데 제가 거절했어요.

   
▲ 아직은 장벽이 완전히 낮지 않아 가명과 함께 뒷모습 사진만으로 김민지 양을 소개해드릴 수 밖에 없음을 양해 바란다.

Q. 어릴 땐 건강 어땠어요?

제가 워낙 활발한 성격이어서 어릴때부터 뛰어놀고 하는 거 좋아하니까 무릎 발목이 많이 아팠어요. 발목보호대를 많이 차야 했는데, 지금은 안그렇지만 옛날 보호대들은 완전 초록색이어서 티 나니까 저는 ‘안 한다’, 엄마는 ‘하고 나가라’ 싸우기도 많이 했죠. 일곱 살 때 쯤 무릎 수술을 한 번 했고 발목은 여러 번 했어요. 수술을 많이 하니까 근육이 빠져서 발 크기랑 다리 굵기도 좌우가 좀 달라지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치마를 거의 안 입어요. 교복도 학생부 허락받아서 바지로 입었었구요.

Q. 요즘은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요?

1년 전에 발목 수술을 한 뒤로 이상하게 더 안 좋아져서 다리도 좀 절고 한쪽으로만 힘이 주어져서 그런지 허리도 아픈 상태에요. 사실 계속 수술 받아오던 선생님을 대신해서 다른 교수님이 수술을 한 건데 ‘다리도 의사를 알아보나’ 싶어요. 그러다 보니까 일도 그만두고 마음도 힘들고 우울감도 좀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주변에서 힘을 많이 주고 계서서 예방요법 하고 물리치료에 전념하고 있어요. 가족 중에 저만 살이 안찌는 편이어서 보약도 지어먹고 날 많이 안 추우면 조깅도 해요. 집에선 스쿼트 같은 운동 틈틈이 하고, 집안 지저분한 걸 못 보는 성격이라 계속 꼼지락거리면서 움직이는 편이죠. 예전엔 약 타러 전주로 다녔었는데, 몇 년 전부터 광주 재단의원 이용하고 있어요. 다리 때문에 물리치료도 받아야 하고 하니까 편하게 이용하기 위해서요.

Q. 불편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생리할 때에는 어려움 없나요?

사실 다른 환우들 만나거나 하면 제일 궁금해 하시는 게 그 부분이에요. 또 초면에 물어보시면 어떨 땐 약 타러 가는 게 싫어지기도 하고 마음이 불편한 게 사실이지만 다 얘기는 해드리고 해요. 저도 생리에 대해 엄마랑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사실 큰 어려움은 없어요. 첫 생리를 일찍 한 편인데 기간이 좀 긴 때는 있지만 과다출혈이나 그런 거 없이 자연스럽게 지나가더라구요.

아픈 게 저는 괜찮은데, 나중에 아이한테 유전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좀 그래요. 그래서 결혼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는데, 지금은 남자친구가 있고 아직 많이 남았지만 결혼도 준비하고 있어요. 남자친구가 그런 것에 대해서 너무 잘 이해해주고, ‘나도 혈우병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해서 공식적인 세미나나 혈우 행사에 같이 다니고 사람들과 인사도 했어요.(일동 박수) 만난 지 6년 됐고 한 살 오빠에요. 양가 부모님께도 인사 드렸구요.

Q. 결혼을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만났는데요, 연애 초기에 너무 사람이 좋은 거에요. 어린 나이였지만 생각도 깊고. 근데 저는 “아픈 것 때문에 연애나 결혼 할 자신이 없다” 헤어지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남자친구 하는 말이 “그냥 하나의 감기라고 생각한다. 감기도 아직 치료제가 없지 않냐”해서 여태까지 만나고 있는 것 같아요. 만나다 보니까 저희 부모님한테도 너무 잘하고 그래서 결혼까지 결심할 수 있었어요. (기자 : 와~ 오늘 같이 나오지 그랬어요. 너무 멋진 분이시네요)

   
▲ 올해 또는 내년 정도에 현재 남자친구와 결혼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김민지 양

Q. 가족계획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편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늘이 내려주시면 낳고 아니면 둘이 살기로. 근데 솔직히 저는 낳고 싶진 않아요. 엄마가 된다는 게... 부모님도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을 거잖아요. 나도 아픈데 우리 애까지 아프면 저는 진짜 죽을 만큼 힘들겠다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나 하나로 충분해’ 그런 생각? 내가 누군가를 보살피고 그런 힘이 있을까? 하는 것 때문에요. 이런 걸 남자친구가 또 잘 이해해주고 있어서 가족계획에 대해서는 좀 편하게 마음먹고 있어요.

Q.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여행다니고 먹고 하는데 아끼지 않아요. 어려서부터 부모님 교육방침이 저희를 부족함 없이는 키우셔도 용돈을 많이 주시는 스타일은 아니셨거든요. 그러다보니 제 일을 해서 제 돈을 버니까 너무 쓰고싶은 거에요.(웃음) 한 몇 년 동안 국내에 안다녀 본 곳이 없을 만큼 여행다니고 남자친구랑 맛집 찾아 사먹고~ 부모님도 나중엔 얘기하시더라구요, 그만 좀 돌아다니라고요. 여자친구들은 돈 벌면 옷 사고 화장품 사는데 투자 많이 하는데 저는 지금 이 한 끼를 잘 먹는 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런 성격때문에 그런가 주변에 남사친들도 많은 것 같아요. 하하.

그리고 커피 좋아해요. 했던 일도 바리스타였구요. 저는 너무 자리에 앉아서 하는 사무직보다 적당히 서서 하고 움직임이 있는 바리스타 일이 몸에도 맞고 좋아했는데 수술 이후에 어렵게 돼서 쉬고 있죠.

