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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홈 벤처기업가 이민우 환우

기사승인 2020.03.19  12: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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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OT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회사를 운영합니다"

“클로바, 시리야, 지니야, 빅스비, 헤이구글~”
 

지금 당신이 있는 위치에서 이런 이름을 부를 때, 당신의 주변에서는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마치 비서가 대답하는 것처럼 “네~ OOO님~”이라는 소리가 들린다면 당신은 인공지능 유저에 한걸음 다가서 있는 사람일 것이다. 게다가 조명을 끄거나 주변 전자기기를 스마트폰이나 음성으로 제어하고 있다면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살아가는 얼리어답터일 것이다. 오늘 번불콩 인터뷰에서 만나볼 사람은 첨단시대를 이끄는 스타트업 (주)컴파운드 창업가이자 혈우환우이다. 어서 빨리 그를 만나보자.

   
▲ 2019년 생애 처음 찍은 가족사진

“제 이름은 이민우고요. 9인자. 스마트홈 스타트업 (주)컴파운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스마트홈 관련 IoT 디바이스를 개발하고 판매하고 있습니다. 40대 초반의 평범한 직장인, 평범한 한 가장으로서 지금 다 큰 딸 하나 있고요. 이제 대학 가는 딸이죠.”

하기자 : 따님이 벌써 대학을 가요?
민우씨 : 네. 그리고 제 와이프와 단란한 세가족입니다.

하기자 : 하고 계시는 IoT 사물인터넷을 좀 설명해 주세요.
민우씨 : 네. '스마트홈'이라고도 하죠. 쉽게 이야기하자면 예를 들어 혼자사는 1인 가구인데 집에 들어갔을 때 저절로 집안의 조명이 켜지고 그날의 날씨나 상황에 따라 조명의 색상 또는 온도가 자동으로 바뀌거나 그런 것이죠.

하기자 : 요즘 티비광고에서 많이 본 것 같아요. 저절로 조명이 켜지고 티비가 켜지고...
민우씨 : 네 맞습니다. 인공지능 스피커로 음성제어가 가능한 그런 제품을 개발해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하기자 : 우리 환우들에게 필요한 것 같네요. 출혈로 몸이 많이 불편할 때는 정말 전등 끄는 것도 힘들 때가 있는데 말로하면 되는 거죠? ‘티비 켜~’ ‘조명 꺼~’ 이렇게요?
민우씨 : 네 하하

   
▲ 한국말이라곤 1도 못하던 초1 딸과 샌디에이고 씨월드에서

하기자 : 정말 흥미로운 일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환우들에게 IoT보급사업을 했으면 좋겠네요.
민우씨 : 네 좋은 일이면...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해야죠.

하기자 :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셨다 들었는데요. 어떤 계기로 얼마나 계셨나요?
민우씨 : 아무것도 모르던 철없던 시절에 제가 꼭 유학을 보내달라고 부모님을 많이 괴롭혔어요. 끝내 부모님이 이기지 못하시고 제가 중학교 졸업하고 만 15살 정도에 미국으로 떠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18년 정도 미국에서 학업 마치고 직장 다니면서 있다가 다시 한국 온 지는 8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하기자 : 20년 가깝게 미국생활을 하셨는데, 혈우병 치료제를 처방받는 게 어렵지는 않으셨어요? 
민우씨 : 보험 없이는 불가능하죠. 직장이 좀 큰 곳이면 회사보험으로 대부분 의료비가 커버가 돼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보험을 들어야 하고요. 저도 1년 정도는 사보험을 들어야 했던 기간이 있었죠. 그 당시에 보험료로 한 달에 50만 원 정도 냈던 것 같습니다.

하기자 : 처방은 어떻게 받았나요? 우리나라는 환자들이 매달 약 타러 병원을 가야 하는데, 비슷한가요?
민우씨 : 한국이랑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전화통화하면 택배로 약을 받아요. 약타는 건 딱히 의사의 진료를 받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하기자 : 약을 집으로 배송을 해준다고 했는데 어느 정도 사용량을 배송 해주나요?
민우씨 : 딱히 그런 제약은 없었던 것 같아요. 택배하면 한국이 제일인데, 의외로 미국에서 약 배송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보았네요. 저는 한 달 쓸 정도 받았어요. 그 이상 받으면 놔둘 데도 없으니까.

