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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교류로 한국 혈우병사회 입지 넓힌다"

기사승인 2018.09.30  15: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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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레이인터뷰] 코헴회 박정서 회장

한국의 등록된 혈우병 환우는 2400여 명이다. 그 환우의 가족들과 의료진, 환우협회와 보건당국, 복지단체와 제약산업 관계자까지 포괄하여 '혈우 사회'라 부르는 건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고, 내밀한 부분까지 터놓고 이야기 할 공간도 많은 것은 아니다. 본 '릴레이인터뷰'를 통해 한 번 서로의 맨얼굴을 바라보고 이야깃거리를 털어보자. '너와 나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시즌3 현재 릴레이 순서) 김은기 위원장 – 조수호, 조진원 형제 – 황정식님 - 조진기님 - 이명림님 - 이귀병님 - 전수지 간호사 - 이승민님 - 이남일 간사 - 지현승님 - 조달호님 - 김종필님 - 김수섭 아버님 - 김선경 복지사 - 김진규님 - 김연수님 - 장영진님 - 이강안님 - 김대봉님 - 이상훈님 - 정재민님 - 김근우님 - 박정서 회장

한의사 김근우 원장의 추천을 받아 릴레이를 잇는 이번 주인공은 아마도 헤모라이프에 가장 많이 이름이 언급되었을 혈우병 환우단체 한국코헴회의 박정서 회장이다. 가장 많이 다루어지긴 했으나, 기실 개인적인 부분이나 삶의 정서(!)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전해지지 않은 듯 하여 마침 적절한 릴레이가 아닐까 싶다. 코헴회의 가장 큰 연중행사인 여름캠프 이후, 경북 청송에 사는 박 회장이 외국 환우들과의 교류사업 차 서울에 머무는 날, 강남에 위치한 SM타운에서 그를 만났다. 젊은 기운 UP UP!

   
▲ 한국코헴회 박정서 회장

1. 소개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국코헴회 회장 박정서입니다. 올해로 임원을 시작한지가 10년째 됩니다. 그리고 재단등록번호는 76번입니다. 지금은 악기를 가르치는 강사, 또는 이오덕축제 위원장, 봉사단 단장을 하고 있고, 세 아이의 아빠고 한 여자의 남편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건강하시고 삼형제고 코헴회장은 첫 번째 임기를 마치고 현재 두 번째 임기 시작해서 반년이 됩니다. 


2. 올 여름 폭염 어떻게 보내셨나요?

상당히 힘들었고요. 특히 야외 일을 할 때마다 힘들었어요. 보통은 방학기간에 시간이 남긴 하는데 올해는 방학기간에 버스킹 공연과 봉사활동, 교도소의 인성교육까지 일이 한꺼번에 다 몰리다 보니 일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지난달에는 캠프도 있었고, 제주도 환우모임 세미나가 잡혀서 거기도(제주도) 며칠 참석을 했고, 일을 몰아서 했는데 안그래도 더운 날씨에 엄청 힘들었던 것 같네요. 

(그런데 살이 좀 찌신 것 같은데요?) 사실은 요즘 먹는 조절이 안되서 3~4kg로 쪘어요. 계속 한 끼만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 몸무게가 76kg 되면 무조건 발목이 아파요. 그래서 76kg이 되면 그날부터 거의 밥을 먹지 않는 식으로 강제 다이어트를 해요. 5일 정도 안 먹으면 몸무게가 많이 낮아져서 활동할 수 있게 되면 하루에 한 끼 정도로 조절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 6개월간은 70키로 초반대의 몸무게를 유지하게 되는데, 6개월이 지나면 다시 헤이해져서 살이 찌는 식으로... 계속 반복적으로 되고 있네요. 이 방법이 안 좋은 방법이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이것밖에 없는 것 같네요. 

