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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인터뷰 - 열아홉번째 주자 : 김대봉님

기사승인 2018.05.03  09: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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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워야 새로운 걸 채울 수 있어... 아직도 더 비워야"

한국의 등록된 혈우병 환우는 2300여 명이다. 그 환우의 가족들과 의료진, 환우협회와 보건당국, 복지단체와 제약산업 관계자까지 포괄하여 '혈우 사회'라 부르는 건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고, 내밀한 부분까지 터놓고 이야기 할 공간도 많은 것은 아니다. 본 '릴레이인터뷰'를 통해 한 번 서로의 맨얼굴을 바라보고 이야깃거리를 털어보자. '너와 나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시즌3 현재 릴레이 순서) 김은기 위원장 – 조수호, 조진원 형제 – 황정식님 - 조진기님 - 이명림님 - 이귀병님 - 전수지 간호사 - 이승민님 - 이남일 간사 - 지현승님 - 조달호님 - 김종필님 - 김수섭 아버님 - 김선경 복지사님 - 김진규님 - 김연수님 - 장영진님 - 이강안님 - 김대봉님


이강안 원장님의 바통을 이어받은 릴레이인터뷰 주자는 2014년부터 2015년도 한국코헴회 회장을 역임한 김대봉 전 회장님이다. 해박한 지식과 열정적인 화법을 지닌 혈우계의 '오피니언 리더'로 알려져 있어 기자들도 잔뜩 긴장하고 마주 앉았으나 생각 외로 편안한 시간으로 인터뷰는 진행되었다. 근처의 새로 연 돈까스 집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갖고 댁으로 들어가 향이 진한 커피를 직접 드립해 내주셨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 나오고 마치 카페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녹음기를 켰다.
 

1.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59세 김대봉입니다. 8인자 중증이고요. 고향은 서울인데 부천엔 87년도에 이사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뭐 하는지가 중요하겠네요? 원래는 중고생들 영어를 10여 년 가르쳤었는데, 취미가 직업이 됐죠. 컴퓨터를 좋아해서 그쪽으로 공부를 더 하다보니까 IT업계랑 계기가 닿아서 웹 개발 일을 하게 됐고 지금은 현장 졸업하고 프리랜서로 짬짬이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까 우리 혈우환자들도 취미활동을 너무 시간 때우기 식으로 하지 말고 좀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잡아보는게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살다보면 꼭 전공한 쪽으로만 일이 풀리는 건 아닌 것 같더라구요.

   
▲ 부천시 원종동으로 찾아가 만난 김대봉님

2.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제 세대를 감안했을 때 꽤 빠른 편인 1962년도에, 세 살 때 진단을 받았는데 애들 뒤집기 시작하면 안아올리다 가슴에 멍도 들고 그러잖아요? 바로 위에 누나가 샘나서 동생 꼬집은 거 아니냐고 어른들한테 의심받을 뻔 하다가 일찍 진단받는 덕에 누명을 벗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어려서 큰 수술을 두 번 했는데, 두 번 다 어린 마음에도 ‘아, 엄마를 못 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더랬죠. 초등학교 2학년 때 등교하는데 친구가 태권도 발차기 시범을 보여준다고 제 이쪽(허리)을 걷어차더라고요. 학교에 있는데 몸이 점점 이상해지고, 아마 장요근 출혈이었던 것 같아요.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가니까 출혈이라고... 근데 당시엔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수혈만 받고 계속 누워있었어요. 그렇게 한 달 동안 붓기가 안 빠지고 악화돼서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혈종 제거수술을 했는데 그 뒤로 두 달 간은 제 기억에서 없는 시간이 됐어요. 혼수상태였고 나중에 들으니 매일이 고비였다고 하더라고요. 중간에 간간히 의식이 돌아올 때가 있었는데, 하루는 어머니 아버지의 대화를 들었어요. 어머니는 울고 계셨고 아버지는 술이 이만큼 취하셔서 하시는 말씀이, “얘가 사람 구실은 할까?” 라고. 당시에는 가슴에 꽂히는 아픈 말이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말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말이에요. 그 때 누워서 생각한 게 ‘내가 지금은 아파서 누워있지만 다 나아서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리라’ 생각했어요.

