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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순씨 “영원한 나의 동반자 ‘정읍의 션’ 그대”

기사승인 2017.04.02  00: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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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혈우병 남편을 둔 아내의 이야기 : 전북지회 양동수 회원의 아내

   
▲ 결혼 18년차 양동수 회원과 그의 아내 최혜순씨, 결혼 전 연애할때 남해에서 찍은 기념사진이랍니다.

‘헤모필리아라이프’에서는 혈우환우를 남편으로 둔 아내들의 이야기를 담아 기획 인터뷰로 진행하고 있다. 남용우 코헴회 국장의 아내 샤론씨를 시작으로, 이남일 코헴회 간사의 아내 진영씨. 박정서 코헴회 회장 아내 은희씨, 박유성 서경지회 소모임 총무 아내 애정씨, 그리고 이제는 멀리 지방으로 떠나본다.

이번 ‘인터뷰’는 다소 떨림이 있었다. 다른 업무를 보기위해 지방엘 갔다가 인터뷰까지 담아오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번 여행은 단지 ‘아내 인터뷰’만을 위해 떠나는 스케줄이었다. 오전 업무를 부리나케 마치고 10시 반쯤 전북 ‘정읍’을 향해 차에 올랐다. 서해대교를 건널 무렵, 차창 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쌀쌀했다. 거기에 미세먼지까지 자욱하게 내려앉아 시야가 조금 어두웠다. 그래도 회원 아내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건 매우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기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차에 몸을 싣고 4시간 정도 달린 것 같다. 전라북도 정읍이라고 적혀 있는 안내표지가 보였다. 미리 전화로 약속을 잡고, 장소를 정하고 이렇게 몇 차례 통화를 나눴지만 주인공인 그녀의 모습은 아직 보지 못했기에 매우 궁금했다. 잠시 후 약속된 장소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 순간, ‘하하 호호 아줌마’를 연상케 하는 만화 캐릭터가 눈에 들어왔다. 작고 귀엽고 아담한 모습. 첫 만남이지만 매우 익숙하고 친숙한 느낌.

오늘의 퀸, 한국코헴회 전북지회 소속 양동수 회원의 아내 최혜순씨를 만났다. 여러 명의 환우 아내를 만나면서 문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공통된 느낌이 있다. 그것은 환우 아내들은 대부분 ‘털털하고 화끈한 성격을 가졌다’는 거다. 자~ 그럼 이제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 보자.

유기자 : 혜순씨~ 반가와요~ 우선 본인 소개부터 부탁드릴께요~ 
혜순씨 : 안녕하세요? 저는 양동수 환우의 아내 최혜순이라고 합니다. 올해 서른여덟이고, 예쁜 두 딸(6살 4살)을 둔 엄마에요. 지금은 전업주부이지만, 결혼 전에는 가축약품회사에서 8년 정도 근무했어요.

유기자 : 남편은 어떤 분이세요. 어떻게 만나셨는지요?

   
▲ 작은아이 출산 후

혜순씨 : 음~ 제가 스무 살, 오빠가 스물 둘이었을 때 우린 처음 만났어요. 저는 남편을 부를 때, 예전부터 지금까지 ‘오빠’라고 부르고 있어요. 사실~ 저희는 처음 봤을 때 서로 안 좋게 봤어요(하하). 오빠 성격이 좀 고지식하고 촌스러운 면이 있어서 제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죠. 그리고 제 성격이 좀 왈가닥에 속하는 편이어서 어떤 자리든 할 말을 다하는 성격인데 오빠가 그런 저를 안 좋게 본거 같아요(웃음). 그런데 인연이라는 게 뭔지.(웃음)

오빠는 예전에 좋아하는 여성이 따로 있었어요. 혼자 짝사랑하는 식이었죠. 옆에서 보면 매번 짝사랑만 하다가 그냥 끝나는 그런 점이 안쓰럽더라고요. 그런 오빠의 ‘슬픈 눈’이 오히려 저에게는 인상적이었어요. 오빠의 ‘슬픈 눈’을 보며 내 마음에 나뭇잎 물 들듯, 제가 먼저 좋아하게 된 거 같아요. 사랑고백도 제가 먼저 했어요.

