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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보고 싶었다"

기사승인 2018.06.23  16: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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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닥터] 신촌세브란스 한정우 교수 인터뷰

요새 공중파를 타고 있는 예능 프로 중에는 ‘선을 넘는 녀석들’이라는 여행 프로그램이 있다. 국제분쟁 지역이나 긴장감 팽팽한 국가간 국경을 넘어 역사와 문명의 발자취를 체험하는 기획으로 재미 속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프로그램이다. 기자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혈우병치료를 짊어지고 있는 의료진들 중에 최근 ‘선을 넘는 녀석들’을 떠올리게 하는 의사가 한명 있는데, 바로 신촌세브란스 소아청소년암센터의 한정우 교수이다. 많은 청년층 이상 혈우인들에게 마치 ‘고향’과도 같은 느낌으로 남아있는 신촌세브란스병원은, 90년대 이후 혈우병치료와 멀어졌던 시기를 거쳐 2010년대에 들어서며 소아청소년암센터 유철주, 한정우 교수를 중심으로 다시 혈우병 거점병원으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다져오고 있다. 현재는 일상적인 치료제 처방과 응급시의 대처뿐만 아니라 환자와 가족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제공, 다양한 임상시험 주도, 혁신적인 다학제 진료를 통한 ‘헤모필리아 트리트먼트센터화’까지 바라보고 있는, 잔잔한 혈우사회에 계속 짱돌을 던지고 있는 변화의 진원지가 아닐까 한다. 이곳에서 한정우 교수는 어떤 ‘선을 넘는’ 의사인지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았으면 한다.

   
▲ 오전진료가 끝난 후 연구실로 옮겨 인터뷰를 갖고 있는 한정우 교수

Q. 소개말씀 부탁드립니다.

신촌세브란스 연세암병원 소아혈액종양과에 근무하고 있는 한정우입니다. 2000년부터 의사 일을 시작했는데, 2005년도에 소아과 전문의가 됐고 2012년도에 내과 전문의가 돼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교수직을 맡고 있습니다.
 

Q. 혈우 환우들이 세브란스를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오후 빠짐없이 유철주 교수님, 한승민 교수님, 저 이렇게 돌아가며 진료가 있고요, 일반진료도 한 세션 있어서 토요일 오전까지도 언제든지 진료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꼭 주치의 개념이 필요한 일이면 모르겠지만 응급상황에서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용 가능합니다. 최근에는 각 과마다 저희가 말씀을 많이 드려서 관심을 갖게 되시는 것 같아요.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 협진을 하고 있고, 오늘 오전에는 응급의학과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눴고 소아응급실은 특히 소아혈액종양과와 소통이 잘 되고 있어서 점차 혈우환우들이 종합적인 건강관리를 위해 이용하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약도 필요 없고 진료시간에만 오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 김승근 주필이 정기 관절가동범위 측정을 받으면서 평소의 증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Q. ‘혈우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갑자기 생각하려니...(웃음) 일단 ‘무서운 병이다’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알고 보면 ‘원칙이 확실한 병이다’ 알고 보면 대처할 수 있는데 희귀병이다보니 선입견을 떨치는 것이 어렵죠. 하지만 조금만 공부하면 의사도 환자도 보호자도 전혀 두려워 할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의사 일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으시다면?

저는 사실...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잘 된 환자보다는 안 된 환자들이 마음에 많이 남아있고요, 혈우 환자분들 중에도 저희 병원에 오셔서 돌아가신 분도 있고. 그랬을 때 혹시 제가 좀 미숙하다거나 미진했거나 그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데, 사실 일부러 그런 생각들을 더 많이 해요. 왜냐면 그런 반성이 있어야 나중에 개선이 되기 때문에요. 저희는 안 좋은 소아암환자가 많잖아요. 정말 힘든 아이들과 부모님 곁에서 저희가 최선을 다하고 했을 때, 혹여 결과가 안 좋더라도 부모님들이 다 이해를 해주세요. 그런 기억들이 많이 나죠.

