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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호 환우 “공무원 생활이 어떠냐고요?”

기사승인 2018.05.21  09: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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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생활 4년차 그의 행복한 고민은?

이번에 소개할 인터뷰 주인공은 젊은 환우들 사이에서 부러워하는 직종 중 하나인 ‘공무원’생활을 하시는 분이다. 현재 구청에서 근무를 하고 계신 장인호 환우이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인데도 출근을 하셨다고 해서 퇴근시간에 맞춰 근무하고 계시는 구로구청으로 직접 찾아갔다(공무원은 근로자의 날에 쉬지 않아요^^).

저녁에 비가 온다고 해서인지 낮부터 습도가 높은 더운 날씨였다. 그래서 시원한 모밀국수를 먹고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계획을 잡았는데, 간단히 햄버거로 식사를 하자고 해서 구청 근처에 있는 버커킹으로 들어갔다.

   
▲공직생활을 즐겁게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고 계신 장인호 환우

“안녕하세요. 구로구청 자동차 관리과에 근무하고 있는 장인호(57세·8인자 중증)라고 합니다. 가족은 아들 2명과 아내가 있는데, 현재 아내는 아이들과 따로 살고 있고요. 저는 어머님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하 기자 : 구청 자동차 관리과에서 하는 일은 어떤 일인가요?

인호 씨 : 제가 하고 있는 업무는... 일단 자동차를 운행하게 되면 의무보험에 가입해야하는데, 의무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 있으면 과태료를 물게 되어있어요. 즉 의무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채 운행을 해서 걸리면 형사처벌 대상으로 2년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의 벌금을 받게 되어 있어요. 그런 것들이 카메라에 찍혀서 적발이 되면 저희 자동차 관리과로 넘어와요. 그러면 저희가 수사를 해서 경찰에 송치하는 업무를 하고 있어요. (유 기자 : 적발 건이 많은가요?) 거의 평균적으로 누적되어 들어온거라 1년에 정확하게 몇 건이 들어온다는 횟수는 없어요. 저와 다른 직원 1명이 경찰에 송치하는 게 150건 정도이고, 우리관할이 아닌 조사대상자를 이첩을 보낸다고 하는데, 그런 경우도 200건 정도 되요. 이것도 아무때나 수사하는 게 아니라 발생 당일로부터 공소시효가 5년인 것으로 5년 안에는 전부 처리를 해야해요. 이 업무는 우리 관할에서만 하는 업무인데 일반 경찰관은 사법경찰관이라고 부르지만 저희처럼 특별한 업무를 위해서 검찰청으로부터 수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특별사법경찰관인 셈이에요. (유 기자 : 각 지역 구청마다 있는거죠?) 특별사법경찰관은 구청에만 있는 게 아니고 세무서에도 있어요.

하 기자 : 구청에서 일을 하신지는 오래되셨나요?

인호 씨 :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올해로 3년 되었어요. 제가 2014년도에 공무원 시험을 봤어요. 그전에 젊었을 때는 경양식 레스토랑도 운영해 봤었고, 일반 회사도 다녔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어서 부동산도 5년간 해봤어요. 그리고 건설회사에도 10년 정도 근무했었어요.

하 기자 : 공무원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한 계기는요? 

인호 씨 : 공무원이 되기 5년 전에 부동산을 운영했었어요. 현장을 직접 가봐야 되는 상황이 발생해요. 하지만 모든 권한을 내가 가지고 있고 노하우가 있어도 사람이라는 게 일단 육체적으로 보이는 노고만을 취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인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기여를 했다는 식으로... 속된말로 화장실 갈 때와 갔다 와서처럼 상이하게 틀린 부분이 생기다보니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그 다음에 영업활동을 하면서도 본의 아니게 법에 저촉되지 않는... 속된말로 사기를 포장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가 있어요. 나쁜 물건을 좋은 물건으로 성사시키는 식으로... 그런 부분들이 정의라는 것을 떠나서 제 의지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부동산을)접었었죠.

그렇다고 타이트한 조직생활을 하기 에는 어렵고 나이도 많아 다시 재취업을 한다는 게 쉽지도 않고... 공무원은 실력만 있으면 그런 것은 따지지 않잖아요. 막상 시험을 준비했지만 어려운 도전이고 결심이었어요. 2013년도에 열심히 준비해서 2014년도 합격 한 거죠. 사회에서 우리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한테 차별대우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걸 떠나서 어찌보면 장애인은 특혜를 받고 있어요. 어려운 일도 안 시키고 자기에 맞게 능력껏 시키고 증증 장애인 경우는 도우미까지 지원을 해주고 시험에 응시할 때도 장애인만 따로 보고 일반 행정보다 커트라인도 좀 낮고... 우리 혈우 환자들 중 장애등급이 있으면 이렇게 불확실한 시대에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도 많지 않기에 공무원 시험에 도전을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하 기자 : 현재 직업에 만족은 하세요?

