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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편집기술로 혈우병 완치…그러나 우리나라선 안 돼?

기사승인 2018.11.20  05: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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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과학트렌드 따라가지 못하는 현행 ‘생명윤리법’개정 필요

 

 

 
▲우리나라 유전자가위 기술의 권위자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한국코헴회 행사에 참석해 혈우병에 적용되는 유전자 가위기술을 설명했다. 한국코헴회 청장년워크샵 강의 中 2015.10.24 

몇 해 전부터 유전자 편집기술은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기술은 쉽게 말하면 인간의 유전자를 분석해서 특정한 병을 일으키는 잘못된 유전자를 교정하는 것이다. 이론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곁으로 다가왔다.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는 GMO와는 차원적으로 다른 이야기이다. 즉 GMO기술은 각기 다른 유전자를 교합시켜 양질의 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유전자 크리스퍼는 잘못된 유전자만 교정하는 것이므로 애초 다른 유전자와 섞일 일이 없다는 것이다(GMO에 대한 평가를 놓고 논쟁하자는 것은 아니다).

혈우병은 특정 유전자의 변이로 질환이 발생한다는 명확한 정보가 있기 때문에, 유전자 크리스퍼 가위는 혈우병 완치치료에 매우 적합한 기술이다. 마치 크리스퍼 가위는 혈우병을 치료하기 위해 태어난 과학기술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술로 우리나라에서는 왜 혈우병을 치료할 수 없을까?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잠시 후 말미에 이야기해보겠다.

#          #         #

유전자 분석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헐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는 지난 2013년 5월 유방 제거수술을 받았다. 왜? 멀쩡한 유방을 제거했을까? 안젤리나는 유방 제거수술을 받기 두 달쯤 전에 난소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되어 난소 절제 수술을 받았는데, 그 후 유전자 분석을 해보니 모계로부터 유방암과 난소암 발병율이 매우 높은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 외할머니, 이모 등 외가에서만 3명이 이 같은 암으로 60세 전에 사망했고 그녀 역시도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따라 안젤리나는 유방 제거수술을 받아 유방암에 걸릴 확률을 5%미만으로 낮췄다. 여성에게 유방암이나 난소암은 가계에서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높다. 이에 ‘피해갈수 없는 DNA’라 불리기도 한다.

   
▲ 젤리나 졸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방문 유엔난민기구(UNHCR)의 특사인 안젤리나 졸리가 3일 서울시 중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서울사무소를 찾아 한국의 난민정책과 전 세계 난민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2018.11.4

안젤리나는 수술을 받은 직후 2013년 5월 14일 뉴욕타임즈와의 기자회견에서 “이제 살아가야 할 이유가 명확해졌다.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있고 싶다. 손주들도 만나보고 싶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아이들이 나중에 ‘우리 어머니는 난소암 때문에 사망했다’라는 말을 하게끔 만들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유방절제 수술을 받아 암에 걸릴 확률을 줄였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이런 값비싼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안젤리나는 유방 재건수술로 지금도 왕성한 배우 활동과 유니세프 홍보대사, 유엔난민기구특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당시 유전자 분석비용은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안젤리나가 유전자 검사를 받기 약 10여 년 전, 지난 2000년 인간의 모든 유전자를 처음으로 해독하는 ‘휴먼지놈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 인간에게는 약 32억쌍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는데, 당시 유전자 분석을 위해 들어간 비용이 무려 1조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얼마나 지불해야 나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할 수 있을까?

이달 초 캘리포니아에 있는 유전자 분석 장비를 제조회사 ‘일루미나’사는 또 다른 지놈 분석 기업인 ‘퍼시픽 바이오사이언스’를 12억 달러(약 1조 3500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일루미나’사는 세계최대의 규모이면서도 지금도 지속적으로 관련업체를 인수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는 단 1,000달러(한화 110만원)에 유전자를 분석해 내는 장비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더 나아가, 캘리포니아 소재의 ‘23andme’라는 기업은 단 200달러로 유전자 검사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메사추세스에 있는 ‘베리타스 지네틱스(Veritas Genetics)’는 199~299달러로 난소암과 유방암에 걸릴 수 있는 유전자 인 ‘BRCA’를 검사해서 핸드폰으로 정보를 제공해준다.

이제는 안젤리나처럼 유방 자체를 절제할 필요 없이 잘못된 BRCA 유전자를 가위로 잘라내면 간단히 해결되는 기술로 발전했다. 그것이 유전자 크리스퍼 가위 기술이다.

   
▲ 세계최대의 유전자 분석 장비 제조회사 ‘일루미나’사 메인 홈페이지

유전자 분석과 유전자 치료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 혈우사회에서 유전자가위 이야기는 꽤 오래전부터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러나 사실상 어느 부분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로드맵 자체가 없다. 지금이라도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들고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크리스퍼 가위는 혈우병처럼 희귀 난치성 유전질환을 치료하는데 바로 적용된다. 헤모라이프에서 종종 언급되고 있는 회사 ‘스파크 세라퓨틱스’는 필라델피라에 있는 어린이병원에서 유전자 교정 맞춤형 치료를 진행한바 있다. 유전자 분석결과 희귀병으로 실명하게 될 두 명의 아이에게 유전질환을 발생시키는 문제의 유전자를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이같은 사례는 지난해 6월 28일 인터콘티넨탈서울코엑스호텔에서 열린 ‘2017 글로벌 바이오 컨퍼런스(GBC)’행사에서 화이자제약 희귀질환 사업부문 글로벌 총괄사장인 마이클 고틀러가 ‘치료에서 완치로 : 헬스케어 이노베이션의 최종 목표를 향한 끝없는 노력’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언급했다.

