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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을 둘러싼 사람과 과학의 투쟁

기사승인 2024.09.03  23: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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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 넌 뭘 봤니? (스포 포함)

   
▲ 인간 대표 '레인'과 반가운 '제노모프'를 극장에서 만나 희귀질환의 미래를 생각해 봤다.

인간은 종(species)의 영속을 위해 어느 선까지 넘어설 수 있을까?

황폐화된 대지, 더이상 맨입으로 숨 쉬기 어려운 대기, 고갈되는 자원과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핵버튼 하나로 결정되는 전쟁들, 식민지 행성을 늘릴 수록 가혹해지는 노동 착취와 소수만이 독차지하는 정보...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 2142년 배경으로 그려진 인류의 모습이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사실 지금 인류가 처한 현실에서 100년 이상 떨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느껴지는 가까운 미래다.

오랫만에 에이리언 시리즈를 극장에서 만나 반가웠던 건, 1, 2, 3편과 달리 철학 색이 강했던 프리퀄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가 나에겐 왠지 마뜩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에이리언>이라면 모름지기 '벌레'가 가슴을 뚫고 나오고 입 속에 입 있는 그 침 범벅 괴수 앞에서 피땀에 절은 왜소한 인간들의 고군분투가 그려져야 제맛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로물루스>는 공포와 전투라는 예전 시리즈를 충실히 재해석했다는 평이 많고 그에 공감한다.

다만, 그와 함께 인간의 욕망에 대한 생각에 깊이를 더할 수 있게 해준 영화라는 감상을 해 볼 수 있겠다. 

<에이리언1>에서 회사(웨이랜드 유타니)의 외계 생명체 생포 목적은 '무기화'로 설정되었었으나 <로물루스>에서 다시 정의내린 목적은 인간과 에이리언 DNA 융합을 통한 '영생'이라고 말한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이 어떠한 미지의 존재나 힘이라도 도구로 부릴 수 있다는 자만심에 넘쳤던 시대에서, 나약한 육체를 넘어 신의 위치까지 도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리라. 어쩌면 그 영생을 지향하게 된 건, 초장에 적었던 우리가 처한 척박한 현실사회 속에서 당연한 자연선택의 역설일 것이다.

   
▲ 전편들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다수 오마주한 <로물루스>. 특히 말미에 우주복 씬은 팬으로서 애정 그 자체다.

하지만 유전자의 융합은 항상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지는 게 영화 속 클리셰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모든 질환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에 도마뱀 혈청을 주입한 리자드맨이 그랬듯 <로물루스>에서도 죽기 직전 강화되어 자신과 아기를 지키겠다는 욕망에 통상 '검은 액체'란 불리는 DNA 합성물을 자신에게 투여하는 인물 '케이'가 나온다. 결과는 예상할 수 있... 아니 예상을 뛰어넘는 어마무시한 크리처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많은 에일리언 팬들의 환영(?)을 받는다. 

과학의 발전은 항상 두렵지만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 용기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용기가 무모한 자만에서 비롯되거나 자본의 경쟁에 휩쓸려 검증의 속도보다 앞서간다면 결과는 돌이키지 못할 재앙으로 이어질 것은 자명하다. 

희귀질환에 대한 치료법 개발도 같은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바야흐로 유전자 치료를 통해 질환을 치료하는 본격적인 시대가 막을 열었다. 단순히 정상 유전자를 보충하는 것을 넘어 유전자를 체내외에서 교정하고 편집하는, 말 그대로 인간 고유의 형질을 재배치하는 수준까지 시도되고 있는 거다. 의도한 대로만 교정된다면 좋겠지만 과학은 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만들어냈듯 그 어두운 면 또한 조심스럽게 더듬어 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림자의 후과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 될테니까.

희귀질환 신약 임상시험이 다소 환자 중심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은 오랫동안 학계 내에서도 있어 왔다. 임상 참여자 모집 단계에서부터 약효가 저조할 수 있는 환자군을 철저히 배제한다던지, 약효를 정의할 수 있는 척도(혈우병의 경우엔 연간출혈률 등)가 전세계 공통으로 정형화되지 않는 문제, 기존 치료법과의 비교연구에서 기존 치료법의 효능이 상대적으로 낮게 측정되는 경향 등의 고민이 학술세미나를 통해 발표되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한다.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의약 세미나의 최대 스폰서는 글로벌 제약회사들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일부 환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혈우병 신약 임상시험 참여자 중에는 '교수님한테 혼날까봐 출혈이 있어도 말을 못하겠다'는 환자도 있다.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가지 않은 과학의 길을 처음 내딛는 희귀질환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조금 더 겸손하고 신중한 자세로 인류 발전의 돌을 놓아야 할 것이다. 비단 임상시험의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것 아니라, 새롭게 열린 치료법에 대한 장기적이고 환자 중심적 관찰도 필요하며, 기존 오랫동안 검증된 치료법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기술에 비추어 안전한 최적의 쓰임이 연구되어야 마땅하다.

   
▲ 반전연기가 돋보였던 AI 휴머노이드 '앤디'는 인간에게 버림받기도, 또 과학 발전을 위해 인간을 져버리기도 한다.

'로물루스'는 알려진 바와 같이 로마신화에서 쌍둥이 동생 '레무스'와 함께 버려졌다 함께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마의 초대 왕이다. 권력투쟁 과정에서 레무스를 죽이고 왕이 되는데, 영화에서 로물루스는 인간을 대표하는 주인공 '레인'에 투영되고 레무스는 유전자 융합을 통해 태어난 그 괴물 '오프스프링'으로 해석되는 평이 많은 듯 하다. 크게 다르진 않지만 감독 페데 알바레즈가 인터뷰에서 레인과 휴머노이드 동생 앤디의 관계를 연출하는 데에 집중했다는 걸 보면, 레무스의 개념은 더 넓게 인간이 추구하는 기술, 과학, 영생에 대한 집념으로 봐야 더 맞다. 

인류가 자신의 영속을 위해 과학을 통제 가능한 선에서 관리할 것인가, 아니면 그 둘이 서로를 지배하기 위해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일 것인가는 멀리 우주공간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우리 곁 희귀질환 치료 연구를 통해 얼핏 들여다보는게 가능할런지 모른다.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

김태일 기자 saltdoll@hemophilia.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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