   
 

3. 어린시절을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제가 14살 때, 혈우병을 잘 모르고 있을 때 양쪽 고관절이 다 출혈된 적이 있어요. 그 당시는 당연히 약도 없었고 대처방법도 모른 상태에서 1년 반 가량을 앉은뱅이로 살았었어요. 나이 터울이 꽤 있는 형님이 기타를 하나 사둔 게 있었는데, 군대 가면서 저 혼자 방에서 지내고 있었어요. 다리가 불편하니까 외부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없다보니까 혼자서 기타를 조금씩 치기 시작했어요. 그땐 정말 할 수 있는 게 그것(기타 치는 것) 밖에 없었어요.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니까 잘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코드집도 사서 혼자 연습했는데, 1년 반 정도 계속 연습하니까 실력이 꽤 늘더라고요. 3개월 정도 지나서 부터는 하루에 열 세 시간씩 연습했었어요. 그때는 책도 없고 미디어도 없던때라 라디오를 듣고 연주하는 것을 많이 연습했죠.

그 이후로 1년반 지나서 걸을 수 있게 됐을 때 친구하고 형들이 놀러오라고 해서 친구가 사는 자취방에 놀러를 갔는데... 친구 자취방에 여자친구들, 남자친구들이 꽤 많이 있더라고요. 형들이 여자들한테 잘 보이려고 기타를 쳤는데, 제가 보기에 한 두 곡 정도 치고는 못치더라고요. 저도 그날 기타를 쳤는데 다들 잘 친다고 인정해 주는거에요. 혼자 연습한거라 제가 잘 칠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인정을 해주니까 놀랍더라고요. 그리고 여자친구들이 잘 친다고 얘기를 해주니까 더 미친듯이 쳤죠. 나의 살길은 이거구나~ 하하하 이 두가지를 겪으면서 느꼈던게 '사람에게 제한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제한속에서 분명히 내 자신이 뭔가를 잘 선택하고 뭔가를 한다면 뭔가를 이룰 수 있는 큰 기회다'라는 것을  어린 나이에 알았어요. 

그 이후에 들은 말인데, 어떤 사람이 전세계 10대 기타리스트들 열 명한테 '왜  기타를 그렇게 열심히 쳤냐'고 물어봤대요. 그 중 일곱은 "여자 꼬시려고 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얘기를 듣고 짜릿한 느낌을 받았어요. 하하하 


4. 그런 소질이 직업 선택으로까지 이어지시게 된 거네요?

계속 그렇게 하다보니까 음악 쪽으로 일을 하게 되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저는 스물여섯 살에 서울에 와서 형님하고 광명에서 살았는데, 형님은 그때 여의도 SK본사에서 근무를 하셨고, 저는 강남에 와서 회사에 다녔어요. 거기에 컴퓨터로 하는 미디어 음악학원이 있었고 우리나라에 몇 명 없을 때 거의 선두적으로 해서 그 덕에 컴퓨터도 잘 다루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작곡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골에 가서 살다가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죠. 작곡하는 일은 안정적인 수입이 없으니까 결혼하고 나서 음악을 그만두고 한 12년 동안은 다른 일을 했어요. 미디어음악 때문에 배웠던 컴퓨터를 가르쳐주고 조립해주는 일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인공관절 수술을 하게 되면서 그 일(컴퓨터)을 그만두고 다시 음악을 시작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있어요. 지금은 학교 방과 후 여러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복지센터에서 기타 레슨도 하고 있어요. 아내랑 딸과 함께 지역축제도 만들었어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을 우리끼리 그냥 시작해서 올해로 3회째인데 축제위원회도 만들고 위원회에 지역내에서 유명한 분들도 참여하고 있어요. 앞으론 정부 지원을 받아서 축제를 진행할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제가 악기를 가르치러 가는 열두 곳과 코헴회 회장일까지 포함하다보니까 다섯 파트의 일을 하고 있네요.

   
▲ 여름캠프 폐회식 이후 충북지회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5. 이번 여름캠프 어떠셨어요?