유기자 : 먼저 사랑 고백했을 때 남편 반응은 어땠어요?
혜순씨 : 남편은 제가 사랑고백 했을 때 싫어했어요(웃음). 전 오빠가 ‘혈우병’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스무살 때, 오빠가 혈우병이 있다고 직접 애기를 해줬어요. 그때는 서로가 ‘오빠 동생’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오히려 혈우병이라는 걸 말하는 게 편했던 거 같아요. 저도 그냥 ‘그러냐고’하면서 ‘어릴 때부터 (혈우병 때문에) 고생이 참 많았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저희는 종교 활동을 하다가 만났는데요. 제가 (좋아한다는) 고백을 했을 때도 ‘더 좋은 사람 있으면 가라’고 ‘자기는 아닌 거 같다’고 하면서 결혼 전까지 12년을 연애하면서 지냈어요.

유기자 : 12년 연애 기간 동안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혜순씨 : 오빠는 항상 혈우병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만남 중간 중간에도 저한테 많이 미안해하고 헤어지자는 말도 여러 번 했어요. 하지만 전 크게 인식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주사 맞을 때 제 앞에서 자연스럽게 맞으라고 했어요. 저는 어릴 때 들판을 뛰어다니는 야생마처럼 살아왔는데 오빠는 제가 살아왔던 삶과는 달랐다고 생각하니까 안쓰럽더라구요. 항상 주사를 달고 다녀야 하고 맞아야 한다는 게 안쓰러워서, ‘나를 만날 때 내 앞에서 편하게 주사하라’고, ‘난 괜찮다’고 말해줬어요. 

   
▲ 영원히 기억에 남을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한쪽 다리 들어주는 쎈스~

유기자 : 결혼 결심할 때 혈우병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으셨어요?
혜순씨 : 제가 어릴 때 친정 엄마가 청각 장애가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장애라는 게 큰 선입견으로 보이지를 않았어요. 겉모습은 멀쩡해도 정신상태가 불안정한 사람도 많잖아요. 그런 거에 비하면 오빠는 되게 성실했어요. 사람을 존중할 줄 알고 배려할 줄 알았기에 저는 그게 더 결혼확신을 갖게 했던 것 같아요.

유기자 : 남편분이 관절 수술도 하셨다지요?
혜순씨 : 네. 오빠가 예전에 무릎 관절 수술을 했어요. 그때는 제가 정읍에서 직장 다니고 있었고, 오빠는 수술 후에 서울 ‘코헴의 집’에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주말에 서울로 올라가곤 했어요. 오빠가 ‘코집’에서 2~3개월 있었던 거 같아요. 요양하면서 치료를 더 했어야 하는데 사정이 생겨서 오빠가 정읍으로 내려왔어요. 내려와서는 치료를 거의 못했어요. 제가 옆에서 치료를 꾸준히 하라고 말했는데, 우리가 어렵게 시작한 새살림이라서 오빠는 조금이나마 경제적으로 도와주려고 치료를 잘 안받았던 거 같아요. 그런 것 때문에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파요.

그리고 수술 후에 정읍으로 내려왔을 때 오빠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결혼 안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오빠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에, 오빠는 부담을 많이 가졌나봐요. 

   
▲ 수목원으로 가족 나들이 왔어요~ 혜순씨 표정이 개구장이 같아요~

유기자 : 남편이 아내를 무척 사랑하나봐요. 그래서 그런 거 같은데. 혜순씨가 남편을 더 잘 챙겨줘야겠어요(웃음) 남편 건강관리를 위해 어떤 도움을 주고 계신가요?

