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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스즈메의 기억법으로 돌아보기

기사승인 2023.04.16  21: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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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은 잊지 말라고 말한다

   
▲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이어 한국 극장을 휩쓸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감독 신카이 마코토)

"다녀오겠습니다", "갔다올게"
매일 집을 나서며 하는 평범한 인사이자 나 지금 나가니까 그렇게 알라는 가벼운 신호다. 하지만 어떤 날, 어떤 이들에게는 마지막 작별인사이며 오래도록 기억될 짧은 목소리가 될 수 있다 생각하면 사뭇 다른 진동으로 들리고 또 말하게 된다. 

사랑을 하게 되면 달라지는 것들이 많다. 내가 짓는 표정이 그에게 어떤 마음을 불러일으킬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마음 속에 품었던 말도 또 한 번 정제해 뱉는다. 젊은 날, 두 바퀴 탈것에 몸을 싣고 금지된 도로를 달리던 이도 기꺼이 애마를 팔아 바퀴 네 개에 마주보기 가능한 유모차를 구입한다. 하루하루가 소중해지고 그들과 함께할 미래가 궁금해지며 계속 더 살고 싶어진다. 맞다, 사랑하면 죽는 것이 조금 더 두려워진다. 

어떤 이들은 혈우병을 포함한 희귀질환 환자들이 '죽음'이란 것에 가까이 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기도 한다. 예전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생각이 되어가고 있다. 혈우병을 필두로 속속 희귀질환 치료제들이 개발되고 있고 영구적인 유전자치료법도 목전에 와 있어 이제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넘어 '삶의 질'을 높이는 케어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전작인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에서 재난 혹은 기상이변 속 다시 희망과 살아갈 이유를 찾는 소년소녀를 그려냄으로서 일본으로 대표된 이 세계의 새로운 세대들에게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오늘 본 <스즈메의 문단속> 도입부, 폐허 더미 위에 올라가 있는 망가진 어선(아마도 교토쿠마루18호를 상징)을 보며 '설마...'라는 생각과 함께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마지막 엔딩음악을 들으며 일본이, 아니 적어도 합리적 공동체의 가치를 존중하는 현대 일본 시민들이 아픔을 극복하는 빛나는 노력과 연대의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 평범한 고등학생 스즈메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재난을 막는 중요한 임무를 자처하게 된다.

일본에 큰 자연재해가 닥칠 때마다 피해상황을 전하는 속보 이후에 외신들이 주목하는 것은, 오랜 기간 지나지 않아 '통곡'을 그치고 담담히 피해를 복구하는 그들의 자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어찌 이면에 슬픔과 혼돈이 없을까만은 좌절해 있기보다는 삽을 들고, 넘어져있는 이들의 손을 기꺼이 잡아준다. 이러한 면은 작중 인물들의 만남과 관계에서 잘 그려진다. 과거 홀로 남겨진 아기 스즈메에게 이모 타마키가 '나의 아이가 되렴'(정확한 대사가 아닐 수도) 하고 말하는 씬과 스즈메가 나홀로 여행 중 지역마다 만나는 소중한 이들과의 에피소드가 그렇다. 갑자기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프리패스 치트키를 얻는 거 아니고, 아주 작은 관심과 도움으로 인해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고 화려하지 않은(세리자와의 빨간 스포츠카 마저도) 아이템들로 여정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연대이자 사랑이며 일본이 끊임없는 재난을 일상으로 끌어안고 살아오며 체득할 수 밖에 없었던 강인함이리라.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명 철학이 이해되지 않는 게 한 두 번은 아니었지만 '문단속'이라는 구체적이고도 능동적인 단어가 쓰인 것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읽어내려가며 '문'이 상징하는 재난, 또는 삶과 죽음의 경계보다도 그것을 막아내고 삶을 평정을 지키려는 평범한 인간의 노력, 즉 '문단속'에 포커싱했다고 이해하면 너무 아재스러운 시각이려나. 이미 벌어진 재난과 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최선이며 당연한 의무라는 웅변으로 다가온다. 

우연히도 영화를 본 오늘은 세월호 참사 9주기가 되는 날이다. 기억해야만 되찾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돌이킬 수는 없겠지만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단도리를 한다면 분명 우리 또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억하자는 것이 이념을 가르고 혁명과 반혁명을 운운하는 가벼운 잣대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다녀오겠습니다"하며 수학여행을 나섰던 학생과 시민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음은 그 인사말에 다 담지 못했겠지만 우리 사회의 연대가 그 마음을 대신할 수 있어야겠다. 삶은 이어져야 하며 우리는 또다른 문을 열고 또 닫아야 한다.

아, 이 영화의 숨은 재미라고나 할까? 몇몇 재패니메이션을 보면 구체적인 지명과 실제 마을, 학교를 배경으로 작화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미야자키-에히메-고베-도쿄-후쿠시마 등을 이동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로드무비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실제 해당지역의 풍경과 작중 배경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 그리고 그 지역들에서 일어났던 가슴아픈 재해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 벌써 팬들 사이에선 '문단속 순례' 코스를 짜느라 분주한 이들도 많다. 물론 혈우병 환자라면 순례에 나서기에 앞서 치료제 예방요법 주기를 촘촘하게 짜는 것 부터 잊지 말자!

   
▲ 큐슈 미야자키현을 배경으로 시작되었던 여정은 일본의 아름다운 풍경과 재난으로 인해 망가진 폐허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등을 보이고 있는 청년 소타가 만약 혈우인이라면 저 배낭 안에는 예방요법 제제가 가득?)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

김태일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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