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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불콩] "'안 된다'는 말을 넘어서고 싶었어요"

기사승인 2018.09.16  1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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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성준 청년환우와의 허심털털 대화들

올해 한국코헴회 청년토론배틀에서 패기 넘치는 토론을 벌이며 강한 인상을 남긴 오성준 군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성준 군의 어린 시절부터 알아왔지만 성인이 되어 활발하게 사람들과 교류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처음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그 또래 친구들(사무국 주희 간사, 배하진, 강현수 군 등)이 유독 혈우사회 안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시기인 것 같다. 성준 군이 길러온 마음의 힘과 앞으로의 꿈에 대해 얘기 나눠보기 위해 그의 집에서 가까운 범계역 맛집을 찾아갔다.

   
▲ 라멘 맛집에서 식사 후, 모히또와 커피를 사이에 두고 오성준 군과 마주앉았다.

1. 누구신가요?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오성준(9인자·중증·22살)이라고 합니다. 현재 학교는 휴학중이며, 부모님, 그리고 위로 6살 차이 나는 누나랑 같이 안양에서 살고 있습니다.
 

2. 학교에서의 전공은 무엇?

일명 소프트웨어 전공이라고 하는데... 그냥 컴퓨터공학이라고 하면 될 것 같아요. 요즘 인공지능이 유행인 것처럼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코딩하는 게 대세인데요. 그런 언어들을 배워서 어떤 자료나 소프트웨어들을 코딩하는 로직들을 배우고, 로직을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의 문법들을 배워요. 나중에 그것들을 잘 사용하면 인공지능을 할 수도 있고, 게임을 만들 수도 있고, 웹투어 프로그램을 해서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할 수도 있어요.
 

3. 전공으로 컴퓨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은 제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수학교사가 꿈이어서 수시를 넣을 때도 5개 학교에 수학교육과로 넣었었어요. 서울대, 고대, 성균관대, 한양대, 교원대에 수시로 수학교육과로 접수해 놓고, 남은 하나를 지금 다니는 한양대 컴퓨터공학과를 넣은 거에요. 그때 '다이아몬드 세븐'이라고 과 전체 전액 장학금이라고 해서 지원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한 번 빼고는 다 받았어요.(웃음) 컴퓨터공학쪽으로 가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수시 접수할 때 하나 남아서 접수했는데 그게 지금의 결과가 돼 버린 거죠. (기자 : 재수 생각은 안해봤는지?) 고3때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가지고 재수를 할 바엔 '그냥 간다'로 결정했어요.

   
▲ 이런 인터뷰가 처음이라며 쑥스러워 하는 성준 군

4. 휴학 중인 이유가?

제가 스트레스를 잘 대처하지 못하는 편이라서 그런 걸 고치고 싶었고, 제가 성격적으로 차분하지를 못하거든요. 지금도 인터뷰하면서 약간 긴장을 하고 있는데 시작할 때보다 좀 나아진 거에요. 너무 슬프지도 우울하지도 않고 화를 막 내지도 않고 불안해하지도 않는 차분한 성격을 가지고 싶어서 연습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매번 볼 때마다 차분한 성격인 태일이 형이 제 롤 모델이에요.(웃음) 마침 제 친구들 동기들 군대 가 있으니까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공부하고 싶은 것도 하고 그러려고 해요. (기자 : 어떤 공부?) 우선은 저는 작곡을 배우고 싶어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고요. 다음 년도에는 학점은행제로 심리학공부를 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5. 심리학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건가요?

사실은 제가 심리학에 어떻게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까먹어 버렸어요.(웃음) 근데 제가 올해 초부터 약간 감정 상태가 안 좋아서 심리상담을 받았거든요. 가족상담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건데... 애초부터 사람 마음이 궁금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많고, 날 보고 있는 저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등이 궁금해서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지금은 그냥 내가 이걸 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빠져들었어요.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요. 제가 중, 고등학교 때 엄청 우울했었거든요. 그때 제 옆에서 제가 죽고 싶다는 말을 다 들어준 친구가 며칠 전에 저한테 와서 제가 고등학교에 가졌던 감정을 이제 이해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것들을 다룰 수 있는 방법들을  몇 가지 알려줬어요. 제가 그동안 겪었던 일들이 그 친구한테 도움이 된 거에요. 이제는 그냥 이런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정도이고, 솔직히 지금은 왜 이걸 하고 싶어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재밌는 거 같아요.
 

6. 안양 소개 좀 해주세요.

