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를 존중하고 응원하며 행복하게 살아요”
혈우병A 중증의 마사토씨는 루리코씨와 20년 전 결혼을 했습니다. 전국 각지에 차를 납품하는 마사토씨와 피아노 지도와 연주를 하고 있는 루리코씨.
두 사람은 모두 너무 바빠서 집을 비우는 일이 많기 때문에, 함께 하는 시간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신뢰를 쌓아온 두 분께 혈우병 환자의 파트너로서 어떻게 문제를 극복해 왔는지, 그리고 두 분의 만남에서 결혼까지의 에피소드와 원만한 부부생활의 비결은 무엇인지에 대해 들었습니다.
▲중증 혈우병을 갖고 있는 마사토씨와 그의 아내 루리코. 이들은 올해로 결혼한지 20년이 됐다. |
◎ 제대로 전달해야 상대가 납득할 수 있다
질문 - 혈우병에 대해 루리코씨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언제였습니까?
마사토 : 교제를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무렵 그녀에게 혈우병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루리코 : 그에게 혈우병에 대해 들었을 때는 솔직히 잘 몰랐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바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께 ‘혈우병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병원 자료실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셨고, 거기서 조사해보고 나서야 어떤 병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생명에 지장이 있거나 하는 병은 아니라는 걸 알고 나니 그래도 안심이 되더군요.
마사토 : 주변에서 들어보니 혈우병 때문에 상대방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지 못하고 여러가지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제가 혈우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내가 미리 질병에 대해 잘 이해시켜 드린 덕분에 다행히 허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루리코 : 처음에는 제 부모님께서도 걱정을 많이 하셨죠. 정이 들면 나중에 결혼을 반대하기 힘들어진다며 남편 만나는 것을 망설이셨답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어머니께 남편에 대한 저의 진심과 혈우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해드렸고 마침내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아버지께는 후일 식사자리에서 의학 사전을 찾아가며 조사한 정보를 자세히 설명을 드리자 그제서야 안심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걱정할 필요 없겠군”이라고 하시며, 그날을 기점으로 저희 결혼을 응원해 주셨습니다.
질문 - 마사토씨는 일상 생활 속에서 어떤 것이 불편하신가요?
마사토 : 예전에는 불편한 것 투성이었지만, 의료기술의 발달로 통원 빈도도 많이 줄어들고 자가 주사로 제어가 가능해진 덕분에 그다지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아지고, 활동하는 것도 무척이나 자유로워졌으니까요.
질문 - 루리코씨는 혈우병 환자를 돕는 입장에서 특별히 배려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루리코 : 평상시는 특별히 제가 서포트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질병에 대해 항상 공유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늘 몸 상태도 체크하고 있습니다. 병원에도 따라가서 남편의 치료 내용에 대해 이해가 될 때까지 선생님들에게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곤란한 일이 발생했을 때에는 주치의 선생님이나 카운셀러 선생님께 조언을 구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작은 문제에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시고 정확한 조언을 해주시기 때문에 무척이나 든든합니다.
◎ 아내의 편지가 사장님의 마음을 움직이다
질문 - 루리코씨의 존재가 든든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마사토 : 물론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하루 이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주사제가 없는 상태에서 차를 납품한 후 대중교통으로 귀가하는 길에 출혈이 발생해서 걸을 수 없게 되면 그녀가 역이나 공항으로 마중 나와 주었습니다. 그때는 아직 인공관절 수술 전이라 무릎이 좋지 않았을 때였죠.
루리코 : 납품처로 향하는 도중에 주사제가 필요하게 되어 급하게 가져다 준 적도 있습니다. 마침 저희 친정 집 방면이라 친정에 귀성 때 준비해 놓았던 주사제가 있어서 아버지께서 급하게 차를 몰고 기차역으로 가져다 주셨죠. 저는 신칸센을 타고 가서 아버지와 기차역에서 만나 주사제를 전달받고, 남편에게 무사히 전해 줄 수 있었답니다. 저도 일이 바빠서 평소 같으면 달려갈 수 없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남편의 위기 순간에는 스케줄이 비어 있어요.
마사토 : 애초에 제가 주사제를 잘 챙겨서 가지고 다녔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죠. 그 이후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을 때도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루리코 : 수술을 받을 때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마사토 : 약 3개월 정도 쉬어야 하는데다가 다른 한쪽 무릎도 수술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회사측에 말했더니 ‘퇴직해달라’고 그러더군요. 수술 후에 다시 채용할 수 있으면 채용하겠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불안했죠.
