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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기사승인 2018.04.22  11: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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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간암으로 세상 떠난 환우의 어머니

   
 

우리나라 혈우병 환우들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합병증은 '혈우병성관절증'을 제외하곤 단연 '간질환'을 들 수 있다. 사망원인 또한 단순한 간염이 간경화나 간암으로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90년대 초반까지 바이러스가 엄격히 제거되지 않은 혈액제제를 통해 많은 수의 혈우환우가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된 바 있다. 2000년대 초반 한국혈우재단 김은주 전 원장의 논문에 의하면 650여 명의 환우가 C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2016년 혈우재단 백서에는 2400여 명의 전체 환우 중 557명이 C형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

   
▲ 한국혈우재단 2016년 백서 중

이와 관련하여 제약회사를 상대로 환우들의 소송이 14년째 이어져오고 있고, 한국코헴회에서는 법적으로 다 보상받지 못하는 환우들을 위해 'HCV 협의회'를 구성하여 이해당사자들 간 협의를 시작하겠다 밝히고 있다.

법적 해결, 또는 사회적 합의를 통한 해소에 앞서 한국 혈우사회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건, 단언코 환우들의 간 건강을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것과 간질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최근에도 C형간염에 감염된 환우 일부가 간암으로 전이되어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고, '간경화도검사'에서 충격적인 수치를 받아든 청년 환우의 이야기도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헤모필리아라이프에서는 2년 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혈우환우의 어머니를 만나 인터뷰했다. 간질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소리없는 살인자' 간암에 대해 자기관리를 다시 챙겨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간염바이러스를 가진 적 있거나 지금도 가지고 있는 혈우병 환우라면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다.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아들 둘 있었는데 재작년에 작은아이를 간암으로 먼저 보내고 지금은 아저씨(남편)랑 큰아들 같이 살고 있어요. 


암을 어떻게 발견하셨었나요?

B형간염을 앓은 적 있었고 B형 항체까지 생겼는데, 갑자기 암으로 전이된 거였죠. 언젠가부터 빈혈이 심하다고 했는데 '혈우병 때문인가보다' 했지 다른 건 생각도 못했어요. 첫번째 쓰러졌을 때 병원에 빨리 가봤어야 했는데 집에서 주사(응고인자)만 맞고 다른 조치를 안했어요. 그러다 직장에서 하는 건강검진에서 간에 이상이 발견돼서 두 달 만에 재검 받아보니 암으로 진단되더라구요. 그 사이에 빠르게 진행된 것 같아요.

   
▲ 인터뷰 중에 어머님은 눈시울을 붉히시면서 같은 혈우환우인 기자들에게도 간 건강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셨다.

그렇게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나요?

잘은 모르겠지만, B형간염 치료하면서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니까 피부과에서 머리 나는 호르몬제를 한 2년 처방받아 먹은 게 암 전이를 촉진시킨 것 같아요. 어디서 들으니 호르몬제가 간에 안좋다고 먹지 말라고해도 자존심 때문에 포기하질 못하더니... 그랬던 것 같아요. 피부과에도 자기가 가진 혈우병이나 B형간염에 대해서 말을 안했던 것 같아요.

아이는 크면서 장출혈이 가끔 있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런 작은 출혈이 속에서 잘 안잡히고 새고 터지고 하면서 염증이 되고 암으로 변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자가주사도 못해서 매번 부모가 놔주고 형이 놔주고 하다보니 제때 주사도 안맞았던 것 같고요. 스스로 맞으라고 타일렀는데 아프고 그러니까 잘 못하더라고요. "나중에 하겠다"고만 하더니 나중에 언제...죽고 없는데...


진단받기 전에 전조증상이 없었나요?

없었어요. 간이라는 게 침묵의 장기라고 하잖아요. 게다가 빈혈 있고 간수치 않좋게 나오는 게 B형간염 때문이라고만 생각한거죠. 간이나 장이 조금씩 상하면서 출혈이 있고 그래서 빈혈도 있었던 건데 약도 안맞고 그러니까 특별한 전조증상도 못 느끼고 급속도로 안좋아 진 것 같아요.


진단 이후로 치료는 어떻게 하셨나요?

진단 받고 지역의 큰 병원에 가니까 '6개월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워낙 급성으로 진행돼서 수술은 엄두도 못냈고, 가기 직전까지 일주일에 백만원씩 하는 방사선치료도 해봤지만 소용 없었어요. 마약성 진통제로 버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서울에 다른 병원에서도 그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고요. 나중에는 복수도 차오르고 많이 힘들어서 지도 겁이 났는지 응고인자 주사라도 놔달라고 하더라고요. 병원에선 출혈도 없는데 놔줄리가 없었고 제가 간호사들 눈치 봐 가면서 응고인자 놔주고 그랬어요.

   
 

혈우병 가족력이 있었나요?

작은 아이는 장출혈 같은 내출혈이 많았고, 첫째는 발목, 무릎 같은 데에 출혈이 많았어요. 저희 큰오빠, 작은오빠, 동생까지도 혈우병이었는데 그 옛날 시골에서는 혈우병에 대해서 잘 몰라서 동네 사람들도 '저 집안에는 내림병이 있다' 정도로만 생각했었죠. 그러다가 작은오빠가 88년도에 사고로 크게 다치면서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처음으로 혈우병 진단을 받았고, 다른 형제들과 제 아들들까지 가족들이 줄줄이 혈우병인 걸 진단 받고 알게 됐어요.


아드님 보내시면서 마음이 많이 아프셨겠어요.

애들 키웠던 이야기를, 내가 글솜씨만 있었으면 책 한 권은 썼을 것 같아요. 너무 힘들었고... 오빠 동생들까지 약 없던 시절을 힘겹게 살아오다보니까 서로 의지도 됐지만 아픈 모습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어서 좀 그랬죠. 우리 애들도 자기 아픈 걸 좀 스스로 받아들이고 자기관리를 했어야 했는데 자가주사도 못하고 주사기록도 제가 대신 써주고 하다보니까 오히려 제가 환자로 살아온 것 같아요. 


우리 혈우환우와 가족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당부라기 보다도... 건강에 대해 너무 자만하거나 너무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안챙기면 아무도 대신 해줄 수 없는 거잖아요. 뒤늦게 후회하지 않으려면 늘 좀 관심갖고 생활도 흐트러지지 않게 하고 혈우병 갖고 있는 거 말고는 남들보다 못한 거 없잖아요. 똑같이 건강하게 살려면 병 없는 사람만큼은 똑같이 노력하자고 하고 싶어요.

   
 

어려운 자리인데도 선뜻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신 어머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어머님의 당부가 우리 혈우사회에 화살처럼 와 꽂히는 것 같다.

[공동취재 헤모라이프 김태일 유성연 하석찬 기자]

 

김태일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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