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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사회, ‘가족이라는 것’

기사승인 2020.03.08  02: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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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CV소송, 가족 안에서는 100% 승자도 패자도 없다”

   
 

우리가 혈우사회라 부르는 것은 ‘혈우병과 함께하는 공동체’의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환자와 환자가족, 환우친구는 물론이거니와 치료자인 의료진과 혈우병 관련 국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기관이 모두 포함된다. 아울러 혈우병 치료제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제약사는 혈우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자이며 구성원이다. 어느 한 분야도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 이런 환경 속에 혈우사회는 안정적으로 돌아가며 점차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가족이라고 부르는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녀에게 각각 주어진 역할이 있고 책임이 있는 것처럼 혈우사회에서도 책임과 의무가 항시 공존한다.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가족은 서로 위로자가 되기도 하고, 함께 기뻐하기도 한다. 물론 때로는 갈등이 있고 소리지르며 싸우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다시 웃고 안고 하는 것이 가족이 아니겠는가?

혈우사회 각 구성원들도 그러하다. 함께 웃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나긴 갈등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명확한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이다. 승과 패가 절대적이지 않다. 100% 이기는 것이 없고 또한 100% 지는 것이 없다. 어찌되었건 혈우사회는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이라 해도 어느 하나 문제가 생길 경우, 혈우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게 된다. 

환우들 사이에서도 갈등은 많았지만 결국 ‘환자’이기에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각 제약사도 서로가 경쟁자이지만 때론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당장에 ‘상대가 없으면 내가 승리자’가 될 것 같아보여도 절대 그런 상황은 발생되지 않는 것이 순리이다. 함께할 때 승리해 왔고, 그 결과 발전하는 혈우사회가 되어 왔다. 

우리는 갈등의 고리를 지혜롭게 넘겨왔다. 앞으로도 우리 혈우사회는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 

이렇게 서론을 길게 언급한 것은 오랫동안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혈우사회의 HCV소송 이야기를 꺼내고자 해서다. 각자 억울한 점은 분명히 있다. 이 부분을 이해해야 서로 지향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혈우사회 안에서 한쪽이 이기는 싸움은 결코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한들 그 다음에 돌아올 댓가는 더욱 힘겨울 수밖에 없다. 

제약사가 원하는대로 결과를 이끌어낸다 해도 그 후폭풍은 지금의 몇 배가 되어 돌아올 것이며 환자가 원하는대로 결과를 이끌어 낸다 해도 감당해야 할 몫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 닥쳐 올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것이 찾아오는 것은 그 누구도 달갑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 이상 명분 싸움은 없다. 실질적이고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 솔직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서로 전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각각 대화의 주체가 ‘대표성이 있는가’라는 것이다.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 합의를 도출했을 때 상호간 인정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원고의 대표단을 구성하고 합리적인 안을 세워야 한다. 1차부터 4차까지 구성된 원고들은 현재 60명을 넘어섰다. 이들이 모두 협의안을 논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하다. 따라서 원고 대표단을 구성하여 피고측과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어, 원고와 피고 간에 합리적인 안이 수립될 때, 이 최종안을 가지고 원고대표단은 각각의 원고들에게 가부를 묻고 전체 원고 중 2/3 이상(또는 합리적인 기준선)의 동의를 얻어 기나긴 소송역사를 종결해야 한다. 

원고들이 준비조차 안 된 상황에서 대리인만을 내세워 형식적인 만남에 그친다면, 이것은 지혜로운 방법이 될 수 없다. 명분 싸움이 아닌 이상, 재판 판결로 간다는 것은 원고와 피고 모두 이익이 될 것이 없다. 물론 17년 전 재판을 시작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행동이었고 엎치락뒤치락 했던 항소와 상고는 모두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런 의미에서 1차 소송 원고들의 기나긴 여정은 혈우사회 역사에 뜻 깊은 이정표를 남겼다.

이제 중요한 것은,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지닌 당사자들이 한 테이블에 함께 앉는 것이다. 혈우사회 모든 가족을 아우르는 뜨거운 가슴, 그리고 슬기롭고 지혜로운 판단을 위해 차갑고 냉정해야 할 머리가 필요한 때이다. 

[헤모라이프 김승근 주필]

김승근 주필 hemo@hemophilia.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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