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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퀸 최연화 "트로트는 영원히 살아남을 것"

기사승인 2020.07.10  16: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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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주현미 되고싶다는 그녀와의 데이트

지금 대한민국 안방은 트로트 열풍이다. 그야말로 제2의 트로트 전성기인 셈이다.

여자 가수들의 경연프로그램 미스트롯이 안방을 달구더니 이어 남자가수의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이 뒤를 잇고 있다. 또한 주부 대상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보이스퀸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미스터트롯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가려져 있던 보이스퀸, 오늘 유튜버월드에서는 보이스퀸으로 입상해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최연화 씨를 만나본다.

   
▲ MBN 보이스퀸 출연 당시 모습.  출연해 폭발적인 가창력과 독보적 감성으로 최종 3위까지 오르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Q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본인 소개 좀 해주세요.

A : 네 제 이름은 최연화고요. 열 분 중에 한두 분 정도는 저를 알아보시더라고요. 보이스 퀸 최연화입니다. 사는 지역은 서울 은평구. 여기까지만 공개해 드릴게요. 최연화는 저의 본명이고 사실은 3년 전에 제가 하보미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어요. 그래서 제 본명이 아마도 좀 나의 가수의 길을 가는데 뭔가가 좀 안 좋은 부분이 있구나 해서 이름을 바꿨는데, 보이스 퀸 경연하면서 규칙상 본명으로 나가야 한다고 해서 (본명으로) 나갔는데 다시 또 본명을 찾게 됐어요. 하보미도 같이 기억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Q : ‘보이스 퀸’ 말씀해 주셨는데, 출연하게 된 계기가 뭔지요?

A : 제가 알기로는 한 20년 전쯤, KBS에 주부가요열창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 담당 피디님께서 MBN의 본부장님으로 가셨어요. 그래서 그분이 야심 차게 다시 기획하셔서 이번에 주부 상대로 그 경연을 펼쳤는데, 조건이 있어요. 주부여야 하고요. 주부이기 때문에 그 자격이 주어졌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리서치를 하고 전화를 하셨는데 ‘나갈 의향이 있으신가요?’라고 물어봐서 저는 너무 좋죠. 그래서 나가게 됐는데 운 좋게 입상을 하게 됐습니다.

Q : 가수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하셨고,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A : 아버지께서 성악 교수님이시거든요. 아버지가 음악을 하시는 분이다보니, 어릴 때 계속 음악을 접하고 자랐어요. 자연적으로 그냥 가수의 길을 가야 하나 보다 생각했어요. 또 다른 계기는 저희 할아버지께서 ‘세계 한민족 방송’이라는 KBS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친누나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그 방송을 매일 듣게 됐어요. 흘러간 옛 노래를 거기서 다 들었던 거 같아요. 황금심 선생님, 이화자, 김정구 선생님, 현인 선생님 그때 노래를 다 거기서 배웠던 거 같아요. 나중에 제가 크고 학교 다니고 중국 문화를 접하고 한국말과 중국말을 오가면서 중국 노래와 한국 노래를 똑같이 병행하면서 불렀어요. 그런데 (노래가) 어떻게 이렇게 다르지? 왜 이렇게 구슬프고 좋지? 왜 이렇게 그냥 들으면 눈물도 나고 그런 게 되게 좀 혼란이 왔던 거 같은데. 저는 어릴 때 우리의 꺾기와 그런 전통적인 맛을 부르면서, 또 중국 노래 부를 때는 발라드풍으로 부르고 이렇게 왔다 갔다 그때부터 자연적으로 왔다 갔다 했던 거 같아요.

Q : 최연화님의 애창곡은 어떻게 되나요?

A : 저 되게 다양해요. 발라드곡 한 곡 있고, 트로트 한 곡 있고, 팝송 있고, 중국 노래 있고 다양하게 순서를 정한다기보다는 그때그때 제가 완성도가 있는 노래를 평소 연습하잖아요. 그러면 선호하는 곡도 있을 거고. 그래서 정해진 곡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정해져 있진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또 노래방 가면 트로트를 아예 안 불러요.(하하)

Q : 아, 의외네요?

A : 네. 트로트는 안 부르고 오히려 발라드곡을 너무 오랫동안 안 불렀기 때문에 노래방 가면 주로 발라드를 불러요.

   
▲ 헤모라이프 사무실에서 인텨뷰 중인 최연화님과 유성연 기자

Q : 하루일과 좀 소개해 주세요.