Q. 세브란스에서 혈우병 관련 임상연구가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주목할만한 연구는 어떤 게 있나요?

최근에 약물 임상시험을 해서 그 중에 가장 잘 되고 있는 게 ‘에미시주맙’인데, 효과나 이런 것들을 많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비슷한 약물들이 몇 가지 대기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용감한 분들’이 임상시험에 나섰다고 한다면 이제는 안전성과 효과가 많이 알려져서 연구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더 폭넓고 편하게 임하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모든 약들이 부작용을 완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잘 고려해 판단해야 하겠죠. 두 번째로 저희가 야심차게 약동학 체크(약물을 투여하고 시간경과에 따라 약효를 살피는 방식)하는 연구를 시작했는데 그쪽은 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평소 채혈은 자주 하시기 때문에 참여가 어렵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연구’라는 타이틀이 붙다 보니 좀 거부감이 있으신 것 같기도 하고 채혈을 위해 두세 번 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샤이어에서 나온 ‘myPKFiT’ 같은 시스템이 외국에서는 많이 쓰이면서 도움을 받고 있는데, 한 가지 약제에 대해서만 데이터가 있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거여서 한국인의 생물학적 특징과 소아부터 성인까지의 특성을 반영한 우리 환우들의 데이터만 수립이 된다면 모두에게 굉장한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한 100명 정도의 데이터가 모이면 의미 있는 약동학 자료로서 우리나라 혈우병 치료의 여러 분야에 적용되고 혜택이 환우분들께 돌아갈 것 같은데, 저 자신도 환우분에게 연구를 위한 채혈을 이야기 할 때면 말이 꼬이고 괜히 미안해지고 그러더라구요.(웃음) 어려움이 있지만 계속 관심을 갖고 있고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임상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이 있으신가요?

혈우병 사회와 각 병원에서 도와주셔야 가능한 문제입니다. 마음은 있으신데 선뜻 나서기가 어려운 부분임을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서양인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내 활성도 곡선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의 약동학 시험이 그만큼 중요하고, 나아가서 최적화된 치료를 위해 용감하게 나서면 혈우사회에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임상시험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환자들의 참여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있는 한 교수

Q. 우리나라 혈우병 관리에 있어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제가 항상 강조했던 거라 잘 아실텐데, 1차, 2차, 3차 병원의 역할이 다 같다면 그렇게 분류하는 이유가 없을 겁니다. 우리 대학병원의 할 일은, 다른 과와의 협력과 중환자 관리, 난이도 높은 검사, 진단과 그에 따른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종합적인 관리나 중추적인 계획을 세워드리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리고 일반적인 관리나 예방, 약 처방 같은 부분은 인근 의원에서 지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상적으로는 의원과 긴밀하게 치료를 유지하다가 1년에 한 두 번은 외국의 ‘헤모필리아 트리트먼트 센터’의 개념처럼 대학병원을 방문해서 건강검진도 받고 종합적인 건강관리를 해나가야 합니다. 각급 의료기관이 서로 협력해서 체계적으로 삶의 질을 진짜 증진시켜야 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닥친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Q. 체계적인 환자가족 교육에 대한 계획은 어떻게 가지고 계신가요?

필요로 하는 가족들이 있다면 당연히 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요, 교육이 환자가족 삶의 질을 상당히 높일 수 있습니다. 혈우재단에서도 여러 훌륭한 교육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역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모든 환자들을 커버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여러 기관이 역할을 나눠서 교육을 진행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초기 기획부터 자료를 만들고 실제 진행을 하고 또 어느 가족이 어떤 교육을 이수했나 점검하는 것까지 상당히 세심한 준비와 인력이 필요하죠. 저희도 그런 어려움이 많았는데, 방금 여기(연구실) 계시다 나가신 코디네이터 선생님과 연구 간호사분들이 올 해 많이 충원되시고 훈련되셔서 훨씬 수월해졌어요. 최근에 저희 병원에서 혈우병 다학제 진료도 처음 시도하고 응급실 교육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게 이분들이 활동하신 덕이에요. 지금까지 해오던 혈우가족 건강강좌와 병행해서 교육 프로그램은 꾸준히 발전시켜나갈 예정입니다.

   
▲ 작년 9월 세브란스에서 진행된 혈우가족을 위한 건강강좌에서 직접 운동법을 시연해 보이고 있는 한 교수

Q. 올해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WFH 총회의 관전포인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인터뷰는 5월 WFH 총회 직전에 진행되었다.)