안양은 14살 때부터 살았어요. 그전에는 대구에서 살았어요. 안양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에요. 서울과 비교해도 웬만한 건 여기(안양)에도 다 있어요.  없으면 쉽게 구할 수도 있고, 놀만한 곳도 많아요. 그리고 다른 곳과 비교를 하자면  모든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하고, 어디든 갈 수 있는 길이 다 연결이 되어 있어요. 경기도에서도 굉장히 발달한 도시이고, 학군이 좋아서 이사를 오시는 분도 많다고 들었어요.

   
 

7. 건강관리는 어떻게 해왔나요?

아~~ 제가 생각보다 건강관리를 잘 못하는 편이어서 수술도 두 번이나 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는 관절경을 한 건 아닌데, 왼쪽 무릎에 뼈가 자라나서 잘라야했어요. 그리고 스무 살때는 좋아하는 축구를 막 해서 그런가 왼쪽 발목 관절경 수술을 했어요. 수술 이후로 관리차원에서 발목 스트레칭을 자주 해주고 있어요. 예방요법은 딱 정해놓고 하지는 않는데, 컨디션에 따라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맞고 있어요. 제 몸무게 73kg이고 3,000IU정도 맞고 있어요.
 

8. 혈우병 관련해서 가장 기억나는 기억은?

참 여러가지 시점들이 생각이 나네요. 제 성격이 가만있지를 못하고 항상 활동적으로 나서고 운동하는 걸 되게 좋아해서 어릴적에는 축구선수를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께 안된다는 소리를 진짜 많이 들었어요. 또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이 병(혈우병)을 숨겼었는데... 초등학교 4학년때 담임선생님께 제가 혈우병이라는 걸 숨겨달라고 했는데, 아이들 앞에서 "얘는 혈우병을 가지고 있으니까 화장실을 가는 것 외에는 움직이지 말고 다른 아이들은 저를 건들지 말라"고 얘기를 하신 거에요. 그래서 그날 선생님께 엄청 대들고 집에 왔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신 건 생각 안하시고 저희 엄마에게 "아이 교육을 이렇게 시키셨냐"며 전화를 하신 거에요. 힘들었다기 보다는 화가 많이 났었어요.

혈우병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기숙사에 들어가야 해서 친구 한 명에게 처음으로 오픈했어요. 그 당시 그 친구가 저를 진짜 많이 도와줬어요. 제 병을 본인만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보니까 기숙사 방에서 혼자 주사 맞고 있으면 다른 친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 앞에서 대기해주고 그랬죠. 지금은 군대 가서 잘 만나지는 못하지만 한 번 만나면 정말 재미있게 잘 놀아요.

또... 혈우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농구를 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운 거에요. 눈을 뜨니까 하늘이 보라색으로 보이고 계단도 숨이 차서 올라가지를 못하겠는 거죠. 너무 못 참겠어서 한림대병원을 찾아갔었는데, 빈혈이라고... 빈혈 수치가 정상 남자아이들의 경우 14~15정도라는데 저는 6이 나온 거에요. 보통 4~5정도 되면 쇼크사가 올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쇼크상태 까지는 아니지만 그 직전까지 가서 멘탈붕괴 상태였어요. 그리고 20살 때 한 번 더 경험했어요. 친구들과 춘천으로 놀러 갔었는데, 그때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쇼크가 온 거에요. 알아보니 위장에서 피가 샜다고 하더라고요. 내시경 검사를 해봤는데 별다른 증상이 없고 십이지장 쪽에 피가 난 흔적이 있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수혈 안 받으면 안 된다고 해서 수혈까지 받았어요.

그리고 스무 살 때 7월에 왼쪽 발목 관절경 수술을 하고 나서 9월 초에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요. 왼쪽이 힘드니까 오른쪽에 출혈이 생기고 양쪽이 번갈아 가며 출혈이 생기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학교도 언덕이라 난간을 잡고 계단을 오를때 팔에 힘을 주다보니까 팔꿈치도 터져서 리팜핀 시술도 두 번 하고... 아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던 중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9. 취미생활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 그의 꺄톡 프로필음악들. 필자는 10cm밖에 모르겠다..

