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도 혈우병 수술에 환자와 의사 간 '라뽀' 중요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인공관절 수술 중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대리수술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관절수술을 많이 하는 혈우병 환자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월 이대서울병원에서 성형외과 A 교수가 피부재건술과 인공관절 부품 교체를 진행하던 중 부품 교체 작업이 잘 되지 않자 옆에서 참관하던 해당 부품 공급사의 영업사원이 대신 교체 작업을 했다는 구체적인 증언이 있었던 것.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가 수술에 참관하고 기기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직접 수술에 관여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로 지시한 사람까지 처벌 대상이 된다. 지목된 영업사원은 의료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부정하고 있고, 의료진에 대해서는 병원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로 알려진다.
이번 의혹의 경우, 인공관절에 대해 전문지식이 없는 성형외과 교수였다면 전문 정형외과 의료진과 협진을 했어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판단이다. 하지만 수술 현장에서 협의되지 않은 채 의료기기 관계자가 의료행위에 참여하는 관행은 종종 문제가 되어왔다. 2년 전 한 관절전문병원에서 업체 직원들이 수술에 참여한 사건으로 올해 6월 의료진과 업체 관계자 10명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이대병원 소식을 접한 한 혈우가족은 기자와의 대화에서 '혈우병 환자들도 인공관절 수술을 많이 받는데 저런 식으로 엉뚱한 사람이 수술을 하는 건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수 차례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혈우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 담당 교수가 수술방에 들어오기 전 전신마취를 하기 때문에 간호사나 레지던트 얼굴 밖에 볼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하지만 혈우병 환자 수술의 경우 난이도가 워낙 높고 국내에도 수술 가능한 정형외과 전문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정해져 있어 기술적 문제로 업체 관계자의 손을 빌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혈우병 환자들은 의사와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라뽀, 즉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무작정 몸을 맡기기보다 건강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을 공유하고 생활패턴과 향후 치료를 고려한 최적의 수술방법을 함께 계획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정형외과 뿐 아니라 어떤 수술을 하던지 반드시 혈액내과 또는 소아과 혈우병 전문의 협진을 통해 출혈에 대한 대비를 절저히 해야 하고 수술 후에도 입원 중 응고인자 관리를 충분한 기간 동안 해야 한다.
현재 수도권에서 혈우병 환자의 정형외과 수술을 원활히 받을 수 있는 병원은 강동경희대병원, 경희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정병원(성남) 등이 있다.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
김태일 기자 saltdoll@hemophil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