인호 씨 : 그럼요. 만족하고 있어요. 개인 사업은 둘째치고, 조직단체도 일반 사기업은 업무가 끝나고 나서도 (일은)연장이에요. 이제는 이 일을 하고부터 걱정이 하나 생겼는데, 5일제 근무이다 보니 토요일이나, 공휴일 경우 쉴 때는 뭘 해야할까? 하하하 행복한 고민에 빠진 만큼 업무가 편하다는 거겠죠.

   
▲공휴일이나 쉬는 날엔 무엇을 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게시다고 ㅎㅎ

하 기자 ; 혈우병 진단은 언제 어떻게 받게 됐나요?

인호 씨 : 외삼촌들 말씀으로는 제가 3살 때 넘어져서 피가 나는데 멈추지를 않더래요. 왜냐면 삼춘들도 경험을 먼저 해보셨기 때문에 혈우병일 수도 있겠다는 인식을 하셨데요. 그래서 그 뒤로 모든 일에 조심성이 생겼다고 해요. 정상적으로 혈우병이라고 진단을 받은 것은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님과 함께 을지로에 있는 백병원을 방문했어요. 그 당시 저를 진찰하셨던 '김경석 박사님'한테서 정확한 진단을 들었어요. 그때 부모님이 선생님께 "왜 쟤를 학교에 보냈냐"며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고 해요. 그 당시 중증은 중환자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죠. 예전의 장년층 환우들도 그렇듯 아프면 아픈 대로 그냥 참았어요. 그러다가 적십자 병원에서 AHF를 처음 맞아봤어요. 그때도 충분한 약 공급이 안되던 시절이었어요.

하 기자 : 약이 없던 어린 시절 출혈로 인해 힘들었든 기억은?

인호 씨 : 힘들었던 거는 아플 때가 다 힘들었죠.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진짜 생사를 넘을 때가 한 번 있었던 거 같은데...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자전거를 배운다고 하다가 (자전거)핸들이 배를 부딪히면서 배를 쳤는데 그러면서 장출혈이 왔던 거 같아요. 그때는 증상이 오면 오는 거다 생각하고 아프면 아픈 대로 쉬는 식으로 보름정도 아팠던 거 같아요. 장출혈이 나니까 음식을 먹지도 못하다 보니까 황도 복숭아 통조림에 들어있는 음료를 먹고 견뎠어요. 아픈걸 따지자면 셀 수 없이 많았죠. 평상시에 아픈 것 중에 환자니까 그 느낌을 알지만 일반 사람은 모르잖아요. 일단 출혈이 생기면 모든 것이 다 짜증이 나고 기분도 나쁘다 보니까 통증을 멈추기 위해서 그 당시 진통제였던 ‘사리돈’을 먹고 그냥 잠들어 버리는 거에요. 자고 나면 그 다음날 조금 출혈이 멈추니까 움직이지는 못해도 고통은 사라지고 없죠. 수 없이 반복되는 것 중 하나인 거였죠. (하 기자 : 저는 개인적으로 하루에 ‘사리돈’을 20알까지 먹어 본 적이 있었어요) 와~ 난 그 정도까지 안 먹어봤어요. 아마 지금의 젊은 환우들은 잘 모를 거에요.

유 기자 : 혹 일하시다가 급성으로 출혈이 온 적은 없었어요?

인호 씨 : 아~ 지금 그것도 항상 유지요법을 하고 있지만 미스테리에 가까운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환우들도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유지요법을 항상 하는데도 꼭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그 도를 넘어서 옛날의 출혈증상처럼 가끔 오더라고요. 이럴 때 출혈이 나는 게 제일 불편하고 힘들어서 그전에 부평에서 근무할 때도 집을 직장 가까운 곳으로 옮겨서 생활했었고, 지금 여기도 직장과 가까운 10분 거리에 집을 구해서 언제든지 예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지금 직장에서는 제가 희귀질환자라는 걸 모르고 있기 때문에 회사에 약을 비치해 놓고 약을 맞을 수는 없어요. 그리고 사기업보다 공무원은 몸이 아프면 '조퇴하겠다'고 말하면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하 기자 : 와~ 되게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네요. 하하하)

하 기자 : 수술이나 입원 경험 있으세요?

