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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00명뿐인 ‘늘 배고픈 병’

기사승인 2018.12.27  23: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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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메디컬 다큐 7요일 ‘로하드 증후군’ 편을 보고

   
▲ 헤모필리아라이프 박천욱 대표

이 세상을 ‘한 폭의 그림으로 그려보라’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과 알고 있는 것 안에서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러한 것 때문에 사람들 간에 갈등이 생기고 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 혈우사회에서도 코헴회의 시선과 혈우재단의 시선 그리고 의사들의 시선과 제약사의 시선, 정부관계자들의 시선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은 사실 쉬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성숙한 사회’라는 것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특히나 환자인 당사자들이 다른 이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헤아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혈우병 사회는 각 구성원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이러한 생각으로 우리 혈우병 사회 구성원들에게 혈우병이외의 희귀질환을 소개하는 것이고 이런 것의 근본적인 취지는 ‘혈우사회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라는 확신에 의해서 이다.

이번에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결국 이해하게 된 ‘늘 배고픈 병’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한다. <EBS1>메디컬 다큐-7요일(금 저녁8시40분~밤9시30분)에서 방영된 '희귀병 로하드증후군을 앓고 있는 서현이네 이야기'이다. 

#           #           #

미디어와 가까워야 하는 직업상의 이유도 있지만, 워낙 TV를 즐겨보는 성향이라서 심심한 마음에 TV 채널을 돌리다가 멈칫하고 오랜 시간을 그 자리에서 보게 되었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며칠 전, 우연히 그렇게 채널을 돌리던 중 나의 시선을 집중하게 만든 한 아이를 만났다.

‘늘 배고픈 아이, 서현이’. 서현이는 원인 모르는 희귀병으로 인해 늘 배가 고프고, 또 그렇기에 먹을 것을 먹을 수밖에 없는데 그걸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병을 앓고 있었다.

‘늘 배고픈 병. 배가 고프다는 것이 병이 될 수 있을까?’

이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수많은 희귀 질환을 알고 지내면서도 나는 ‘늘 아프다’는 것과 ‘먹는 것을 못 한다’거나, 먹었는데 몸에서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하거나 하는 ‘거식증’ 등의 신체적, 정신적인 문제라고만 생각해왔기에 ‘늘 배가 고픈데 그것이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질환’이라는 것에 놀라움과 생소함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궁금증은 한 5살배기 아이의 하루를 바라보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서현이가 앓고 있는 병의 명칭은 ‘로하드 증후군’이다. 원인을 모르는 내분비계 질환의 하나로 뇌하수체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서 체중 및 식욕이 증가하고, 연령이나 다른 신체적 발달 수준에 비해 급격하게 증가한 체중과 신체 내 지방 함량이 기도를 막고 산소와 이산화탄소 교환에 문제를 생기게 하는 ‘폐포호흡 저하’ 증상이 나타나면서 호흡을 어렵게 한다. 그 밖에도 수면 무호흡, 열과 설사, 서맥, 사시, 사춘기 지연, 발한, 악성종양, 변비 등의 수많은 부가적인 증상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메디컬 다큐-7요일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최선을 다하는 환자와 그 가족, 의료진들을 기록한 <EBS1>다큐멘터리이다. 지난 11일과 18일 로하드 증후군(항상 배고픈 아이 서현이)' 편이 방영됐다. 

이와 동시에 신체의 체온 조절이 잘 되지 않아 늘 손발이 차갑고, 땀이 많이 나며 고열 또는 저체온증의 증상이 함께 관찰되어 이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이 병은 대부분이 20살이 되기 전에 호흡 부족으로 사망하게 만드는, 치료법조차 없는 잔인한 병이었다.

전 세계에서도 희귀한 질환에 속해 학계에 보고된 환자는 국내에 서현이를 포함해 2명, 전 세계에 불과 100명도 채 안 된다. 이 증후군으로 인해 서현이는 2살 이후로 체중이 계속 증가하여 혼자서는 걸어 다니는 것조차 힘에 겨운 수준이 되었고,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병원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외출할 때마다 특수 제작된 유모차에 몸을 실은 체가 아니면 움직이는 것이 힘들 정도로 병이 진행된 상황이다.