일단은 장소가 좋았잖아요. 더운 날씨에 실내에서 할 수 있어서 좋았고, 가족참여 수가 상당히 적극적이고 많아서 좋았어요. 그점에 대해서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어요. 그리고 여러가지 이벤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기 보다는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괜찮았던 것 같아서 나쁘지 않은 캠프였다고 생각해요. 제가 회장한 지 2년 반 되는데, 이 기간동안 캠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을 많이 했어요. 외부에서 캠프에 대한 막대한 금액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걸 좀 아끼기도 해야되고 잘 쓰기도 해야되니까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잘 쓸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제 맘 같이 잘 안되더라고요. 

대의원회의에서도 제가 원하던 것들이 관철이 안 되면서 양보를 해야했던 것들도 있었고... 캠프 방향 자체를 아예 바꿔야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지금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뭐냐면, 캠프장소를 한 군데로 고정하고 개최는 각 권역별로 하는 걸로요. 요즘 폐교가 많아서 업체에서 입찰을 많이 내놓고 있어요. 사실 폐교 사용을 3~5년 정도 계약을 하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싸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폐교를 하나 코헴회에서 얻어서 우리들이 하고 있는 워크샵 장소나 사람들이 모일 장소로 경제적으로 부담이 덜 간다면 상당히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봐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여름캠프 숙박비를 2천500만 원 정도는 아낄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워크샵 숙박료라던가 그런 쪽에서도 세이브가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재정적으로도 상당히 플러스가 될 것이고 또, 우리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안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기에 좋은 아이템이라 연구를 많이 하면 우리가 여러가지 득이 있지 않겠나 싶어요. 물론 이것도 대의원회의에서 논의하고 결정이 되야겠죠. 일단 제 구상은 그렇습니다.


6. 캠프장소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데, '폐교'라는 단어에서 오는 부정적인 어감이 있지 않을까요?

물론 있죠. 그런데 요즘은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리모델링을 다 해서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캠프는 여름에 하는 거라 수영장이 필수잖아요. 수영장은 간이 수영장이 있어요. 그래서 얼마든지 크게, 원활하게 설치하고, 철거도 가능하기 때문에 상당히 좋습니다. 금액도 얼마 들지 않고요. 그런 것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있어서 상당히 용이합니다. 

예전에는 캠프장소를 선정할 때 수영장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것이 해결되면 완전히 프리하게 저희들이 원하는대로 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없겠죠.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꾸며 놓으면 상당히 좋습니다. 교실들을 다 리모델링하면 숙박시설이라든가 문화공간으로 사용하는 데에 어떤 리조트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장점은 우리 모두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경제적으로 세이브 되는 것이 많겠죠. 지역에서 어떤 행사를 할때 도움을 요청해도 저희 재정이 좀 빠듯하다보니 도움을 못주는 경우가 많은데, 세이브되는 금액을 가지고 환우분들께 가는 혜택을 올리고 비급여의료비 지원금 금액을 더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요. 

   
▲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박정서 회장

7. 캠프에서 혹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저는 행사일을 많이 했던 사람인지라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수도 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되겠더라고요. 회장되고 2년부터는 부족한 것만 자꾸 보이고, 그 부족한 것을 빨리 바꾸자고 사무국 직원들을 많이 닥달을 했어요. 이번에 아쉬운 부분이라면 제가 운이 좋게도 한 2년동안 대의원님들이 상당히 적극적이고 오픈마인드로 제 정책을 받아주셔서 상당히 즐겁게 일했고 쉽게 일을 잘 했던 것 같아요. 이번 캠프안에서 대의원회의를 했었는데, 조금 소란스러운 점도 있었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했고, 그런 일을 없애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보완책과 방법들을 연구해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번 캠프의 가장 아쉬운 점은 숙소가 너무 부족했다는 점과 참여자 수를 제한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들었어요. 그리고 돌아가는 길이 멀다보니까 장거리 버스를 타야한다는 부담감에 회원들이 좀 힘들어 하는감이 없진 않았나 라는 정도가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8. 외국 환우들과의 캠프 2년차, 성과점은?