A : 음. 결혼 전과 결혼 후로 나눠질 거 같은데요. 결혼 전에는 하루 종일 음악 듣고 동료들 만나서 수다 떨고 온전히 나를 위해서 살았다면 결혼 이후에는 삶이 완전히 달라져요. 결혼과 동시에 아이가 생겨서 육아를 하다 보니까 제가 한 5년 공백기 동안 노래를 못한 시기가 왔어요. 그 이후로 하보미란 이름으로 음반을 내면서 조금씩 극복하면서 보이스 퀸을 통해서 완전 치유가 됐어요.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일과가 음악으로 차지하겠죠. 저희가 제일 선호하는 프로그램이 가요무대. 그리고 전국노래자랑 이 프로그램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노래가 주어졌을 때 짧은 시간 안에 그 노래를 소화해야 되기 때문에 평소에 스케줄이 없을 때는 발성연습을 한다거나 음악을 듣는 연습을 되게 많이 해놔요. 그리고 제가 주부다 보니까 우리 주부들하고 똑같이 육아도 해야 하고 요리도 해야 하고 그다음에 또 가끔 친구도 만나고. 낭군님이 계시다 보니까 뒷바라지도 할애해야겠죠. 좀 바빠요. 결혼 전에는 되게 여유로웠는데 결혼 후에는 매일 매일 시간이 부족한 거 같아요.

Q : 낭군님 얘기를 하셨는데, 발성 연습을 많이 도와주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분이신지?

A :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 저는 (한국이)제 나라라고 생각하고 왔지만 살다 보니까 굉장히 (중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가 너무 많이 나니까 그 적응 시간이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남편을 만나고 나서 결혼 생활을 하다 보니까 내가 모르는 부분이 훨씬 많은 거예요. 남편이 음악적인 부분에서 제 스승님이 되었지만, 일반 생활의 인생 선배님이 된 부분도 굉장히 커요. 그리고 제가 되게 운이 좋았던 게 지혜로운 시어머님과 굉장히 멋진 시아버님 덕에 시집살이를 별로 안 하고 살고 있습니다.

Q : 가수 주현미씨의 말씀 중에 “트로트는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면 트로트를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최연화님께 있어 트로트는 어떤 건가요?

A : 그게 되게 어려운 질문인데요. ‘나의 전부다’ 뭐 이런 건 식상하잖아요. 음... 최연화다? 저는 그냥 ‘최연화다’라고 하고 싶어요. 저의 이름을 찾아 준 거거든요. 중국에는 ‘공무원 가수’라고 있어요. 나라에서 월급을 주면서 가수를, 연예인들을 키워요. 그걸 예술단이라고 이야기 하거든요. 우리가 제일 알아듣기 쉽게 말씀을 드리자면 시진핑 부인께서 공무원 가수입니다. 그래서 나라에서 국가급, 성급, 시급 이렇게 나누어져 있는 예술 단체가 있어요. 거기서 오디션을 봐서 가수가 인증이 되어야지만 그 단체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조건은 졸업장이 있어야겠죠? 중요한 졸업장이 있고 어떤 비주얼과 실력, 실력도 제일 중요하겠죠? 그렇게 해서 나라에서 인정을 받아야지만 가수라고 할 수 있어요. 근데 제가 한국에 처음 와서 약간 놀랐던 게 아, 여기선 음반을 내면 내가 가수라고 할 수 있구나. 되게 자유롭구나. 그런 게 되게 좋았어요. 주현미 선배님이 저의 롤모델이신데, 제2의 주현미가 되고 싶어서 그걸 다 버리고 왔어요. 저는 가요무대를 되게 갈망했었어요. 그 무대에 서기까지 18년이란 시간이 걸렸어요. 그 시간이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해요. 인생 공부의 시간이었고 너무너무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트로트는 나를 찾아 준 ‘장르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 트롯트 가수 최연화님 음반에 싸인도 해주셨어요.

Q : 최연화님은 유튜버이시기도 하잖아요. 그 이야기도 좀 해주세요.

A : 저는 사실 기대감 없이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제가 2019년에 경연을 두 개 했는데, 부산 KNN(SBS 지방 방송국)에서 골든마이크라는 남녀 혼합으로 경연을 치렀는데 그 방송 나가자마자 반응이 되게 좋았어요. 제가 그때 참가자 중에 나이가 제일 많았고, 유튜브와 동시에 딱 시작하게 된 거예요. 사실 저는 팬클럽이 있었던 적이 없어요. 그런데 골든마이크 시청자분 중 한 분이 ‘혹시 팬클럽 있으신가요?’ ‘제가 혹시 만들어도 될까요?’라는 댓글을 남겨주셔서 제가 ‘좋아요’라고 했는데, 그분이 이끌어 주신 걸 지금까지 계속 끌고 오면서 팬클럽 회원 수가 600명 가까이 돼요. 그리고 유튜브를 동시에 시작했는데 저는 1000명 채우면 굉장히 감사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 무렵에 ‘보이스 퀸’이라는 게 생겼잖아요. 그 이후로 구독 수가 계속 올라가는 거예요. 저의 목표는 1000명이었는데 지금 14000명 넘었어요. 저의 과거와 지금을 생각해 보면 너무 감사함이 많다 보니까 그분들한테 일일이 다 댓글을 달아드리고 있어요. 제가 감사함을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이 그 방법밖에 없잖아요. 시간이 좀 쪼들리는 거 외에는 힘든 건 없고 즐거움만 있고 그걸로 인해서 제 삶이 굉장히 윤택해지고 여유로워졌어요.