제가 취미생활이 생각보다 많아요. 제일 많이 즐기는 것은 스포츠 라이브 경기 보는 걸 좋아해요. 축구도 좋지만, 특히 NBA를 좋아해요. 스테판 커리를 정말 좋아해서 골든 스테이트 경기는 꼭 챙겨봐요. EPL도 좋아해서 첼시가 나오는 경기는 웬만하면 챙겨보려고 해요. 그리고 바둑도 좋아해요. 정식 코스는 아니고 인터넷으로 하는 바둑인데요. 거기서 타이젬이라는 사이트에서 비공인 5단을 땄어요. 제가 어릴 때 하도 산만하다고 부모님이 시키셨는데, 제가 바둑을 9살 때 처음 두던 날 저보다 한 달 먼저 시작한 친구한테 진 거에요. 승부욕이 엄청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건 모르겠고 무조건 저 친구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만 갖고 열심히 했었어요. 그때 그 친구한테 져서 엄청 울었는데... 바둑선생님께서 "바둑 두는 사람은 지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며 명언 한 말씀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작곡을 배우고 싶어서 공부도 할 겸 요즘은 피아노를 배우고 있어요. 또 제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랩 가사를 써서 녹음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하다보니까 귀에 이어폰을 꽂고 살아요. 주로 랩과 힙합쪽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인디쪽 음악과 R&B도 많이 듣고 있어요. 그러다 심심하면 록 계열의 음악도 듣고 있어요. (기자 : 환우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뮤지션이 있다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보컬 중에 프랭크 오션이라는 R&B 가수가 있는데, 정말 대단한 가수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밴드를 추천한다면 쏜애플, 인디쪽에선 프롬이라는 여자 가수를 소개해 주고 싶어요. 밝은 노래도 많이 하지만 굉장히 아린 감성 표현을 잘하는 것 같아요.


10. 여름캠프에서 토론배틀 준우승, 소감이 어땠나요?

저는 목표가 준우승 이었어요.(웃음) 솔직히 1단계만 통과하면 다음 라운드를 편하게 달릴 줄 알았어요. 말하는 것에는 자신 있거든요. 1라운드 때는 상대로 저보다 형이 계서서 긴장도 많이 했는데 제가 너무 형한테 공격적으로 해서 미안한 감이 들었어요. 2라운드 때 현수랑 벌인 토론에서 생각보다 표차가 많이 안 나서 실망을 했었어요.(웃음) 목표했던 준우승을 확보해서 됐다 싶었는데 결승에서 올라가니까 지기가 싫더라구요.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주어진 주제가 어려워서 감당이 안 되는 거에요. 끝나고 나서 기분은 안 좋았지만 목표달성 한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상품권(10만원)은 토론배틀 끝나고 바로 어머니와 현금 8만원으로 교환했습니다.
 

11. 토론이 상당히 익숙한 것 같던데 비결이라도?

특별한 계기는 없는데 자신감? 초등학교 딱 들어가면 선생님이 책 읽는 걸 시키잖아요. 근데 제가 긴장해서 목소리가 커지다보니까 선생님께서 목소리 크게 잘 읽는다고 칭찬을 해주신 거에요. 그때부터 자신감이 붙어서 손들고 발표도 많이 했어요. 그 이후로 발표는 제가 거의 자진해서 하겠다고 해서 경험이 많은 편이고 그리고 제 생각에는 거의 잘 해냈던 것 같애요. 이런 점에서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 때는 스피치 동아리에 들어가서 활동도 좀 했었어요.

   
▲ 토론배틀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오성준 군의 모습

12. 토론배틀 중에 어릴 때 체육활동을 맘껏 못했던 얘기를 하면서 말을 잘 잇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떤 감정이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나요?

혈우환우들은 어릴 때부터 '안 된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아요. 무조건 뭘 하면 안 된대요. 다쳐서도 안 되고, 밖에 나가서 놀아서도 안 된대요. 전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어요. 어른들은 '네가 먹고 살 길은 공부밖에 없다'는 말씀을 너무 많이 하시는 거에요. 생각해보면 되게 억울하잖아요. 나는 솔직히 다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중학교 2학년 때 제가 랩 할 거라고 하니까 그것도 안 된다. 아주 어릴 때는 축구선수 하겠다고 하니까 그것도 안 된대요. 그냥 그 모든 것이 억울했어요. 제가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게 태어난 건데...

캠프 첫 날에 서경지회장님께서 다 모아놓고 요즘은 약이 좋아져서 다치면 다 본인 책임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맞는 말이지만 그 말이 너무 짜증나는 거에요. 어릴적에 하지 못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고, 약이 좋아졌으면 약이 좋아진 만큼 할 수 있는 게 늘어야 되는데 지금도 제한은 어마무시하잖아요. 어른들이 좀 무책임한 것 같아요. 무턱대고 못하게 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덜 다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알려줘야죠. 전, 유전적으로 그렇지 않겠지만 제 아이가 혈우병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해도 그냥 시킬 거에요. 인생은 본인의 선택이잖아요.
 