일단 외국 환우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자면 작년에 아시아교류사업으로 도네이션을 받았고, 그 비용을 가지고 아시아에 있는 단체에 찾아가 대표도 만나고 의료환경도 제가 보고 왔죠. 올해도 그렇게 했고요. 그 과정에서 NHF 미국 대표단도 우리나라 캠프에 방문했고, 대만과 홍콩에서도 참여를 했어요. 올해같은 경우는 중국과 대만, 말레이시아에서도 참여를 했었는데, 이렇게 다른나라 여름캠프에 참여한 게 세계적으로 처음이더라고요. 그 점을 WFH에서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보고 상당히 관심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번 영국 글래스고학회에서 알렌웨일 WFH 총재를 만난 자리에서 알렌회장이 사실은 저희 활동을 다 알고 있었어요. 총재가 자기가 알고있는 그 부분을 저한테 물어봤었어요. 왜 그렇게 했고, 어떠한 목적으로 했으며, 왜 자신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는지 등에 관한 얘기를 했었어요. 그런 얘기를 답하는 과정중에 알렌 총재가 저한테 파격적인 제안도 많이 했었어요. 세 가지를 제안했는데... 한 가지는 지금 아시아에는 WFH 위원이 없어요. 그래서 총재가 저한테 2020년 쿠알라룸푸르 대회 때 아시아 지역의 보드가 좀 되어달라는 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지금 열심히 매일매일 영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번에 외국 환우들이 왔을때 석달간 연습한 영어를 사용해보니까 아주 조금 는 것 같아서 만족도가 있지만 아직은 더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두 번째는 NMO대표권을 코헴회에서 가져가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저희는 좋지만 지금 현재 재단이 NMO대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찰이 되거나 서로 오해를 하거나 하는 계기로 재단과 코햄회의 관계가 나빠지면 안 되겠죠. 제가 그런 걱정을 알렌 총재에게도 얘기를 했더니 "일단은 재단과 얘기를 해보라"는 말을 했었고, 저도 재단 이사장님을 만나서 그 말씀을 드렸는데, "한 번 기다려 보라"고 하셔서 저도 거기에 대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NMO대표권이 코헴회에 있든 재단에 있든 이것이 제대로 쓰여진다면 저는 어떤 것이든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런 제안이 들어왔기 때문에 노력을 하고 있어요. 이런걸로 인해서 좋아졌던 재단과의 관계에 괜한 오해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서로 파트너쉽을 갖고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마지막 제안은 알렌 총재가 최근 우리나라가 북한과 교류된다는 것을 알고 북한 혈우환우들을 좀 만나달라고 요청했어요. 그 제안을 제가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약속도 드리고... 총재가 제안하신 거라서 열심히 수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게 성과라고 할까요. 그외 부분은 일부분이고요. 말 그대로 지금 아시아에 있는 많은 힘든 나라의 단체성이 빈약해요. 그러다보니까 당연히 환우들이 방치되는 사회들이 많겠죠. 정부지원도 약하겠죠. 그래서 그런 분들을 더 많이 만나고, 좋은 환경을 더 많이 보여주고 어떻게 하면 좋은 환경에서 정부의 지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입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는 지금은 시작인 것 같지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저에 대해서 많이 알고들 계시더라고요. 아시아에서 만나는 분들이 저한테 자기네 나라 행사에 와 달라고 직접적으로 요청한 나라가 3곳이 있어요. 저희가 서신으로 왕래하면서 요청한 나라도 4곳 정도 됩니다. 올해와 내년까지 7곳을 다 둘러봐야 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우리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는 점에 상당히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할 일이 많지만요. 

