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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모필 Movie Feel> “스트레인저 댄 픽션”

기사승인 2018.06.20  02: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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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우사회인이 쓰는 '응고되지 않은' 영화평, 예순 일곱번째

   
▲ 스트레인저 댄 픽션-Stranger than Fiction (2006) 

누군가 말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만약 당신이 소설 속 주인공이 된다면 어떨까, 희극의 주인공이라면 해학과 풍자가, 멜로라면 아름다운 사랑이 기다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화려한 액션을 선보일 기회나 위대한 영웅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장르가 비극이라면 어떨까.

마치 정교한 기계처럼 철저히 계획적인 일상을 보내는 국세청 직원 헤롤드 크릭은 여느 때와 같이 단조로운 일상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헤롤드의 머릿속에서 영문모를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헤롤드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치 소설 속 묘사처럼 3인칭으로 묘사하는 목소리에 헤롤드는 혼란을 느낀다.

   
▲ 스틸컷

정신과 의사를 찾아 진료도 받아 보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헤롤드는, 목소리가 마치 소설 속 묘사 같다는 것에 착안하여 문학 교수 줄스 힐버트를 찾아 도움을 구한다. 우여곡절 끝에 목소리의 서술 방식, 즉 문체를 통해 목소리의 주인공이 캐런 에펠이란 작가라는 것을 알아내는 데 성공한다. 힘들게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지만 그리 밝은 소식만은 아니었다. 캐런은 쓰는 글마다 주인공을 죽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기묘한 현상으로 인해 캐런이 타이핑한 소설의 주인공 그 자체인 해롤드는 소설의 전개로 인해 공사 착오로 집의 전면이 부서지는 희극과도 같은 일과 세금 문제로 방문한 제과점에서 연인을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며 멜로드라마 같은 일도 겪지만, 그 모든 일련의 사건 끝엔 자신의 죽음이란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 스틸컷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는 너무나도 유명한, 아니 누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당장 내일, 며칠 뒤에 죽게 될 것이란 말을 듣는다면 대부분 이들은 적잖게 당황할 것이다. 언젠간 죽음과 마주하게 될 것이란 걸 알고 있지만, 우린 그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가진 않으니까. 사소한 부분까지 철저히 계획된 일상을 살아가는 해롤드 크릭에게도 죽음은 계획되지 않은 일이었다.

힘겹게 작가인 케이 에이펠을 만나 자신의 운명이 정해진 글을 받게 되지만, 차마 자신의 최후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쉽사리 읽지 못한다. 결국, 자신의 운명이 적힌 글을 손에 쥐고 힐버트 교수를 찾아 대신 읽어달라 부탁하며 글을 건넨다. 헤롤드의 운명이 달린, 헤롤드에겐 마주할 용기가 안 나는 그 무거운 글을 가볍게 받아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던지듯 놓아버린 교수의 사소한 행동은 자신에게 중요한 일일지라도 타인에겐 얼마든지 가벼워질 수 있음을 영화적 장치를 통해 간결하게 보여준다. 이는 혈우사회의 환우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되는데, 환우에겐 혈우병이라는 병의 무게가 누구보다 무겁게 느껴지겠지만 타인에게 있어선 그저 불편한 병을 앓고 있는 가벼운 사실로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타인을 이해하려 한들 자신의 문제가 아닌 이상 본인만큼의 관심을 가질 수 없단 사실을, 영화에선 하나의 씬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 스틸컷

헤롤드의 삶의 모든 순간은 타이핑된 문장대로 흘러간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의 매일 같이 똑같은 일상을 보내오던 헤롤드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계획이란 틀 속에 흘러가는 쳇바퀴와 같은 삶이었으니까. 버스에 올라타 차마 읽지 못했던 글과 마주하고 자신의 운명을 읽어나가는 헤롤드가 ‘계획된’ 노선을 주행하는 버스 속에서 ‘계획된’ 자기 죽음을 읽어나간 뒤 버스에서 내리는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계획된 경로에서 벗어나 케이에게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이겠노라 고하는 헤롤드는 비로소 계획에서 벗어난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헤롤드의 삶은 비단 헤롤드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타인이 계획한 틀 속에 갇혀 흘러가고 있진 않은가. 어쩌면 혈우병이란 틀 속에 갇혀 노선 밖의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고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정강훈 평론가]

정강훈 평론가 hun@hemophilia.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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