혜순씨 : 특별히 생각나는 건 없지만, 오빠가 일하고 집에오면 예방(주사)하고 금방 쓰러져서 잠들어버리는데, 그때 온 몸을 주물러 주곤 해요. 연애 할 때는 마사지도 자주 해줬는데 아이들을 낳고 힘 들다보니 요즘은 가끔 생각날 때만 해주는 거 같아요. 그리고 오빠는 음식에 조미료 들어간 걸 엄청 싫어해요. 짜고 매운 음식을 싫어해서 음식할 때 신경을 좀 많이 쓰는 편이에요. 결혼 전에는 음식 솜씨가 참 엉망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음식을 내놔도 ‘잘 한다’고 말해줘요. 반찬이 맛있을 때는 두 그릇을 먹고, 맛 없을 때는 한 그릇만 먹어요(하하). 때로는 맛없을 때에도 ‘맛 없다’고 말 안하고 잘 먹어줘서, 전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유기자 : 환우 아내분들에게 가끔 던지는 질문인데요(웃음). 남편이 사용하는 치료제가 뭔지 혹시 아시나요? 조금 돌발적인 질문이긴하지만...(미소)
혜순씨 : 네. 알아요~ 모노클레이트에요. 1회 투여량은 잘 모르겠지만 항상 6병을 맞더라구요. 그리고 컨디션에 따라서 조금의 차이는 있는 거 같아요. 이번 주에는 한번 맞는데, 많이 활동한 주에는 2번 정도 맞아요. 그리고~ 이건 남편도 모르고 있는 건데요.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항상 남편 혼자 주사를 맞는 게 안쓰러워서...(잠시 침묵) 제 앞에서 주사하라고 하는데도...(울먹) 나이 먹으니 눈물도 많아지네요. 40년 동안 혼자 주사를 맞아 왔다고 생각하니까...(울먹)

유기자 : 부모님께 남편 소개는 어떻게 하셨어요?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혜순씨 : (결혼할 때) 부모님 허락 받아야 하는 게 제일 큰 고민이었어요. 아버지는 오빠 몸이 불편한 거 알았지만 자세히는 모르셨고, 저희 형제들은 알고 있었는데 반대가 많았어요. 언젠가는 ‘집 나가!’라고 해서 짐 싸들고 나오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오빠가 다시 저를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더라구요. 그 후로 (남편이) 친정에 노력을 많이 했어요. 제가 어머니가 안계시기 때문에 집안일을 저 혼자 다하다시피하는데 지금은 오빠가 옆에서 같이 챙겨줘요. 그러다보니 제 남동생은 오히려 자기 형보다 오빠를 더 좋아해요. 

   
 ▲쾌활하고 당당한 혜순씨~ 웃음도 많지만 눈물도 많으시더군요. 파이팅!

유기자 : 결혼 후 자녀 계획 세웠을 때, 보인자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요?
혜순씨 : 전 아이에 대해서 많이 생각 안했는데, 그치 않아도 오빠가 결혼 전에 ‘아이없이 둘만 살자. ‘아이는 생각하지 말자’이런 말을 했어요. 아마 병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했던 거 같아요. 살면서 혈우병에 대한 인식을 깨는데도 많이 힘들었던 거 같아요. 그래도 이왕 둘이 같이 살아왔는데 오빠한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첫아이를 가졌을 때 오빠는 아들이기를 바했던 것 같은데, 딸이라고 하니까 아이한테 많이 미안해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저는 ‘세상도 많이 변해가고 있고, 신문에도 유전자 가위(완치)도 나오고 하는데... 미리 걱정 하지 말자. 희망을 갖자’ 이렇게 말 했어요. 그러다 보니 요즘은 우리 아이들 재롱 보면서 많이 위안 삼는 거 같아요. 

   
▲ 부부가 함께 다녀온 추억의 코헴여름캠프 ^^

유기자 : 환우들 모임도 많잖아요. 캠프도 있고요. 코헴캠프에 다녀와 보신 적 있으세요? 
혜순씨 : 네. 매년 참가는 못 했어요. 오빠 무릎 수술 전에 두 번 정도 같이 참석하고는 못 했던 거 같아요. 회사일정도 안 맞았고, 몇 해 전엔 제가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던 때라 타임도 안 맞았던 거 같아요. 공휴일만 빼고는 거의 일을 하다 보니 주말에는 외부 활동 보다는 집에서 아이들과 같이 보내고 있어요.

유기자 : ‘결혼해 보니 이 남자랑 결혼을 참 잘 했다'고 생각하셨을 때는 언제인가요?
혜순씨 : 결혼 전에, 오빠가 ‘다른 사람 만나라’고 했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 ‘그럴까’라고도 생각해봤는데 안되겠더라구요. 이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을 만나면, 제 가슴 속에 항상 이 남자가 살고 있을 거 같아서 이 사람을 포기 못했어요. 지금도 간혹 친구들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우리 남편 가정적인 남자다’라고 해요. ‘잉꼬부부’로 알려져 있는 ‘정해영·션’부부처럼 가정을 챙기는 남자거든요. 그래서 제가 ‘정읍의 션’이라고 자랑하기도 해요. 대신 집안일은 잘 못하는 게 흠이에요.(웃음)