고틀러 사장은 이날 강연에서 “유전자 치료연구는 향후 단계적으로 영역을 확장할 것이 예상되며, 현재 미국에서는 유전적 눈 질환에 대해 완치사례가 축적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혈우병에 대해 “2020년도에 유전자치료로 극복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강조했다. 화이자는 ‘스파크 세라퓨틱스’사와 함께 유전자 치료에 있어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고 국내에 혈우병 치료제 진타 솔로퓨즈와 베네픽스를 공급하고 있다.

지금까지 병을 치료하는 약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알약과 같은 화합물 약품이며 또 하나는 혈우병 환우들이 정기적으로 투여하는 단백질과 같은 성분이다. 그러나 이제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치료하는 신약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잘못된 유전자를 정상으로 바꾸는 유전자 치료이다.

   
▲식약처 주최 2017 GBC에서 '치료에서 완치로 : 헬스케어 이노베이션의 최종 목표를 향한 끝없는 노력' 발표를 하고 있는 화이자 마이클 고틀러 사장 ⓒ헤모라이프 자료사진

인간배아 생명윤리 문제의 접근

‘인간 유전자를 편집하고 조작한다’는 것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건강하게 장수하고자 하는 인류의 생명과학의 발전을 법으로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미 지난 2015년 중국은 인간 배아에 대한 연구와 실험이 시작되었고 이어 2016년 영국에서도 실험이 허가됐다. 중국에서는 현재 1,500달러를 지불하면 자신의 아기에 대한 유전자 해독이 가능하다. 나의 아기가 앞으로 어떤 병에 걸릴지 예측할 수 있는 ‘마이 베이비 지놈’이라는 상품이 이미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생명과학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유는 현행 ‘생명윤리법’때문이다. 이 법 시행령(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 12조에 따르면 배아연구의 대상으로 포함된 희귀난치병은 ▲희귀병(다발경화증, 헌팅턴병, 유전성 운동실조,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뇌성마비, 척수손상, 선천성면역결핍증, 무형성빈혈, 백혈병, 골연골 형성이상, 부신백질이영양증, 이염성백질이영양증, 크라베병)과 ▲난치병(심근경색증, 간경화, 파킨슨병, 뇌졸중, 알츠하이머병, 시신경 손상, 당뇨병. 후천성면역결핍증) 등 21개 질환만 포함되어 있고 정작 유전자 치료에 매우 적합한 혈우병이 빠져있다. 이 부분부터 먼저 개정이 되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도 ‘희귀질환법’이 재정되면서 유전자검사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런 오류(?)를 방관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인간 배아 연구에 대한 논란은 이코노미스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간 편집’을 통해 지능을 높이거나 시력을 높이거나 절대음감을 갖게 하는 ‘인간개량’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희귀난치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고통과 장애 등을 극복하는데 적용하자는 것이다. 바로 혈우병처럼 유전질환을 갖고 있는 우리들에게 매우 적합한 완치 기술인 것이다.

   
 

혈우사회의 현주소, 조금 냉정하게 바라보자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간다’는 과학기술이 어쩌면 우리 혈우사회에서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 같다. 당장 눈앞에 처해진 상황만 놓고 안절부절 하거나 당장 내년 예산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주소가 아닌가. 누군가는 비전을 제시하고 장기적인 플랜을 수립해야 함에도 ‘그 사업을 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데 당장 필요한 것인가?’라는 눈앞에 현실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법을 제정하고 개정하기 위해 입법기관과의 관계를 가져 온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이제 그 싹을 틔울 때가 됐다. 이제는 중장기적인 사업플랜을 제시하고 로드맵을 만들어 실질적인 걸음을 내 딛어야 할 때이다.

혈우병을 완치시키는 과학기술은 먼 곳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 잣대를 객관적으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말하자면, 먼저 새로운 의료기술이 어디에서 발표됐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예를 들자면 연구소 또는 학교 등에서 논문으로 발표되면서 ‘전문저널’에 실리게 된다. ‘전문저널’에 발표가 됐다는 것은 ‘가능성’에 대한 희망으로 볼 수 있다. 그 후 ‘네이쳐’와 같은 과학지(Nature science cell)에 실린다면 조금 더 진전된 환경에 도달했다고 평가해 볼 수 있다. 특정 연구자 뿐 아니라 폭넓게 관련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층 더 신뢰를 높인 기술이라고 생각할수 있기 때문이다.

   
▲ 2014년 네이쳐 표지에 소개된 크리스퍼 CRISPR/Cas9 기술(좌)에 이어 2015년 더 이코노미스트 표지에 소개됐다.

그 후에는 ‘타임지’ ‘이코노미스트’ 등 일반대중 잡지에 실리게 되는데 이 정도가 됐다는 것은 이제는 그 기술이 우리의 실생활에 적용되는 현실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듯 앞에서 언급한 혈우병의 유전자 치료는 이미 우리의 실생활에 들어섰다. 취사선택은 소비자의 몫인 만큼, 환우들의 관심이 집중되면 현실이 되는 것이고 등을 돌리면 늦어지게 되는 ‘상품’ 수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환우들의 관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매우 중요한 갈림길에 서게 된다. 환우의 근본적인 니즈를 찾아내고 관심을 기울이면 혈우병 완치는 현실이 될수 있다. 반면 눈 앞에 떨어진 금은보화도 구별할 수 없다면 모든 것은 무용지물이 된다.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정답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흘러가는 이야기로 툭 던진 단서를 가지고서도 해답을 찾는 이들이 있다. 적어도 우리는 현실을 파악할 줄 아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

 

김승근 기자 hemo@hemophilia.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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