13.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는데, 어디였나요?

베트남 다낭으로 중학교 때 친구랑 둘이서 갔다왔어요. 재미는 있었는데, 솔직히 다낭은 말 그대로 휴양지 위주라 크게 할 건 없었어요. 그래도 친구랑 놀러 갔다는 자체만으로 기분이 좋았어요. 여행은 어디로 누구랑 가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과 경비가 마련된다면 다음엔 NBA를 보러 미국에 가보고 싶어요. 내년 5월에 가려고 열심히 알바해서 자금을 마련하고 있어요.

   
▲ 22살 혈우친구들로는 사무국 주희 간사, 배하진, 강현수 군 등이 있단다.

14.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아 좀 민망한 얘기인데요. 제가 작사, 작곡, 랩, 믹싱, 마스터링까지 다 한 앨범을 하나 내는 게 꿈이에요. 지금 피아노를 배우는 것도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부모님이 바라는 것과는 좀 다르죠. 돈을 많이 버는 거에는 관심이 없는데 지금 제가 하고 싶은 것에 돈이 필요해서 알바도 하고 과외도 하고 있지만... 이루고 싶은 꿈은 그거에요. 다른 쪽으로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그걸 간절한 꿈이라고 얘기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솔직히 서른 살 되기 전까지 어떻게 해서든 이루고 싶어요. 하하하
 

15. 혈우병치료, 이런 부분이 좀 보완됐으면...

이번에 제가 캠프 가서 만난 분 중에 한 분이 미국에서 오셨는데. 자기는 미국에서 못 들어올 것 같다는 거에요. 이유를 들어보니까 아이가 혈우병을 가지고 있는데 약 받는 게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약은 미국이 좀 더 비싸긴 한데 약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양이 한정돼 있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나 봐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은 그거에요. 우리는 약을 두 번에 나눠서 12회분 정도 받잖아요. 솔직히 예방하는 것도 빠듯해요. 예방은 예방대로 하는 거고 예방전에 출혈이 됐을 때 맞을 수 있는 약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제 친구를 예로 들어보자면 뇌출혈이 온 적이 있었어요. 만약에 이 친구가 주는대로 예방만 했다면 약이 부족해서 피가 멈추지 않으면 죽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우리나라 재정이 넉넉치 않은 것은 알지만 약을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보완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출혈돼서 약이 부족하면 추가처방을 받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런 경우는 직접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거라 전화나 영상통화로 처방받을 수 있는 관련법들이 좀 더 완화됐으면 좋겠어요. 약이 부족하신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좀 더 줬으면 좋겠구요. 몇몇 분들은 약이 좋아졌는데 왜 출혈이 나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거는 모르는 소리나 마찬가지죠. 자연 출혈이 날 수도 있는 거고 갑자기 사고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예방은 예방대로 하더라도 출혈에 대비해 비축해 둘 약도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16. 혈우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생각중의 하나인데요. 모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한 번 정도는 굉장히 큰 우울감과 불안감과 좌절감을 겪는 것 같아요. 제가 앞으로 그런 것들을 더 겪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과거에 겪었던 일이기도 하거든요. 근데, 이게 어떤 방식으로든 빠져나오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저도 잘 모르지만 빠져나가고 있는 중인 것 같기도 하고 굉장히 많이 좋아졌어요. 제 생각에는 지금 혹시나 굉장히 안 좋은 상황에 계시는 분들도 자신감 있게 나아간다면 좀 더 나은 상황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계실 거고 저랑 나이가 비슷하거나 어린 친구들도 찾아왔거나 아니면 찾아올 위기에 대해서 잘 대처할 수 있는 혈우환우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보통 환우가 미성년일 시기에는 부모님이 이들을 대신해 혈우 공동체에 참여하고 약도 대신 타러 가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칫 이러한 '대리 투병'이 환우가 성년이 되어서도 이어지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는데 우리가 만난 오성준 군의 경우 힘든 과정을 거쳐내면서 혈우병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안고 의연히 살아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려울 수 있는 가슴 속 얘기를 훌훌 공유해주어서 고맙고 성군 군의 앞날에 스테판 커리의 3점 슛 같은 시원시원한 걸음이 함께하기를 바라본다. 아, 성준 군의 앨범이 나오고 첫번째 예약구매자가 있다면 그건 헤모라이프 편집팀일 것이다.

   
▲ 좌측부터 김태일 기자, 유성연 기자, 오성준 군, 김승근 주필

[헤모라이프 김태일 유성연 기자]
 

 

김태일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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