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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HCV소송, 달력 갈기 전 다시보기

기사승인 2019.12.29  22:2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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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가지 변곡점 있었다..내년 높은 파고 예상

   
 

16년동안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 내 소송이 있다고 하면 일반인들은 '에이, 설마~'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는 반응이 많을 것이다. 그게 민주화 운동 관련 재심사건도 아니고 약품으로 인한 바이러스 감염사건이라는 사실을 알면 아마도 더 궁금증이 더하지 않을까?

바로, 녹십자사를 상대로 한 혈우병 환자들의 HCV(C형간염유발바이러스) 집단감염 손해배상 소송이다.

90년대 초반까지 제대로 정제되지 않은 혈액유래 혈우병치료제를 투여받은 650여 명(당시 집계로 전체의 약 50%)의 혈우병 환자가 HCV에 감염되었고, 그 중 일부가 2004년 약품 제조사인 녹십자사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 것. 대법원까지 올라간 이 사건은 원고(환자들) 30명이 2017년 승소취지의 파기환송을 받아 현재 서울고등법원에 계류중이다. 

이에 힘입어 배상범위에 포함되는 31명의 새로운 환자들이 자료를 갖춰 2018년 부산지방법원 1심 소를 제기했고 1차소송과 같은 맥락의 법정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앞서 2013년에는 역시 치료제로 인해 HIV에 감염된 18명의 혈우병 환자들이 녹십자와 12년간의 소송 끝에 '조정'으로 사태를 마무리 지은 바 있다.

2019년은 총 61명의 HCV 소송인단들에게, 또 소송에 참여하지 못했으나 바이러스를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수 백 명의 혈우환자 가족에게 의미있는 한 해였다. 올해 있었던 몇 가지 변곡점을 중심으로 9분능선을 넘고 있는 HCV소송의 양상을 짚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예측해본다.

<원고 환자들에 대한 신체감정>

   
▲ 한양대병원서 신체감정을 받고 있는 소송 참여 혈우환자

오랜 기간 정체되어 있던 1, 2차 소송은 각 법원이 원고들의 피해상황을 구체화 하기 위한 신체감정을 재개하면서 판결까지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에 진입하는 것으로 관측되었다. 법원의 감정의사 지정은 당초 2018년에 이루어졌으나, 감정의인 한양대병원 소화기내과 전대원 교수측에 의하면 '의학적인 판단기준을 세우기 위해 다소 시간이 걸려' 올 2월 18일부터 순차적으로 감정이 진행되었다. 현재 신체감정을 거부하는 1명의 원고를 제외하곤 감정서가 모두 법원에 제출되었는데, 의료진의 판단기준에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일부 나오고 있다.

<한국혈우재단의 환자 의무기록 제출>

2018년 7월 녹십자측은 법원에 혈우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소송참여 환우들의 의무기록과 혈액검사기록 일체를 제출하라는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했고 혈우재단은 8개월이 지난 올해 3월 19일 환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만페이지에 달하는 해당 기록 전체를 법원에 제출했다. 재단측은 "법원에서 재차 자료를 요구해 와 계속 불응할 수 없고,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 소송을 하고 있는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지만 환자사회에서는 '녹십자로부터 100% 후원을 받아 운영되는 혈우재단이 민감한 자료를 유출함으로써 녹십자에게만 유리한 자료로 변질될 수 있고,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 반박했다. 한편, 호된 상반기를 보낸 혈우재단은 이어 녹십자측이 법원을 통해 '환자들이 재단에서 무상으로 C형간염 치료를 받은 자료를 제출하라'는 취지로 보낸 사실확인에는 아직까지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혈우재단이 법원에 제출한 환자들의 의무기록

<언론과 국제사회의 재조명>

KBS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시사기획 창'에서는 4월 '나는 왜 감염됐을까'편을 통해 적십자의 허술한 혈액관리 실태와 녹십자의 혈액제제 관련 혈우병 환자들의 법정투쟁 사연을 방송했다. 방송에는 용기내어 실명과 얼굴까지 공개하며 혈우병 치료제로 인한 감염의 심각성을 인터뷰한 많은 혈우병 환자와 가족들이 나왔다. 특히, 방송에서는 현재도 적십자가 사용하고 있는 바이러스 검사법으로는 HCV를 제대로 걸러낼 수 없음을 혈액진단 전문기관인 프랑스 연구기관과의 현지취재 결과 새롭게 밝혀내면서 HCV 오염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시사기획 창 '나는 왜 감염됐을까'편 방송화면