   
▲ 올 여름캠프에 참석한 중국 환우가족(좌)과 대만 환우

9. 회장직 수행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일단은 커뮤니케이션이 제일 힘들어요. 왜냐면 저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라 시간의 제약이 많은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일이 좀 많다보니까 중간에 빠질때도 있고, 힘이 들어서 뒤로 미룰때도 있어요. 그래도 대의원님들이 상당히 호의적으로 대해주시기 때문에 향상은 되는데... 결국은 임원들간 여러가지 요구에 대한 의견 조율이나 명확한 답변 이런 것이 쉽지가 않죠. 말그대로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선뜻 받아들이면 좋은데 이해관계가 충돌될 때도 있고, 서로가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으면 그걸 조율한다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그런 점이 좀 힘들다고 할까요. 그 외에는 괜찮아요. 저도 사무국이 회장과 함께일하는 수행기관이라할수있는데. 그래서 저랑 같이 대의원들이 결정한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노력과 노고가 필요합니다. 직원들에게 제가 너무 강하게 표시를 해도 안되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느슨하게 대하면 대의원들도 실망을 할 수 있으니까 그 중간에서 어떻게 밸런스를 맞추느냐가 조금은 힘든점 인 것 같애요. 


10. 현실적인 여건 따지지 않는다면, 앞뒤 안보고 질러보고 싶은 사업은?

음... 지를 수 있는 사업이요. 제가 항상 원하는 것이 있어요. 각 도시에 각 구간별로 아주 싼 값의 커피를 판매하면서 사람들이 누구나 와서 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거에요. 코헴식구들 외에 경제적으로 힘든 모든 사람들이 다 포함되는 거죠. 사실 커피숍에 들어가면 가격이 많이 비싸잖아요. 그래서 좀 저렴하고 안락하게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까페지만 지금의 까페스타일보다는 좀 더 안락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굳이 커피를 안 마셔도 되는 그런 공간을 도시의 한 블럭당 만들고 싶어요. 솔직히 도시의 사람들이 편하게 쉴 장소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만약이라는 거죠. 지금 이런 것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서울에서도 정부의 소유이면서 단체별로 몇시부터 몇시까지는 누가 사용하는 식으로 해서 어쩔때는 차도 팔았다가, 시화도 전시했다가, 아니면 그냥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도 되었다가 하는 파트별로 나눠서 하는 곳이 있더라고요. 

쉼터라는 곳이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큰 힘이 있거든요. 사람들이 모이면 규모가 생기고, 규모가 생기다 보면 좋은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으니까... 코헴 쉼터는 사실 서울에도 마련하려고 부단히 노력을 많이 합니다마는 돈이 한두푼이 아니어서... 재단같은 경우에도 저희와 이해관계 부분에서 조금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요. 정확히 어떤 내용으로 진행이 안되는 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추진은 계속 할 겁니다. 지속적으로 요청하다 보면 가능하지 않겠나 싶고 건전한 장소이자 서로가 융합할 수 있는~~ 재단과 코헴회를 자꾸 이분시켜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없지 않습니다만 저는 그게 정말 싫습니다. 설사 현실적인 벽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게 없는 것처럼 같이 또 이야기하고 만나야 하지 않겠나 싶어요. 그러다보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 부인, 그리고 막내와 함께 청송에서

11. 가족들과의 여행,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담양 메타프로방스는 우리 가족들이 지난 겨울에 왔던 곳이었고, 여수에 가면 해물요리를 참 잘하는 맛집이 있어요. 그리고 청송에서 40분 정도 가면 있는 주왕산도 좋아요. 주왕산은 가족보다는 일하면서 자주 가게 된 곳인데, 가깝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가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저희 가족이 4년 전에 유럽여행을 갔었는데 그때 로마랑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까지 한꺼번에 투어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 여행은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아있어요. 가족들과 여행을 많이 다녀보려고 노력을 하는데, 코헴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많이 못간 것 같애요. 내년 2월에 홍콩과 베트남을 한 번 다녀오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가족들과 외국을 많이 못 가본 게 아쉽기도 해서 가족들한테 이런 제안을 해봤어요. 하하하 외국을 나가면 모든게 새롭잖아요. 거기에 있는 자체로 들뜬 기분이 생기니까 확실히 좋은 것 같애요. 이번 담양 죽녹원은 특히 겨울에 온천이 좋아서 추천해주고 싶네요. 


