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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 끌어안기" 해병대를 통해

기사승인 2018.10.19  11: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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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배두한 청년환우의 이야기

   
▲ 필승! 가운데가 저입니다.

안녕하세요. 부산에 사는 혈우환우 배두한이라고 합니다. 현재 서른살이고 중증 혈우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혈우인으로서 흔치 않은 경험이라 제가 군대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드리고자 합니다.

해병대를 갔던 얘기를 하기 전에 학창시절 일부를 짧게 설명하겠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적 체육시간에 저는 항상 벤치에 앉아있었습니다. 혈우환우였기 때문이죠. 체육시간에 체육을 못하는 것 보다 수치스러운 것은 친구들이 “넌 왜 앉아있어?”라고 물을 때였습니다. 그 때는 저도 혈우병이란 게 뭔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설명하기 어려웠기에 친구들에게 “피가 안 멈추는 병이야”라고 설명했습니다. 혼자만의 착각이었겠지만 모든 친구들이 뛰지도 못하는 바보로 보는 느낌이었어요.

제 기억 속에 그때는 선생님들이 ‘두한이랑은 장난도 치면 안 된다’고 얘기를 하셨어요. 물론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두한이는 혈우병이 있어서 모든 활동에 조심성이 요구된다’고 설명하셨을 텐데 표현이 제게는 그렇게 아프게 들렸던 것 같습니다.ㅎㅎ 그래서 3학년 때부터는 담임 선생님께 비밀로 해달라고 얘기를 했지만 결국엔 소문이 날 수 밖에 없었죠. 학교생활을 하면서 출혈이 없을 수는 없으니까요 ㅎㅎ

그 이후론 엄마한테 절대 학교에 말도 하지 말라하고 학교에서는 아파도 아프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항상 학교 마치고 집에 가서 주사를 맞았죠. 그렇게 사춘기를 지나면서 청소년기에 남들에게 약하게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엄청 강했고 20대 초반까지는 그런 마음이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 제가 작성했던 해병대 지원서. 혈우병 사실은 안 밝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이 되니 친구들이 하나 둘 씩 군대를 갔어요. 그리고 2009년4월쯤(21살)되니 절반 이상은 군 입대를 했죠. 그 당시에 제가 혈우병이라는 사실을 몇몇 친구들 외에는 알지 못했죠. 이 당시 저는 “군 면제를 받을 것이냐”, “군대를 갈 것이냐” 갈등에 휩싸였어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시선 때문에 내가 가서 죽더라도 군대를 회피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친구들 몇 명과 해병대 체력시험과 면접을 보게 되었어요.

그 당시 다른 친구들은 떨어지고 저 혼자 체력시험에 붙었어요. 그래서 저는 1096기로 6월22일 입대날을 받았고 다른친구 3명은 1097기 7월7일에 입대날을 받았죠. 입대하기 몇 주 전부터 매일 같이 친구들이랑 군주(군입대를 앞둔 술파티)를 하며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떠벌렸습니다. 그리고 입대날이 되었고 그 당시 여자친구와 친한 친구 한 명과 포항에 교육훈련단에 갔어요. 가면서 부모님께는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부모님이 알면 보내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죠.ㅎㅎ

   
▲ 첫번째 입대를 앞두고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들어가고 가입소기간(일주일)이 끝나고 귀가조치대상자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머지 인원은 모두 삭발을 하고 군번을 받았는데 삭발하고 군번받기 직전에 저를 부르더니 짐을 챙겨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없이 따라가니 2~300미터 멀리 입구에 저희 부모님이 계셨어요. 저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어요. ‘이대로 난 패배자로 돌아가서 어떻게 친구들 얼굴을 보나, 이렇게 사느니 죽어야 겠다’ 마음먹고 며칠 동안 어떻게 죽을지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더니 아버지가 부르셔서 꼭 군대를 가고 싶냐고 물으셨고 군대를 가고 싶어도 이제는 갈 수가 없는데 방법이 있으면 가거라! 안 말리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방법이 있다고 얘기를 했어요. 어차피 병무청에서 혈우병이라는 것을 증명해오라고 했기 때문에 주사를 맞고 병원에서 검사하는 방법이었죠.