Q : 유튜버 하시면서 보람 느끼실 때는 언제였나요?

A : 제가 며칠 전에 저의 채널에 영상 하나를 올린 게 있어요. 우리 정통 가요의 팬덤이, 연령층이 좀 높잖아요. 그래서 거의 40대 이후부터 듣는 거라고 다들 생각을 많이 하세요. 하지만 요즘 보니까 오디션에 10대도 많이 있어요.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신 미스터트롯에서도 어린 친구도 나와서 입상도 하고 다양해졌어요. 그런데 저희 팬 중에도 10대가 있는 거예요. 제가 드레스를 입다 보니까 엘사라는 별명이 생겼는데, 그 팬이 손편지로 ‘우리 엘사 님의 존재는 아주 소중하다’는 글을 텀블러 밑에 직접 써서 저한테 선물을 줬는데, 그걸 보면서 너무 감동 받아서 펑펑 운 영상이 올려져 있어요. 저는 제 노래가 사람들한테 감동을 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왜냐하면 그런 피드백을 받아본 적도 없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얘기가 ‘네 노래는 좋아’라고, ‘최연화 씨의 노래는 좋아’라고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최연화 씨의 노래를 듣고 많이 감동을 받았고 힐링을 얻고 있다.’ ‘또 힘을 얻고 있다.’ 라는 댓글을 많이 받은 거 에요. 그동안 노래했을 때 그런 걸 들어본 적 없는데 유튜브를 통해서 소통을 하면서 그런 얘기가 들려오다 보니까 제가 그런 존재가 되어 있다는 자체가 놀랐어요. 누군가의 팬이 되어 본 적이 있지만 다른 사람이 저희 팬이 됐다는 걸 처음 느껴봤어요. 또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계시면 되게 신기해요. 어떻게 나를 알아 보지? 계속 신기하면서 감사하단 말을 남발하게 되요. 저의 팬이 10대부터 70대 80대까지 계시니까 그 생각만 해도 힘이 절로 나더라고요.

   
▲ 트롯트 가수 이자 유투버로 활동중인 최연화님

Q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A : 저희가 이제 의도치 않게 경연을 4회 남겨 놓고 미스터트롯이 동시 방영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가 끝 무렵에 조금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그 팬덤이 미스터트롯으로 넘어갔어요. 그런 부분이 안타깝고. 또 끝남과 동시에 코로나가 덮치면서 저희 콘서트가 다 무산됐어요. 무한 연기가 됐죠. 만약에 저의 개인 채널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저의 유튜브 식구들 ‘봄 패밀리’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제가 좀 견디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리고 방송 출연요청도 이따금 오는데 보통 예술인들은 자기가 하던 걸 하지 못하면 약간 우울증이 올 수 있어요. 저도 이런 소통이 아니었다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힘들었을 거에요. 제가 하보미란 이름으로 ‘항구의 순이’라는 곡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다시 최연화란 이름을 찾았기 때문에 최연화란 이름으로 신중하게 곡을 내고 활동을 하고 있고, 유튜브 최연화 채널은 앞으로도 계속 끌고 갈 거에요. 코로나 때문에 팬 미팅이 두 번이나 연기가 되면서 아직 한 번도 진행되지 못했어요. 모이지 못하다 보니까 그런 부분이 너무 안타깝죠. 그리고 곧 유튜브 활동도 1주년이 되요. 그래서 그 이벤트를 어떻게 진행할까 되게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아무래도 가요 방송 프로그램에 좀 많이 참여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부분들을 계속 병행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Q : 끝으로 팬 분들께 한 말씀 해주세요.

A : 네. 최연화라는 사람이 있기까지 물론 저희가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많은 분의 성원이 아니었으면 저도 이렇게 힘을 얻어서 자신감 있게 지금까지 끌고 오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일단 저희 ‘봄 패밀리’ 팬들께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피해 보는 분들도 많이 계실 거고. 그래서 앞으로는 이 어려움을 잘 극복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안 되겠지만 우리의 인생은 항상 나쁜 일만 있는 게 아니고 좋은 기회도 올 수 있으니 낙담하지 마시고 희망을 갖고 이 시기를 극복하면 우리의 봄이 또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요. 끝까지 힘을 내시고 우리의 윤택한 삶이 곧 찾아온다고 생각하시고 조금만 힘을 더 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항상 파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보이스퀸 최연화. 그녀의 천재적 가창력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결혼 후 가사 활동 속에서도 놓치지 않았던 음악. 음악과 함께 살아 온 그녀는 경연방송 보이스퀸과 유튜브를 통해서 대중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최연화라는 이름과 함께 가수 활동명 이었던 ‘하보미’도 함께 기억해 달라는 그녀는 곧 그녀의 팬클럽 ‘봄 패밀리’와의 설레는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밝은 미래가 항상 함께하길 바라며 그녀의 앞날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헤모라이프 유성연, 황정식 기자]
 

황정식 기자 nbkiller@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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