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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모필 Movie Feel> “어나더 어스”

기사승인 2018.06.11  04: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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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우사회인이 쓰는 '응고되지 않은' 영화평, 예순 여섯번째

   
▲ <어나더 어스>, 이 영화는 2011 선댄스 영화제에서 알프레드 P. 슬로안 상을 수상했다.

필자는 SF(Science Fiction, 공상 과학) 영화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미션 투 마스>나 <그래비티>, <콘텍트>, <마션>과 같은 하드 SF 영화(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에 중점을 두고 만든 영화)를 선호한다. 물론 <스타워즈>나 <제5원소>처럼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도 좋아하지만 그런 영화들보다는 좀 더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내용이 가미된 영화를 더 선호한다.

   
▲ 포스터에도 사용된 유명한 그림, 물론 CG 처리된 그림이지만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처리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하드 SF와 스페이스 오페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한가지 예로 비슷한 시기에 나온 <딥 임팩트>와 <아마겟돈>을 비교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물론 <아마겟돈>을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하드 SF는 아니고 그냥 SF 블록버스터 영화 정도 될 것이다. 하지만 <딥 임팩트>는 우주 공간에서의 움직임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렸고, 한없이 답답해 보이기도 하지만 우주라는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실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과장되지 않은 액션으로 관객에게 하드 SF 장르를 보여주었다.

   
▲ 그렇다, 그녀는 술이라는 선악과를 마시지 말아야 했었다.

<딥 임팩트>의 성공으로 SF 장르에 드라마를 섞는 일이 많아졌다. 커스틴 던스트 주연의 <멜랑콜리아>, <어라이벌>, <더 문>, <어나더 어스> 등 영화 내 SF적인 사건들은 영화의 소재일 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주인공과 그 주변인이 엮어 나가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어나더 어스>도 마찬가지, 영화의 제목인 또 다른 지구는 이 영화에서 크게 부각되는 주제가 아니다.

   
▲ 한가정을 파괴로 몰아넣은 음주 운전 사고, 음주 운전에 한눈까지 팔았다. 그녀는 평생 이 죄악에서 속죄 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우주 공학에 관심이 있던 로다 윌리엄즈(브릿 말링 분)는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벌써 MIT 공대 합격 통지서를 받은 수재이다. 그녀는 친구들과 고등학교 졸업 겸 MIT 입학 축하 파티를 열었다. 이렇게 그녀의 인생은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술을 마신 후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향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말았다.

   
▲ 출소하고 나온 하늘에 보이는 푸른 행성, 낮에도 보일만큼 밝아졌으며 그 크기는 점점 커지는 중이다.

한편 집에 돌아가던 버로우스네 가족, 아들과 임신한 아내, 그리고 존 버로우스(윌리엄 마포터 분)가 탄 차량은 가만히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라디오에서 생명체가 있을 수 있는 행성을 발견했다는 말을 듣고 창 밖을 보며 한눈 팔던 로다의 차량과 부딪히게 된다. 순식간에 일가족을 몰살하게 된 로다, 아직은 미성년자로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채 4년간 감옥생활을 하고 출소하게 된다.

   
▲ 외부와 단절하고 쓸쓸히 살아가는 로다, 그럼에도 그녀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출소 후 하늘을 바라보는 로다, 그때 그 사고 날에 보았던 자그마한 행성은 벌써 달보다도 커졌고 대낮에도 보일 만큼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그녀는 일가족을 몰살시킨 음주 운전 사고의 전과자, MIT에도 합격할 만큼 명석한 머리를 가졌지만 대인 기피증이 생긴 그녀는 조용히 일할 수 있는 청소부 일을 하며 살게 된다.

   
▲ 교통사고에서 희생된 아들을 기리기 위해 사고 현장에 장난감을 놓고 가는 존, 로다는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하고 자신이 저지른 사건의 피해자가 버로우스네 가족이라는 걸 알아낸다.
   
▲ 식료품 가게에서 만난 옛 고등학교 시절 동창, 같이 놀던 그들은 사회에서 알아주는 엘리트로 성장했지만 로다는 그저 청소부일 뿐이다.

고등학교에서 청소부 일을 마치고 길을 걷다 무심코 사고 현장 근처를 지나던 로다는 사고현장 사거리에 장난감 로봇을 두고 떠나는 한 남성을 보게 된다. 그가 두고 간 장난감 로봇은 바로 그 자리에서 사망했던 아들을 위한 것, 그는 바로 그녀가 사고 낸 차량에 타고 있던 존 버로우스, 즉, 가장인 그만 살아남고 모두 사망한 것이다. 음악가이자 예일대 교수인 존은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있었고 회복한 이후에는 혼자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그에게 찾아가 사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의 집으로 떠난다.

   
▲ 동생이 알려준 우주 여행 사이트를 찾아보는 로다, 그녀의 용서받지 못할 잘못에 대한 내용을 컨테스트의 수기로 적는다.
   
▲ 점점 다가오는 푸른 별, 이제는 지구 2라고 명명된 이 행성이 다가오면서 사람들은 두려움과 좌절, 슬픔을 느낀다.