1차 계획은 돈만들고 실패로 돌아갔어요. 동아대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주사를 평소용량의 두배로 맞았는데도 20프로정도 밖에 안 나와서였죠. 다음은 4배가량을 맞고 고신대병원을 갔죠. 고신대병원에서는 결과가 45프로정도 나왔어요. 혈우병이기는 하나 군생활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소견이었고 그 검사지를 들고 병무청에 가니 혈우병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하여 8월18일 1100기로 재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긴 두 달이었어요. 아무도 연락하지 않고 집에서만 두 달을 지내려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어요. 하지만 다시 재입대하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는 태어나서 몇 안 되는 기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두 번째 입대 때는 부모님이 태워주셨어요. 당당히 설레는 마음으로 입대를 했습니다. 꼭 만기전역을 하고 나오겠다는 다짐으로 들어갔어요. 모두들 울면서 들어갔지만 전 신난 마음으로 뒤도 안돌아보고 들어갔어요. 앞서 일주일 갔다와서 알고 있었지만 일주일동안 집에 가고 싶다고 우는 아이들이 태반이었죠. 정말 한심해 보였어요. 그럴 거면 왜 해병대 왔나 모지리 놈들이라고 생각했죠.

그러고 3주차 정도 되었을 때 처음으로 얼차려를 받아 총기보관함에 종아리가 부딪혔는데 직감적으로 ‘출혈이다!’ 느꼈어요. 아니나 다를까 붓기 시작하는데 3일째 되니 걸음을 못 걸을 정도였어요. 의무실 지원자 나오라고 할 때 손을 들고 나가도 겉으로 티가 안나니 멘소레담만 바르고 의무실은 안 된다고 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났어요. 한심해 보이던 동기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었죠. ㅋㅋㅋㅋㅋㅋㅋ

   
▲ 두번째 입대 후 1100기 훈련병 시절 동기들과 함께

그렇게 정말 절룩거리면서 다닌다고 교관한테 걷어차이고 억지로 억지로 훈련을 받다 일주일만에 의무실을 가게 되었어요. 그땐 이미 낫기 시작하면서 멍이 올라오는 상태였죠. 무릎부터 발목까지 멍이 문신처럼 퍼져있었어요.

그때 의무실에 가서 군의관을 만나자마자 “제가 어릴 적 혈우병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라고 얘기를 했으나 수액만 맞고 다시 훈련을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의무실을 들락날락하며 겨우 유급만 면해서 수료를 했죠.

수료해도 교육훈련단에서 며칠간 대기를 하게 되는데 그때 군의관에게 혈우병인지 검사를 받아 볼 수 없냐고 하니 해군포항병원으로 외진을 받게 해주었고 병원에서 귀에 피를 내는 어떤 검사(aPTT검사 - 편집자 주)를 하니 지혈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혈우병이 의심된다고 하여 그때 바로 구급차타고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되고 입원을 하게 되었죠. 이때가 아마 입대하고 두 달쯤 지났을 때예요.

국군수도병원은 천국이었어요. 해병은 없고 간호장교가 저를 담당하고 있고 병실에도 모두 육군들이 있었어요. 여긴 기수도 없고 전부 아저씨(소속이 다르므로 선후임이 없음)라서 너무 편했어요. 나라사랑카드만 있으면 전화도 마음껏 할 수 있었어요. 담배는 피울 수 없었지만 PX가서 먹을 것도 마음껏 사먹을 수 있었죠. 그렇게 병원에서 진급도 하고 7개월만에 전역하게 되었어요. 물론 국군수도병원에서 5개월이나 있었죠.ㅎㅎ 그 5개월도 주사 없이 아주 힘든 5개월 이었어요 훈련받을 때에 비하면 천국이었지만ㅎㅎ

   
▲ 친구들 제대 후 오랫만에 군복을 꺼내입고... 저는 일찍 전역해서 머리가 기네요.ㅎㅎ

이렇게 전역을 하고 나온 뒤, 혈우환우로 태어났지만 주사를 맞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감사하게 되었어요. 혈우병에 대한 트라우마도 사라지게 되었고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주위사람들에게도 혈우병이라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알리게 되었구요. 저는 뒤늦게 이런 것을 깨달았지만 어린환우들은 이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건강한 정서를 가지고 스스로 혈우병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학부모와 교사들이 지혜롭게 교육해주면 좋겠네요.

   
▲ 지금은 초등학교 바둑 방과후 수업과 바둑대회 심판직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짧았지만 소중한 군대생활을 지금도 가끔 떠올립니다.

 

[혈우환우 배두한]

 

혈우환우 배두한 hemo@hemophil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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