올해 제가 좀 보려고 하는 것은, 항상 혈우병 신약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보고 싶은데 사실 자료는 이미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그 전단계의 약들, 예를 들면 Anti-TFPI라든지 antithrombin3를 siRNA로 억제하는 약처럼 응고인자가 아닌 다른 약들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와 유전자치료 개발 경향을 좀 살펴보려고 해요. 그리고 제가 계속 관심 갖고 있는 약동학 분야에 대해서도 중점적으로 찾아볼 예정입니다. 다학제 진료나 관절평가 같은 부분은 이미 정립된 부분이 많아서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은 잘 안 나오는 것 같고요. 또 하나, 혈우병A, B에 대해선 많이 연구돼있는데 나머지 폰빌레브란트라던가, 드문 혈우병C, 7번 결핍 같은 것에 대해서 앞으로 개발할 프로그램들을 구상해 보는 것? 그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Q. 향후 혈우병의 치료를 약물치료와 유전자치료로 나누어 본다면 둘 중 어느 쪽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논란도 많고 장단점도 서로 많더라고요. 최근에 유전자치료에 대해 자료를 다시 찾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안전하면서 오래 간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물론 굉장히 첨단기술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위험성도 있죠. 앞으로 5년 10년 이후에 교정된 유전자가 몸 속에서 예기치 않은 변형을 일으킨다던지 암을 유발한다던지 하는 위험성도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결과는 꽤 성공적이에요. 그 임상에 참여하신 환자분들은 상당히 선구자적이고 용감한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만큼 1년 동안 한 번도 주사를 안 맞아도 되고 30% 정도의 응고인자 활성도가 유지되는 그런 혜택도 보고 있는 거라고 보죠. 안전성이 가장 이슈일 텐데 혈우병 말고도 60여 개의 질환에서 유전자치료가 시도되고 있고 궁극적으론 암 까지도 치료하려고 하고 있는 거라서 안전에 대한 연구는 생각보다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자연스럽게 손동작을 해도 된다"는 기자의 팁 직후

Q.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세요?

아버지 어머니하고 동생하고 저, 이렇게 네 명 같이 살고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웃음) 아직 미혼이고요.
 

Q.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으신가요?

연예인이요? 아... 좋아하는 야구선수는 있는데, 요즘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오타니 라는 일본 선수 관심 있게 보고 있고, 류현진 경기는 서너 시간씩 꼭 챙겨보는 걸 낙으로 삼고 있고요. 가끔 미국 쪽에 출장 갈 일 있으면 그 지역 구장에 가서 한 번 씩 관람하기도 해요. 야구 실제 하는 것보다는 선수 기록 찾아보고 그런 걸 좋아하고, 또 많이 알고 있기도 해요. (아아... 인터뷰를 가진 바로 그날 류현진은 사타구니 부상으로 봄시즌 아웃...)
 

Q. 전공의 하나 하기도 어려운데 어떤 계기로 두 개를 하시게 되었나요?

아..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간략하게 이야기 한다면, 좀 좋은 의사가 되려면 폭넓게 많이 경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혈우병만 생각해봐도, 소아혈액종양학만 하게 되면 보통 20세 미만을 주로 보게 되고 혈액내과를 하면 20세 이상만을 보게 되니까... 혈우병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보는 게 아니게 되는 거죠. 그래서 환자의 전 생애에 걸쳐서 질환을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런 질환이 꼭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제가 또 어떻게 하다 보니 혈우병을 만나게 된 거죠. 그런 병들이 상당히 있어요. 소아당뇨나 선천성 심장병 같은 것도 어려서부터 평생 가게 되는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나중에 얘가 성인이 돼서 겪을 어려움을 잘 알지 못하니까, 또 성인만 치료하고 있으면 이전에 이분이 어떻게 치료받고 수술 받았는지를 몰라서 나중에 안 좋아진 상황만 보게 되는 거에요. 만약에 우리 의사가 어떤 환자의 전체 삶과 질환에 대해 잘 이해하게 된다면 “너는 지금 열 한 살이니까 지금은 이렇게 치료를 받는데 앞으로 30이 되고 50이 되면 어떨거니까 그럼 지금부터 이렇게 대비를 해라‘ 하는 식으로 조언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런 의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5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WFH 총회에서. 좌측부터 김승근 주필, 한정우 교수, 황성호 박사, 박정서 회장