Q. 살아오면서 혈우병 때문에 힘들었던 부분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달고 살아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그러다보면 제 자신이 움츠러드는 걸 느껴서 그런 것 같아요.

Q. 재밌게 본 영화나 책을 추천해주세요.

요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읽고 있는데 좋아요, 저는 자존감을 올려주고 위로가 되는 책을 좋아해서 보이면 다 사고 싶어요. 사람한테 그런 말을 듣는 것보다 책을 통해 읽으면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그러다 너무 잔잔하면 가끔씩 스릴러 장르 책도 읽고요.

Q. 지금까지 가장 후회되는 일은?

학교다닐 때 공부건 운동이건 좀 더 할 걸...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른이 되면 시간이 많을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아니더라구요. 그 시기를 놓치고 나니까 어려워지는 게 있더라구요. 수술하고 회복하는 것도 항상 한 달이면 멀쩡하게 걷고 했는데 이번에 이렇게 재활에 1년 이상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아, 어릴 때 운동하고 몸을 좀 더 잘 관리 했어야 했다는 게 후회되는 거죠.

Q. 반대로 가장 잘했다 생각되는 일은?

항상 사고만 치던 막내딸이라 잘 한 게 별로... 그래도 꼽자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거? 여기 시골에는 학원도 없어서 멀리 전주까지 다니면서 공부하고 어렵게 땄거든요. 부모님도 세대차이가 좀 있으셔서 그런지 믹스커피만 드시고 "바리스타 그거 꼭 해야되냐, 쉬운 길을 찾아라" 하셨는데 고집으로 했어요. 실습하면서는 커피 위에 하트(라떼아트)가 그렇게 안 그려지더라구요. 그것 때문에 그만둘까도 생각했는데 결국 성공해서 그걸로 일도 하게 되고 하니까 너무 뿌듯하고 매력적이었어요. 나중엔 제 가게도 갖고 싶어요.

   
▲ 인터뷰 질문과 함께 진지한 조언도 나누고 있는 하석찬 기자

Q. 슈퍼히어로가 된다면 가장 갖고 싶은 능력은?

음... 안 죽는 능력? 하하 너무 뜬금없죠. 저도 그렇지만 부모님이 안 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왜 부모한테 제일 못 한 자식이 부모 돌아가시면 제일 많이 운다고 하잖아요. 제가 그럴 것 같아서... 어떻게 초능력으로라도 부모님이 안 돌아가시게 했으면 좋겠어요.

Q. 최종 꿈이 무엇인가요?

지금은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까... 결혼? 누군가의 아내가 되는 거에요.ㅎㅎ (기자 : 지금 남자친구가 이상형에 가까워요?) 아니요, 정 반대였어요. 저는 원래 제 키가 168cm라 키 큰 사람이 이상형이었거든요. 근데 남자친구는 키가 저랑 비슷해요. 그리 크지 않은 편인데 이상형이 바뀌더라구요. 저는 어릴때부터 감성적이고 좀 우울하고 노래도 발라드 좋아하고 그랬는데 남자친구 만나면서 밝고 활발하게 변한 거죠. 웃기고 장난치고 그런 거 둘 다 좋아해요.

Q. 새해 계획은요?

좀 더 자기관리에 신경을 쓸 계획이에요. 일을 그만두면서 고민을 진짜 많이 했거든요. 2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고, 홀로 선 지 얼마 안됐는데 몸 때문에 일을 그만두게 되고, 부모님한테 손 벌리기는 싫고... 근데 남자친구가 “아무 걱정 말고 재활에 집중해라. 일주일에 광주의원 세 네 번씩 가더라도 직장 그런 거 생각 말고 운동해라” 용기를 줘서 마음을 잡을 수 있었어요. 단기간에 좋아질 수는 없겠지만 상반기까지 꾸준히 재활해서 회복하고 싶어요. 나아지면 등산도 하고 싶어요. 겨울에는 추워서 관절도 잘 안 풀리고 별로 안 좋아하는데 몸 좀 회복하고 날도 풀리면 내장산 올라가고 싶어요.

Q. 여성 혈우환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저도 여성 환자분들하고는 연락하거나 뵌 적이 없어요. 1년에 한 번이라도 무슨 계기를 통해서든, 재단이나 코헴회를 통해서든, 세미나 말고 여성분들을 위한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마음을 열기 쉽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만나서 밥도 먹고 얼굴이라도 한 번 뵈었으면 좋겠어요. 서울이라도 저는 올라가서 만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여자들끼리는 통하는 게 또 있을 거거든요. ‘통증’ 인터뷰 때에도 다른 여자 환자분들 만나고 싶다고 얘기했었는데 지금도 변함 없네요. 그런 자리를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Q. 다음 릴레이주자를 추천 부탁드려요.

제가 환우분들을 많이 몰라서... 전북에 박상진 복지사님 해보시면 어떨까요? 저희 부모님과도 자주 연락하시고 이쪽에 내려오실 때에는 항상 연락주셔서 같이 차 마시면서 얘기도 많이 나눴죠. 진짜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다음에 또 도움될 일 있으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 유쾌한 답변에 함께 웃을 일이 많은 인터뷰였다. 우측 유성연기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오랫동안 혈우사회에 몸담았던 기자들도 여성환우의 현실과 그들의 마음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선 릴레이주자였던 세계혈우연맹 총재가 한국의 여성혈우환우에게 바통을 넘긴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으면서 앞으로 여성환우, 보인자 가족들의 활동영역을 조화롭게 다져나가야 할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용기있게 기자들 앞서 서 준 김민지 님께 애정 어린 박수와 함께 제스처 하나를 보낸다. ‘엄지척!’

[헤모라이프 김태일 유성연 하석찬 기자]

 

 

김태일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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