12. 가족밴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희 가족밴드의 목표는 따로 없습니다.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하는 그게 다예요. 막내 처남도 음악이 좋아서 기타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밴드에서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어요. 큰 목표없이 음악하는 사람이니까 음악을 하는 거라 생각하면 될 것 같애요. 

   
▲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13. 청년회 구성에 있어 조언을 보탠다면?

청년회 발족은 제가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요, 청년회에서 자체적으로 준비위원회를 만들었어요. 준비위원장이 이강욱군으로 알고 있어요. 캠프때 여러가지 제안이 나오긴 했는데 청년워크샵에서 발족식을 하는 건 어떨까? 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봤습니다. 청년준비위원회에서 요청이 온다면 저도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입니다. 

일단은 규모를 너무 따지지 말고 시작하는 게 우선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청년회는 코헴회 정관에도 있습니다마는 아직 청년회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지금까지 유명무실한 상황이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을 한다면 청년회는 우리 한국 코헴회의 미래가 되지 않겠나라는 기대를 하고, 청년회가 안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우려고 노력할 겁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와 구상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14. 좋아하는 영화

영화요. 사실은 제가 답답증 때문에 영화를 못봅니다. 영화를 15분 정도 넘어가면 더이상 못봐요. (극장이 아닌 집에서도요?) 네. 집도 마찬가지로 못봐요. 이게 약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왜냐면 뭔가를 자꾸 해야하는데 영화관에서 그 영화를 계속 볼 수가 없어요. 어찌보면 이게 일중독 같기도 하고, 뭔가에 쫓기는 느낌처럼... 일종의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하하하 저희집에는 TV도 없어요. 예전에는 영화 2~3편도 봤었는데 한 10여년 전부터 바뀌더라고요. 어쩔수 없이 과제를 위해서라면 억지로라도 보긴합니다. 

   
 

15. 살아오면서 가장 크게 영향받은 인물이 있다면?

사람은 없고 예수님~~ 아, 사람 있네요. 법륜스님이요. 사이비쪽으로 가는 건 아닌데, 하하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 그 두 분한테서 많이 받아서 노력하고 있고, 우리 가족들한테서도 영향을 많이 받고 있죠. 주위분들을 포함해 교회에 같이 다니는 집사님들, 코헴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 제가 일하면서 만나는 학생들, 교도소에서 만나는 죄수분들에게도 응원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배울것도 많고 아직까지도 배울 게 너무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재밌습니다. 요즘은 영어를 배우고 있는데 재미가 썩 있지는 않아요. 이것도 목적이 생기니까 싫든 좋든 영어를 하게 되네요. 하하하


16. 혈우사회에 전하는 메시지와 다음 릴레이 추천

안녕하십니까 코헴회 회원, 환우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한국코헴회 그리고 가족을 둘러싼 의료진, 한국혈우재단, 많은 제약회사들, 우리랑 한 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서로가 협력해서 한국코헴회가 건강한 삶, 행복한 삶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추천할 다음 릴레이주자는 한국에도 여러분이 계시지만, 특별하게 세계혈우연맹 알렌웨일 총재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글로벌 혈우사회를 이끌어가면서 느끼는 생각들과 특히 아시아에 대한 계획을 듣고 싶고, 글로벌 사회와 한국이 좀 더 가깝게 소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인터뷰 당시만 해도 펄펄 끓는 날씨가 뒤끝을 남기던 때였는데, 어느덧 시일이 흘러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다. 코헴회의 가을도 오곡이 무르익는 이 자연의 너른 품처럼 넉넉하고 고른 성과들로 가득 차길 바라본다. 그나저나 추천받은 다음 릴레이주자가... 프랑스 집과 캐나다 혈우연맹 본부를 오가며 살고 있는 알렌웨일 총재라니... 원격취재를 하거나 총재를 초청해야 할 판이다. ㅠㅠ 

 

[헤모라이프 김태일 유성연 기자]

 

김태일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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