Q. 선생님께서 다학제 진료의 필요성을 많이 얘기하시는데, 환우들 생활과 마음에 와닿을 수 있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저를 포함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격이 되게 급해요. 빨리 하고 싶고 길게 얘기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요. 외국은 진료 시에 그렇지 않은데 짧으면 15분, 길면 한 두 시간씩 진료를 보죠. 뉴질랜드나 미국에 나가서 혈우환자 진료 보는 걸 보면, 한 환자가 아침에 와서 3~4시간씩 병원을 돌아다녀요. 검사도 하고, 진료도 보고, 물리치료에 교육도 받고요. 자주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하겠지만 1년에 한두 번 자기 건강을 위해서 그렇게 연례행사처럼 자기 시간을 투자하는 거죠. 항상 빠르고 신속한 것만 좋은 것이냐를 생각해보면, 건강에 있어서만큼은 매번 똑같이 와서 급하게 약만 타서 가고 하는 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연령대에 따라서 점검해야 할 포인트가 다르고 합병증도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1년에 몇 시간은 그렇게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자신의 몸을 돌아보고 노력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다학제 하려고 하는 이유를, ‘의사들이 한데 모여있을 테니까 다른 데 많이 가지 마시고 신속하게 원스탑으로 하세요’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오해에요. 그건 일부 편리를 위해 도움은 되겠지만 그걸 위해서 다학제를 하는 건 아닙니다. 저희는 네 시간 다섯 시간이 되더라도 의사들이 온전하게 한 환자를 위해 투자해서 모든 방면을 다 봐주고 개인 맞춤형으로 계획을 적절하게 세워주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다학제의 좋은 점은, 예를 들어 정형외과와 저희 혈액종양이 만나서 함께 환자를 보면 옆의 의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서로 알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러기 전까지는 의사마다 각자의 영역에서만 고민하고 최선의 처방이라고 생각해서 조치를 취하는데도 환자의 포괄적인 건강관리에서는 구멍이 생길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데 바로 옆에서 동료의사의 생각을 이해하면서 전문성을 발휘하면 그 효과가 환자한테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적절한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또 다학제에 대한 프로토콜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가는 데에서도 서로 상의할 수 있기 때문에 다학제가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중요한 계기가 되죠. 우리나라 사회가 모든 병에 대해서 이렇게 다학제로 가야 한다는 걸 인식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작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다학제 진료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한정우 교수

Q. 다학제 진료가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은 것이죠?

네. 원래 4~5년 전부터 암환자들에 대해서만 적용됐었어요. 그러다 올해부터 혈우병과 같은 희귀질환에 대해서 적용이 시작된 거죠. 여기저기다 계~속 얘기했죠. 해달라고. ㅎㅎㅎ(아재 웃음) 그래서 된 건진 모르겠지만, 근데 복지부 분들도 할 마음이 있었어요. 작년 국회 토론회 때도 다학제 얘기하고 그랬잖아요. 거기 복지부 임명섭 과장님이랑 누가 오셨었는데 준비를 하고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런 상황에서 국회 토론회가 있다 보니까 딱 결론을 내리신 거죠. ‘혈우병 환자 포함해서 희귀질환에 다학제 진료 해준다’라고. 3개 과 이상이 모여야 하니까 여러 과 있는 병원에서는 어디서든지 할 수 있고요, 아직까지는 수가도 적고 인력도 부족하고 공간적 물리적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보니까 어려움이 있는데 점차 개선될 거라고 봅니다. 저희 병원에선 코헴회랑 같이 4월에 다학제 세션을 한 번 열었었고, 그때 함께했던 선생님들이 1~2개월에 한 번씩은 열자고 얘기가 돼서 처음엔 주말 위주로 하다가 잘 되면 주중에도 열 계획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외국 사례처럼 1년에 한두 번 오셔서 혈우병에 관한 검진을 싹 받고 추적관리를 하시는 거죠. 그렇게 혈우병사회가 힘을 합쳐서 조금씩 ‘헤모필리아 트리트먼트센터’를 만들자는 거죠. 다학제 진료라는 건 어느 날 갑자기 제가 만든 게 아니고, 유철주 교수님께서 2003년부터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그런 컨셉의 협진을 시작하셨고 저나 후배들이 그런 걸 보고 배운 거죠. 선구적인 분들이 계셨기에 시작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 인터뷰 이후 함께 식사하면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Q. 마지막으로, 환우분들께 들려주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재밌는... 아... 갑자기 물으시니 제가 별로 재밌질 않아서...(10초간 정적) 저, 저도 질문이 있는데요,
한정우 교수 Q. 여러 자료나 통계로 보면 우리나라 1인당 혈우병 약품 사용량이 상당히 많은 편인 것 같은데 환우사회에서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어떤 점이 안돼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걸까 들어보고 싶었어요.

