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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보컬 트레이너입니다”

기사승인 2020.06.29  02: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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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온 혈우환우, 정군화 군과의 인터뷰

지난번 인터뷰에서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있는 혈우 환우의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이번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정군화 군을 만나보았다. 이미 코헴 여름캠프에도 자주 참여하고 자원봉사도 열심히 했던 청년이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가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 청년 정군화 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간단히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름은 정군화이구요, 올해 23살이고 학생입니다. 그리고 또 무얼 말해야 하죠? (가족 소개요) 아 예,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서 살고 있어요. 8인자 중증 혈우병입니다.

Q. 요즘 코로나19가 극성인데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그냥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 받고 공부하고 과제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Q. 상당히 건강해 보이는데 건강 관리 비결이 있나요?

따로 건강 관리 하는 거 없어요. 운동도 안하고 있어요. (웃음)

Q. 약은 예방적으로 쓰고 있나요, 아니면 출혈 날 때만 맞고 있나요?

의사 선생님은 예방치료 하라고 하는데 지금은 계속 집에만 있으니까 아플 때에만 맞아요.

Q. 그래도 제일 아픈 곳이나 건강상 걱정되는 곳이 있을 텐데요?

발목과 팔꿈치가 많이 쓰거나 그러면 통증이 좀 있어요.

   
▲ 작년 여름캠프 자원봉사단과 함께, 왼쪽에 염색머리 한 사람이 저 입니다.

Q. 한국 오기 전 고향 이야기 좀 해주세요.

중국 연변에서 왔구요, 한국에 정착한지는 2년 반 정도 됐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백두산과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영주권은 아직 못 땄구요, F4 비자로 들어왔어요.

Q. 그럼 영주권 발급까지 거의 다 됐겠네요? 3년 아닌가요?

5년이예요. 아직 좀 남았어요.

Q. 중국에서 혈우병 치료는 어떻게 받았어요?

거의 받지 못했어요. 아플 때에만 북경에 가서 받았어요. 근처에 혈우병 관련된 것을 잘 아는 곳이 없고 관심도 가져주는 곳도 없었거든요.

Q. 그럼 한국처럼 혈우병 환우회라던지 그런 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나요?

중국에도 있어요. 그 전에는 있는지도 몰랐어요. 저는 북경에서 태어나서 10년 동안 자랄 때까지 아플 때 북경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거든요. 그래서 연변으로 이주하고 나서도 아프면 북경 병원으로만 갔어요. 다치고 아플 땐 비행기타고 북경에 갔다 오는 거죠. 비행기로 2시간, 북경으로 치료 받으러 간다고 하면 3일을 잡고 갔다 와야 했습니다.

Q. 그러면 북경의 병원에서 약을 처방해주고 집에 가서 맞으라고 약을 주나요?

약을 주진 않아요. 약도 한번만 맞고 말아요. 이런 걸 1년에 한 4번 정도씩 반복했습니다. 혈우병 진단 받고 한국 오기 전까지 계속 북경에 있는 병원에 가서 맞았어요.

Q. 최초로 혈우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언제 였어요?

7살 때쯤 계속 다치고 코피가 나면 멈추지 않아서 쇼크가 오고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으니 혈우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 중국에서 약을 처방 받을 수는 있었지만 아주 제한적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Q. 가족 중엔 혈우병이 있어요?

외삼촌이 혈우병이셨는데 돌아가셨어요. 저는 뵙지도 못했어요.

Q. 한국에 오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부모님이 일 때문에 먼저 한국에 와 계셔서 저도 오게 되었어요. 어머니는 6년, 아버지는 10년이 좀 넘었어요.

   
▲ 저는 노래를 잘 부르지 춤을 잘 추진 못한다구요!

Q. 노래를 잘 부른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지금 대학에서 실용음악학과 전공하고 있어요, 올해 입학한 1학년이예요. 악기도 하고,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그렇습니다.

Q. 한국에서 가장 친한 친구는?

한국어 학원 다닐 때 중국 친구들을 많이 만났는데 요즘은 자주 만나지 못합니다.

Q. 지금 여자친구 있어요?

없어요…(잘 생겼는데요?) 아니예요...(웃음)

   
▲ 한참 재미있게 놀 때이지만 시기가 시기인만큼 집에서 수업 듣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다고 한다.

Q. 코로나19가 끝나고 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게 뭐예요?

학교가서 수업 받는게 제일 하고 싶어요.

Q. 아… 신입생인데도 많이 아쉽겠네요... 혈우병 때문에 내가 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무용이요. 북경에서 공연도 하고 그랬었는데, 관절이 너무 아프고 출혈도 되고 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나서 연변에서 살다가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Q. 지금은 과거보다 약도 좀 충분하고 관절이 괜찮아질 수 있다면 무용을 다시 시작해 볼 생각이 있나요?

없어요.(웃음) 지금은 관절 각도가 너무 안 나와서 다시 하기엔 힘들어요.

Q. 코헴 여름캠프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약을 처방 받으러 왔을 때 여름캠프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형들이 참가를 권유해서 참가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자원봉사단도 함께 하자고 해서 같이 했구요.

Q. 작년에도 자원봉사단으로 왕성한 활약을 해 주셨는데 또 여름캠프가 열린다면 의향이 있나요?

아뇨...(웃음) 그, 냉장고, 많이 무거웠어요. 2층까지 들고 올라가는 거요. 많이 덥기도 했구요.

   
▲ 2년 전 코헴 청년워크샵에 참석해 열심히 강연을 듣기도 했었죠.

Q.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음악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Q. 음악 선생님이 되려면 무엇을 잘 해야 하나요?

여러가지를 다 잘해야 하지만 전공 하나를 선택해서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음악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저는 지금 실용음악학과에서도 보컬을 전공으로 하고 있어 일단은 이쪽으로 가보려고 해요. 악기는 기타하고 피아노를 제일 잘 다루기는 합니다.

Q.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뜨거운 계절, 한참 신나게 여름을 만끽하고 있어야 할 나이의 청년이지만 코로나19가 야속하기만 하다. 하지만 하루빨리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서 여유를 즐길만한 틈은 없어 보였다.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만나지 못하는 요즘 현실, 빨리 다시 편하게 만나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며 서로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는 그날을 기약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헤모라이프 하석찬, 황정식 기자]

 

황정식 기자 nbkiller@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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