하기자 : 10회분 정도를 받으면 얼마 동안 쓰셨나요?
민우씨 : 미국에 있을 때 10회분 받으면, 어떤 때는 한 달에 다 쓰기도 했지만 두 달에 10회를 쓰는 달도 있고 그랬습니다. 약 타는 것이 어렵지 않다보니 전화로 필요한 만큼 처방을 받아 썼거든요.

   
▲ 배타고 낚시를 좋아하던 딸과 같이~

하기자 : 미국에서 혈우병 치료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민우씨 : 처방 받는 것은 크게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소득이 얼마 안 되는 분들도 오히려 미국 의료 시스템은 더 편하게 처방받을 수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제가 20대 초반에 팔꿈치 수술을 미국에서 받았는데요. 그 당시는 한국에서 무릎 관절경 수술은 많이 하던 시기로 기억합니다. 우리나라 의사선생님들이 무릎 수술이나 관절경은 자신 있게 권했는데 팔꿈치는 굉장히 어렵다고 하시면서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과감하게 해보자고 했었고 그래서 팔꿈치 수술을 미국에서 하게 됐습니다.

하기자 : 어떤 수술이었나요? 
민우씨 : 두 가지 수술 방법을 권유 받았어요. 그 중 하나는 방사능 물질을 넣어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을 녹인다고 그러더라고요. 처음에 그 방법을 권유를 받았는데 조금 무서웠어요. 제가 듣기로 이 치료법이 구소련인지 러시아에서 개발된 치료법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저는 절개를 하고 긁어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예후는 수술 후 단 한 번도 출혈없이 지금까지 지내온 것 같습니다. 단 각도에서는 조금 손해본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수술 후 물리치료를 열심히 못 한 이유도 있는 것 같구요.

하기자 : 방사선동이원소 치료라고 해서 한국에서도 예전에 한시적으로 했었고 지금은 대체 약물로 리팜핀을 쓰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수술은 또 없으셨나요?
민우씨 : 관절경도 받았어요. 제가 고등학교 방학 때 한국에 나와서 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 고등학생 딸과 어느날

하기자 : 현재 컨디션은 어떤가요?
민우씨 : 전체적인 컨디션은 안정적인 것 같아요.

하기자 : 컨디션 관리를 하는 특별한 방법 같은 건 없으신가요?
민우씨 : 특별히 따로는 없고요. 저는 어렸을 때 운동을 많이 했었는데 그때 만들어진 근육량 때문인지 지금 40대 초반임에도 잘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

하기자 : 지금 약을 예방적으로 사용하고 계시나요?
민우씨 : 약간 중간이라고 해야 될까요? 출혈이 한동안 없으면 그 때 한 번 맞는 정도입니다. 딱히 어떤 주기를 정해놓고 예방하고 있지는 않고요.

하기자 : 쉬는 날에 여가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민우씨 : 여가 생활 별 거 없어요. 쉬면서 티비 보고 유튜브 보고 그럽니다.

하기자 : 조금 무거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참여하고 계신 HCV소송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민우씨 : HCV 소송이 길어지는 원인은 사회적 시스템이나, 잘못된 것은 ‘이렇게 해도 된다’라고 용인하는 사회적 통념이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하기자 : 소송이 마무리 된다면 이후 혈우 사회에 조금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민우씨 : 지금도 물론 그렇게 하고 계시겠지만... 저의 바람이 있다면 의료진들이나 코헴협회가 좀 더 투명하고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구조적으로 봤을 때 독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리고 소송 관련해서 제가 한마디 드리고 싶은 것은, 이렇게 1차소송 때부터 포기하지 않고 십 수 년간 끌어오시고 또 이런 부분을 각자 위치에서 충분히 투명하게 공개하려고 하시는 분들한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 헤모라이프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중 하기자(좌)와 민우씨

하기자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본인 계획이 있으시다면?
민우씨 : 제가 그동안 혈우사회에서 도움만 받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제가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제가 가진 전문성에 한해서 혈우사회와 같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하기자 :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여기까지고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난리인데 몸관리 잘하시기를 바랄게요. 혹시 나만의 코로나 극복법이 있으신가요?
민우씨 : 하하. 저라고 뾰족한 수는 없고요. 최대한 사회적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헤모라이프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이민우 씨는 오랜 외국생활 끝에 우리나라에 돌아와 첨단업종에 종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란한 가족을 이뤄 행복이 넘쳐나는 민우씨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그의 앞날이 매일 크리스마스와 같은 즐거움으로 가득하길 바란다.

[헤모라이프 하석찬 기자/ 사진제공 이민우 환우]

 

하석찬 기자 newlove8@hanmail.net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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