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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십자의 혈우재단 의무기록 요구, '사실조회'서 '제출명령'으로 바꿔치기

기사승인 2018.09.23  10: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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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들 "둘 간 짬짜미, 낙하산 관행" 지적

   
▲ 서초동에 위치한 한국혈우재단. 재단 부설의원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혈우환자들을 진료하며 그들의 의무기록을 관리하고 있다.

GC녹십자(사장 허은철)가 혈우병 환자들을 상대로 한 소송에 이용할 목적으로 한국혈우재단(이사장 황태주)에 환자들의 의료기록을 요구, 재단이 이에 응할 것을 의견서로 제출하면서 혈우사회의 공분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애초 녹십자의 이같은 요구가 법원에 '사실조회신청'으로 제출되었다가 자진철회된 후 '문서제출명령신청'으로 바뀌어 제출된 배경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4년간 혈우병 환자들과 HCV(C형간염 유발 바이러스) 집단감염 손해배상 소송을 이어가고 있는 녹십자홀딩스(변호인단 김앤장, 최상엽)는 지난 8월 7일 서울고등법원(파기환송심) 담당 재판부를 통해, 한국혈우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소송참여 환우 30명의 의무기록과 혈액검사기록 일체를 제출하라는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했다. 'HCV감염 이후 치료여부와 내용, 증상의 발현과 경과, 현 상태 등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취재결과, 이러한 녹십자의 요구는 '문서제출명령신청' 이전 7월 20일 같은 내용의 '사실조회신청'으로 제출되었다가 8월 7일 자진철회되고 같은 날 더 강제력 있는 '문서제출명령신청'으로 변경 제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두 '신청' 사이에 혈우재단의 공식적인 의견은 제출된 바가 없으며, '문서제출명령신청' 이후에야 비로소 혈우재단은 '해당 문서를 모두 소지하고 있고 신청된 문서를 임의로 서증으로 제출하겠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9월 7일 법원에 접수한 것이다. 환자 의무기록 제출 방법을 놓고 녹십자와 녹십자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한국혈우재단 사이에 '이면합의'가 있지 않았는가를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다.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혈우병 환자 A씨는 파기환송심 원고들간의 SNS 대화방에서 "녹십자와 재단이 환자들 민감정보를 자기들한테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짬짜미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다른 환자 B씨는 "둘 관계를 봤을 때 의무기록은 벌써 공유하고 있는데 공식적으로 활용하려고 사실조회했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문서제출명령으로 구색을 맞추는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 HCV감염 혈우환자들의 파기환송심이 계류되어 있는 서울고등법원 중앙로비 내부

한국혈우재단 송종호 전무(전 녹십자사 이사)는 재단과 녹십자 사이에 사전조율이 있지는 않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문서제출명령이) 어디서 온 건지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법원에서 왔다는 것만 알 뿐 그것을 신청한 쪽이 피고 녹십자라는 것은 모르고 따라서 사전조율도 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송 전무는 "사법부에서 해달라는 걸(의무기록제출) 안해줄 수 있는가"라면서 "환자본인 동의를 거쳐야 하는지는 한 번 알아보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1991년도 설립 당시 녹십자사의 100% 출연으로 세워진 한국혈우재단은 매년 운영비의 90% 가량이 녹십자의 후원(연간 약 35억원)으로 충당되고 있으며, 재단의 전무이사는 녹십자사의 퇴직임원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관행이 몇 대째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에 따라 국내 혈우환자 대부분이 이용하는 혈우재단 부설의원에서 여러 혈우병 치료제 중 녹십자 치료제를 편파처방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논란에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혈우재단이 의무기록 제출입장을 밝힘에 따라, 소송인단 환자가족들은 '재단이 환자들의 HIV(에이즈 유발 바이러스), HCV 집단감염 사실을 언제 본인들에게 고지했는지', 'C형간염 치료에 들어간 비용이 얼마인지' 등 더 구체적인 자료를 법원을 통해 재단에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재단과 녹십자의 '뿌리깊은 관계'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할 것을 논의했다. 또한 추석 이후 '법무법인 정률' 우굉필 변호사와 함께 파기환송심 소송인단 활동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로 하였다.

한편, 녹십자측 변호인단으로는 2004년 1심때부터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그리고 이번 파기환송심에는 군사정권시절 검찰 공안부장을 지내고 법무부장관을 역임한 최상엽 변호사가 추가로 고용되어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실제로 파기환송심 법원에 최근 6개월여 간 22건에 달하는 준비서면과 사실조회(신체감정의, 보건복지부, 적십자사, 심평원, 각 지자체, 혈우재단 등), 제출명령을 넣으면서 녹십자측의 귀책사유 축소에 총공세를 벌이고 있어 혈우사회 구성원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고 있다.

   
▲ GC녹십자와 한국혈우재단은 한 건물에서 운영되고 있다. 애초 녹십자 소유였다가 혈우재단이 일부 매입.
<혈우병 환자 HCV집단감염 소송이란?>
- 90년대 초반까지 제대로 정제되지 않은 혈액유래 혈우병 치료제로 인해 당시 국내 혈우환자의 절반에 가까운 650여 명이 C형간염바이러스(HCV)에 감염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이런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이 중 102명의 환자가 치료제 제조사인 녹십자사를 비롯해 대한적십자사,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2004년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
- 1심에서는 소멸시효 완성 등의 사유로 2007년 '원고패소' 판결, 2심(원고 77명)에서는 인과관계와 시효가 일부 인정되어 2013년 '원고 일부승소' 판결함.
- 이어진 대법원 3심(원고 44명)은 환자들의 주장을 더 폭넓게 받아들여 제조사의 과실 부분을 다시 검토하라며 2017년 말 '원고 승소취지의 파기환송'을 결정.
- 이 과정에서 나머지 두 피고였던 적십자사에는 직접적인 수혈로 인한 감염사례 1건에 대해서만 배상판결이, 대한민국 정부는 무죄판결이 내려지면서 사실상 이 소송은 녹십자와 환자들의 공방으로 남겨진 채 현재 서울고등법원에 계류되어 있음.

[헤모라이프 유성연 기자]

 

유성연 기자 tjddus@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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