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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에서 나를 외치다.”

기사승인 2019.04.26  01: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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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크린 손과 발, 하지만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났던 그녀의 시간”

   
 

스무 살, 이제 대학에 막 입학한 한 학생이 있었다. 내 인생에서 스무 살을 되돌아보면 가장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많았던 때가 아닌가 싶다. 뭐랄까, 궁금한 것을 책에서 공부하고 익히는 것만 생각했던 학생 때와 달라진 것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그 외에 어떤 시도를 해본다면 얼마든지 궁금한 곳을 직접 가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무 살에 꼭 내 힘으로 돈을 모아 세상을 보러 나가겠노라고 외치곤 했었다.

그런 나이였다. 이 책의 주인공 신호빈씨가 자신이 ‘전신성 경화증’에 걸렸다는 말을 들은 때가 말이다. 세상을 향해 나를 외친다는 그녀의 말은 분명 처음 병명을 들었을 때에는 상상해보지 않은 방식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는지, 병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지 그런 것 따위를 설명하면서 자신을 알리고 싶은 스무 살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하지만 이어진 11년간의 투병.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잊어버리려 했다가도 전신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에 잠을 깨고, 몸을 뒤틀기 일쑤였고, 밥보다 많은 약을 먹어야 하는 횟수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온 몸으로 ‘내 몸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만 느껴질 뿐.

온 몸의 근육이 괴사하고 기능을 잃어가는 병, 몸을 이루고 있는 결합조직 성분 중에서 콜라겐이 아무 원인 없이 과다하게 생성, 축적되어 각 장기의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게 하고, 피부가 두꺼워지거나 심해지면 괴사하게 되는 병은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온 여자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병이었다. 그렇게 신호빈씨는 그 자리에서 휠체어 위에서 살아가는 삶으로 주저앉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의 공동저자이자 신호빈씨의 아버지 역시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딸의 투병을 간호하며 부디 기적이 딸에게 일어나주기를 바라며 그렇게 11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웅크린 손과 발, 하지만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났던 그녀의 시간”

그녀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읽어 내려갔다. 첫 장은 갑작스럽게 받게 된 희귀병 판정, 이후 11년의 투병 기간 동안 그녀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또 어떻게 일상을 보내왔는지 기록한 하나의 일기와도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째 장은 예상 외로 그녀의 아버지가 그 긴 세월동안 간병하면서 느낀 심정과 그간 있었던 일을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 두 부녀가 주고받았던 그간의 편지와 메일을 읽으며, 나는 내내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 신호빈의 나를 외치다-사람 속으로, 사랑 속으로/ 저자 신호빈 신태균/ 편집 홍주리/ 출판사 미래지향/ 출판일 2013.03.30

그 긴 시간 동안 그녀가 이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다는 것도 몰랐고, 그녀가 트위터를 통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던 시간 동안에도 그녀에 대해 몰랐는데,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들만큼. 더 일찍 그녀를 알았다면 한 마디의 메시지라도 그녀에게 보내며, 한 줄기나마 힘을 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내 책을 덮고, 마지막 장에서 그녀를 응원했던 수많은 유명인들이나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보면서 나는 그녀의 삶이 마치 7년 간 땅 속에서 웅크려 있다가 비로소 한 순간, 1년 중 가장 찬란하게 초록빛으로 빛나는 여름날에 자신의 존재를 크게 알리는 매미와 같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너무나 평범했던 법학을 좋아했던 한 학생, 갑자기 다리가 굳어지고 몸이 피로하게 되어 찾았던 병원에서 받은 ‘전신성 경화증’ 이라는 엄청난 판정, 그 이후로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고,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가 외로이 병마와 싸우며 보낸 시간동안 그녀는 절대 낫지 않을 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긴 시간을 묵묵히, 조용히 버텨냈다는 것이 그런 생각이 들게 했던 걸까? 내장까지 굳어질 것이라는 의사의 말, 손가락에 병증이 찾아와 손가락을 잘라내며 이것이 마지막이기를, 두 발이 썩어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발을 자르고 휠체어에 의지하는 삶을 선택하며 이것이 마지막이기를,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는 얼마나 간절히 바랬을까? 그들의 일기 밖으로 전해져오는 간절함은 아마 그들이 진짜 겪었던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이일 것이라는 것이 글 너머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팔과 다리를 잃고 웅크린 체 살아가던 그녀는, 2011년, 돌연 세상 밖으로 나와 자기 존재를 알렸다.

‘트위터’라는 SNS를 이용해서 말이다. 한창 투병생활을 하는 환자가 트위터 같은 것을 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그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잊은 척 하기 위한 현실 도피 같은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투병기를, 자신의 일상을, 아주 담담하고 솔직하게 말하며 그녀는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자그마치 11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티고 말이다. 의사가 자신에게 시한부 ‘두세 달’ 의 선고를 내린 날,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저 주저앉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을 그 순간에 그녀는 자신을 세상에 알리기로 한 것이었다.

‘치유의 길을 가려면 정직해야 함을 물론이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기꺼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실수, 오기, 분노, 고통까지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는 건 할 수 있겠는데, 어려움에 눈물 흘리지 않고 강해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다 독하게 참는 것 밖에는 안 떠올라 웃었다’

‘나를 외치다.’ 나는 비로소 제목이 가진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트위터’라는, 너무나 대중적이고 격의 없고, 누구나 모일 수 있는 소통의 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정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세상 밖으로 내보이겠다는 일종의 외침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외침이 너무나 멋있고, 통쾌하고, 시원한 여름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문득 그녀를 보면서 매미가 생각났던 것일까? 아무리 긴 시간을 땅 속에서 웅크리며 살아도 누구도 그 매미가 땅 속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땅 밖으로 나와 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아주 먼 곳에서도 알 수 있다. 매미가 그 곳에 있노라고, 정말 뜨겁고 찬란한 여름이 왔노라고 말하듯 말이다.

   
▲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이 이야기 안에는 그런 소녀가 있었다. 길지 않았고, 보낸 시간의 절반은 눈물 혹은 슬픔 혹은 투지로 이겨내야 하는 아픔뿐이었으나, 자신의 삶을 누구보다 당당하게 여기고, 치열하게 이겨내려 했노라고 말하는 그런 한 사람의 인생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사랑했던 그녀의 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는 2013.12.16. 더 이상 새 글이 올라오지 않는 그녀의 트위터 계정이 유독 아련하게 느껴지는 날이다.

그녀를 남몰래 응원하고, 매일 그녀와 함께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 계정을 몇 번이나 다시 보았을까. 기적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모두 알면서도 말이다.

어느 곳에서든 행복하고 평안하시기를... 나는 그렇게 조용히 바래본다.

[헤모라이프 박천욱 대표]

 

박천욱 대표 china69@naver.com

<저작권자 © 헤모필리아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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