국제사회에서도 영국을 중심으로 한 몇몇 국가들이 80년대에 발생했던 '수혈감염 스캔들'에 대한 대대적인 재조사에 들어갔는데 그 피해자의 상당수가 혈우병 환자들로 알려졌다. 혈우병 치료의 선진국들이 2000년대 들어 혈우병치료제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진상조사를 '일단락'했다고 알려졌던 것과 달리, 세계 혈우병 사회를 리드하고 있는 영국이 이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를 실시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 정부들의 반응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방송 인터뷰를 위해 1, 2차 소송인단이 한자리에 처음 모이고 공동 대응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원고 환자들은 전체 소송인단 모임을 구성, 연락체계를 갖추고 '녹십자 HCV 집단감염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행동'을 발족했다.

<녹십자와 환자들 간 합의 논의>

2018년도부터 코헴회 대의원회 내에 구성되어 활동이 진행된 'HCV협의회'가 주선, 올해 6월 녹십자와 소송참여 환자 간 '합의'가 처음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에 원고측 변호사와 녹십자 책임자가 11월 말 면담을 갖고 한 달 동안 합의기간을 갖자고 했으나 12월 23일로 정해진 기한까지 양측은 이렇다 할 접근을 이루지 못했다. 가장 큰 쟁점은 '합의금' 부분이기도 했지만 '향후 치료 보장'이라는 전제조건에서 큰 차이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녹십자측은 연초 추가적인 미팅을 제안했고, 환자들은 변호사를 통한 대화창구를 열어두면서도 피고측을 압박하고 재판부에 조속하고 명확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또 국제사회에 한국 혈우환자들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공동행동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 소송인단 모임에서 소송'역사'를 요약하면서 칠판에 적힌 메모들

<2020 HCV, 어디로 흐를 것인가>

아직까지 합의 가능성도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지만 HCV를 둘러싼 높은의 파고가 있을 것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일단 환자사회의 관심과 분노가 17년이라는 긴 시간과 올해 혈우재단의 행정을 통해 임계점에 가까워졌고 구체적인 배상규모가 수치화되면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더구나 감염환자들 중 간 상태 악화와 다른 합병증으로 유명을 달리 하는 숫자가 늘고 있어 더이상 해결을 늦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건 녹십자측도 인지하고 있다.

법적 공방 측면에서도 사상 유례가 없는 기간을 이어오고 있어 사법부 역시 판사 보직 순환 주기에 맞춰 결단을 미루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1차소송을 맡고 있는 서울고등법원은 2018년 3월 이후 2년 동안 변론기일 조차 잡지 않아 부담감이 더 무거울 수 있으며 더이상 오갈 수 있는 증거자료도 이제는 없어 보인다.(2차 소송은 새해 2월 초 변론기일) 게다가 '가습기살균제법'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어 제조물에 관한 회사의 책임이 더욱 강화되고 집단소송제도를 통한 보상 절차가 더욱 피해자 중심적으로 변화하는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GC녹십자는 혈액사업과 관련된 굵직한 국내외 프로젝트가 내년 준비되고 있다. 그린진F 중국 임상 진입, MG1113 1상임상, 면역글로불린 FDA승인 건 등이 그러하고, 6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릴 세계혈우연맹 총회를 통해 아시아 혈우병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혈우재단은 2026년 혈우연맹총회의 한국유치를 추진하고 있어 녹십자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녹십자가 국내 감염사태를 해결하지 않고 이러한 큰 프로젝트를 풀어나가는 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가오는 2020년, 녹십자와 환자사회의 방향지시등은 과연 어느 쪽으로 향할지, 아니면 브레이크등이나 어쩌면 후진등이 켜질지, 지켜만 보아선 안될 일이다.

   
▲ '녹십자 HCV 집단감염사태 해결을 위한 공동행동' 회의 모습

[헤모라이프 김태일 기자]

김태일 기자 saltdoll@newsfinder.co.kr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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