현대의학으로는 완쾌가 불가능하며, 살이 찌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이기에 산소요법과 더불어 규칙적인 운동과 식이조절로 증상을 완화 시키는 방법밖에는 없다. 다섯 살에 몸무게 47kg, 서현이는 외모를 위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다이어트를 해야만 하는 운명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로하드 증후군’ 의 증상과 진행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 거의 모두가, 내가 처음 서현이를 보면서 했던 생각처럼 ‘먹는 것을 조금만 주고, 조절을 해주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정도가 되지 않는 것 아닌가?’하고 이를 중증의 질환처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살이 빠져 몸 안에 필수 영양소조차 남지 않고, 뼈에 영양분이 갈 수 없어 부러지고 골다공증 같은 부가적인 질환을 가져와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못 먹는 병’에 비해 ‘잘 먹어서 생기는 병’이라면 ‘잘 안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아주 단순한 관점에서 이 로하드 증후군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 편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큐멘터리가 시작하면서 보여주는 서현이의 집 아침 풍경에서 서현이는 계속 먹을 것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엄마에게 냉장고를 가리키면서 다른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여느 집에나 있는 ‘식탐 있는 아이’ 의 모습 정도로 보일 뿐이었고, 서현이의 어머니 또한 자연스럽게 서현이의 아침을 계속 챙겨주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에서 서현이의 주치의인 의사 선생님은 그것이 일반적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어 설명해준다. 대부분의 로하드 증후군은 욕구 억제 자체가 불가능한 유아기(1~11세) 사이에 첫 징후가 나타난다. 젓 살이 있는 것이 당연한 유아기, 어느 누가 내 사랑하는 아이가 먹는 것을 좋아하고, 잘 먹는 것을 문제처럼 여기고, 이것이 어떤 병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서현이는 계속 먹을 것을 찾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보이는 감정들은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일 뿐이라는 것, 부모가 아닌 남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나조차도 그 모든 것이 안타깝다고 느꼈는데 가족들은 얼마나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런 것은 세상 어느 부모라 할지라도 너무나 가혹하고 힘든 운명처럼 느껴질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어야 하는 새벽, 내 아이가 자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도가 막히고, 호흡이 거의 없어지면서 그대로 산소 부족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 그것을 알면서도 아이에게 먹을 것을 챙겨줘야 하는 서현이 가족들의 하루하루는 감히 내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는 공포일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서현이와, 서현이의 가족이 어떻게 이 병을 받아들이고, 또 극복해 서현이가 조금이라도 더 긴 시간을 가족들의 사랑 속에 함께하는지에 대해 보여준다. 그 과정은 불과 5살 정도의 아이와 그런 아이를 받아들인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과 보듬는 힘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나 역시 서현이가 가진 이 병이 정말, 가만히 기다리면서 서현이의 20살을 기다리는 것 밖에는 없는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로하드 증후군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제이크 벨라’라는 서현이와 같은 로하드 증후군을 가진 아이의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제이크 벨라, 로하드 증후군을 가진 소년, 하지만 제이크는 자신의 병을 이겨내기 위해 철인 3종 경기에 자진해 나가서 수영, 사이클, 달리기 등 성인들도 해내기 힘든 코스를 완주해 내는 연습을 통해 스스로의 운명을 돌파해내고 있었다. 계속 배고픔을 느끼고, 그것으로 인해 살이 찌는 것이라면 그것을 더 많이 운동하는 것으로 이겨내려는 제이크의 나이는 이제 불과 8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겨내겠다고 결심해 행동하기까지, 8살이라는 제이크의 나이는 많은 것일까, 적은 것일까? 나는 제이크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고, 다시 서현이의 사진을 가만히 보면서,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조차 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응석받이인 것이 당연한 아이들이 할 만한 생각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몸이 아픈 것, 그리고 잘 먹지 못하며 지내는 것, 이런 삶이란 매우 힘들 것이다. 그것이 나조차 어쩔 수 없고 그 누구도 치유해줄 수 없는 병에 의한 것이라면 그 절망감은 건강한 사람이 감히 공감한다고 말하기도 힘든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라는 것에 더욱 가슴이 아프다.

다른 아이들처럼 지내지 못하는 것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자신의 인생에서 앞으로 펼쳐질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한 체 병을 이겨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더욱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곤 한다.

어른인 나조차도 내 인생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잘 이겨내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자신할 수 없었을 일, 하지만 이제 겨우 말이 트일 나이를 지난 아이들이 그 일을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불과 100여 명의 아이들에게만 걸리고, 또 그 중에 대부분이 20살을 넘기지 못하는 로하드 증후군.... 

제이크, 그리고 서현이가 조금은 불편할지라도 20살을 넘기며 어른으로서의 인생을 맞이하길 바라며....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박천욱 대표 china69@naver.com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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