(기자들 : 출혈 때문에 절대적으로 약이 부족한 환우분들도 계시지만, 많은 경우 약을 맞는 것 말고는 내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잘 제시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운동요법 이라던지 다양한 조언과 해법을 접할 수 있다면, 말씀하신 다학제 진료 같은 걸 통해서 나한테 꼭 맞는 계획이 세워지면 약에 대한 일방적인 갈증이 다른 방향으로 풀리지 않을까요? 약에 대한 접근성은 상당히 높아져서 대부분 예방요법도 하고 하는데 결과만을 놓고 보면 젊은 친구들이 장애를 갖거나 인공관절 수술까지 가게 되는 경우가 한 10년 늦춰진 정도? 약품의 공급과 삶의 질 개선 그 중간 단계에서 뭔가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다학제만이 답은 아니고 여러 면에서 도움과 교육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우리 혈우사회가 ‘의료’ 부문을 넘어선 ‘건강증진’ 부문에서는 아예 손을 못 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환자단체가 행사나 이런 것보다도 시야를 넓히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프로젝트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보고요, 대학병원도 그냥 대학병원으로 두지 말고 트리트먼트센터를 만들자는 거죠. 거길 중심으로 여러 프로그램들을 고민하고 개발해야 해요. 일단 ‘약품’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것은 ‘운동’을 통해서 어떻게 관절을 보호할까 하는 것 같습니다. 병원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모색하고 사회와 국회에 요구하셔야 해요. 예전보다 늦춰지긴 하겠지만 약을 아무리 맞아도 알게 모르게 환우분들의 관절은 망가지고 있어요. 실망되시죠.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렇지만 그대로 다음 세대들도 반복하게 둘 순 없잖아요. 약을 충분하게 쓸 수 있는 시대를 만들었다면 이제 다음 시대를,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실행해야 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재밌는 얘기를 해달라고 하셨는데... 재밌는 얘기가 아니었네요.(일동 웃음)

저희가 그런 프로젝트를 할 때도 도움을 많이 주세요. 도움이란 건 많이 찾아와주시는 거죠. 수요가 많으면 저희도 더 신이 나거든요. 약동학연구 같은 것도, 연구를 위한 연구에 그치지는 않거든요. 혈우병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한 많은 고민들 속에서 여러 교수님들이 이런저런 시도도 해보고 어렵지만 추진하는 것들이거든요. 많은 분들이 또 참여해주셨고 하나하나 쌓여서 좋은 방향을 만들 거라고 믿습니다.

소아과와 내과의 선을 넘나들면서, 임상의와 연구자의 선을 뛰어넘으며, 어찌 보면 양분된 혈우치료 의사사회의 선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한정우 교수의 어느 한쪽도 결코 얕거나 가볍게 보이지 않는 것은 아마 그의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 인터뷰였다. 두 개의 전공을 하고자 했던 이유에서 밝힌 것처럼 앞으로도 넓은 보폭의 걸음으로 혈우사회에 꼭 필요한 의사가 되어주길 바라며, 바쁜 일정 속에서도 만남을 허락해 준 한정우 교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 헤어지기 전 세브란스 8층 테라스에서 헤모라이프 편집팀과 함께 셀피

[헤모라이프 김태일 하석찬 기자]

 

김태일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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