다른 한번은 복막염이 와서 그때도 ‘아, 이번엔 진짜 죽겠구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회복됐구요. 의사가 하는 말이 ‘살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다’고 했다더라고요. 60년대에는 혈우병 환자 평균수명이 11세였다고 하던데 제가 딱 그 세대였거든요, 병원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얘는 잘 살아봐야 열 몇 살까지다’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겼는지도 모르죠. 어렸을 때 별 이유 없이 찍은 제 사진들이 있어서 물어보면, ‘아프다가 살아나서’ 기념으로 찍었다고 들었는데, 사실 ‘죽으면 보려고’ 찍은 거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해요. 하여간 두 번의 수술은 저를 일찍 크게 만들었고, 죽는 게 뭔지를 알게 하는 사건이었죠.
 

3. 추천해주신 이강안 원장님과의 연결고리는?

기억을 더듬어보니까 2010년 남해에서 열렸던 코헴 여름캠프에서 처음 뵈었던 것 같네요. 우리 환우가 아파서 주사를 놔주시던 걸 봤는데 그땐 인사를 나누거나 그러진 못했고, 이야기를 나눈 건 제가 서울경기 지회장이 되고 나서 약품 처방용량 건으로 복지부를 방문했을 때, 당시에는 코헴회와 청심회가 사이가 안 좋았을 때인데 환자 치료에 있어서만큼은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거기서 처음 이강안 원장님과 좋은 대화를 나눴어요. 그 뒤로 코헴회와 청심회 공동으로 캠프도 갖고 밤새 토론하는 자리도 있어서 서로 많이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수 년 동안 단체끼리 부딪히는 부분도 있었지만 통합에 대해서 접근을 이룰 수 있었던 게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 와서 환자단체가 하나로 합쳐진 것에 대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4. 수술하신 곳은 어떠세요?

제가 무릎을 다치고 아프기 시작했던 게 한 40년 됐는데, 38년쯤 되는 때부터 통증도 심하고 아침에 일어나 걷기가 너무 힘들더라구요. 각도보다도 통증을 없애기 위해 수술을 결정한 건데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까 예정됐던 병원에서 전반적인 무릎 상태가 안 좋아서였는지 인공관절보다 ‘굳히는’ 수술로 바꿔보자고 하는 거에요. 실망스러웠는데 다행히 세브란스병원에서 의지를 갖고 해보자고 해서 인공관절 수술을 할 수 있었죠. 수술하면서 교수님이 고생 많이 하신 것 같아요.(웃음) 그렇지만 저는 상당히 만족해요. 통증이 없으니까 굉장히 좋고, 각도는 조금밖에 안 나와도 별거 아닌 그 각도가 생활을 많이 편하게 만드네요. 왼쪽도 하고 싶은데 아직 할 일이 좀 많아서 약간 미뤄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5. 최근 관심사는 무엇이신가요?

‘미니멀라이프’, ‘심플라이프’ 이런 거요.(웃음) 뭔가 자꾸 채우려고만 했는데, 쌓일수록 허전한 것 같고 오히려 비우니까 그 자리에 다른 것들이 들어오면서 더 채워지는 것 같은. 그래도 아직 조금 더 비워야 할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엔 커피. 직접 드립해서 마시는데 아프리카 쪽 원두를 좋아합니다. 맛있는 원두 가져오시면 내려드릴게요.(웃음)

6. 코헴회 회장 역임하실 때 기억에 남는 부분은?

보람으로 여기는 게 있는데, 비급여의료비 지원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게 기억에 남죠. 에피소드가 좀 있는데, 처음 시작했던 게 세계혈우인의날 때 걷기이벤트를 하면서 모금했던 금액을 이 지원사업의 시드머니로 했던 거죠. 그런데 이 사업을 일회성으로 끝낼 거면 시작도 안했을 거고 이듬해에 지원규모를 두 배로 늘리는 안건을 대의원회의에 재출했는데, 회원 복지를 위한 비급여의료비 지원사업이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통과될거라 생각한 건이 반대의견에 부딪히고 표결을 통해 힘겹게 의결되는 걸 보면서 아쉬움? 서운함? 같은 걸 느끼기도 했어요. 비급여의료비 사업이 시행되고 나서 후배들이 잘 했다고 전화를 해주었을 때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그 해에 여름캠프 사전답사를 갔다가 대구 코헴의집에서 박정서 당시 경북지회장을 만났을 때 ‘이 사업이 곡 필요한 활동이라 생각하고 예산을 열 배까지 키우고 싶다’고 제 생각을 밝혔고 동의를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박정서 회장이 재임한 지금 지원규모가 많이 늘어났고 환자단체로서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대봉 전 회장은 환자가족들에게 많은 혜택을 돌려줄 수 있는 사업이 혈우사회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7. 현재의 코헴회 활동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

