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환우와 그 가족들이 치료제에 대해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은 환우의 건강과 일상생활의 질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특히, 치료제의 '트로프 레벨(Trough Level)' 개념은 출혈 위험을 관리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로, 환우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사항이다. 이번 글에서는 트로프 레벨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이를 통해 환우들의 삶이 어떻게 향상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 일상 속의 비유로 ‘트로프 레벨’을 이해하기
트로프 레벨이 낮아지면 출혈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이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일상적인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커다란 물통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물통은 당신의 몸을 상징하며, 물을 채우는 것은 치료제를 투여하는 것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은 자연스럽게 증발해 물통 속의 물이 점점 줄어든다. 이때 물이 가장 적게 남아 있을 때의 양, 즉 물통이 거의 비어 있을 때 얼마나 물이 남아 있는지를 트로프 레벨이라고 한다.
만약 물통의 물이 거의 바닥에 가까워진다면, 작은 움직임에도 물이 쏟아지거나 물통이 쓰러질 위험이 크다. 반면에 물통에 여전히 충분한 물이 남아 있다면, 물통은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다. 이는 환우의 체내에 약물이 일정 수준 이상 남아 있어야만 출혈이 발생하지 않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 트로프 레벨의 또한가지 중요성 ‘타겟 관절의 회복’
트로프 레벨이 높은 치료제는 환우들에게 여러 가지 장점을 제공한다. 특히 '타겟 관절'이라는 자주 출혈이 발생하는 관절이 있는 환우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타겟 관절은 반복적인 출혈로 인해 손상되기 쉬운 부위로, 출혈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추가적인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트로프 레벨이 높은 치료제를 사용하면, 관절에 남아 있는 약물이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어 미세 출혈이나 재출혈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관리를 통해 타겟 관절의 개선과 회복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기존의 8인자 제제들은 주 2회 투여로 최저 3~5%의 활성도를 유지하는 데 그쳤지만, 사노피의 새로운 치료제 ‘알투비오’는 성인 환우에게 100%로 투여했을 때, 4일 후에도 약 40%, 7일 후에는 약 10%의 약물이 체내에 남아 있어 더 오랜 시간 동안 보호할 수 있다.
또한, 9인자 제제인 CSL의 ‘아이델비온’은 7일 후에도 체내에 약 20%의 약물이 남아 있어 더 높은 트로프 레벨을 유지한다. 트로프 레벨이 높은 치료제를 선택하면, 환우들은 치료제 투여 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보호받을 수 있어 출혈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 이는 특히 활동량이 많은 환우나 어린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점이다.
◇ 트로프 레벨과 삶의 질 향상
트로프 레벨이 높은 치료제를 사용하면 단순히 출혈을 예방하는 것 이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높은 트로프 레벨을 유지하면 환우들은 더 자유롭게 일상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학교에서 뛰어놀거나 성인이 직장에서 장시간 일할 때, 트로프 레벨이 낮은 치료제를 사용하는 경우보다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다.
특히, 치료제가 혈액 내에 오랫동안 남아 있으면 주사 횟수를 줄일 수 있어 일상이 더욱 편리해진다. 주사를 덜 맞더라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은 환우와 그 가족에게 큰 안도감을 준다. 또한, 타겟 관절의 회복도 기대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환우의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
즉, 혈우병 치료에서 트로프 레벨은 높을수록 환우들이 더 오랜 시간 동안 출혈 없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타겟 관절의 개선과 회복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트로프 레벨을 고려한 치료제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8인자 알투비오는 식약처에서 신속심사를 진행 중에 있으며, 9인자 아이델비온은 지난 7월부터 처방이 시작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의료진과 상의하여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제를 선택하고, 높은 트로프 레벨을 유지하며 안전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길 바란다.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
김승근 주필 hemo@hemophil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