무작정 그의 집에 노크를 한 그녀, 과거의 일은 모두 그녀의 잘못이라고 고백하려다가 말문이 막힌 그녀는 청소 업체에서 무료 청소 서비스를 해준다며 거짓말을 한다. 존 역시 다른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여 그녀의 말을 바로 거절하였지만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그의 집은 청소가 필요하긴 했다. 게다가 공짜 이용권이라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 사죄를 하기 위해 존의 집을 방문한 로다, 한동안 정리되지 않은 그의 집은 쓰레기로 가득차 있다.

그렇게 잘못을 고백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로다, 일단 무료 청소 서비스 체험이라고 했으니 집안을 치우기 시작한다. 이곳 저곳 청소하다 깨끗한 톱을 발견한 로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존은 이제 그만하고 가라며 톱을 가로챈다. 하지만 그녀의 청소가 마음에 들었는지, 다음주에도 와서 청소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 집 안도 엉망이기는 마찬가지, 그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거의 반 폐인으로 숨어 지내고 있었다.

다음주에도 그의 집을 방문한 로다, 이번엔 문앞에서부터 할말이 있다고 했지만 다짜고짜 청소부터 하고 말은 나중에 하자는 그의 다그침에 또 고백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오랫동안 정리가 안되어 있던 그의 집, 이곳 저곳을 청소하면서 가족들과의 추억이 담긴 그의 물건들을 볼 때마다 로다는 눈시울이 뜨거워지지만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의 집을 청소하기만 한다.

   
▲ 청소 도중 우연찮게 발견한 존의 가족의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들, 그녀는 자신이 파괴한 가족의 행복한 사진을 보고 속으로 울음을 터뜨린다.

어느새 달보다도 몇배나 더 커진 행성, 놀랍게도 그 행성은 지구와 똑같이 생겼으며 심지어 똑같은 지구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진다. 사연을 적어서 보내면 추첨하여 이 지구2라고 명명된 행성에 여행을 보내주겠다는 사이트까지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하지만 로다는 존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일만이 그녀의 관심사이다.

   
▲ 우연찮게 망원경을 조립하던 로다를 보게 된 존, 그는 망원경으로 지구2의 모습을 로다에게 보여준다.

결국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채 가까워져버린 둘의 관계, 우연찮게 응모했던 지구2로의 여행에 당첨된 로다는 그에게 떠난다는 말을 전한다. 하지만 또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을 겪고 싶지 않았던 존, 그는 그녀에게 떠나지 말라고 부탁한다.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음주 사고의 운전자였고 미성년자이기에 신원이 공개되지 않아 존이 누가 사고를 냈는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전하게 된다. 평생 자기 가족을 해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죽일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는 결국 그녀의 목을 조르게 되는데…

   
▲ 점점 사이가 가까워지는 두 남녀, 손님을 접대해 놀기에는 닌텐도 위만한 게임기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지구 2가 나타나고 점점 가까워지며 이것이 지구와 똑 같은 행성이라는 내용은 이 영화의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소재일 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 흔하디 흔한 우주선 발사 장면도 없으며, 외계인이 나오지도 않고, 그저 이런 우주의 현상이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는 것이 전부이다. 결국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용서와 후회, 자책과 실망감을 표현하기 위한 영화이며 우주 현상이나 지구 2의 등장이 없어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 이제는 달보다 수십배 더 커진 지구2, 점점 다가오며 사람들은 불안에 떨지만 로다의 관심사는 오직 존에게 잘못을 고백하는 일이다.

하지만 왜 이 영화는 굳이 SF적인 요소를 드라마적인 내용에 넣었을까? 아마도 우주라는 존재 자체가 미지의 무엇, 두려움의 상징, 접근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로다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깊은 후회를 하며 심지어는 자살까지 생각하며 이러한 고통을 끝내려고까지 한다. 또한 존은 가족을 잃은 상실감에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폐인처럼 살아가며 남들과의 만남을 극도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인간 내면적인 요소를 우주의 공허함,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우주와 지구2라는 소재를 끌어들여 표현해 낸 것이다.

   
▲ 지구2로의 여행에 당첨된 사실을 존에게 말하는 로다, 존은 이제서야 서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며 떠나지 말라고 말한다.

이러한 우주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 허무함과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을 바로 “코스믹 호러”라고 한다.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우리는 한없이 작은 존재이고,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우리의 삶은 스쳐 지나가는 정도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일 힘겹게 내일을 위하여 발을 내 딛는다. 마치 내일엔 모든 것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아마도 혈우 환자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처음에 다가오는 두려움과 고통, 아마 이런 것들은 알지 못해서 더 힘들때가 많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에겐 이런 시련을 이겨낼 힘이 있었다. 누가 뭐래도 우리 혈우 환자들은 이러한 시련을 이겨낼 강인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 할 수 있다.

   
▲ 존과 로다, 그 둘은 모두 특별하다. 아마 지구1, 2가 없더라도 이 둘은 특별하게 만남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

- SF에 드라마적인 요소를 잘 버무려 만든 영화

- 브릿 말링 예뻐요!

 

이런 분들은 좀…

- SF 영화라면서 우주 얘기는 요맨큼!

- 영화라면 역시 액션이 가미된 블록버스터 영화지!

 

[헤모라이프 황정식 기자]

 

황정식 기자 nbkiller@hanafos.com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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