민감한 부분이긴 하지만, 저도 일을 해 봤고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의 어려움이 다르다는 것도 알아서 애정어린 말씀으로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열심히 하려 하고 광폭행보라고 하나요? 그런 점은 좋아 보입니다. 그래도 선임자로서 조언을 하자면... 좀 더 준비를 많이 하고 공부 해 나가면서 사업을 추진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내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일은 결국 ‘회원들에게 어떤 이익으로 돌아오냐’와 연결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보여지는 부분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내실도 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대체적으로 잘 하고 있다고 봅니다.

   
▲ 코헴회장 재임시절의 청장년워크샵

8. 가장 가까운 시기에 다가올 것으로 보는 치료제의 변화는 무엇이라 보시나요?

약 얘기, 치료환경 얘기,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환자들도 전문가 못지 않게 말할 수 있게 된지 10여 년 된 것 같네요. 뭐 치료환경이야 무지하게 좋아졌죠. 저 어렸을 때만 해도 약 없이 살다가 죽을 줄 알았어요.(웃음) 이제는 여러 약 중 선택해서 맞을 수도 있고 나아가 완치까지도 거론되고 있으니까 기대가 크죠. 그렇지만 환자입장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좋은 약이 언제 나오냐’ 보다 ‘지금 현재 자신한테 가장 적합한 치료제와 요법으로 어떻게 건강관리를 잘 하느냐’가 첫 번째인 것 같아요. 신약에 대해서는 좀 신중하게 접근하고 기다리고 보면서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계혈우연맹 총재를 지낸 마크스키너씨가 지난 ASH총회 이후 인터뷰 한 기사를 봤는데, ‘언젠가 혈우병도 유전자치료로 완치가 될 거라 생각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Not Yet.’ 뭐 이런 표현을 하더라구요. 많은 경력이 있을수록 신중하게 보는 것 같아요. 우리 환우들도 좋은 소식은 그것대로 지켜보면서 일단 지금 현재 상황에서부터 최선의 건강관리법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9. 치료제 발전방향을 지켜보시면서 어떤 기대와 우려를 갖고 계신가요?

치료제를 크게 구분짓는 게, 부족한 응고인자를 보충해주는 ‘팩터 테라피’와 팩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응고를 유도하는 ‘논팩터 테라피’로 나눌 수 있어요. 최근엔 유전자치료를 빼고는 다 ‘논팩터 테라피’가 주로 연구되고 있죠. 편리성만을 놓고 본다면 이 ‘논팩터 테라피’들이 상당히 가치가 있는데, 우리 약이 편리성보다는 효과, 안정성이 더 우선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임상시험을 좀 더 신중하게 지켜보고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낼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약일수록 우려를 갖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우려들이 현실화되는 걸 보니 이런 오류가 없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싶어요. 우리 약이 단시간 내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것들일텐데 너무 경쟁에 휩싸여서 안정성은 뒤로 밀려나는 것은 아닐지, 그럼 그 위험은 환우들이 감수해야 할 것으로 남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운 면이 있어요. 아쉬우면서도 그래도 기대는 많이 갖고 있죠.

   
▲ 2014년 호주 멜버른에서 열렸던 세계혈우연맹 총회에서 호주 혈우재단과의 미팅을 마치고

10. 이번 세계혈우연맹 총회, 어떤 포인트를 갖고 바라보면 좋을까요?