인호 씨 : 수술은 아직 한 번도 안했는데, 입원은 한번 한 적이 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낚시를 간적이 있어요. 그때 비가 내렸었는데, 엉덩이에 종기가 난걸 깜빡하고 있다가... 종기가 터지면서 피가 엄청 난 적이 있었어요. 출혈이 멈추지 않아서 적십자 병원에 입원해서 AHF를 맞았어요. 그 뒤로 출혈이 멈춰서 퇴원했어요. (유 기자 : 관절 상태가 좋으신가봐요? 특별한 수술 계획은 없으세요?) 수술을 하기는 해야하는데... 수술한다고 해도 바로 '뚝딱' 되는 것도 아니고 항상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까 거기에 투자할 시간이 없는 거 같아요. 그래도 그나마 버틸 수 있으니까 견디는 거죠.

하 기자 :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인호 씨 : 음... 따로 하는 건 없어요. 몸에 좋다는 거 잘 먹으면 되는 거 같아요. 예전에 근육에 좋다고 해서 스트레칭을 열심히 했는데 출혈만 생긴 아픈 경험이 있다보니까... 스트레칭도 안 해요. 체력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환우들은 자주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배가 나오는데 먹는 양을 조절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제가 혈압이 있어서 약을 10년 동안 먹고 있는데... 체중에 따라 혈압도 올랐다가 내렸다가 하더라고요.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 양과 상관없이 항상 남기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안 좋아 보이겠지만 왠지 이 음식을 다 먹으면 과식을 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많이 못 먹겠더라고요. 살이 찌는 건 쉬워도 빼는 건 무지 힘들잖아요. 솔직히 자전거를 타고 싶어도 각도가 안 나와서 못타고 있고, 도보도 발목상태가 안 좋아 지니까 못하는 상황이죠. 그러다가 요즘 홈쇼핑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하하하... 괜찮겠다고 생각한 물건이 있어서 사다보면 짐만 한두 개씩 늘어서 절충하고 있어요. 하하하

   
▲직원들과 양평tpc에서 기념촬영 한컷~

하 기자 : 취미활동과 여가시간 활용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인호 씨 : 취미활동은 너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해서 다 못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골프도 좀 해봤고, 바다낚시도 많이 다녀봤고. 당구에 기타도 다 쳐봤어요. 지금은 시간이 생기면 예전에 했던 것들을 돌아가면서 반복적으로 즐기기는 해요. 인간이라는 게 항상 도전 의식이 있다 보니까 욕심이 생기면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어지기 때문에 아예 눈을 돌리려고 생각을 안 하고 있어요. (하 기자 : 당구는 얼마나 치세요?) ‘알다마’ 400인데, 지금은 재미가 없어서 안치고 국제식 대다이로 21점되요.

하 기자 : 끝으로 환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인호 씨 : 혈우환우라는 특정적인 부분을 떠나서 모든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해서 도전을 하는데... 도전과 목표는 많이 세우지만 사실상 달성하는 게 쉽지 않아요. 20가지의 많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해도 저는 차이는 없다고 봐요. 정상에 한번 도달해 본 사람은 노력의 댓가가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기에 또 다른 정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도전하려는 의지가 있는데, 가보지 못한 사람은 노력만하고 돌아와서 포기하는 경향이 많다 보니까... 어떠한 것을 한가지 하더라도 끝까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환우들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목표가 설정되면 좋은 결과물을 산출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서 끝까지 가야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꼭 좋은 결과를 쟁취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의암댐에서 낚시 중입니다~

혈우사회는 장년과 청년들이 잘 어울어져야 더 단단한 힘 있는 조직이 되는 거 같다. 어는 한 곳의 목소리만 크게 낸다면 100%로 완성이라는 건 멀어질 수 있다. 오늘 만난 장인호 씨와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이 바로 이런 거다. 물론 그 목소리 모두가 코헴회에 관심이 있는 환우들이겠지만, 아예 방관하고 나서지 않고 소식만 접하는 환우들도 많을 것이다.

나 스스로 주장하지 않으면서 나에게 맞는 걸 찾아달라는 것... 과연 문제가 해결될까? 어린아이들도 사탕하나 사달라고 엄마를 조르는데 하물며 행동없이 쟁취를 한다는 게 있을 법할까 말이다.

초기 때 코햄회와 지금의 코헴회. 분 단위를 따질 수 없을 만큼 흘러온 많은 시간 안에 그가 말한 것처럼 목표를 달성한 것이 있는 반면 결과물을 얻어 내지 못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결과물을 얻어 내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고 본다. 더 많은 연결고리가 환우들 사이로 이어진다면 음지에 있는 혈우인들의 참여도도 분명히 높아질 거라고 생각된다.

[헤모라이프 유성연 기자 하석찬 기자]

 

유성연 하석찬 기자 tjddus@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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