루리코 : 무릎의 상태나 수술의 중요성, 수술의 목적 등에 대해 그 사람이 회사측에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 휴가의 진정한 이유가 전달되지 않았던 겁니다.
마사토 : 혈우병에 대해 회사에 말해야 할지 어떨지 꽤나 고민했지만, 결국 이야기 안 하는 걸 선택했던 거죠. 그랬더니 제가 입원했을 때 아내가 저희 회사 사장님께 진심 어린 편지를 써서 드렸더라구요.
루리코 : 인공관절을 하게 되면 무릎 통증 때문에 쉬는 일도 없어질 테고, 회사일을 더욱 열심히 할수 있기에 수술을 결심하게 됐다는 것을 제대로 전달 해야겠다는 생각에 편지를 썼습니다. 특별히 답변은 없으셨지만 사장님께서 이해를 해주셨기에, 수술 후에 회사에 인사하러 갔더니 무사히 재고용이 되었습니다.
◎ 둘이서 계획한 침대열차 여행의 묘미
질문 - 두 분 공통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마사토 : 해외여행입니다. 둘이서 돈을 모아서 2년에 한 번 정도 여행을 가는데, 그 중에 유럽을 가장 많이 가봤네요. 침대열차 타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투어가 별로 없어서 둘이서 계획을 짜서 호텔과 교통비 정도만 챙겨서 여행을 다니곤 합니다.
루리코 : 저번에는 남편이 오로라를 보고 싶다고 해서 핀란드에 갔었답니다. 기온이 영하 30도로 폐가 아플 정도로 추웠지만, 그런 것을 다 잊을 정도로 오로라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나게 감동적이었습니다.
마사토 : 그때는 산타클로스 특급 침대열차를 탔답니다. 물론 여행할 때는 반드시 주사제를 지참합니다만, 여행지에서 상태가 나빠진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습니다.
루리코 : 공항에서 수하물 검사를 받을 때 주사제와 주사기에 대해 검사원이 물어보면 여행 전에 준비해 둔 진단서를 제시했습니다. 필요시 설명이 가능하도록 영문으로 꼼꼼하게 작성해서 가지고 갔습니다.
마사토 : 올해는 결혼 20주년이라서 조금 호화로운 여행을 할 예정입니다.
루리코 : 낯선 곳에서 문제가 생겨도 그의 예리한 방향감각이 도움이 되기도 하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요? 앞으로도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는 둘만의 여행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응원하며.....
질문 -원만한 부부관계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루리코 : 저는 혈우병에 대해서도, 다른 일에 대해서도,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되도록 웃는 얼굴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일단 받아들이고 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하는 편이죠. 두 사람 다 낙천적이라고 해야할까요? 매사에 긍정적이랍니다.
마사토 : 그렇죠. 어차피 지나간 일은 고민해도 소용없는 일이고, 눈앞에 놓인 일을 제대로 마주하고 헤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루리코 : 그리고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기고 있답니다. 서로 바쁘기 때문에 매일 함께 식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식탁에 함께 둘러앉으면 알찬 시간이 되도록 서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도 저희 식사 시간에 맞춰서 자기 접시로 향하도록 하고 있답니다. 그렇게 ‘셋(?)’이 지내는 이 시간이 지금 가장 행복한 것 같습니다.
질문 - 루리코씨는 남편분께, 마사토씨는 아내분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사토 : 결혼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도 꽤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혼에 이른다는 것은 상대방이 자신을 절대적으로 이해해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무엇이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며 같이 걸어가면 괜찮을 것 같아요.
루리코 : 혈우병 파트너와 결혼했지만, 제 자신이 더 심각한 병에 걸릴 가능성도 있는 거잖아요. 살다 보면 정말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하는 법이고, 혈우병은 그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혈우병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기분 좋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쁨은 배가되고, 고통은 반이 된다는 말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본 환우 부부의 이야기는.... 혈우병 환자와 가족을 위한 정보지 '에코'에 게재된 내용이다. '에코'는 일본 바이엘약품(주)에서 운영하고 있는 혈우사회 공헌프로그램 중 한 가지이다. |
[헤모라이프 조은주 기자]
조은주 기자 cap388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