이번 총회가 임박해서 초록집이 나오면 더 깊이 알아보겠지만, 일단 약에 대해서는 ‘논팩터 테라피’들에 대한 정리된 자료를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약에 대한 부분보다는 전반적인 혈우병 관리와 혈우병으로 인해 야기되는 다른 질병이나 문제들에 대한 관심도 많이 가졌으면 해요. 예전에는 등한시했지만 치료환경이 좋아지면서 드러나는 성인병이나 관상동맥 질환 같은 게 계속 문제될거라고 보거든요. 학술대회에도 많은 부분이 공급자 입장에서 발표되는 자료인데, 정작 사용자인 환자들 입장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여야겠습니다. 환자와 가족들이 더 공부하고 준비해서 이 총회를 맞았으면 좋겠네요.
 

11. 살아오시면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아프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때가 즐거웠던 것 같아요. 아프지 않고 공부를 하고, 가족과 피서를 가고 했던 때. 이건 약이 없던 시절의 얘기고요, 요즘은 또 다른 것 같네요. 요샌 기저귀 갈아주고 안아주고 했던 조카들이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고 하는 걸 보면 즐거워요. 동시에 ‘아 내가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하는 것도 느껴지고요.

   
▲ 가족 이야기를 하며 활짝 웃는 오늘의 주인공

12. 혈우인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으시다면?

요즘은 많이 못 보는데, 제가 다리가 많이 안 좋아진 게 고3 때였고 그때부터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추천하자면,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철학적인 얘기를 대중적으로 풀어쓴 책이고 뭔가를 결정할 때에 새롭고 넓은 면을 참고해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인 것 같아요. 소설에서는 ‘남한산성’ 있죠? 김훈의. 그 상황이 참 여러 현실에 대입해서 볼 수 있는 사건이고...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지도자가 치욕을 견디며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 국가든 단체든 그런 상황에 대비하고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13. 본인의 꿈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모든 환우들이 그렇겠지만, 건강하게 사는 거죠. 어린 친구들이 장애 없이 건강하게 살면서,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기 뜻을 크게 펼치고 사회적으로도 우뚝 섰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버지 영전에서 약속한 걸 마무리하고 그 후에 긴 외국여행을 하고 싶어요. 유명 관광지 그런데 말고 정말 그들의 삶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여행이요. (기자 : 아버님과의 약속이라면...) 어머님을 잘 모시겠다는 약속이죠. 약속을 다 지키는 날이 빨리 오지 않을수록 좋은 약속이죠. 한다고 하고 있는데 반 밖에 못 지키고 있는 건 아닐지..(웃음)

   
▲ 인터뷰를 함께한 김태일 기자, 김승근 주필, 김대봉님, 유성연 기자 (좌측부터)

14. 전체 혈우사회에 전하실 메시지

우리 혈우병 사회가 환자단체, 제약사, 의사선생님, 정부기관 등 많이 있죠. 혈우병 이슈들이 환자단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걸 잘 아실 겁니다. 의사선생님, 제약사, 그리고 가장 키를 쥐고 있는 게 복지부 같은 정책 결정자들이겠죠? 정책 결정자들이 우리 치료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을 이끌기 위해서는 나머지 제약사, 환자단체, 의사선생님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필요한 이유가 뭔지 그런 부분에서 같이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고 그랬을 때 정책 결정자들이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15. 다음 릴레이 주자를 주천해주세요.

우리 환자이자 정형외과 의사인 이상훈 선생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바쁘신 분인데 이 추천하는 게 방해가 되진 않을까 조금 걱정스럽긴 한데 받아주실거라 생각합니다. 이상훈 선생님과는 WFH 총회 때 두 번 같이 갔었고 가장 최근에 작년 WFH MSK 총회 때 봤습니다. 그 후로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는데 이번 기회에 근황도 좀 알려주시고 그랬으면 좋겠네요. 꼭 받아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시간 여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며 오늘의 인터뷰이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비록 현직에 있지 않더라고 우리 혈우사회의 소중한 자산으로 빛을 발해야 할거라는 생각을 했다.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해 준 김대봉 전 회장님께 감사를 전하며, 여전히 식지 않은 그 열정을 혈우환우와 가족들을 위해 내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 김대봉님을 만나고 싶은 분들은 냉동실을 열어 오래된 커피원두가 있는지 찾아보자 갈았던 갈지 않았던, 향이 진하건 날아갔건 중요하지 않다. 커피와 뜨거운 물처럼 일단 만나야 향은 우러난다 하겠다.

   
 

[헤모라이프 김태일 유성연 기자 김승근 주필]

 

김태일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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