   
▲ 작은 아이 첫돌 기념 가족사진

유기자 : ‘잉꼬부부’지만 그래도 다투기도 하실텐데...?!
혜순씨 : 초기에 부부싸움을 정말~ 엄청~ 많이 했어요(웃음). 어릴 때 살아온 환경부분이 다르다보니 어떤 일이든 생각하는 부분에서 많이 달라서 부딪히는 게 많았던 거 같아요. 때로는 제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흘려버리는 일이, 남편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했던 거 같아요. 저는 ‘침묵’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화해도 항상 제가 먼저 했어요. 제가 잘못한 일이 아닌데도 남편이 논리적으로 풀어 나갈 땐, 제 스스로 잘 못한 거 같은 생각이 들 게 끔~ 뭔가 마성의 매력이 있는 거 같아요(웃음). 저희가 두 살 차이가 나지만 고지식함 때문인지 정신연령을 따지면 10살 정도 차이가 나는 50대 같아요. 결혼 전에는 제 의견을 많이 무시했는데 지금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의견도 많이 들어주고 대화도 조율 되면서 이제는 친구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

유기자 : 결혼을 앞 둔 미혼 환우들을 위해 '결혼전략 팁‘이 있다면 한 말씀 해주세요.
혜순씨 : 환우분들, 본인 스스로 당당했으면 좋겠어요. 제 남편도 ‘나랑 살아서 다행이지 않냐. 나 같이 잘생긴 남자가 어딨냐’고 말해요(미소). 자기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 모습이 좋아서 인연이 찾아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혈우병이) 나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눌려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상대방에게 내 병에 대해 얘기했을 때 못 받아주면 서로의 연이 아닌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지 않은 이상~ 미리 뒤로 물러 설 필요도 없어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인연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자신있 게 당당하게 추진했으면 좋겠어요.

유기자 : 긴 시간 동안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해요. 끝으로 환우 가족들께 한마디 해주신다면?
혜순씨 : 저희도 느낀 거지만, 결혼한 후에 가장 힘들었던 게, 2세에 대한 계획을 세웠을 때 인거 같아요. 저도 딸이라고 했을 때, 많이 울기도 했었는데, 예전보다 약도 많이 좋아졌으니 뭐든지 다 희망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우리부부에게 주는 행복에 저 또한 아이들에게 더 챙겨주고 싶구요. 부부가 서로 배려하고 뭉치다보면 끝까지 쭉~ 나아갈 수 있는 선장과 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부모가 아이에게 항상 강하고 든든함을 보여 준다면 어떤 시련에도 부딪히지 않고 밝은 아이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도 답은 아직 못 찾았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너무 미안해 하지도 말자. 미안한 마음만큼 아이들한테 노력하며 살자’라는 생각으로 살다보면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동수씨 혜순씨~ 예쁜 마음처럼 행복도 가득하시길 기원해요~

환우 양동수씨의 아내인 혜순씨는 자신에 대해 ‘들판을 뛰어다니는 야생마’라고 표현했다. 밝게 자란 그녀의 쾌활한 성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결혼 18년차 주부인 혜순씨는 남편을 위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겠다며, 남편을 향한 사랑이 몸과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그녀는 ‘양동수 해바라기’처럼, 남편에 대한 사랑과 애정표현을 인터뷰 내내 눈물과 웃음과 미소로 풀어냈다.

뒤에서 바람만 잘 불어온다고 해서 거대한 배는 무조건 앞으로 전진하지는 않는다. 바람과 더불어 방향키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항해도 순탄해 지는 것이다. 항해같은 삶도 순탄한 여정을 위해서는 욕심 부리기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주변을 꼼꼼히 살피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다 보면 서로를 이어 주는 연결고리도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혜순씨와 나눈 깊은 대화 속에서, 그녀는 바람과 방향키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바로 ‘남편 양동수’를 아끼는 자신의 마음에서 찾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에 응해 주신 혜순씨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아울러 이날 함께 동행 해 주신 하석찬님께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헤모라이프 유성연 기자 △사진= 하석찬]

   
▲ 혜순씨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이철권 전북지회장님과 맛있는 저녁식사를~

 

유성연 기자 tjddus@newsfin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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